366. 김요한 (2)
“엉망이네.”
“요한의 빈자리가 제법 큰 거지.”
내 말을 미호가 받아쳤다.
“그냥 놔둘 거야? 제대로 출근하는 게 일주일에 이틀도 안 돼.”
미호의 불만을 이해한다. NS는 전투든, 운영이든 소수 정예로 돌아가는 회사다.
요한 형 하나 빠진 빈자리가 꽤 컸다.
“연애에 빠진 친구야. 내가 대신한다. 미호, 날 믿어.”
그 말에 방귀태가 나섰다. 비장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하등 쓸데없는 말이었다.
“……에효.”
작은 회의실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미호의 한숨 소리는 컸다.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데도 귀태 형은 여전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가 한다니까.”
“빠져. 방귀태.”
내가 교통정리에 나섰다.
우리 귀태형, 낄낄빠빠 모르나.
“정신 차리게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은데?”
미호가 말한다. 정론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요한이 형, 처음 하는 연애 아냐? 방해하지 말자. 남은 일은…… 그래, 동훈이 형?”
“일 더 시키면 탈주한다.”
최근에 일이 제법 많긴 했지.
그렇다고 믿을 만한 다른 사람이 그리 많진 않은데 말이야.
판독기 소리에 여기저기로 사람을 보내는 일이다.
말로 하면 단순한데,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다.
경중을 따지고, 경찰과 화랑, 불멸특수대와 동선이 안 겹치게 만들어야 하니까.
그래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벌써 지방 쪽에서는 크랙 블랙홀로 피해 소식이 전해지는 중이었다.
멱 따는 멧돼지 한 마리가 전주 모악산 안으로 들어가서 농성 중이라고 했던가?
그건 협회에서 처리했다.
부유 능력과 염동 능력을 갖춘 더블 능력자가 나섰다고 들었다.
골치 아픈 일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렇다고 이걸 외면할 순 없는 노릇이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했다.
난 짧게 고민했다. 10초 내외였다. 이후 금세 방법을 찾았다.
“아무나 시켜, 시키다 보면 잘하는 사람이 나오겠지.”
“……저걸 대표라고 따라야 한다니, 원통하다.”
이건 팬더 형.
“이미 알고 있었어. 오늘 넌 바보 모드라는 걸, 기대도 안 했다.”
이건 미호.
“네가 최고다.”
낄낄거리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건 중봉이 형.
“그러니까, 내가 한다니까?”
귀태 형은 눈치 없이 한마디 했으나, 아무도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아무나 시켜서 사람 막 죽으면 어쩌려고?”
회의석 끝자리에 앉은 중고 형이 사색이 된 채로 말했다.
“어차피 온 세상 사람을 다 구할 순 없어요. 손 닿는 대로 구하는 거지. 그거로 우릴 원망해? 번지수 잘못 잡았지. 난 내 사람이 중요해. 모든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말이 틀려?
“원통하다.”
“바보 모드.”
“역시 최고.”
“내 말 안 들려? 내가 한대도?”
다들 똑같이 한마디씩 더했다.
“이상 회의 끝.”
우미호는 이 회의에서 그래도 양질의 선택지를 찾아냈다.
개인적으로 제 스승을 찾아 부탁한 거다.
그러니까 내 친조부, 유무인 씨를 호출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이 일에서 재능을 뿜어냈다.
“소싯적에 불멸교를 운영하던 몸이다. 이런 것쯤이야. 처음 교를 창설했을 때 얘기를 해 주마.
그때는 단속 피하는 게 일이었지, 목숨 건 도주의 연속이었다. 경찰 무전을 도청하고 빈틈을 찾아야 하는데, 실패하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해야 했지. 그 일에 비하면 이런 건 일도 아니다.
그때가 생각나는 군, 대표? 세최특? 어이?”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화랑의 정소진 저리 가라다.
걔는 말은 많지만, 그래도 대개 필요한 얘기를 하는 편인데.
유무인 씨는 ‘라떼는 말이야’를 몇 시간이고 읊는 재주를 지녔다.
할아버지가 지닌 최고의 무기는 추억일지도 모른다.
난 귀를 막고 냅다 달려 수다 지옥에서 빠져나왔다.
아직도 할 일이 많다.
대부분 다 떠넘겨도 그렇다.
물론 그중에서는 피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내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가령, 정아 누나를 달래는 일 같은 거. 말하는 누나의 말투에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난 그런 누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제가 조금 전 들은 얘기를 해 드리죠. 토끼는 빠르고 거북이는 느립니다. 하지만 둘 중에 오래 사는 건 누구죠?”
“총알을 먼저 맞는 놈이 죽겠지.”
눈에 귀기가 서렸다.
오뉴월에 서리는 강혜민이 아니라 이쪽에서 먼저 내리겠다.
난 정아 누나 손목을 잡고 조용한 구석으로 데려갔다.
“인내심을 가져요. 이제까지 잘 참았으면서 잠깐을 못 참는 겁니까?”
“난 눈앞에 있는 걸 보고도 참을 만큼 호인이 아니다.”
“하지만 멍청이도 아니잖아요?”
정아 누나가 날 똑바로 바라봤다. 얼음 공주란 별명을 붙인 게 무색할 정도로 타오르는 눈길이다.
요새 왜 이렇게 열정이 끓어 넘치시나.
“그렇게 길진 않을 거예요.”
나도 기다리는 게 장기가 아니다. 하지만 때론 인내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이 작전명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네 뒤에 나 있다?
이 정도로 충분하려나?
따로 미션 명칭을 붙이진 않았다.
그저 장기 임무일 뿐이다.
이 임무에 NS만 엮인 것도 아니고.
뭐, 다 잘되면 좋겠는데, 안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세상에 완벽한 작전이란 건 없다.
그러니 성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요한은 그냥 놔두고?”
돌아서려는데 정아 누나가 물었다.
다들 김요한 걱정에 발 벗고 나서네.
그렇게 심각한가?
“사생활이에요. 알아서 하겠죠.”
난 그 말을 남기고 훌쩍 돌아섰다.
또 다른 회의 시간이었다.
‘팔천 마도인의 왕.’
남자는 자신이 섬기는 사람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신이었고 주인이었다.
모든 것이었다.
“나의 주를 위하여.”
남자는 기도하며 팔에 주사기를 꽂았다.
주사기 사출구를 통해 나온 화학 약품이 혈관을 따라 흐른다. 마약이라 불리는 향정신성 약품이 남자의 뇌를 아찔한 절벽으로 몰아간다.
“크흐흐.”
남자의 입가에서 침이 흘렀다. 서울 외곽의 조용한 여관이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곳이었다.
방구석에서 남자는 마약에 취했다.
그의 눈에 환상이 보였다.
곰팡이와 얼룩이 핀 벽지에서 천사가 나타났다.
벽을 뚫고 나타난 천사의 손이 자애롭게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나의 아이야, 준비하거라. 곧이다.”
‘네, 성모시여.’
남자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불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약에 취한 채로 사방을 떠다니는 불빛과 환상에 취해 간다. 고요한 밤이 지나간다. 여관 밖에 덩그러니 자란 나무 위로 밤새가 날아들었다가 훌쩍 떠났다.
약에 취한 남자는 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환각과 환영에 사로잡힌 채로, 환몽의 세계로 접어든다.
“곧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주인이 말한다. 남자는 약과 잠에 취한 채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는 자신이 순교를 위해 태어났다고 믿었다.
오롯이 그 순간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믿는다. 기다림은 고통이지만, 그 고통이 있기에 끝이 아름다운 법.
순교자는 기다렸다.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는 순간을.
약에 취한 순교자가 있다면 그저 제 사상에 심취한 이들도 있었다.
청량리역 앞, 시장 근처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중이었다.
함바집 식당이 여럿 들어섰고 예전에 한창 성세를 구가하던 사창가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골목길 구석, 이런 곳에 왜 모텔이 있나 싶은 곳에 모텔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근처 인부가 묵는 곳이기도 했고.
노숙자 몇을 받아들여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곳이기도 했다.
남자는 노숙자의 행색을 한 채, 방 하나를 빌렸다.
며칠 낑낑거리는 꼴을 보다 못한 여관 주인이 남자를 붙들었다.
“사지 멀쩡해서는, 막일이라도 해야지. 젊은 사람이 쯧쯧.”
“……일 소개 좀 해 주시면 안 됩니까?”
어눌한 말투지만, 뻘뻘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는 꼴이 순수해 보이는 말투였다.
여관 주인은 오지랖이 대단했다.
“민증은 있고?”
어눌한 말투는 답답해 보였지만, 순진하니 우직하게 소처럼 일은 잘할 것 같았다.
“있어 봐. 나 아는 인력 사무소 있으니까.”
여관 주인은 소개하며 적당히 콩고물을 얻어먹었다.
어눌해 보이는 남자는 이리저리 돈을 뜯길 것이다.
호구였다.
인력 사무소장도 당연하듯 그렇게 했다.
“요새 민증 하나만 갖고 일 시켜 주는 사람 없다. 너 전과자지?”
어눌한 남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좋아. 일당 6만 원이다. 됐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는 낮에는 공사판을 돌아다니는 인부가 되었고.
밤에는 연락을 기다리는 한 단체의 단원이 되었다.
그 단원이 자주 가는 식당에는 얼굴을 반쯤 가린 50대 중년 여성이 있었다.
“이모, 여기 공기 하나 더!”
함바 식당에서 잔뼈가 굵은 여인이었다.
얼굴에 흉한 화상이 있는데, 그와 상관없이 성격은 밝았다.
“오야, 아재 오늘은 잘 먹네.”
“이모 밥맛이 좀 좋아야지.”
농지거리가 오가고 일반 회사에서 했다면 당장 성희롱에 걸릴 만한 농담도 서슴없이 한다.
식당 이모는 껄껄 웃었다.
“물건은 쓸 만하고?”
“언제 한 번 테스트해 보든가.”
둘은 죽이 척척 맞았다.
일상이었다.
이들에게는 매일 일어나는 일이었다.
일상을 영위하며 서로 연결된 이들은 더 있었다.
길동의 한 화장품 멀티샵 매장에도 있었다.
“누가 보면 한국 사람인 줄 알겠다. 어디에서 왔다고?”
“베트남요.”
“한국말은?”
“어릴 때부터 드라마랑 케이팝 보면서 배웠어요.”
점장은 애가 싹싹하지는 않아도 멍청해 보이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제품에 관한 지식이 빠삭했다.
아는 것도 많았고 관심도 많았다.
불법 체류자도 아니고.
최저 임금으로 고용해도 되고.
“알바 할 거지?”
“뽑아 주시면요.”
그렇게 베트남에서 온 스물셋의 여대생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녀는 성실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말썽을 피우지도 않았다.
‘이 정도면 적당하지.’
점장은 사람을 쓰는 일이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인 줄 안다.
특히나 어리면 어릴수록 일을 가르치기도 어렵고 제대로 하게 만드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 정도면 백 점 만점에 팔십 점은 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알게 모르게 서울 안으로 사람이 모인다. 그들이 전부 하나의 단체에 소속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목적은 하나였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준비된 신호가 오면 준비된 일을 하는 것.
그중 누군가는 폭탄을 몸에 두르고 스위치를 누를 것이고.
누군가는 저주가 겹겹이 쌓인 기어를 아무렇게나 길에 뿌릴 것이다.
독이 퍼질 것이고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다.
그게 그들이 준비한 일이었다.
“어때?”
팬더 형은 꿈이 있다.
그 꿈을 위해 돈을 모으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면 회사의 대표로서 그 꿈을 이루는 걸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에는 어려운 일이 산재했다.
그중에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쉬운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뭔데?”
땅을 산 건 일 년이 넘었고 공사가 시작된 지는 반년이 넘었다.
대강 모양새가 갖춰진 건물이 되기까지 딱 1년 반이 걸렸다.
교통 체증만 유발하는 꼴이 될 것 같아서 서울이 아닌, 경기도 외곽에 세웠다.
위치는 경기도 화성.
농지로 쓰던 곳을 정부와 합의 보고 다른 용도의 대지로 변경했다.
덕분에 땅을 조금 싸게 사긴 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올라가는 건물은 아카데미다.
“초등학교 교과 과정부터 고등학교 교과 과정까지는 필수로 배우게 할 거야. 그에 맞는 인선은 스티븐 최가 알아서 구해 오기로 했고.”
팬더 형은 여전히 눈치를 못 챈 것 같다. 이 양반 불멸자 피 반은 섞였다면서 뭐 이렇게 둔해?
아무리 봐도 변신족 피가 월등히 비율이 높지 않나 싶다.
감이 너무 떨어져.
“그래서 이게 뭔데?”
“수인 갱생 아카데미.”
난 말했고 팬더 형은 눈을 깜빡였다. 그렇게 십여 초를 멍하니 나만 바라봤다.
팬더 형 눈앞에서 손바닥을 흔들었다.
“왜 넋이 나갔어?”
“왜겠냐?”
굳이 따라온 이중봉 팀장이 미소와 함께 말했다.
“울지는 마. 그거 보면 광익이 평생 놀린다.”
옆에서 정아 누나가 팬더 형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아니, 시발.”
팬더 형은 드물게 육두문자를 뱉었다. 그의 눈에는 정말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툭 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게 그렇게 감동할 일이야?
아, 물론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긴 했다.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당연하게도 난 이 일에 꽤 많은 투자를 했고.
그러니까 이건 선물이었다. 고생 작살나게 한 팬더 형을 위한.
“와, 씨.”
팬더 형이 하늘을 보더니,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그는 감동했다.
그걸 보니, 나도 꽤 울컥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네.
“울보 곰탱이.”
그것과 별개로 새로운 별명은 지어 줄 만했기에 읊조렸다.
팬더 형은 자신을 놀리는 말에도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