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 내가 돌아왔다.
프로메테우스와 이시스는 한국에 손을 뻗을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 가진 모든 걸 포기하기에는 그곳에 쌓아 둔 인프라가 너무 아까웠기에.
그들은 광익의 소문을 듣고 움직였다.
“정말로 안 나타나는 거라면.”
“기회라고 볼 수 있죠.”
이걸 기획한 건 최미남이다.
“잘못되면 목숨 건지기 힘들 텐데? 괜찮겠어?”
프로메테우스의 수장이 말한다. 불멸교와 양다리를 걸쳤던 최미남은 이제 없다.
그녀는 프로메테우스로 완전히 전향했다.
그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걸 이야기로 하자면 드라마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현재는 입지가 곤란한 처지였다.
그러므로 일이 필요했다. 성공하면 입장을 뒤집을 그런 일이.
“러시아와 중국 쪽 첩보를 확인했어요. 화이트 홀이 로스트 노쓰 내부에 있었다고.”
“그게 세최특이 죽었다는 걸 증명하는 건 아니잖나. 이 친구야.”
“네, 압니다. 알지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1년 동안 자리 잡고 뿌리를 깊게 박아서 다시는 뽑히지 않겠습니다.”
이전처럼 어설프게 양지로 나서지 않는다. 철저하게 음지로 숨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땅굴을 파서라도 숨는다.
뿌리를 깊게 박게 되면 아무리 세최특이라도 뽑을 순 없을 것이다.
죽여도, 없애도 계속 나타날 테니까.
그럼 성공이다. 인프라가 남았으니, 그걸 활용하면 될 것이고.
싸우는 거야, 테러 단체에게는 일상 아닌가.
필요한 건 세최특의 시선을 끄는 것.
그 와중에 자리까지 잡게 된다면.
최미남은 미래를 꿈꿨다.
“꿈과 희망이 가득한 눈빛이구나.”
“그런가요?”
“미남아, 난 너 아낀다. 살아 돌아와라.”
수장이 말했다. 어둠에 가려진 그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팔걸이가 있는 소파 끝에 손가락 끝만 보일 뿐이었다.
그 손가락 끝에 형형색색의 보석 반지가 보였다.
유치해 보일 정도로 빛나는 반지다.
“네, 반드시.”
그렇게 떠난 길이었다.
최미남은 이번 프로젝트의 리더였다.
반년, 그렇게 천천히 자리를 잡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NS가 문제가 아니었다. 경찰이 물고 늘어졌다.
‘미친 것들.’
이전에 프로메테우스에게 뒷돈을 받은 이들은 싹 물갈이됐다.
수를 쓰기가 여간 곤란했다.
그래도 버텼다.
전면 전투는 그쪽도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이쪽도 나름대로 준비는 했으니, 전면 전투를 일으켜 함부로 피를 보려 하지 않을 터였다.
“오늘은 날이 아주 밝네, 밝아서 좋아.”
창밖에 고개를 내민 어린 꼬마가 말했다.
먹구름이 잔뜩 낀 날이다.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은 날씨다.
정신이 반쯤 나간 애새끼지만, 그 능력만큼은 출중하다.
전신변환계 초능 특수종이니.
겉보기와 달리 어린애도 아니었다.
실험 부작용으로 태어난 전투 병기다.
프로메테우스의 세 간부와 버금가는 전투력, 적과 상성이 맞으면 그보다 더 낫다는 평가다.
‘변신족 상대로는 우월하다.’
불멸자를 상대로도 우월할 것이다.
전신변환계 능력자는 흔치 않다. 하물며 뇌전 변환계는 공격력이 월등하다.
단숨에 전신을 태우는 능력자다.
상대가 고속 재생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무용할 것이다.
“햇살이 너무 밝아. 눈부셔.”
정신머리는 어디 엿 바꿔 먹었지만, 오히려 이게 괜찮다.
그녀의 유혹 주문이 더없이 잘 먹히니.
“그러니? 그럼 창가에서 나오면 되지.”
“싫어, 여긴 내 자리.”
이게 주문이 잘 먹히는 건지 아닌지 가끔 의문은 들지만, 그래도 말은 듣는다.
이 아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전투 병기로 손꼽히는 놈을 셋을 데려왔다.
이들과 맞붙으려면 동급의 전투 병력을 써야 한다.
정부와 단군이 손잡고 나서면 모르겠으나, 그러지 않는 이상 전면 전투는 피할 것이다.
일이 터지면 도시 피해가 막심할 테니까.
그렇다고 경찰 혼자 해결할 덩어리도 아니고.
그러니 이거면 충분할 것이다.
혹, 세최특이 나타나도 시간은 벌어 줄 것이고.
최미남은 이번 미션을 성공해야 했다.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그녀의 입지는 벼랑 끝이었다.
후둑후둑.
창밖에서 곧 비가 떨어졌다.
“햇살이 줄줄 녹아떨어진다.”
정신 나간 꼬마 놈의 헛소리를 흘려들으며 미남은 커피를 내렸다.
주르륵.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사이.
삑.
경고음이 울렸다.
비상 연락 코드였다.
전화 걸 틈도 없이 일이 터졌다는 거였다.
“어디?”
“종로입니다.”
종로면 귀금속점으로 위장한 점포다.
곧바로 홀로그램 카메라를 켰다.
화면에 잡히는 게 없었다. 회색 연기만 가득했다.
“확인해!”
미남이 히스테릭을 담아 외쳤다.
불멸특수대 첩자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만큼 초조했다.
“너무 오랜만이네요.”
“알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고 하던데?”
“별일 아니에요. 어쩔 수 없으니, 툭툭 건들기나 해 보는 거죠.”
“어디서?”
“여기저기서요.”
김근육이 눈웃음을 지었다.
거듭 생각하는 거지만, 이 여자 얼굴은 미인이다.
근육 그 자체인 몸과 다소곳한 태도는 어울리지 않아야 했지만, 공주가 하면 기품이 넘쳤다.
공주로서 배운 모든 것이 그녀의 몸에 그런 걸 깃들게 했나 보다.
걷는 걸음걸이, 손짓 하나까지도 차분하고 고요하다.
사소한 행동에 상대를 배려하는 게 엿보인다. 좋은 사람이다.
후두둑.
“비 오네.”
“우산 없는데.”
“저기로 들어가요.”
“그러자고.”
데이트는 아니었다. 일하러 나온 길인데, 김근육이 따라왔다.
혜민이가 봤다면 단숨에 끼어들었겠지만, 암시장에도 일이 있다고 들었다.
화이트 홀에서 함께 인베이더 상대로 지지고 볶던 혜민이는 곧바로 어머니께 향했다.
말은 사납게 해도 제 어머니는 끔찍하게 챙긴다.
걔가 겉으로는 안 그래 보여도 효녀다.
딸랑.
문을 열자 문 위쪽에 길게 늘어뜨려 달아둔 차임 벨이 울렸다.
딸랑 소리에 카운터에 앉은 긴 웨이브 머리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세요.”
형광등 불빛이 번쩍번쩍한 곳이었다. 바깥 유리에 ‘금 삽니다’라고 쓰인 금은방이었으니까.
“비가 오네요.”
“그러게. 어둑어둑하더니, 비가 쏟아지고 그러네요.”
중년 아줌마가 천연덕스럽게 말을 받았다.
“비 피하시게?”
“온 김에 물건 좀 보죠.”
“둘이 결혼할 사이?”
그 말에 김근육이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요.”
“……아직?”
아줌마와 내가 동시에 반응을 보이니, 김근육이 얼굴을 붉혔다.
“아니요. 말이 헛나왔어요.”
위험하다. 위험해.
방금 웃는 거 보고 귀엽다고 생각할 뻔했단 말이지.
정소진보다 큰 덩치의 여자가 귀엽다니.
거참.
“전보다 몸이 더 커졌네요?”
이런저런 보석이 진열된 곳을 살피던, 김근육이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놀진 않았지. 근육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물론 난 불멸자의 특성을 이용해서 단시일 내에 과감한 훈련을 해서 쌓곤 하지만.
그래도 잇헬을 입고 뛰어다니며 이런 몸만들기 정말 쉽지 않았다.
진심이다.
“좋아 보여요.”
“그래. 너도.”
김근육의 몸도 나 만만치 않게 튼실해 보였다.
전보다 근육이 오밀조밀해 보였다.
얘도 그동안 놀고먹진 않았다고 들었는데.
로스트 노쓰 훈련에도 함께했고 화이트 홀에도 간간이 얼굴을 보였다.
그때마다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김근육의 초능은 총 셋.
하나는 변환.
근육과 힘을 늘리는 고정형 육체 변환 능력이다.
두 번째는 폭발.
타격 부위에서 지향성 폭발을 일으키는 능력, 일전에 개화했다고 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독심.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 정확히 생각을 읽진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집어낼 수 있었다.
“당신 불안하군요. 여기가 프로메테우스가 숨겨 둔 사업체라서요?”
겉보기에는 금은방이지만, 실제로는 마약과 각종 불법 거래가 일어나는 곳이다.
“……네? 그게 무슨?”
아줌마는 모른 척하며 손을 밑으로 내렸다.
비상벨이라도 누르나 보다. 말리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에서 검은 그림자가 뚝 떨어졌다.
들어왔을 때부터 있는 거 알았다.
그리고 나만 알고 있는 건 아니었고.
훙훙.
김근육이 움직였다.
왼발을 땅에 딛고 주먹을 뻗어 올린다. 경쾌한 박자와 타이밍의 주먹질이다.
날아간 주먹이 곧 상대가 내민 칼끝에 부딪혔다.
지지직!
칼끝이 파랗게 빛나는 걸 보니, 저것도 보통 무기는 아니겠다만.
이쪽도 보통 주먹에 보통 무기는 아니라서.
이세계에서 캐낸 금은 독특한 형질을 지닌다. 성질 흡수라는 형질이다.
그걸 기어로 만들었다.
지향성 폭발 능력에 반응하는 건틀렛이라고 해야 할까?
주먹 뼈가 보이는 부분에 일자로 구멍을 내고 앞뒤를 퓨어 골드로 감쌌다.
곧 폭발력이 배가 되는 김근육의 커스터마이징 장비되시겠다.
초능과 칼날이 만난다.
폭발은 그대로 화마가 되어 위쪽에서 내려오던 놈 둘을 덮쳤고.
난 엄지를 튕겼다.
“꺄악.”
놀란 척하며 산탄총을 꺼내는 아줌마 머리에 구멍이 났다. 작지만 단단한 핸드 불릿이 한 일이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부숴.”
내 한 마디에 김근육은 사방에 폭발 주먹을 내질렀다.
쾅! 쾅!
곧 연기가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안에 뭐가 있는지는 몰라도 여길 거점으로 쓰는 건 이제 글렀을 거다.
나만 움직인 건 아니었다.
동시다발적인 습격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우의를 입은 이지혜 팀장 누나가 보였다.
“위치만 파악해 둔 거 좋은데요? 애들이 대비가 약하네요.”
“중앙에서 관리하는 무리가 있는데 그쪽이 진짜라고 들었거든. 그러니 여기는 허술하지.”
이직을 준비하는 경찰의 말이다.
“퇴사는요?”
“이번 일 끝나면.”
말하며 누나가 담배를 하나 물었다. 뻐끔하고 연기를 뿜어낸 누나가 날 향해 시선을 던졌다.
“오늘 밤에 바로?”
“기다려서 뭐 하겠어요.”
프로메테우스 이 깍쟁이 친구들.
나 없다고 신나서 들어오면 되나.
이게 내 지구 복귀 신고식이었다.
이동훈과 우미호는 광익이 화이트 홀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 순간부터 몇 가지 수작을 부렸다.
그중 하나가 이거였다.
“누가 죽어?”
“세최특. 로스트 노쓰에서 무슨 황금 거인이랑 싸우다가 죽었다고 하던데?”
“변신족 피가 폭주해서 날뛰다가 잠든 게 아니라?”
“화이트 홀에서 무슨 이상한 풀을 먹어서 힘을 잃은 게 아니고?”
카더라 통신이다. 유언비어다.
되지도 않은 정보를 마구잡이로 뿌렸다.
본래 다른 사람 험담은 할수록 즐거운 법이고.
이 정도 가십이라면 누구라도 떠들어 주기 마련이었다.
도화선에 불만 붙이면 터지는 폭탄과도 같았다.
반년이 넘도록 그런 말이 세차게 퍼졌다.
누구도 쉬이 믿지 못할 이야기다.
하지만 소문의 주인공이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이게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물론 소문 그 자체를 믿진 않을 거다.
그저.
진짜 무슨 일이 생겨서 안 나오는 것 같은데?
라는 의심 정도면 충분했다.
거기에 협회장이 기름도 세차게 뿌려 줬다.
광익이 없는 사이에 밤낮도 안 가리고 가진 수단을 동원해 계속 공격했다.
“전뇌 공주는 우리의 것이니, 돌려주시오.”
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판독기 소스를 오픈할 거였으면서 판 건 기만행위 아닙니까? 법정으로 가서 따져 봅시다.”
법정 공방도 오갔으며.
가장 최근에는 협회장이 제대로 꼬리를 물기도 했다.
“초능국이 일개 개인을 위해 나선 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올드 포스에 이 일을 정식으로 요청하는 바요.”
여기까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세최특은 의리가 깊다. 유광익은 자신의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
라는 이미지가 사람들 뇌리에 가득하니.
우미호가 보기에는 휘파람을 불 일이었다.
화이트 홀에 발이 묶여 못 나온 것뿐이지만,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NS에 이런저런 일이 있는데 사장이 얼굴을 안 비춘다. 누가 보면 확실히 무슨 일이 생긴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미호는 이 상황을 십분 활용했다.
“널 왜 구미호라고 부르는 줄 알겠다.”
“그러는 선배야말로 잠든 곰을 건들지 말란 말이 파다했어요.”
이동훈과 우미호의 합작품이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프로메테우스와 이시스의 공동 서울 진출.
NS는 반응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어제까지는 그랬었다.
오늘부터는 좀 다르겠지만.
띠릭.
무전이 온다.
“거점 열여덟 곳 전부 클리어.”
“와우, 우리 애들 일도 잘해요.”
동훈이 옆에서 말했다. 미호는 무전에 대고 물었다.
“NS는?”
코드명 NS, 대표를 일컫는다.
“노른자로 움직입니다.”
이번 미션의 이름은 바위로 달걀 깨기.
노른자는 프로메테우스의 한국 지부 대가리를 말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