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김요한 (1)
“후우.”
이중봉 팀장이 내뿜은 파란 연기가 허공에 너울져 날렸다.
연기에서 청량한 향이 났다.
그냥 담배는 아닌 듯했다.
“회사 내에서는 금연 몰라요? 대표 말을 똥구멍으로 들으셨나. 이럴 거면 대련하자니까?”
“싫다.”
중봉은 담배를 꼬나물며 미소를 보였다.
“전 웃는 얼굴에 주먹 잘 날립니다. 웃는다고 안 때리고 그러지 않아요.”
“무방비인 상대를 때리겠다고?”
“주먹 내지르면 반격하겠지.”
“안 해. 그냥 맞을 거야.”
“그럼 대련이 아니잖습니까?”
“맞아. 구타지. 대표의 직원 구타. 폭력이 난무하는 회사, NS.”
얄밉다. 얄미운데, 진심으로 덤벼도 상대를 안 할 것이다. 이 양반은 한 번 말하면 지키는 작자다.
“이건 정신을 맑게 해 주는 약초를 말아서 만든 거다. 담배랑은 다르지.”
이러면 정말 때릴 만한 구실도 없고.
참 빈틈없는 인간이야.
“유광익.”
“대표님이 빠졌네요.”
“말 한마디로 사람을 움직이는 기분이 어떤가?”
“뭘 어때요.”
나와 이중봉 팀장이 선 자리는 회의실 앞이다.
그리고 이 회의실 안에는 행안부 장관과 불멸특수대 사장, 단군 그룹의 전권을 위임받은 사장, 피닉스 팀장, 경찰청장이 자리했다.
모두 내 요청에 모인 거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자잘한 조정을 위해 벌써 세 번째로 모인 회의였다.
“사람들 기다리겠네, 들어갑시다.”
난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며 회의실 문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이중봉 팀장의 말이 날 멈추게 했다.
“그 새끼들이 할 수 있는 게 자살 테러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고개만 돌려 바라보니, 이중봉 팀장은 다 태운 연초를 손으로 비벼 끄곤 품에서 은색 갑을 꺼내 안에 넣었다.
휴대용 재떨이라니, 더럽게 안 어울리네.
“요한이 자꾸 자리를 비운다.”
“김요한?”
“회사 일에 소홀해. 훈련에도 소홀하고.”
불멸자 부대 전반의 훈련을 책임지는 건 이중봉 팀장이었다.
“그렇군요.”
그래서 어쩌라고. 바쁜 일이 있나 보지.
“난 경고했다.”
“여자라도 생겼나 보죠.”
내 말에 이중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는 애들이 놀러 오고 싶다는데 같이 놀까?”
이십 대 중반, 한창 여자들과 어울릴 나이 아닌가.
요한은 은근히 긴장했다. 일과 관련되지 않은 이성을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예쁘냐?”
요한이 물었다. 평범한 남자의 호기심이었다.
“음, 얼굴은 예쁜데, 애가 좀 특이해.”
“혼자 와?”
“둘.”
호순의 말처럼, 곧 술집에 두 명의 여성이 들어섰다.
둘 다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끄는 차림이었다.
한쪽은 지금 당장이라도 이온 음료 광고를 찍으러 가도 될 것 같은 청초한 차림이다.
흰 원피스 위로 엷은 하늘색 셔츠와 밀짚모자를 썼다.
‘여기 호프집인데.’
물론 싸구려 술집은 아니다. 돈 벌어서 뭐 하겠나.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마시는 거지.
요한은 번 돈을 아낌없이 썼다.
어쨌든 오후 6시 이후에야 문을 여는 호프집과 저 차림이 어울리는 건 아니었다.
얼굴은 예뻤다. 수줍은 듯 미소를 보이는 것도 청순한 분위기를 맘껏 풍겼다.
그래도 이쪽은 양반이었다.
“야, 예쁘다며.”
요한은 오랜만에 복화술을 했다.
눈으로는 들어온 여자 둘을 쫓고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작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호순의 귀로 향했다.
호순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얼굴은 예쁘잖아.”
청순녀의 곁에 선 여자는 색달랐다.
보통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까만 롱부츠에 입술에 피어싱.
엊그제 관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하얀 피부와 대조되는 새카만 머리카락.
어디선가 저런 차림에 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고스족?”
“애가 일본 유학 다녀오더니, 이상한 거에 물들어 왔더라고.”
짤랑.
금속으로 만든 치아 모양의 귀걸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다.
호순과 요한뿐 아니라 가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뺏을 만했다.
당연하게도 모두 두 명의 여자를 주목했다.
직원이 둘에게 다가갔고.
둘은 곧 뭐라고 말하더니 주변을 둘러봤다.
호순이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
곧 여자 둘이 요한과 호순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주변에서 들어온 여자를 훔쳐보던 남자 무리가 테이블에 앉은 요한과 호순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정기남 따위와 같이 다녀서 그렇지, 요한도 혼혈 불멸자다.
어디서 외모로 쉬이 꿀리지는 않는다는 거다.
불멸특수대를 때려치우고 연예인의 꿈을 품은 호순도 마찬가지고.
“뭐야, 나 빼고 술 마시면 재밌냐?”
“음, 이쪽도 오빠랑 동갑? 잘 생겼네요.”
참 재밌는 건, 둘의 차림과 말투가 반대라는 점이다.
얘들 옷은 왜 이렇게 입고 다니는 거냐.
“컨셉이야. 다음 연극에서 이런 역할이거든. 나도 갑갑해서 뒈질 것 같다.”
청순녀가 호쾌한 어조로 말했다.
첫 대면이고 이름도 모르는 사이에 대뜸 반말이다.
“전 이게 멋있다고 생각해서요.”
고스녀는 수줍게 볼을 붉히며 말했다.
묘하게 귀여운 미소였다.
“술잔 비워 두고 제사 지내? 안 마셔?”
청순녀의 주도로 요한은 또 걷다가 비틀거릴 정도로 마셨다.
“오빠, 잘 생겨서 마음에 든다.”
그렇게 일주일.
고스족 여자애와 훌쩍 친해졌다.
이름은 고우심.
중년 여자배우 이름이 반평생 별명이었단다.
“응. 난 성인요한이었지. 처음에는 분명 성스러울 성이었는데, 나중에는 19금 요한이 되어 있더라.”
꺄르르르.
혀를 보이며 웃는 고우심을 보다 보면 요한은 뿌듯함을 느꼈다.
누가 그랬던가.
남자를 홀리는 건 청순함이나 섹시함, 큰마음 따위가 아니라, 리액션이라고.
고우심은 그런 면에서 남자의 마음을 꿸 줄 알았다.
요한은 금세 그녀와 밤을 함께 보냈고 부쩍 가까워졌다.
알고 보니 청순녀와 호순은 썸타는 사이였고, 그렇게 넷이 어울리는 일도 많았다.
‘즐겁다.’
천재 사이에 낀 범재가 아닌, 평범한 불멸자 직장인의 삶.
요한은 회사 바깥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았다.
“오빠는 못 하는 게 없구나.”
특히나 우심이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할 때는 박살 나 버린 자존감이 바벨탑마냥 우뚝 세워졌다.
“내가 좀 그래.”
사격이면 사격, 노는 거면 노는 거, 요한은 다재다능함을 뽐냈다. 그동안의 훈련과 전투로 단련된 요한에게는 즐거운 놀이였을 따름이었다.
“특수대 시절에는 그저 그렇더만.”
뭘 해도 잘한다. 요한을 본 호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제 회사 구경 한번 시켜 줘요. 나 NS 팬이야. 그 유명한 사람 있잖아요.”
“누구? 세최특?”
“아니, 잘생긴 만큼 성격 나쁜 사람 있잖아요. 최근에 엄청 유명해졌는데 몰라요?”
카페에 앉아 딸기 타르트를 나눠 먹는 중이었다.
우심은 그렇게 말하며 홀로그램 폰을 켰다.
그 화면에서, 요한은 오랜만에 기남을 봤다.
‘실력이 더 늘었네.’
홀로그램 속, 정기남은 웨이브 형태 블랙홀 앞에 홀로 서 있었다.
“잘 생겨서 좋은 거냐?”
요한이 반쯤 핀잔 삼아 말하자.
“제 눈에는 오빠가 더 잘생겼거든요. 그냥 재수 없게 구는 게 재밌잖아요.”
우심은 천사같이 말했다. 킥킥 웃는 모습이 실제로 천사처럼 보였다.
요한은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여기, 카페예요.”
볼이 붉어진 우심이 말했다.
“아무도 안 봤어. 날 믿어. 나 불멸자다.”
“웃기는 사람이야. 진짜.”
둘은 깨가 쏟아졌다.
그때까지도 홀로그램 속 기남은 피를 뿌리며 싸우는 중이었다.
‘정보가 잘못됐군.’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한 시스템도 없다.
기남은 그걸 너무도 잘 안다.
어릴 때 순혈 정가의 가주는 그야말로 높디높은 벽이었다.
넘을 수 없는 벽, 닿을 수 없는 천장.
그가 자신의 하늘이었다.
가끔 제 형이 그 하늘을 향해 달리는 걸 보며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 지금은?
‘정가 따위.’
알아서 잘 굴러가면 그만이다.
길을 벗어나 구르면 형이 알아서 한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정가는 내가 맡겠다. 기남아.”
그러라고 했다.
어릴 때 하늘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지금 자신에게는 아무 가치도 없다.
한때는 가주가 완벽한 위인인 줄 알았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김요한 이 새끼.’
분석팀이 일을 제대로 안 했다. 기남의 판단으로는 그렇다.
김요한 하나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가 최근 들어 회사 일에 소홀한 건 사실이었다.
‘잡생각.’
기남은 회사 일에 신경을 거뒀다. 다 집어치우고 지금 하는 일에나 집중하기로 했다.
웨에에에에에엥!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이 고막을 찢어 버릴 것 같았다.
감각을 조정해도 이렇다.
순혈 불멸자의 핏줄, 특히나 정가의 핏줄은 이런 단점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
보통은 그렇다.
하지만 기남은 달랐다.
‘의식적으로 멀리.’
감각 분리, 분화.
이중봉 팀장을 통해 배운 거다.
최근에는 광익이 어디서 주워 온 늙은 불멸자한테 따로 트레이닝도 받으며 감각을 다루는 법을 익혔다.
지금의 기남에게 이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염병, 뭐야. 너무 빠른데.”
“시이발, PWAT 안 와?”
근처 파출소에서 나온 순경 둘이 38구경을 들고 난감한 기색을 표했다.
홀이 찢어질 듯 팽창하더니, 멋대로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최근에 생긴 이상 현상이다.
크랙 블랙홀, 작은 구멍이 멋대로 숭숭 뚫리다가 열리는 홀이다.
빠른 타입은 판독기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12분 내외로 활짝 열렸다.
홀에서 나온 인베이더가 운이 좋다면, 특수종 부대 대신 민간인을 먼저 만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 홀은 운이 나쁘군.’
마침 기남이 이 앞을 지나가고 있었으니까.
반은 우연이었고 반은 필연이었다.
최근 훈련 대신 인베이더와의 전투로 감각의 날을 세우는 중이었으니까.
실전과 훈련은 병행하는 게 가장 좋다.
늙은 불멸자의 말이었다.
이중봉 팀장도 그 말에 동의했고.
투둑투둑 하고 뚫리던 구멍의 경계선이 무너지며 구멍끼리 이어지더니, 곧 하나의 구멍으로 변한다. 팽창한 홀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다. 쪼그라든 풍선 사이로 구멍이 생겼다.
어스 블랙홀.
인간을 학살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 인베이더가 들어오는 통로가 열렸다.
“열렸다! 튀어! 다 튀어어어!”
정의감이 넘치는 순경이 양팔로 권총을 쥐고 목에 피가 나올 기세로 외쳤다.
“그만, 시끄럽다.”
“……으어어억, 놀랐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놀랐다는 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총구를 기남 쪽으로 돌리고 방아쇠를 당길 뻔했으니까.
물론 쐈어도 맞진 않았을 거다.
“누, 누구십니까?”
겉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다. 순경은 물었다.
“NS, 이 홀은 내가 처리한다.”
“……혼자서?”
“그럼? 그쪽 둘이 돕게? 개죽음이 취미라면 사양하지 않지.”
“……엄청나게 재수 없네.”
순경 중 하나는 당황하면 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내뱉는 타입인 것 같았다.
기남은 아무래도 좋았다.
민간인의 피해는 적을수록 좋다.
“방해되니까 꺼져.”
사나운 말투에 순경 둘이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정차해 둔 순찰자에 오르고 시동까지 건다.
그대로 내뺐으면 좋겠지만, 둘은 차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 듯했다.
안 떠났다.
기남은 무시하고 홀을 주시했다.
곧 열린 홀 밖으로 녹색 피부의 팔이 불쑥 튀어나왔다.
오크의 팔이었다.
‘이십 번대.’
최근 블랙홀은 비슷한 유형의 인베이더를 세트로 내보냈다.
‘형태는 웨이브.’
크랙 홀은 한결같이 웨이브 형태다.
그리고 최근 이상 현상 중 가장 특이한 건 이거였다.
“쿠우어어!”
나온 오크의 머리에 뿔이 있었다.
특이종 한 마리가 반드시 섞여 있다는 것.
기남은 기척과 소리를 죽인 뒤, 걸었다.
유유한 걸음의 끝은 오크의 좌측.
짧은 막대를 쥔 기남은 막대를 좌에서 우로 그었다.
지잉.
순간 막대 끝에서 빛이 몰리더니 블레이드 형태로 변해 오크의 몸을 썰었다.
시-잉.
잘 벼린 칼로 얇은 종잇장을 가르는 소리 따위가 났다.
그거로 선두로 나선 ‘혼 오크’, 뿔을 가진 특이종 오크가 죽었다.
광학병기는 돈을 많이 잡아먹고 긴 시간 가동이 불가능하다.
돈이야, NS에 차고 넘치고.
가동 시간은 빛을 뿜어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면 된다. 그러니까 광학 블레이드를 효율적으로 쓰고 싶다면 벨 때만 잠깐 구동하면 될 일 아닌가.
막대와 나이프, 두 개를 손에 쥔 기남이 전투를 준비한다.
아니, 학살을 준비했다.
오크 무리 따위 아무리 몰려와도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그의 양손에 빛을 뿜는, 광학병기가 둘이다.
그리고 그가 펼치는 기술은 이중봉으로부터 내려온 비전이다.
광학병기의 짧은 가동시간을 보완하기 위해 이중봉이 개발한 기술이었다.
이름 따윈 없지만,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이중봉 류 광학무기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름이 촌스러워.’
기남은 후일 이 기술을 정리할 때, 반드시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