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 미친 자들의 훈련
“오랜만이군요.”
유연호는 소파로 향하며 주변을 눈으로 훑었다.
아들은 보기보다 세심한 편이다. 그런 건 제 어미를 닮았다.
그가 보기에 지내기 퍽 괜찮은 숙소였다.
22층, 창밖으로 오가는 차들이 미니어처처럼 보였다.
소리 없이 앉은 유연호가 입을 열었다.
유무인은 아들의 물음에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베란다 너머로 불빛이 명멸하는 것만 바라볼 뿐이다.
“언령, 가르쳤습니까?”
딱딱한 물음에 유무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가르친다고 그렇게 뚝딱 되는 건가.”
“한 번 보더니 그냥 가져가 버리더군.”
허탈한 음성이다. 유연호는 그 허탈함에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 있었다.
가끔이지만, 그가 보기에도 아들의 재능은 깊이가 보이지 않는 우물 같았다.
“그래서 아깝습니까? 혼혈에게 기예를 뺏겨서?”
“아깝기는.”
무인은 말하고 사박사박 걸음을 옮겨 테이블을 두고 아들과 마주 앉았다.
아버지와 아들.
본래라면 더없이 정겨워야 할 사이가 겨울바람처럼 차가웠다.
“왜 왔습니까?”
“내가 오고 싶다고 해서 온 것처럼 보이나.”
“손주의 부름에 어쩔 수 없이 오셨다고 할 셈입니까?”
“한 회사의 대표가 공식적으로 요청한 거지.”
차 한 잔 나눌 여유도 없는 건지.
둘 사이에는 냉수조차 없었다.
유무인은 아들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가 곧 잊었다.
무슨 자격으로 그런 걸 요구할까.
“하나만 묻지요.”
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자세로 앉은 아들의 입에서 창이 나와 자신을 찌를 것이다.
자신이 베고 찌른 것만큼 똑같이 그럴 것이다.
할 말은 없다. 베이고 찔려야 할 것이다. 그게 할 수 있는 전부니.
유무인의 예상은 틀렸다.
아들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그의 예상과 궤가 달랐다.
“아버지의 보물이 불멸이라 하셨지요.”
그랬었다.
불멸이 이어져야 가족도 있는 것이라고.
불멸이 있어야 나도 있고 너도 있는 것이라고.
자신은 그걸 위해 제 생을 걸었다고.
그렇게 아내를 버리고 자식을 버렸다.
그때 버린 자식은 홀로 컸다. 잘 컸다. 장성했다. 멋지게 컸다. 결혼도 했다. 자식도 뒀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 할아버지로 살 순 없다.
유무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답이 없는 그를 보며 아들은 말을 이었다.
“제 보물은 제 아내입니다. 제 아이입니다.”
물끄러미 시선을 마주하자, 무인은 부끄러웠다. 자신이 놓친 걸 아들은 꽉 붙들었다.
“슬혜와 광익이, 마리가 제 보물입니다. 보물에 해를 끼치지 마십시오. 그 셋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땐 제가 젊은 날의 아버지가 될 겁니다.”
젊은 날의 유무인이라.
그는 용서가 없는 사람이었다.
가차 없는 인간이었다.
폭주한 특수종이었다.
그의 유산은 불멸교였으나, 그 유산은 썩고 병들었다.
‘아니지, 그때의 내가 이미 썩었을 테지.’
인정한다.
“아버지의 보물을 지키겠다고 제 보물을 건들지 말라는 겁니다.”
아들은 경고했다. 무인은 답하지 않았다.
그럴 낯이 없기에 입을 다물었다.
버릇처럼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은 채다.
아들은 일어났다.
“이건 피닉스 팀의 팀장으로서의 경고이기도 합니다. 전대 교주님.”
무인은 찢어지는 가슴을 여물지 않았다.
이건 자신의 죄, 마땅히 감내해야 할 순간.
“그러지.”
그러니 태연히 답할 뿐이다. 아들이 부담을 느껴선 안 되므로.
유연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자의 만남은 짧았고.
유연호는 이 일로 광익에게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아들이 말한 대로, 전대 교주는 쓸모가 많으므로.
그리 쓰이겠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온 유연호는 아내를 안았다.
“만나고 왔어요?”
“잠깐.”
아내는 어떤 조언도 위로도 하지 않았다.
그저 폭 하고 그를 안아 줬을 뿐이다.
오랜 시간 피닉스 팀장으로 살아왔다.
아내를 뒀고 아들을 가졌다. 죽음의 위기를 넘긴 건 또 몇 번인가.
아찔한 순간을 넘긴 건 또 몇 번인가.
어린 아들이 죽을 뻔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살 떨리던 순간이 몇 번이던가.
그런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아버지를 만나는 건 여전히 머리가 복잡해지는 일이다.
“소고기 먹을래요? 오늘은 내가 쏜다.”
아내가 말한다. 그 말에 연호는 미소를 보였다.
“꽃등심?”
“좋아요. 내가 바로 NS의 숨겨진 배후, 나 돈 잘 번다고요.”
유연호는 흡족함에 웃었다.
아내는 NS에 입사한 이후로 웃음이 늘었다.
처음 마리를 들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삶에 전에 없는 생동감이 넘친다.
그게 몹시 흡족했다.
이건 아들 덕이다.
아들의 이런 세심함은 역시나 제 어미를 닮았다.
유연호는 그게 진심으로 좋았다.
[로스트 노쓰 정복.]
[NS 대표 유광익의 업적 모음.]
[세최특은 인류의 축복?]
[네임드 슬레이어의 다음 행보는?]
[파격과 과격을 넘나드는 세최특.]
[새로운 별명은? 세미특.]
포털 사이트 기사에 광익의 이름이 도배됐다.
하는 짓이 전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니까.
방송도, 기자도 모두 광익을 찾았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NS는 여전히 활발히 활동했다.
“정규직 사원 모집합니다.”
짧은 공고가 올라왔다. 2차 정규직 모집이다.
그 공고로 또 세상이 들끓어 올랐다.
“또 뽑아?”
“이번에는 나도 지원한다.”
1차로 지원한 이들은 전투 부대로 편입됐으나, 죽은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돌아가며 휴가를 써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그들의 양손에는 선물이 가득했다.
전투 수당으로 받은 돈이 그들의 주머니를 가득 채웠으니, 당연했다.
기자 하나가 그들 중 한 명의 뒤를 밟았다.
아무리 보안을 철저히 유지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건 있다. 기자는 정보의 빈틈을 잘 파고들었다.
“들려주시죠. NS의 입사한 뒤로 뭘 했습니까?”
머쓱하게 머리를 긁은 남자는 자신이 했던 일을 가감 없이 말했다.
“총 쏘고 칼 휘둘렀습니다.”
“위험한 전투에 내몰았다는 겁니까?”
“훈련받고 전투에 나서긴 했는데, 위험하진 않았는데요.”
“달랑 훈련 몇 달 만에 전투로 내몰았다는 겁니까?”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건가.
기자는 집요했다.
“목숨의 위협을 받았습니까? 목숨 포기 각서를 썼다는 말이 파다한데 사실입니까?”
기자는 NS를 딱히 싫어하진 않았다. 다만, 지금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회사 아닌가.
음습한 일 하나 없이 이리됐을 리는 없다.
대외적으로는 어떤 곳에서도 지원받지 않았다고 하지만, 웃기는 소리다.
기자는 NS의 이면을 파헤치려 했다.
그만한 특종도 없을 테니까.
홀로그램 영사기 녹화기에 비친 제 모습을 보던 남자는 후하고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내 직장에 만족합니다. 됐습니까?”
남자는 몸을 팽 돌리고 들어갔다.
“……세뇌인가?”
기자는 제 머릿속에 떠도는 말을 조합해 얼토당토않은 추론을 만들었다.
‘특종이다.’
그는 기사를 썼다.
후환을 생각지 않았다. 보복은 걱정하지 않았다.
딱히 별일도 없었다.
그 기사를 보고 호응하는 이들도 몇 있었고 잠깐이지만, 커뮤니티에도 인기 글이 되기도 했지만.
믿는 사람이 없었다.
개소리도 어지간해야 믿는 법니다.
그 기사의 베스트 댓글이 그걸 증명했다.
-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사람을 그렇게 쉽게 세뇌할 수 있으면 지구 정복이라도 하겠네. 이런 새끼도 기자라고 글을 쓰네.
촌철살인과 같은 말이다.
기자는 그 댓글에 가슴에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히는 듯했다.
이후 그는 회사를 관두고 프리랜서 기자로 전향.
NS 2차 정규직에 지원했다.
반드시 사내의 비밀을 밝히겠다는 의지가 굳건했다.
물론 비밀 따윈 없었다.
취재한 그대로의 일이 기다렸을 뿐이다.
지옥과 같은 훈련.
오버 테크놀러지에 가까운 기어.
돈을 쏟아부어 만든 초소.
그는 2차 합격 후 곧바로 퇴사했고 기사를 썼다.
[로스트 노쓰는 정복됐다.]
짧은 제목이 세상을 울렸다.
이번에도 베스트 댓글이 그걸 증명했다.
- 암, 이런 게 참 기자지. 진짜 입사해서 기사를 쓰다니, 취재란 이런 거 아니겠냐고. 너 님 최고다.
기사 내용은 단출했다.
현 로스트 노쓰의 상황을 알린 거다.
NS가 진출한 뒤, 딱 1년째의 일이었다.
그리고 1년 동안, 광익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혹자는 이미 로스트 노쓰 내부에서 발견한 화이트 홀에서 죽었다고도 했으나.
확인된 바는 없었다.
어찌 됐든 NS는 세차게 잘 돌아갔다.
블루 스팀 시리즈로 나온 기어도 잘 팔렸고.
판독기 특허는 포기, 누구도 개발할 수도 있도록 소스를 풀었다.
이 일에서 가장 피눈물을 흘린 건 협회였다.
소스를 풀기 전에 비용을 무시무시하게 주고 샀으니까.
판매 조항에 이후 NS가 판독기 소스를 어찌 쓰든 상관없다는 말이 버젓이 남아 있었다.
협회장은 더더욱 NS에 원한이 깊어졌다.
그는 틈만 나면 광익을 까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보이지도 않는 사람과 싸우는 건 쉐도우 복싱이 될 뿐이었다.
다들 광익의 거취가 궁금했다. 물론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
그가 참 바쁘게 살고 있다는 것도.
“전방에 인베이더 무리 출몰, 준네임드급으로 추정!”
순혈 불멸자 부대, 레이더 역할 하는 정찰대가 외쳤다.
전부 바이크를 탄 그들은 선회해 돌아왔다.
난 본대에서 그들이 일으키는 먼지구름을 봤다.
꽃밭, 플라워 가든.
이쪽 이세계에 붙은 이름이다.
이세계는 전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더니.
이곳은 기후도 온난하고 가진 바 자원도 많다.
문제는 오롯이 하나.
무슨 현상인지, 특이종 인베이더가 정말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는 거.
로스트 노쓰, 그러니까 화이트 홀 외부를 정리하는 건 금방이었다.
훈련 삼아 인베이더 무리를 상대하다 보니, 반년도 되지 않아 인베이더 씨가 말랐다.
나중에는 나 말고 정직이를 비롯해 모든 이들을 훈련이라고 내몰았다.
나? 나는 잇헬을 차고 싸웠다.
아, 이제는 나만 잇헬을 차는 건 아니었다.
처음은 도안결이 따라 했다.
“나도 같은 거 입었다. 착용감이 괜찮군.”
식은땀 흘리면서 말하기에 어깨를 두드려 줬다.
가랑이 찢어진 뱁새 친구야, 힘내렴.
두 번째는 기남이다.
“따라 한 건 아니다. 남는 거 입은 거지.”
이건 무슨 이상한 자존심인지.
기남이는 변신족을 상대로 육체 능력조차 뒤처지기 싫어했다.
이건 진짜 심각한 또라이 아닌가.
그런 놈에게 난 할아버지를 붙여 줬다.
할아버지는 기꺼이 맡겠다고 했고 한 명을 더 추가했다.
“그 여자애 주렴.”
“늙어서 주책이네, 넘볼 걸 넘봐요. 나이 차이가 앙? 손녀뻘인데.”
“……이리 말하는 걸 보면 제 아비를 닮은 건 아닌데.”
“이건 엄마 쪽.”
“잠재력이 있는 친구다. 보내.”
어째 할아버지는 우미호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우미호의 남자 친구이자, 예비 신랑 방귀태, 합류합니다.”
방귀태가 꼈다.
요한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 형은 요즘 주일호 선생이랑 어울리더라고.
하여간 그리 훈련에 임하니, 이건 뭐 인베이더가 남아나질 않았다.
정규직 채용이 두 번 더 있었고.
전투 부대 숫자는 삼백이 넘었다.
예비대를 따로 돌릴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사이 첩자가 수없이 잠입하려 했지만, 그게 어디 쉽나.
할아버지의 눈썰미와 언령은 사기다.
첩자가 들어오는 족족 잡아냈다.
불멸교가 두 손 털고 물러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건 미친 짓입니다. 형님.”
정직은 툭하면 나한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냐?”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럼 그만두는 게 어떠신지.”
“그만두고 나랑 아침저녁 대련할래?”
“훈련, 훈련하고 싶다!”
정직이는 훈련에 열심히, 정말 최선을 다해서 임했다.
기특했다.
미친 자들의 훈련.
누군가는 크레이지 트레이닝이라고 떠들긴 했지만.
효과는 충실했다.
난 이후 화이트 홀 내부 청소에 들어갔고.
바빴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바깥의 일을 한동안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그리 바빴다.
그 바쁨의 이유 중 하나가 달려오는 중이다.
“크워어어!”
침을 질질 흘리는 특이종이다.
눈먼 개의 변형, 황금 똥개다.
“에라이.”
난 지겨운 놈의 낯짝을 향해 기생 라이플을 겨눴다.
그동안의 훈련으로 변한 게 많다. 그중 하나가 이거다.
내 기어는 성장형 기어였다.
기생형 기어가 자꾸 변하더라.
나도 깜짝 놀랐다.
피 한 방울을 머금은 라이플이 뇌전을 머금는다.
방아쇠를 당기니.
퉁. 쩌렁-! 번쩍!
뇌광이 치며 청기사의 에테르 에너지 번개가 인베이더를 꿰뚫었다.
“와, 죽였다.”
“와, 신난다.”
그리고 여기서 반년을 굴렀더니, 다들 말년 병장이 돼서 이제 저런 놈 하나 잡아도 그리 기뻐하진 않는다. 반사적인 리액션만 나올 뿐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다시 반년.
화이트 홀 내부도 얼추 정리되는 참이었고.
이제 다시 본부로 돌아가도 되겠다고 그리 생각하며 나서는 참에.
“프로메테우스가 서울에 무슨 사업 진출을 했다는데?”
팬더 형이 솔깃한 소식을 전해 왔다.
하, 이 새끼들 봐라?
고작 1년 얼굴 좀 안 비췄다고 다시 수작을 부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