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60화 (360/488)

360. 둬, 예외.

올드 포스 위원회는 세최특을 초청하고 관찰했다.

직접 본 호위의 보고를 받는 건 당연했고.

비행기 안에서의 생활 또한 전부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조금 당황했다.

“잠을 자네? 그것도 잘 자네. 코도 골아.”

“간이 부었나?”

“겁이 없는 척하는 걸지도?”

무려 올드 포스다.

아무리 세최특이 잘 나간다고 해도 이쪽은 전 세계 특수종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단체였다.

전 세계를 적으로 두고 살 순 없었다.

그러니 어느 정도 긴장은 하고 와야 하지 않나?

올드 포스 위원 셋은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새끼 이거 뭔가 하는 그런 생각.

초능국이 나선 것도 결국 자기 때문 아닌가.

알아보니까 아예 요청한 거로 보이는데.

올드 포스의 위원회는 늙은 여우다.

그리고 세최특은 그 늙디늙은 여우들도 처음 보는 타입의 특수종이었다.

행동에 계산이 엿보이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자고 일어나 밥을 챙겨 먹는 모습을 보니, 숫제 놀러 가는 모습과 같다.

“긴장감이 없어도 너무 없는데?”

위원 중 하나가 말했다.

나머지 둘도 동감했다. 황당했다.

그렇다고 긴장하라고 나무랄 순 없지 않나.

이번 소집도 초능국을 도려내자는 게 아니므로.

세최특에게 빚을 지우겠다고 시작한 거였다.

물론 단순하게 빚만 하나 지게 해서 끝날 일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의 정치적 입지와 최근 한국에서 시작된 일.

네임드 소거와 동시에 위상이 올라간 아시아 지부 압박 등.

수십 가지의 일이 겹친 일이다.

그런 일에 피크닉 오듯 행동하는 세최특을 보자니, 기운이 빠졌다.

곧 위원회 셋 중 하나가 그럴듯한 의견을 꺼냈고 나머지도 수긍했다.

“초능국과 갈라섰군.”

“먹고 버린 거야, 생각보다 냉정한 친구였군.”

“그게 아니라면 이럴 리가 없겠지.”

그나마 합리적 의견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 의견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자신을 소개하며 나선 세최특은 알을 외면할 것처럼 굴지 않았으므로.

고로 그들은 또 당황했다.

글레이브 걸스를 찾는다는 헛소리를 뱉는 알의 입술은 미세하게 떨렸다.

불멸자 중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가진 내가 아니라면 쉽게 눈치채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러니.

겉으로는 태연한 척, 배짱부리지만, 속으로는 긴장했다는 거다.

곧 죽어도 센 척은 하는구나.

이 새끼 이제 중2쯤 되지 않았나?

초능국의 왕이 중2병이라.

과연 그것 나라의 홍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흉재가 될 것인가.

어쨌든 지금은 책임감이 투철한 왕은 맞았다.

적어도 자기 하나 죽는다고 끝이 아니라는 건 잘 아는 것 같으니.

천재는 천재다.

알은 나라에서 사는 모든 사람을 걱정하는 거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올드 포스랑 싸우면 초능국이 망하려나?”

내가 혼잣말하듯 물었다.

“뭘 잘못 처먹고 왔어? 웬 헛소리야?”

알의 말투는 여전했다.

그래. 기가 죽은 걸 보는 것보다야 이게 낫지.

난 바보가 아니다. 초능국과 올드 포스가 싸우면 초능국은 망한다.

그건 곧 왕의 일탈 한 번으로 초능국에 사는 대부분 사람이 죽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그걸 피하려면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여기서부터 내 오리지널이 아니다.

우미호와 팬더 형이 머리를 모아서 말한 거니까.

첫째, 알이 무릎을 꿇는 것.

이후 올드 포스에 편입된 개처럼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것.

둘째, 알이 죄인으로 심판받는 것.

나라와 상관없는 일이었다고 시인하고 죄인이 되는 것.

그럼 세계 정부가 만든 바다 감옥에 갇히는 감옥 엔딩이 될 거라고 했다.

둘 다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자, 팬더 형은 당황하지도 않았었다.

애초에 예상한 바였던 듯했다.

“어차피 마음대로 할 거면서 왜 물어보냐?”

“난 좋은 의견은 수렴하는 사람이니까.”

팬더 형은 내 말에 조용히 가운뎃손가락을 들었었다.

대표한테 손가락 욕이라니, 역시 연봉을 깎아야겠다.

난 생각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홀로그램 말고도 여기저기에서 나온 이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이 일에는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고 그저 초조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관심은 있으나, 한발 물러나서 보는 사람도 있었으며.

작정하고 초능국을 까고 싶은 눈빛을 가진 이들도 보였다.

그 사이에 미합중국 대통령도 있었다.

그는 새침하게 날 모른 척했다.

“협약을 지키지 못한 걸 인정하시오?”

위원 중 하나가 물었다. 그나저나 저 노이즈 되게 거슬리네.

얼굴 가운데로 회색빛 선이 오간다. 어지간한 해킹도 다 막는 특수 방화벽 효과란다.

“인정하지.”

대답은 내가 했다.

구경꾼에 가까운 사람 하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자격으로 나서는 건지?”

“알의 친구이자, 이 일의 원인 제공자로서.”

“이건 연합과 초능국이 맺은 협약에 관한 거요. 그대가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건가? 맞아? 내가 누군지는 알지?”

행했던 모든 일이 내 존재를 증명하는 법.

난 청기사 슬레이어다.

인류 최초, 공식적으로 네임드를 죽인 특수종.

일단 하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으니 치우고.

이번에 다른 쪽에서 물었다.

“협약에 관해서는 아시오?”

“알만큼은.”

“연합의 바깥에 설 때 초능국은 그 무력을 나라 외부에서 쓰지 않기로 했소.”

“자국의 방어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쓰지 않기로 했지.”

“그 일이 자국의 방어는 아니었을 텐데?”

“선제적 방어.”

“궤변이오.”

난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내 머리 위에서 홀로그램이 떴다.

놀라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응. 놀라게 하려고 한 짓이다.

내 회사에는 전뇌 공주란 애가 있단다.

그러니 이 정도는 일도 아니지.

홀로그램 영사기 하나 해킹해서 내 마음대로 쓰는 거야 뭐.

홀로그램에는 테러 단체의 다음 표적이 적혀 있었다.

알의 세 번째 아내를 노린다는 거였다.

물론 거짓이다. 만든 증거다.

그래도 난 당당했다.

“초능국이 싸운 건 테러 단체였어, 이게 따질 일이야? 연합과 척진 게 아니지 않아?”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일이므로.

“연합과 맺은 협약은 예외를 두지 않기로 했소!”

홀로그램 중 하나가 외쳤다.

저건 불멸자는 아니겠네.

흥분하는 꼴을 보니, 변신족이다.

올드 포스의 위원 중에 변신족이라.

“둬, 예외.”

“뭐요?”

“두라고 예외.”

“왜?”

“내가 두라고 했으니까.”

난 말하며 어깨를 펴고 좌우를 둘러봤다.

“다시 말하지, 내 이름은 유광익, 세최특이라 불리며 청기사 슬레이어다. 이 일로 불만이 있다면 나에게 따져. 그게 맞다. 아니라고 생각하면 좋은 주먹 놔두고 말로 하지 말자고.”

짧게 말해서 꼬우면 붙어 보던가, 다.

이렇게 강하게 나가도 되냐고?

된다.

이거로 끝낼 건 아니니까.

“거기.”

황당해하는 무리 사이, 내 손가락이 홀로 초조해 보이는 백인 여자를 가리켰다.

호주에서 온 연합의 위원이다.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난 이미 알고 있다.

“이 일 따위 알아서 하라고 하고 당장 호주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서나 회의하자고 말하고 싶지?”

호주에는 현재 일이 터졌다. 그것도 꽤 큰일이.

내 말에 백인 여자가 벌떡 일어났다.

“지금 호주에는 홀이 열렸습니다. 휴즈 게이트까진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구멍이에요. 그게 뜻하는 게 뭔지 모르는 게 아니겠죠? 지금 급한 건 초능국 왕을 규탄하는 것보다 인류의 보호 아닐까요?”

대형 블랙홀, 호주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이다. 그레이트 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데.

이름 지을 시간에 병력이나 파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저 여자도 같은 생각이겠지.

잘못하면 호주 캔버라 한복판에서 인베이더가 뷔페 파티를 열게 생겼으니까.

“네임드가 나오면 그 피해가 얼마나 클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연합의 힘이 필요합니다.”

여자는 기회를 잡았다 싶었는지, 숨도 안 쉬고 말을 이어 갔다.

이거야말로 연합의 머리라는 이들이 모여서 나눌 얘기가 아닌가 싶은데.

“미국에서 이미 특수 부대를 파견했소.”

미합중국 대통령이 말했다.

그냥 파견한 건 아닐 것이다. 정치란 이런 거니까.

연합으로 뭉쳤다고 해도.

인류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였다고 해도.

그 내부에는 끝없는 정치질이 이어진다. 뭐, 남 말할 처지는 아닌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은데.”

“그게 무슨?”

내 말에 백인 여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도시 한복판에 폭탄이 떨어지게 생겼는데 걱정하지 말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

이해한다. 황당한 소리로 들리는 거, 근데 정말 괜찮을 거다.

“NS가 갔다. 의뢰를 받았거든.”

이게 끝도 아니다.

“그쪽 케냐 쪽 대사 맞지? 거기도 갔다.”

초조해 보이는 사람은 둘이었다.

이쪽도 여자였다. 말끔한 흰 정장을 입은 흑인 여자.

케냐 출신의 정치인이었다.

그녀 또한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

특수종 시대에 케냐는 그리 좋은 입지를 갖지 못했다.

재능 있는 특수종을 하도 외부로 빨려 능력자가 몇 안 남았다.

그런 상황에서 나이로비에도 다중 홀이 열렸다.

하룻밤 만에 한 포인트에서 스물아홉 개의 문이 열리기 직전이란 경보가 뜬 거다.

차라리 판독기가 고장 났길 바랐을 텐데.

그럴 일은 없었다.

그거 NS가 만든 판독기다.

“내 이름은 유광익, 세최특이라 불리며 청기가 슬레이어다. 빈말은 안 한다고.”

한 번 더 이름을 팔았다.

근데 이거 이름을 자꾸 파니까, 좀 뻘쭘한 것 같기도 하고.

“없어 보여, 그것 좀 그만해.”

알이 핀잔을 줬다.

아니, 새끼야. 다 널 위해서 이러는 거다.

“팀장님, 목표 지점 확인했습니다.”

귀 뒤에 붙여 둔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린다. 김정아는 그 소리에 반응했다.

“포인트 확인 전까지 대기.”

게이트가 열리는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김정아는 건물 옥상에서 캐쉬 히포를 겨눴다.

곧 일그러진 공간이 뭉치고 까만 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팀원 오십이 전부 마이너 버전 캐쉬 히포를 들고 대기 중이었다.

곧 일그러진 공간이 까만 원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곧 수십 개의 까만 원으로 변한다. 대량의 어스 블랙홀이다.

케냐 군대도 대기 중이나,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숫자의 블랙홀이었다.

그런데도 김정아는 덤덤했다.

‘만만해.’

김정아 또한 꽃밭에서 굴렀다. 이중봉이 구른 것만큼은 굴렀다.

그러니 만만하게 느껴진다. 그 안에서 전투는 정말로, 진심으로 힘들었으므로.

쿠어어어어!

처음 나온 놈은 곰을 닮았다.

철갑을 두른 곰, 아이언 베어다.

몸뚱이가 너무 단단해 어지간한 폭격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놈.

김정아는 캐쉬 히포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웅.

건물 옥상에 만들어 준 전신 고정 거치대가 떨렸다.

반발력이 전신을 울렸다. 레일 건 방식으로 바뀐 캐쉬 히포다.

탄환도 물론 그 전과는 달랐다.

현재 탄환은 청기사의 에테르 에너지를 변환한, 블루 불릿.

아이언 베어가 나오자마자 양팔을 높게 들고 괴성을 질렀고.

뻥!

지르자마자 머리가 터졌다.

쇳조각을 닮은 머리 가죽이 찢어져 튕겨 나갔다.

그중 하나가 깡하고 케냐 군대가 끌고 온 전차에 날아와 부딪혔다.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김정아는 그 소리를 사격 신호로 삼았다.

“전원, 발사.”

머리 터진 곰을 보며 김정아가 통신기를 통해 말했다.

곧 마이너 히포, 그녀가 가진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에 준하는 병기가 불을 뿜었다.

그 숫자가 오십이다.

나오는 인베이더가 뭘 하기도 전에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게 무엇이든, 다 뚫는 총탄이다.

푸른 에테르 탄환의 장점은 관통력이었다.

대기하던 케냐 군대가 멈췄다.

나오는 족족 죽는 인베이더를 감상하기 바빴다.

그래도 나오는 숫자가 많기에 몇 마리가 빠져나와 앞으로 뛰었다.

그저 인류에 대한 증오만이 가득한 크리쳐가 내달린다.

그걸 보면서도 김정아는 나오는 놈들만 노렸다.

걱정할 게 없었다.

그녀 혼자 온 게 아니었으므로.

케냐 군대 사이다.

번쩍이는 칼날이 나온다. 근접 거리에서 터지는 산탄이 빠져나온 인베이더의 몸뚱이에 구멍을 냈다.

김정아의 팀이 그녀를 필두로 한 저격 전문 팀이라면.

아래쪽은 근접 전문 팀이었다.

“몸 풀자.”

장가희가 말하고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그녀는 변신족 서른을 데려왔다.

하나같이 그녀가 손수 손댄 병력이다.

레일건 방식의 산탄과 단분자 커터로 무장한 병력이다.

“조져.”

다가오는 인베이더다. 장가희가 먼저 뛰쳐나갔다. 땅을 박차자, 꽝하고 바닥이 터지며 솟구쳤다.

장가희의 몸이 잔상을 만들며 늘어났다.

인베이더의 처지에서 보자면 일방적인 학살이나 다름없었다.

‘꽃밭’에서 상대하던 놈들과 비교하면 쉬운 상대.

장가희는 목숨을 걸지 않았다.

화이트 홀에서의 겪었던 미친 전투는 그녀에게도 훌륭한 훈련장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그녀가 데려온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오우, 쉿, NS!”

인베이더를 학살하고 있자니, 누군가 외친다. 케냐 군대의 장성으로 보였다.

그는 진심으로 감탄해 외쳤다.

같은 시간.

캔버라 구석, 공원에 열린 대형 게이트 앞이다.

“저거, 특이종이다.”

도안결이 말한다.

정기남도 봤다. 커다란 홀을 뚫을 피막이라도 되는 양 찢으며 나온 놈을.

커다란 뿔을 가진 말을 닮은 놈이었다.

다만 다리 대신에 촉수가 달렸다.

생긴 게 끔찍한 놈이었다.

“겁나면 돌아가라.”

안결의 곁에 선 기남이 말하자, 도안결은 코웃음을 쳤다.

“너나 가.”

“지랄은.”

둘은 사이가 나빴다. 하지만 전장에서는 아니다.

우스울 정도로 손발이 맞는 둘이었다.

처절한 전투가 예상되는 순간이다.

특이종, 네임드까지는 아니지만, 그와 비교해도 살벌한 수준의 괴물.

유광익이 네임드를 잡았으면 나도 잡는다.

경쟁 욕구가 둘의 성장 요인이었다.

차세대 변신족 최강과 불멸자 최강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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