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 프로메테우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1)
“어떤가?”
백악관의 주인은 이걸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그는 정치의 프로.
현 상황을 완벽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
이거로 세최특에게 빚을 지게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올드 포스가 아니라, 대통령 자신에게 말이다.
상황을 계산하고 감각적으로 나선 덕에 얻은 이득이다.
그렇게 다 좋게 끝났는데.
“표정이 왜 그러지?”
대통령은 진심으로 궁금해 물었다.
세최특에게 독대를 청했더니, 순순히 따라왔고.
호위를 제외하면 단둘만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런데 와서 내내 저런 표정이다.
불퉁한, 불만 있는 표정.
“고마워서요.”
아닌데, 전혀 고마운 표정이 아닌데.
“곤란한데 도와줘서 되게 고맙네요.”
입과 표정이 따로 논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그는 상대의 표정에서 보이는 감정을 읽을 줄 알았다.
가히 초능에 가까운 능력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치적 감각이다.
“진짜.”
아닌 것 같은데.
따질 게 아니었다. 감동해서 눈물을 흘릴 걸 예상하진 않았지만, 더 충실한 보답이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통령은 사적인 감정을 접었다.
빚을 지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므로.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어떻게 했나?”
올드 포스 위원이 입을 모아 알아내라고 요청한 내용이다.
“뭘요?”
“캔버라와 나이로비.”
그곳에 나온 인베이더의 규모는 만만치 않았다.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위험한 수준이었다.
미국에서 파견 보낸 팀장이 혀를 내둘렀다는 연락도 받았다.
그가 찍어 보낸 홀로그램 영상도 짬을 내서 봤다.
‘위험해.’
처음 든 생각이다. NS 대원이 운용하는 무기의 위력이 일반적인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미국에서 준비하는 차세대 무기를 위협할 정도였다.
광학병기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개량한 레일 건과 단분자 커터.
두 개의 무기가 문제지.
미국 대통령은 가능하다면 그 도안을, 더 나아가서 그 무기를 받고 싶었다.
광학병기는 문제가 많았다.
위력은 더할 나위 없지만, 지속성이 문제다.
단기간 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고 단가도 문제였다.
“돌려 말하지 않겠네, 그 무기 받고 싶네.”
“블루 스팀.”
세최특은 툭 하고 말했다. 여전히 불퉁한 태도였으나, 대통령은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눈앞의 특수종이 괜히 세최또라 불리는 게 아니지 않나.
“블루 스팀 시리즈라고 부릅니다. 생산되는 대로 팝니다. 이쪽으로 연락해 주시면 되고.”
세최특이 명함을 건넸다.
블루 스팀 영업팀, ‘박’이라고 쓰여 있었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이쪽이 개발자인가?”
대통령이 물었다. 세최특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마주 보다 답했다.
“영업 직원인데요. 그거 팔게요. 그러니까 조율해서 사시면 되고요.”
뭘 팔아?
그 무기를?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무기를?
대통령은 생각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가가 충실히 돌아왔다고.
블루 스팀 시리즈의 핵심은 청기사가 지닌 에너지다.
일반적인 직원이 쓰는 무기가 아니라 내가 쓰는 건 그렇다.
아, 정아 누나가 쓰는 것도 그렇고.
고로 양산이 불가능하다는 거다.
청기사가 발에 챌 정도로 쏟아지면야, 쉽게 만들겠지만.
그러니, 어렵다.
무기를 뜯어서 레일 건 따위를 드는 거야, 찬성이다.
그래서 파는 거였다.
대통령은 그 자체로 감동한 것 같지만, 아, 이거 좀 미안한데.
미안해요, 외국인 아저씨.
그거 아저씨한테만 파는 거 아닌데.
전 세계에 다 팔 건데.
판매는 엑스큐라시가 맡아 줬는데.
“이거로 빚은 없는 거로 쳐도 좋네.”
이렇게까지 말하니, 진짜 미안했다.
그렇다고 해서 괜히 입을 놀리진 않았다.
나중에 조금 삐지긴 하겠지만, 괜찮을 거다.
이 양반, 속이 태평양처럼 넓은 사람이다.
미국 대통령 아닌가. 그런 사람이 쪼잔하겠나.
대통령과의 독대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오자, 초능국의 왕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
이 새끼는 언제 옷을 갈아입었는지, 파자마 차림에 과자를 집어 먹으며 1:1 비율 홀로그램으로 한국 걸그룹 직관 영상을 감상 중이었다.
파삭파삭.
감자칩을 주워 먹으며 노는 꼴을 보면 그냥 애새끼인데.
“넌 표정이 왜 그 모양이냐?”
알이 슬쩍 날 보고 말했다.
“제 표정이 왜?”
“불만이 가득한데?”
“제가요?”
“아닌데요.”
“맞는데.”
난 거울을 바라봤다. 볼이 부푼 개구리가 생각나는 표정이 보였다.
“NS가 비정상이라는 의미였습니까?”
거울을 보며 입을 열었다.
비정상이라니, 규격 외라는 의미였는데.
“몰랐어? 너 빼고 전 세계 사람은 다 알걸?”
몰랐다. 새끼야.
알은 혼자였다. 주변에 기척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밖에서 지키는 사람은 몇 있지만, 그들은 어지간하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하긴, 나 같아도 걸 그룹 보면서 헤벌레 하는 모습 보여 주긴 좀 그럴 것이다.
“호위는요?”
“호위는 무슨, 세최특이랑 같이 있는데. 여기 보안 쩔어. 이래 봐도 올드 포스가 담당하는 곳이라고. 테러 단체 셋이 손잡고 쳐들어와도 버틸걸?”
호위가 없다. 난 알의 뒤에 섰다.
불현듯 든 의심.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응?”
홀로그램에 빠진 알이 위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내 모습이 비쳤다.
불멸과 변신이 낳은 최강의 혼혈 특수종이 눈에 묵직한 기세를 담은 게 보였다.
“NS 비정상이라는 얘기한 거 너 아니죠?”
“……시발.”
알의 한국어 실력은 더 늘었다. 욕이 참 찰져.
옛날에야 네가 초능국의 왕이라 못 건드렸지.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이 중딩 새꺄.
“너, 일국의 왕에게 손찌검이라도 하려고?”
“내 이름은 유광익, 세최특이라 불리며 청기사를 죽인 몸.”
“하지 마. 불안해 나.”
“초능국 왕의 요청을 받아 호신술을 알려 드립니다.”
“하지 말라……!”
난 알의 입부터 막았다.
세최특한테 호신술을 배우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나.
이날 난 땀까지 흘리며 최선을 다했다.
주로 관절기를 가르쳤다.
“코브라 트위스트!”
“호위이이이이!”
다리가 꺾인 알의 비명에 호위가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발을 멈춘 호위 중 하나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정다워 보이시는군요.”
이후, 알은 비명 대신 표독스러운 눈으로 날 노려봤고.
난 곧바로 새벽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다.
알의 눈빛을 보니,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알과 나의 관계를 내심 인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몇 명은 왕가에 충성을 바치는 광신도나 다름없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내가 한 일을 알면 거품을 물 테니.
세상 참 좋아졌어.
전용기 타고 다니니, 뚝딱뚝딱 금세 오갈 수 있었다.
세관 통과도 무척 편했다.
“대통령 지시입니다. 유광익 님은 따로 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공항 직원은 별도의 통로로 나를 안내했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컵라면 여섯 개를 먹었다.
그 뒤 푹 자고 일어나니, 또 한 번 내 이름이 세상을 울리고 있었다.
[NS, 블루 스팀 시리즈, 소스 오픈]
기사 하나에 열광하는 사람도 있었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 아니, 이걸 왜 그냥 풀어? 돈이 남아도나?
- 다 로열티 받고 푼 거다.
- 로열티가 문제가 아니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서 내장 구조를 알려 주는 수준 아니냐?
- 개 멋있다. 돈보다는 인류를 위해. 크, 이 정도면 노벨상을 줘야 하지 않나?
- 노벨상 두 개 줘야 함. 크, 취한다. 국뽕에 취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한국이 낳은 최강의 특수종.
- 미국 대통령이 직접 고맙다고 연설함.
- 미친 거지, 왜 이걸 그냥 줘.
난 뭐, 신경 쓰지 않았다.
로열티를 받기도 했고, 물건도 제값에 팔기도 했고.
무엇보다 블루 스팀 시리즈 구조 자체가 어렵지도 않았다.
그 중심 기술이 중요하지.
아다만티움 합금 기술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NS 쪽에 이걸 받아야 할 것이다.
덕분에 돈은 미친 듯이 들어오겠네.
단순한 예상이었는데, 그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니까 돈이 미친 듯한 수준을 넘어서 들어왔다.
“새로운 사업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해.”
팬더 형이 아예 툭 까놓고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까.
이 모든 게 며칠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돌아온 뒤로 일으킨 일로 시끄럽긴 했다.
프로메테우스의 전초 기지를 사뿐하게 즈려밟고.
협회장의 멱살을 쥐고 흔든 뒤.
미국 가서 대규모 거래를 성사시키고 왔으니까.
이거 은근히 대표 자리도 할 일이 많다니까.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요.
“알이 다음에는 쉽게 당하지 않겠다고 하던데요?”
늦은 점심을 먹고 있으니, 뒤에서 김근육이 말했다.
점심이 지난 오후라 구내식당에 사람이 몇 없었다.
“그래?”
“무슨 짓을 한 거예요?”
“호신술을 가르쳤지.”
정성을 다해서.
김근육은 잠시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눈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곧 슬며시 미소를 보인 그녀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김근육이 말하고 돌아섰다.
돌아서 걷는 그녀의 등을 보며 난 근육이 참 단단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꽃밭에서 나와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몸이다.
툭하면 대련을 요청해서 자신을 갈고닦는 다고도 들었다.
훌륭한 마음가짐이었다.
무릇 모든 특수종은 그래야 했으니까.
먹고 밖으로 나갔다.
날이 좋았다. 개운한 날씨였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 어느새 가을이었다.
산책하기 좋은 날이었다.
난 홀로 천천히 걸었다. 은행나무 사이를 지나니, 상서롭지 못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을 걷고 또 걸어, 오래된 공장 터를 지나는 참이었다.
“눈치챘구나. 맞지?”
공장 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청바지에 티 한 장, 그 위로 주머니가 많이 붙은 짧은 재킷을 걸쳤다.
수수한 차림의 워커 웨어룩이었다.
짧은 머리의 여자였다.
“시선만.”
난 걸음을 멈추고 답했다.
“나 진짜 놀랐다. 너 그거 알아? 나 스펠이랑 초능으로 기척을 숨길 수 있는 건 다 두르고 왔다?”
애가 되게 천진난만하네.
나이는 잘해야 스물둘 셋? 나랑 비슷해 보였다.
행복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태가 나는 여자였다.
새하얀 얼굴에 금발, 은은한 녹색 빛이 감도는 동공이 인상적이었다.
“불멸교?”
“감 진짜 좋네.”
여자는 검지로 제 입술을 꾹 누르며 답했다.
귀여웠다.
“거기도 다 알 텐데, 나 주문 감지하는 거. 주문을 두른 거 정도야, 일도 아니지.”
“기척 감추는 주문이 그렇게 쉽게 털리는 거면, 마법사는 다 나가 뒈져야지.”
여자가 활짝 웃었다.
애가 진짜 뭐가 이렇게 천진난만해.
“근데 우리 좀 가깝지 않아?”
“괜찮아. 나 혼자 온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나 세최특인데?”
“에이, 너는 아직 세상을 몰라. 보통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아, 맞아. 넌 우물 안 두꺼비야.”
“두꺼비 아니다.”
“너 생긴 걸 두꺼비라고 하는 게 아니라, 속담이야.”
그것도 모르냐며 의기양양한 모습이다. 귀엽긴 하네.
“두꺼비 아니고 개구리고. 네 뒤에 그림자에 숨은 놈이 공간 유리시킨 놈이지? 그리고 끈적한 시선이 안 떠나는 걸 보니, 암살자 하나가 더 있는 것 같고.”
시선은 진즉부터 느꼈다.
한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따라붙는 끈적함이 있었다.
다만, 이것들이 어찌나 잘 숨는지, 나로서도 감만으로 위치를 특정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이만한 실력자라면 당연히 불멸교라고 생각했다.
“와 씨, 나 소름 돋았어.”
한국어 잘 배웠네.
애가 예의가 있어, 나랑 말하려고 한국말을 배운 거잖아.
내가 말한 곳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암살자 크루 같은 거겠지?
테러하는 애들도 참 대단해.
포기를 몰라.
백두산에서 그걸 해 봤으면 알 텐데, 또 이러네.
“마지막으로 물을 건데, 혹시 이쪽으로 전향할 생각 없어? 진심으로 묻는 거야.”
백인 여자가 물었고 난 피식 웃었다.
“내가 할 말이다. 테러 다 관두고 NS 채용 공고에 지원하면 봐준다.”
“안 봐주던데? 지원하면 칼같이 떨어지던데?”
“응. 그건 그렇지.”
나온 김에 한 말인데, 그게 그렇네.
아니지, 얘가 뭘 모른다.
“지원한다고 다 뽑는다고 생각해? 얘가 한국 취업난을 우습게 보네. 다들 스펙 쌓고 막 영어 시험도 보고 준비를 얼마나 많이 하는데, 너희는 정성이 없어.”
“와, 개소리 되게 잘해.”
응. 내가 좀 친다.
여자만 바라보고 있자니, 서운했는지 공장 터 뒤쪽, 그림자에서 한 놈이 슬그머니 나왔다.
“일전에 찾아갔을 때는 자리를 비워서 못 만났지. 오늘은 아니지만.”
모르는 얼굴인데.
“대신 그쪽 불멸자 하나와 변신족 한 명에게 톡톡히 경고를 남겼었다.”
아. 누군지 알겠다.
초능 다중능력자, 내 과외 선생 둘의 멘탈을 탈탈 털어 버린 놈.
아마도 현재 공간을 유리시킨 놈.
사람이 오갈 수 없는 대형 공간을 조성한 거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알았다.
그리고 내가 안다는 걸 저들도 알고.
그럼 쟤는 죽이면 안 된다.
그 둘이 어금니를 박박 갈고 있단 말이지.
거, 곤란하네.
어쩔 수 없지, 꿀밤 한 대만 때려 준다.
“아, 얘들아. 미리 말하는데 나 혼자 아니다.”
그 말에 백인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여 줬다.
쨍!
그 타이밍에 쇳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후두둑 피가 쏟아졌다.
아마도 내 예상이긴 한데, 날 지키는 호위의 피는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허술한 사람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