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 꽃등심 10인분
“회장님!”
공식 석상에 나서면 지부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회장이다.
그 직함에는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령 협회장의 야망 같은 것이.
그는 단군의 회장과 동급이길 바라고.
대통령과 같은 눈높이를 갖길 바란다.
물론 모든 게 뜻대로 되고 잘 풀렸다면 고작 직함 따위에 연연하진 않았을 것이다.
회장의 호위, 이준범은 불안했다.
세최특의 낯짝을 보자마자 심장이 쫄깃했고 손끝에 피가 안 돌았다.
‘회장님과 단둘이 두면 안 된다.’
일이 터질 것이다. 불안했다.
그런데 회장이 나가라 손짓했다.
반항하듯 한 번 협회장을 부른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밖에 선 그는 엿듣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협회장 실은 방음과 방탄에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든 쉘터였다.
고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수틀리면 진입한다. 불닭은?”
“출장 중입니다.”
“부협회장은?”
“오고 계십니다.”
호위대장 격인 준범이다. 그는 자세를 바로 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바로 반응한다. 아니다 싶으면 회장의 명령과 별개로 당장 안쪽으로 진입할 것이다.
쉘터라고 해서 모든 진동까지 막아 주는 건 아니다.
큰 충격 정도는 감지할 수 있었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부협회장이 왔다.
“진격전이구나.”
보라색 머리칼의 주인이 오자마자 말했다.
준범이 바라보자, 부협회장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누가 반응하기도 전에 빨리 쳤잖아. 가장 귀찮은 적, 아니, 적이라고 할 수는 있나?”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회장은 자신에게 부모이며 삶이다. 자신의 주인이며 모든 것이다.
그 협회장은 일평생 협회를 위해 살아왔다.
그런 사람을 두고 선택한 단어가 너무 얄팍하다. 거기에 준범은 화가 났다.
준범은 그 화를 담아 부협회장을 노려봤다.
“너도 생각 좀 하고 살아. 지금 쟤를 누가 막니? 그래서 어지간하면 안 부딪치려고 그렇게 알랑방귀를 뀌어 놨더니, 이렇게 와 버리네.”
부협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질린 눈치였다. 그녀는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협회장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협회 자체는 그녀가 지켜야 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판독기로 장난질한 거?
그건 이제까지 협회가 NS에게 이세계 자원으로 장난친 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전뇌 공주?
아니, 시발 그건 진짜 부협회장도 할 말이 많았다.
‘하여간 시발 또라이 새끼.’
그건 협회장은 독단이었다. 그런 짓을 누가 허락한다고.
제 유전자를 이용해 초능 실험체를 만들어?
이건 죄다. 그런데 우연히 성과가 있었다고 그 아이를 원해?
이 새끼는 양심이 없는 건가?
그 아이가 원했다고 한다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싫다는 아이를 달라고 하는 꼴이라니.
그리고 초능국의 세최특의 관계는 왜 헤집고 지랄인가.
‘내가 늙지, 늙어.’
부협회장은 부쩍 피곤함을 느꼈다.
피곤함과 더불어 허탈함, 역으로 후련함도 느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되겠지.’
포기하자, 포기하면 편하다.
“만약, 만약에 회장님 신변에 일이 생기면 오늘 세최특은 죽습니다. 바로 여기서.”
이준범이 말했다. 비장했다. 눈이 빛났다.
‘잘도.’
부협회장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세최특이 협회에 있는 모든 초능 특수종을 죽일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죽이고 빠져나갈 순 있겠지.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면 지금 세상은 누구의 손을 들어 줄 것인가.
‘나 같아도 세최특을 밀겠다.’
네임드 슬레이어, 테러 단체가 작정하고 덤벼도 못 잡는 불세출의 특수종.
아버지는 피닉스 팀장으로 정부의 요인.
어머니는 단군의 후계.
그에 반해 협회는 어떤가.
그동안 양아치 소리 들으며 제 이득을 취하기 바빴다.
어떻게든 정부와 단군과의 격차를 줄이려고 그렇게 했다.
협회의 위상을 높이는 것.
그게 협회장의 꿈이었다.
부협회장도 그걸 원하긴 했지만.
‘방법이 틀렸어.’
협회가 걸어야 할 길.
그녀에게는 어렴풋이 보였다.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이었다.
그 깨달음을 다 소화할 때가 되자.
협회장실 문이 열렸다.
“충성심이 남다르시네들.”
유광익, 세최특이다.
“오랜만이에요.”
조금 전 깨달음으로 인해 생긴 흥분을 내리누른 부협회장이 나섰다.
“아, 네. 뭐.”
“안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회장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이준범이 끼어들었다. 같이 나와야 할 회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꽂은 홀스터에 손이 갔다.
대 특수종 전용 탄환을 머금은 권총이다.
그걸 듣던 부협회장이 미간을 찡그렸다.
“거, 좀 닥치고.”
“……뭐요?”
말이 부협회장이지, 협회 내부에서의 지위는 호위대장보다 낮다.
한쪽은 협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부협회장은 소위 말하는 내놓은 자식 취급이었으니까.
“닥치라고. 못 들었어?”
그녀의 눈에서 보라색 광망이 흐른다. 초능 특수종은 흥분하면 사이오닉 에너지가 구현되어 보일 때가 있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사이키커라면 가능한 짓이었다.
“지금!”
이준범은 뭐라 외치려 했으나, 이번에도 말문이 막혔다.
“그만.”
협회장의 목소리였다.
협회장은 멀쩡했다. 안색이 조금 파리한 걸 제외하고는 진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만하지.”
사태 정리는 끝이다. 세최특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 나갔다.
홀로 와서 가뿐한 걸음이 되어 돌아간다.
부협회장은 협회장의 눈을 봤다.
탁하고 흐린 눈, 패배자의 눈이다.
그걸 본 부협회장은 몸을 돌렸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광익 씨. 소고기 안 먹을래요?”
그녀는 그동안 세최특을 많이 상대했다.
협회 내에서 가장 많이 상대해 본 사람일 것이다.
그녀는 세최특을 알았다.
“투쁠?”
“말해 뭐해요. 나 부협회장이에요. 돈 많아요.”
돈 많은 여자는 언제나 옳다.
내가 볼 때, 이 작자는 꼰대다.
물러날 생각도 없으며, 내가 뭐라고 해도 제 할 말을 할 것이다.
고집이 보통이 아닐 것이다.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호위를 다 내보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고 보는데.”
꼰대 춘배 씨가 말했다.
난 어머니의 명언을 떠올렸다.
“그 어떤 고집도 주먹을 이길 순 없단다.”
마트에서 배를 깔고 누워 장난감 사 달라고 했다가 들은 한마디였다.
거, 사람 궁둥이 번쩍 들게 할 말이었지.
“주먹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오산이네, 내가 바로!”
말하며 협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 협회 꼭대기에 있는 초능 특수종이다.”
오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감이 넘치는 말투였다.
그는 그럴 만했다.
화이트 홀에서 겪은 일들이 참 별났을 뿐이지.
아마도 다음 이상 현상은 그놈들이 만들 것이다.
새로운 인베이더의 출현.
난 그걸 예견한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초능을 상대하는 법이 더 수월해졌다.
난 협회장이 더 입을 열기도 전에 움직였다.
그가 무슨 짓을 한다 해도 네임드 이하였고.
하물며 테러 단체가 준비한 함정에도 미치지 못했다.
의기는 높게 산다. 그래, 당신은 폭력에 굴복하지 않겠지.
그럴 것이다.
나 또한 어머니의 폭력에 굴복한 적은 없다.
내가 굴복한 건 공포지.
협회장은 덤볐고, 난 제압했다.
소란스러울 건 없었다.
초능을 피하고 뒤를 잡는 거로 끝이니까.
“여기서 제가 목을 꺾으면 당신은 죽어요.”
“옆구리가 비네요. 갈비뼈 다 뽑아도 죽을 것 같은데.”
“고속 재생 능력은 없으시죠?”
“설마 이게 전부인가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피하고 빈틈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기만 했다.
협회장은 염력술사임과 동시에 손에서 빛의 탄환 같은 걸 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그걸 맞을 일은 없었고.
“이 괴물 새끼.”
협회장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네, 칭찬 감사.”
“그래도 변하는 건 없다.”
고집불통 늙은이.
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걷는 걸음에 기척을 죽이고 바짝 붙었다.
귓가에 숨을 불어넣을 듯이 가까이.
그 뒤 어머니가 날 훈육한 방법을 10배쯤 확대해 썼다.
“계속 떼쓰면 우리 아들, 궁둥이를 걷어차 줄 거예요.”
미소를 보이며 하는 그 말이 어찌나 무섭던지.
난 어릴 때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고 있으면 공포 영화를 태연하게 볼 수 있었다.
공포 영화 따위 뭐가 무섭다고.
그 이유를 이제는 안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내가 살기에 노출되어도 버티도록 조금씩 살기를 보여 주셨다.
괴롭히는 게 아니었다.
혹시나 인베이더 앞에서 몸이 굳는 일이 없도록.
그런 일이 일어나도 도망은 칠 수 있도록.
아가페적인 사랑이지.
지금 나도 협회장에게 사랑을 담아 줄 참이었다.
거, 착하게 좀 살자고.
“이봐요. 제가 당신을 죽인다고 해서 별일 있을 것 같아? 진짜 그렇게 생각해? 협회장이 죽으면 덤비는 초능 특수종마다 족족 다 죽여 버릴 거야. 그 뒤에 정부와 단군에 말할 거야. 네가 내 뒤를 쳤다고. 증거 조작이 어려울 것 같아? 나 진짜 궁금해지네. 너 뭐 믿고 그러냐? 자살이 취미야?”
공포와 압력.
기척을 숨기며 다가왔기에 협회장이 느끼기에는 귓가에 속삭이는 말소리만 남았을 것이다.
그것도 농후한 살기가 가득 담긴, 그런 소리.
어지간한 인베이더도 내 살기에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언령도 실었기에 그 효과는 배가 됐을 것이고.
그가 느낀 공포의 깊이를 짐작하긴 어렵다.
다만, 한 가지.
그는 내 반대편에 서려면 꽤 많은 산을 넘어야 할 것이다.
공포와 현실이라는 난관을.
그리고 실제로 수틀리면 죽이는 건 아니더라도 초주검으로 만들어 줄 용의도 있고.
“수고하시고.”
그렇게 난 회장의 어깨를 두드리고 나왔었고.
지금은 그 뒤에 만난 부협회장에게 소고기를 얻어먹는 중이다.
“꽃등심 드세요. 이게 부위가 좋네요.”
“지금 식기도 전에 그쪽에서 다 먹고 있는데요. 타다끼예요?”
“핏기없으면 먹어도 돼요. 소는 그래도 돼요.”
“그 정도면 육회인데?”
맛만 있으면 됐지. 뭘 또 따지시나.
꽃등심은 훌륭했다. 그 고소함, 그 육질, 그 육즙.
모든 게 기억에 깊게 인이 박일 정도로 훌륭한 맛이다.
“협회 근처 최고 맛집 인정.”
미슐랭이 인정한 고깃집이었다.
“그래서, 그게 전부라고요?”
부협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회장과 무슨 일이 있었나 물었고.
난 솔직하게 답했다.
잠깐 같이 몸을 풀고 대화를 나눴다고.
그게 끝이라고.
“회장 표정이 맛탱이가 갔던데?”
“그랬어요? 난 원래 그런 얼굴인 줄 알았죠.”
후식 냉면이 생각보다 맵고 달아서 맛있었다. 물과 비빔의 중간쯤 되는 스타일인데.
가위로 썩둑 썩둑 잘라서 수저로 퍼먹으니, 별미다.
“협회에 악감정은 없죠?”
“악감정은 무슨, 자원으로 장난치고 전뇌 공주 달라고 생떼 부린 데다가 초능국을 곤란하게 했다고 제가 막 감정 갖고 그럴 것 같나요?”
부협회장은 날 물끄러미 보더니, 테이블에 있는 벨을 눌렀다.
“꽃등심 10인분 추가요.”
이 여자는 뭘 좀 안다.
부지런히 먹었다.
다 먹고 헤어지는 길에 부협회장이 물었다.
“이제 본사로 들어가요?”
“아니요. 저 비행기 타러 가요.”
“비행기?”
“할 일이 좀 많아야지. 미국 갑니다.”
“미국?”
“펜타곤에서 증인 요청 받았거든요.”
“펜타곤?”
이 여자가 앵무새가 됐나.
“그럼 지금 당장 간다고요?”
“네, 출장이요. 이놈의 회사는 대표가 없으면 돌아가질 않네요.”
정직하게 말하자면 내 개인적인 일에 가깝지만, 어쨌든 그 개인사가 회사 일이 되기도 하니까.
부협회장과 헤어진 난 그대로 공항으로 향했다.
“세최특 맞습니까?”
거기는 이미 미국에서 보낸 특임대가 와 있었다.
세계 정부 연합의 우두머리가 있는 곳, 미국.
특임대의 포스가 남다르다.
그리고 특히나 인상이 사나운 흑인 남자가 날 무섭게 노려봤다.
이런 애들이 꼭 실력 좀 보고 싶다고 깝죽거리기 마련이다.
그래. 그럼 한바탕해야지. 덤비면 실력을 명확히 보여 주려 했다.
흑인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난 한눈에 상대가 불멸자임을 알아봤다.
기세가 남다른 불멸자다.
까만 뱀이 연상되는 눈을 가졌다.
특임대가 모두 그 흑인을 주목했다.
그리고 다가온 흑인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어색한 한국어다.
“팬. 아임 유어 팬. 난 너의 팬.”
그리 말하고는 손을 내민다.
“사인 잇. 땡큐.”
이 새낀 뭐지 또.
“제이크는 당신은 광팬입니다.”
통역가로 붙은 특임대 하나가 말했다.
그래. 내 생각이 짧았다.
특수종중에는 미친 새끼들이 참 많고.
그게 미국 특임대라고 달라질 건 없다는 걸 잊었다.
결국 사인해 줬다.
그는 앞니를 드러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