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64화 (364/488)

364. 프로메테우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3)

“너 여기서 뭐 하냐?”

부르지도 않았는데 왔기에 물었더니.

“어떤 미친년이 서방한테 꼬리 친다잖아.”

“누가?”

“중봉 아저씨가.”

아니, 미들픽 이 양반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러는 건가.

“어디까지 갔어?”

“여기서 처음 봤는데 뭘 어디까지 가.”

“하여간 조심해.”

얘는 진짜 머리에 뭐가 들은 거지?

혜민이를 달래서 돌아가려니, 할아버지가 슬쩍 옆에 붙었다.

“너, 생각보다 머리 잘 돌아가는구나.”

음?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노리는 게 뭐냐?”

“뭘 노려요?”

“둘 그냥 놔준 거.”

딱히 이유 없는데, 살기가 없어 보인 게 첫째고.

과외 선생 둘이 벼르고 있는 상대였기에 놔준 거였다.

금발 여자는 예쁘기도 예뻤지만, 간을 보길래, 왜 그런지 궁금해서 보냈을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계산도 없었다.

“반한 거냐?”

혜민이 옆에서 헛소리를 뱉길래, 난 혜민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갔다.

“서방, 스킨십이 너무 거칠어. 때리는 거 좋아해? 좋아. 내가 맞는 쪽 할게.”

얘는 진짜 머리통에 뭐가 들은 거야.

거듭 궁금해지네.

매드 사이언티스트 집단은 날 노릴 게 아니라 얘를 잡아가서 뇌를 연구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래, 프로메테우스는 포기하지 않지, 고구마 줄기 작전이로군. 내가 서른다섯쯤이었던가. 비슷한 작전을 한 적이 있지, 조언이 필요하다면 말해라.”

할아버지도 무슨 생각인지 뜬구름 잡는 소리를 뱉었다.

“노망났어요? 요양원 알아봐야 하나.”

“……나 아직 정정하다.”

본사에 들어와 집무실에 들어가니, 팬더 형, 우미호, 이중봉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에 혜민이와 할아버지를 떼 놓고 온 참이라 난 혼자였다.

둘 다 헤어질 때까지 강아지 소리를 뱉었다.

“머리는 네 아비를 닮았구나. 조언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라.”

“바람나면 죽여 버릴 거야.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 할 거야.”

강혜민은 마법사다. 실제로 한여름에 눈이 내리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상 변화와 관련된 스펠 기어가 있다면 가능하다.

그러니 저 말은 실현 가능성이 큰 얘기였다.

할아버지는 노망이 날 나이다. 내가 이해하기로 했다.

“넌 가끔 바보인지 천재인지 모르겠다.”

팬더 형이 말을 툭 뱉더니, 소파에서 일어났다.

“자질구레한 설명 하려고 남아 있었는데 괜한 짓이었어. 일이나 하러 간다.”

그러더니 훌쩍 집무실에서 나갔다.

“대표다웠어. 나머지 일은 맡겨, 혼자 다 하면 우린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

우미호는 최근에 벌크업을 했다. 살과 근육이 동시에 올라왔다.

전보다 탄탄해진 몸이 보기 좋았다.

귀태 형은 우미호가 어떻게 변하든 전부 다 예쁠 뿐이라고.

꽃은 봉우리여도 예쁘고 활짝 펴도 예쁘다는 소리를 했었다.

참신하게 미친 양반 같으니라고.

하여간 그런 우미호도 그 말만 남기고 떠났다.

“너도 머리를 쓰는구나.”

마지막으로 이중봉 씨가 픽 웃더니 나가려고 하기에 옷소매를 잡았다.

“대련 한 판?”

“드라마 볼 시간이군.”

언제부터 TV를 챙겨 보셨다고.

이중봉 씨가 내 손을 뿌리치고 쌩하니 나간다.

난 전부 떠난 집무실에 외로이 홀로 남았다.

그리고 오늘 내가 한 일을 곱씹은 뒤,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난 정말 어떤 의도도, 아무 생각도 없이 한 일이라고.

하지만 저 셋이 왜 저러는지야, 머리를 조금만 굴리면 금세 알 수 있는 일이다.

프로메테우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맞다. 그들은 포기를 모른다.

한 번 찍은 사냥감을 끝내 물어뜯어 죽이는 들개다. 늑대다. 짐승이다.

그런 놈들을 난 숨도 안 쉬고 쥐어 팼다.

한국에 들어왔던 최미남은 화해의 제스쳐였을지도 모른다.

“우리 놔두면 적당히 사고 안 치고 살겠다. 그러니까 좀 놔둘래?”

프로메테우스가 행동으로 이렇게 말한 거고.

“그래, 일단 좀 보고.”

정부와 단군, 협회의 입장이 이거였는데.

중간에 내가 끼어들었다.

“아, 싫어, 꺼져.”

단숨에 쳐내고 후려쳐 버린 거다.

프로메테우스는 날 죽이고 싶어 환장했을 것이다.

그들은 포기를 모르니, 쉬지 않고 덤빌 것이고.

예상한 바다.

그래서 간 보기로 아까의 둘을 보낸 것일 터.

이전 전투만으로 나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다.

그럼 지금은 충분히 채웠을까?

특수종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상성을 이길 괴물은 없다고.

특수종 사이의 상성.

나라면 그걸 이용하겠다.

불멸과 변신의 혼혈이라고 해서 약점이 없을까?

없으면 후벼 파서라도 찾을 것이다.

아, 두근두근대.

당장 프로메테우스가 무슨 짓을 할지 너무 궁금하잖아.

“압도적 무력, 상성 없이 못 잡아요.”

“네가 작정하고 덤벼도?”

“잠깐 손만 섞어 봤는데 5분도 못 버티겠던데요.”

금발 여자의 말에 프로메테우스의 수장은 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렇게까진 하기 싫은데 말이야.”

“해야겠던데요?”

“당분간 연합이며 엑스큐라시며 아주 눈에 불을 켜고 날 잡아 죽이려고 하겠어.”

“그래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금발이 볼을 부풀리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외모로 말하니, 얄밉다기보다는 귀엽다.

프로메테우스의 수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해야겠지. 이번에는 프로메테우스가 맡아서 한다. 대신 빚 하나는 달아 둔 거다.”

“네네, 그렇게 들었어요.”

금발이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베베 꼬았다.

반쯤 정신 나간 것처럼 보이는 저 여자가 불멸교 사도가 키운 최종 병기 중 하나였다.

신성 불멸의 주인이라고 부른다던가.

‘하여간 미친 것들.’

프로메테우스에게도 불멸교는 광신도 집단이다.

물론 그들도 정상은 아니다.

정상이라면 이런 짓을 꾸밀 리가 없으니.

‘잡아야지.’

이제까지 테러 단체를 배척하는 특수종이 한둘이었을까.

그중에는 이쪽으로 전향한 사람도 있고.

끝내 죽어 버린 놈도 있다.

세상에 무적은 없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포기를 모르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수장은 결심했다.

“시작하지.”

그 시작은 불꽃과 폭음의 향연이 되리라.

수장은 피가 흐르고 살이 찢기는 광경의 한복판에 설 것이다.

그것으로 그 맹랑한 특수종 꼬맹이를 죽일 것이고.

금발은 프로메테우스의 수장을 보며 생각했다.

‘누가 이길까?’

세최특과 직접 마주 보고 실력을 가늠해 오라는 의뢰였다.

그녀는 그 의뢰에 충실했다.

눈에 담고 몸으로 겪은 걸 다 알려 줬다.

하지만 그게 세최특이란 우물을 다 퍼 올린 건 아닐 것이다.

괴력과 변신체는 제대로 구경도 못 했다.

그렇다면 이쪽은?

그림자 뒤편에 숨은 프로메테우스의 수장은 얼굴조차 보여 주지 않았다.

이쪽도 전설이라 불리는 특수종이었다.

듀얼도 아니고 싱글.

오롯이 하나의 능력만으로 프로메테우스의 수장이 된 남자.

그와 싸워 살아남은 사람이 없기에 전설이 된 1세대의 악마.

그게 프로메테우스의 수장을 칭하는 이명이었다.

“너, 김요한 맞지? 어떻게 여기서 보냐?”

퇴근길에 누군가 요한의 어깨를 툭 쳤다.

이미 그가 어깨를 치기 전부터, 소리 없는 발걸음을 의식했고 옆에 선 순간, 상대가 불멸자 중 하나라고 의심한 순간이었다.

“음? 너?”

불멸특수대 동기였다.

방귀태와 자신, 광익, 기남, 미호와 같은 기수였다.

“그래, 나다. 박호순.”

혼혈 불멸자, 자신과 동갑, 그리고 퇴사자.

“무슨 연예인 한다고 나가지 않았었냐?”

요한도 상대가 반가웠다.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눈인사는 하고 지낸 사이였다.

물론 요한은 대부분 요원과 어느 정도 친분은 있었다.

타고난 넉살 덕이었다.

“그게 어디 쉽나, 여기도 정글이야, 정글, 넌 퇴근?”

“그렇지 뭐.”

오후 7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 해가 저물고 슬그머니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었다.

“소주 한잔할래?”

입을 여는 호순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요한은 말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듣는 것도 좋아했다.

마침 금요일이기도 했다.

다들 훈련에 목숨 걸지만, 워라벨도 그만큼 중요하다. 기남과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추는 편이었다.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쉬고.

회사에서 권장하는 삶의 자세이기도 했다.

“근처에 괜찮은 가게 아는 데 있냐? 추천 좀?”

“뭐, 몇 군데 알긴 알지.”

귀태와 어울릴 때는 자주 간 곳이 몇 군데 있다.

불멸자는 미각이 예민하니, 어지간한 가게에 가면 불쾌함만 느끼고 오는 일이 잦다.

그러니 입증된 가게만 가게 되고.

“귀태 형은?”

“요새 바빠.”

방귀태는 본래도 그랬지만, 우미호가 제 마음을 받아 주자, 미호의 곁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덕분에 요새 일상이 한가하기도 했다.

“전통주 좋아하냐?”

요한이 물었다.

“전통주? 그게 뭐냐?”

“한국 전통 소주, 가자, 형이 산다.”

불멸특수대 시절보다 연봉을 몇 배는 더 번다. 요한은 시원하게 앞장섰다.

둘은 곧 요리 주점 비슷한 곳에 들어갔다.

김치찌개와 감자전을 시켰고.

얇게 채를 썬 감자에 전분을 섞어 부친 감자전은 일품이었다.

청양고추와 간장, 고춧가루 따위를 섞어 만든 양념장에 콕 찍어 입 안에 넣으면 기름진 맛과 매콤하고 단맛이 입안을 향유했다.

“누가 불멸자 아니랄까 봐, 맛집 제대로네.”

박호순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찌개의 맛도 훌륭했다.

목살을 썩둑 썩둑 잘라 넣고 조미료를 뭘 썼는지, 감칠맛이 혀를 매료시켰다.

“크, 죽인다. 죽여, 술이 쭉쭉 들어가네.”

40도짜리 전통 소주를 잔에 붓고 마신다. 둘은 낄낄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 정도 술이 불콰하게 취하자, 호순이 잠깐 신세타령을 하긴 했지만,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요새 잘나가나 보네, 김요한이, NS 다닐 만하냐?”

“다른 건 다 좋은데, 훈련이 빡세.”

“견디는 거면 나도 자신 있는데, 씁, 자리 없냐?”

반쯤 농담으로 묻는 거였다.

“회사 박차고 나왔더니, 밖은 지옥이야. 그 드라마에서 그랬잖냐. 회사 안은 전쟁터요, 밖은 지옥이라고, 내가 이렇게 뭐 하나 잘하는 거 없는 놈인 거 처음 알았다.”

호순이 말하며 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크으.”

독한 술이다. 막 부어 젖히다 보면 금세 취할 것이다.

요한은 그걸 알면서도 굳이 말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도 술잔을 비울 뿐이었다.

조금 전 호순이 한 말이 심장을 쿡 찔렀다. 누가 제 마음을 엿본 기분이었다.

취기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얼굴이 화끈했다.

‘훈련만 빡세면 좋겠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훈련과 별개로 천재라는 것들과 한솥밥을 먹고 버티다 보면 자신의 한계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기 마련이었다.

요한도 날고 기는 인재였으니, 불멸특수대에 지원했다.

한때는 자신이 회사에 주요 요원으로 남으리라 믿었던 적도 있었다.

어렵고 힘든 길이라고 해도, 나아가다 보면 자신만의 영역이 생기리라 믿었다.

불멸특수대 시절에는 적어도 그게 가능했다.

‘NS를 오지 말았어야 했을까.’

전투력이 부족하다면 다른 부분에서 도움이 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설 자리가 있나?

머리 쓰는 거로는 이동훈과 우미호가 있다.

이동훈은 따로 생각한다고 해도, 우미호의 존재는 요한이 설 자리를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요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이어 갔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방귀태는 우미호 바라기를 노력으로 승화시켜 제 한계를 넘었다.

‘방귀태도 보통 불멸자가 보면 천재 소리를 듣는다고.’

여자를 위해서든, 돈을 위해서든, 어쨌든 그는 맹목적으로 몸을 굴릴 줄 안다.

요한은 그럴 수 없었다.

잡생각이 머리를 채우면 집중력이 훌쩍 떨어지곤 했다.

과도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요한 자신은 한계가 왔다고 생각했다.

‘천재 사이에 낀 평범한 사람은 견디기가 어렵다.’

“뭐야, 내가 심각해야 하는데, 왜 네가 심각하냐? 괜히 얘기했다. 야, 술이나 마시자.”

호순이 말한다. 요한은 곧 표정을 감추고 술잔을 비웠다.

몇 년 만에 해 보는 과음이었다.

거나하게 취해서 집에 돌아갔고 아침에 일어나니, 메시지가 와 있었다.

[박호순] 얻어먹어서 미안하다. 다음에는 내가 살게. 다음 주 시간 빌 때 말해라. 빈말 아니고. 난 일주일 내내 일이 없어서 펑펑 노니까.

“대가리 깨지겠네.”

말하면서도 요한은 피식 웃었다.

때론 인간은 자신보다 힘든 사람을 보며 위안을 얻곤 한다.

요한도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반대로 그 힘든 와중에도 밝고 자신 있게 외치는 호순에게 호감이 가기도 했다.

[나] 다음 주가 뭐냐, 안 사도 돼, 나 잘 번다. 해장술 해야지?

이틀 연속으로 둘은 술을 퍼먹었다.

그렇다고 선뜻 속에 있는 얘기를 나누진 않았다.

그저 소탈하게 농담이나 따먹고 헤어졌다.

그게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한 달이 넘게 요한은 호순을 만났다.

많으면 일주일에 세 번, 적어도 주에 한 번.

가끔 작은 배역을 맡았다면서 응원해 달라는 문자가 오기도 했다.

요한은 사심 없이 그걸 응원했다.

“훈련 안 해?”

훈련장에서 귀태가 물었다.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피곤해.”

“요새 매일 칼퇴하더니, 뭐가 피곤하냐?”

“네가 남자의 마음을 알아?”

“모르지, 미호의 마음만 알지.”

미친 방귀태.

피식 웃은 요한은 등을 돌렸다. 최근 훈련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일도 의무적으로 처리만 했다.

전과 같은 열정은 없었다.

그래도 문제는 없었다.

자신 하나 없어도 회사는 잘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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