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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363화 (363/488)

363. 프로메테우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2)

유무인은 자신을 늙은 괴물이라 생각했다.

진즉에 죽었어야 했는데 죽지 못한 괴물.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나?’

하나의 이유가 남았다.

가족에게 속죄하는 것.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속죄는 하나라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불멸교란 이름을 지우는 거다.

그게 그가 아직도 살아남아 불멸교와 싸우는 이유일 것이다.

처절하고 고달픈 삶을 이어 간다. 그런 무인에게 NS의 삶은 바라마지 않던 복에 겨운 생활이었다.

차가운 태도로 일관했지만, 아들을 다시 본 것도 복에 겹다 할 수 있었고.

차마 대놓고 며느리라 부를 순 없지만,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 주는 아들의 아내도 있었다.

자꾸 찾아와 말을 걸기에 연호가 싫어하지 않겠냐 했더니.

“남편은 이런 거로 뭐라고 안 해요. 마음이 넓거든요. 아버님은 그동안 훈련을 게을리하시진 않으셨나 보네요?”

그런가. 연호가 뭐라고 하지 않는 건가.

몸을 단련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무인은 자신만의 전쟁터에서 살았다.

한가롭지 않은 날이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날이 많았다.

불멸자가 변신족을 상대하려면 하나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끊임없는 단련이다.

몸을 혹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다.

무인은 그 수련법을 그대로 정기남과 우미호란 두 명의 불멸자에게 전수했다.

이 또한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이걸 하라고요? 비효율적인데?”

우미호는 반항했고.

“유광익도 이걸 했습니까?”

정기남은 뜬금없는 걸 물었다.

재밌는 놈들이었다.

그 와중에 주일호에게 제 훈련법의 일부를 보기도 했다.

“훈련은 쉬지 않습니다. 불멸자의 몸으로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죠.”

뭘 가르칠 필요가 없는 놈이었다.

이미 완성된 그릇이다.

연호와 마찬가지였다.

강함의 척도는 상대적인 법이다. 이런 면에서 손자는 아직 가르칠 게 남았다.

물론 광익과 주일호란 놈이 붙는다면, 백 번이면 백 번 광익이 이길 것이다.

하지만 광익의 그릇은 아직 다 차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이쪽에 있겠지.

무인은 생각하며 며느리란 존재를 바라봤다.

변신족 순혈.

“튼튼하시네. 무게 좀 치시죠?”

그리고 무인이 드는 무게에 관심이 많은 며느리다.

“애가 좀 무모할 때가 있어요. 시간 되면 지켜봐 주세요.”

그러면서도 아들 걱정에는 진심이다. 연호의 보물이 광익이듯, 이 아이의 보물도 광익이겠지.

그래서 며느리의 말을 듣기로 했다.

상념은 잠깐이었다.

무인은 현재에 집중했다. 전투 부츠에 달린 압력 분사 장치로 빌딩 벽을 땅 삼아 선 채로 그는 불멸교 암살자의 흔적을 찾았다.

‘발전했어.’

예전과는 다르다. 자신이 나온 이후로 불멸교의 암살자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그럼 자신은?

무인도 놀지만은 않았다.

매일 기술을 갈고 닦고 늙은 몸뚱이를 단련했다.

그러니 이건 당연한 결과였다.

흠칫.

무인과 똑같이 벽을 땅 삼아 쪼그려 앉은 암살자다. 무인은 그 뒤에서 기척을 흘렸다.

암살자의 반응은 훌륭했다.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손을 뻗는다.

그 손에 쥔 건, 날카로운 나이프.

나이프 끝이 파랗게 빛났다.

독을 비롯한 갖은 화학 약품을 발라 둔 칼이리라.

불멸교 창설 당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쳤었다.

유무인은 그 가르침의 원류다.

뻗는 나이프 끝을 손바닥으로 쳐냈다.

손바닥 앞으로 무형의 장막이 만들어졌다.

찌직.

칼날이 장막을 찢는 틈, 무인은 손가락으로 상대의 눈을 찔렀다.

상대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무인의 손가락 끝에서 얇은 칼날 같은 게 튀어나왔다.

결국, 그 칼날 끝이 상대의 눈두덩이 부근에 스쳤다.

픽 하고 핏줄기가 튄다. 그거로 끝이었다.

덜컥하고 상대의 반응이 느려졌다. 신경 독의 일종이 불멸자의 감각을 갉아 먹었다.

무인은 상대의 손목을 꺾어 나이프를 뺏고 나이프를 상대의 목에 꽂은 뒤 밑으로 그었다.

뜨드드득!

목을 지나, 갈비뼈를 가른 칼날이 불멸자의 몸에 쩍하고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둘의 싸움은 전부 빌딩 벽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빌딩 위에서 밑으로 피가 후두두둑 쏟아졌다.

“끄윽.”

불멸자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고.

“미안하게 됐다. 저 아이가 보물이라 해서 지키기로 했거든.”

무인은 덤덤하게 암살자의 귀에 속삭였다.

그의 속삭임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이미 불멸자의 눈이 흐려졌다. 고속 재생이 가능한 무명 순혈가라고 해도 쇼크로 기절할 부상이었다.

무인은 피가 쏟아지는 걸 보며 광익의 뒤로 내려왔다.

그걸 본 금발 머리 여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알아본 눈치는 아니었다.

전신을 전투 슈트로 가리고 얼굴에는 까마귀 가면을 썼다.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와 버릇으로 상대를 특정하는 건, 특별한 훈련을 거친 순혈 불멸자가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이다.

설령 그런 상대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인을 자신을 숨길 자신이 있었다.

그가 누구인가.

전대 불멸교의 교주.

한때 최강의 불멸이라 이름이 붙었던 남자였다.

“준비가 철저하군요.”

금발 머리 여자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아닐걸, 이 양반이 회사에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날 졸졸 따라다니는 거라.”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이 불멸교 최고의 암살자를 잡아요?”

“우리 회사가 좀 그래. 인재가 남아돌아.”

“그거 되게 부러운데.”

나와 금발 머리 여자의 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중 능력자가 나섰다.

“마지막 제안이었다.”

“내 제안도 마저 들어줄 수 있을까? 프로메테우스고 뭐고 간에, 전부 무릎 꿇고 기다리라고 해. 내가 간다고.”

“넌 뭘 모른다. 프로메테우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난 막 포기할 것 같고?”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로다.”

다중 능력자가 손가락을 들었다. 그 손에 뇌전이 어렸다.

손가락 사이로 파란 빛줄기가 스파크를 튀겼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아직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특별한 능력자가 많다고.

눈앞의 다중 초능 능력자도 그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옆에 있는 금발 여자도 마찬가지고.

금발 여자는 불멸교가 숨겨 둔 칼 같고,

“내 이름은 다츠, 소속은 더 라운드다. 널 연구실로 끌고 갈 이름이다.”

이 아저씨는 용병쯤 되는 것 같다.

그가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파지지직!

손에 머물던 파란 빛줄기, 뇌전이 지그재그로 퍼지며 날아든다. 그와 동시에 무형의 압력이 동그란 형태로 배를 때렸다.

오감을 넘어선 육감이 모든 걸 감지한다.

그러므로 한발 앞서 행동할 수 있다.

날아오는 외전은 기생 기어를 나이프 형태로 뽑아내 쳐냈다.

찌지지직!

청기사가 품었던 에테르 에너지의 형태는 전류에 가깝다.

상대가 뿜어낸 벼락을 나이프가 흡수했다.

날아든 염력은 뱃심으로 버텼다.

쾅!

“강체를 엄청 유려하게 가꿔 놨어!”

그걸 본 금발 머리 여자가 말했다.

머리가 비어 보이는 이미지였는데, 조금 전 눈이 반짝이는 걸 보니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저 여자는 싸우지도 않을 것 같으면서 여긴 왜 왔을까?

번뜩하고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 갔다.

그저 감뿐이지만, 불멸자의 육감은 때론 과정 없이 정답을 읽어 내는 법.

이들의 목적은 ‘간 보기’다.

“빠져요.”

난 할아버지에게 말하고 발을 뗐다.

한순간 잔상이 남을 정도다. 주변 사물이 뒤로 밀린다. 공간을 좁힌다. 다중 능력자의 몸이 수은이라도 된 듯, 은빛으로 변했다.

전신 변환계, 정직이와 같다.

변한 은빛 몸뚱이를 주먹으로 때렸다. 푹하고 뻗은 주먹이 놈의 몸을 통과했다.

곧 수은이 된 놈의 몸뚱이가 채찍처럼 변하더니 내 목을 감쌌다.

재밌는 재주였다.

훅!

난 순식간에 고개를 밑으로 뺐다.

수은이 내 목이 있던 곳을 감으며 뇌전을 터트렸다.

그 와중에 염력 덩어리 여섯 개가 전후좌우로 날아온다.

제 초능을 십분 활용하는 멀티플이다.

그래, 어지간해서는 숨겨진 강자 따위로 불리진 않았겠지.

나도 조금은 진심을 보여 줘야겠는데.

“후아!”

기합과 함께 왼발로 땅을 찍었다.

폭발이라도 난 듯 폭음이 터지며 충격파가 내 몸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린다.

날아오는 염력 덩어리는 그거로 끝이었다.

내 발 구름 한 번의 충격이 더 강하다.

“부분 변신!”

해설자 납셨네.

금발 머리가 말했다. 맞았다. 난 왼발만 변신체로 바꿨다.

검은 털에 푸른 줄무늬.

흑호의 발이 땅에 발자국을 깊게 남겼다.

강렬한 충격에 다중 능력자가 만든 결계 비슷한 공간에도 금이 갔다.

어떻게 아냐고?

눈앞에 실금 같은 게 생겼거든.

꿀렁.

수은으로 변한 놈이 웨이브를 만든다. 놀란 표현이겠지? 저건?

근데, 이 정도로 놀람이 끝나면 안 되지.

하는 김에 오른팔도 바꿨다.

“너 머리가 어디쯤이냐?”

수은 인간한테 물었다. 미안한데, 내가 결심한 게 있어서 그런다.

머리통만 한 대 쥐어박아 주기로 했단 말이지.

사정이 있다고 한마디 덧붙이니.

“당신은 완벽하게 미친 사람이에요.”

금발 여자의 눈에 하트가 피어났다.

이거 참, 사람이 매력이 너무 출중해도 문제라니까.

적까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매력이란.

후일, ‘매력에 관한 열한 가지 소개’라는 책을 내 봐야겠다.

“미친놈!”

수은 인간이 화가 잔뜩 나, 입만 본래 형태로 돌려 말했다.

그래서 대충 입 근처 어디쯤이 머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땅을 차고 거리를 좁히는 건 변신족의 강각.

상대의 움직임을 읽어 내는 건 불멸자의 감각.

그리고 상대와 마주한 뒤, 주먹을 뻗어 내는 힘은 철완을 담는다.

난 주먹을 뻗었고 뻗는 속도만큼 빨리 회수했다.

짧게 말해, 엄청나게 강하게 끊어쳤다.

후앙!

후폭풍이 몰아칠 정도로.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수은 인간의 머리 부분, 반고체 상태로 뭉쳐 있던 은빛 덩어리가 사방에 흩어졌다.

“끄아아아악!”

그리고 수은 인간이 본래 형태로 돌아왔다.

모든 건 한순간에 일어났다.

흩어진 수은 덩어리가 꾸물꾸물 모여 그에게 돌아가는 게 보였다.

주먹 한 방.

두개골 한쪽이 깨져서 피와 뇌수를 흘린다. 그러면서도 용케 살았다.

“재생력도 가졌네.”

그걸 보며 난 신기해 중얼거렸다.

“더 안 때려요?”

금발 여자가 새침하게 물었다.

“아까 말했잖아. 약속한 게 있어서 여기까지만 한다고. 내가 아는 사람 둘이 이 양반한테 어금니를 박박 갈고 있어서. 여기서 죽이면 나 혼나.”

멀티플 능력자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뇌전에 염력, 수은 형태로 변환, 공간 격리.

오늘 보여 준 능력만 해도 네 개다.

아니, 재생력까지 다섯.

이건 뭐, 불멸자 부럽지 않은 몸이네.

“더 하면 내가 혼날 거 각오하고 죽여야 하는데, 안 할 거지?”

멀티플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가 보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 동공이 요동치는 걸 보니, 만만한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겠다는 걸 알겠다.

“그만하겠다.”

놈이 물러났다.

난 나한테 반한 여자를 바라봤다. 이 여자는 어쩔까.

“넌?”

“전 진짜 얼굴 보고 제안만 하러 온 거라서요. 안 싸워도 될까요?”

“봐서.”

반쯤은 진짜 대화만 할 생각이었는데, 내가 말을 뱉는 순간 여자가 손을 뻗었다.

난 그 손을 쳐냈다.

그러자 반대쪽 손을 뻗는다. 그 손끝이 파랗게 빛나더니 피부가 파충류의 그것처럼 변했다.

난 몸을 틀며 팔꿈치를 그었다.

스컥!

여자의 팔뚝에 돋아난 비늘이 긁히며 갈렸다.

안 잘리네?

잘릴 생각이었는데, 마치 변신족이 강체로 만든 피부 같았다.

여자가 무릎을 치켜세웠다. 손바닥으로 쳐내자, 묵직한 충격이 남았다.

괴력에 가까운 힘이었다.

탁! 탁! 탁!

손과 발이 서로를 노리며 오갔다.

어디까지나 견제 수준이었다.

여자도 나도 진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옆에서 보면 전혀 다른 세상 같긴 하겠지만.

어디까지 간이나 보려나 궁금해서 힘을 더하려는 순간이었다.

“거기까지, 내 남자한테 손대지 마.”

혜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다.

찌-잉!

육감이 마력을 감지했다. 나와 금발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반대편으로 떨어졌다.

곧 발밑에서 불기둥이 솟았다.

강혜민 이 미친 아이야.

조금 전 불기둥은 나도 노린 거 아니냐?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데 말이 쏙 들어갔다.

무슨 이유인지, 혜민이 눈에 살기가 어렸다.

“이 쌍, 너 뭐냐?”

금발 여자는 때아닌 거친 언어와 증오에 가까운 눈빛에 당황했다.

하지만 곧 본래의 분위기를 찾았다.

“비-밀.”

볼을 손가락으로 콕 찍으며 말하는 거로 타격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도 했고.

“미친년이!”

혜민이 흥분했다. 그녀의 왼손에 불꽃이, 오른손에는 눈에 보일 정도로 뭉친 나선형의 바람이 보였다.

“야, 여기서 그거 하면 안 돼.”

이건 말려야 한다.

대규모 폭발 주문을 여기서 쓰면 어떻게 하냐, 이 미친 강혜민아.

단숨에 혜민의 손목을 잡고 눈을 마주했다.

씩씩거리던 혜민은 곧 흥분을 조금 가라앉혔고.

날 습격했던 둘은 슬그머니 물러나기 시작했다.

불멸자 하나는 할아버지가 반쯤 죽여서 데려갔는데 그들은 동료를 찾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물러가는 걸 나도 굳이 쫓지 않았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홀로그램 영사기만 하나 덜렁 남았다.

홀로그램 영사기는 저장용 장치로 메시지를 남길 때 유용한 물건이었다.

곧 영사기가 빛을 뿌리며 사람의 영상을 그려 냈다.

영사기 위로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다음에 만나면 몸의 대화를 더 나누도록 해요!”

영사기에 저장된 금발 여자가 나른한 미소로 말하고.

“염병할!”

그걸 본 혜민이 와락 짜증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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