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 가랑이 찢어진 뱁새가 둘
천재라는 말로 저놈을 포장할 순 없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잖아.”
“피를 타고났으니까 노력도 할 만한 거지.”
“누구는 백 번 해도 안 되는 거 쟤는 깔짝 하면 되잖아.”
정기남 또한 이런 말을 귀에 달고 살았다.
순혈 정가에서도 기대받은 신예였으며, 불멸특수대 입사 당시에는 다들 입을 모아 최고의 신입이라 했다.
그런 기대가 당연했기에, 기남은 모든 걸 태연히 받아들였다.
살면서 받았던 수많은 시선의 결과물.
그는 이런 걸 당연하게 여길 줄 알았다.
평생 그리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가까이 있던 친형만 해도 보통은 훌쩍 넘어선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걷는다면 닿는다. 형조차 따라잡을 수 있었다.
예감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기남은 급하게 달릴 필요가 없었다.
미친 방귀쟁이 새끼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불멸특수대 오리엔테이션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가 처음이다.
슥.
소리 없는 방귀를 뀐 놈 탓에 기절할 뻔했다.
대체 아침에 뭘 처먹고 오길래 저런 냄새를 풍긴단 말인가.
불멸자도 대식가이긴 하지만, 그건 소모되는 에너지가 많을 때의 얘기다.
평소에는 감각이 무뎌지지 않게 식사량을 조절한다. 그게 기본인데.
미친 듯이 처먹고 온 게 분명한 냄새였다.
창문을 열었다.
이후 잊었다. 저런 멍청한 혼혈 따위가 뭘 할 수 있을까.
턱을 얻어맞고 나가떨어지기 전까지, 유광익은 그냥 혼혈 불멸자였다.
하지만 그 뒤에 그가 보여 준 행보는 기남에게 충격을 줬다.
룸메이트가 됐을 때는 괴로웠다.
툭하면 목을 졸라 기절시킨다. 놈 때문에 생긴 곤란한 상황이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가 안 돼?’
어떻게 해도 놈이 하는 짓을 막을 순 없었다.
뒤로 돌아가는 걸 느꼈고 반응했음에도 그 반응을 손쉽게 쳐 낸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타고난 재능.
재능의 차이가 보인다. 시기심이 자란다. 상대를 깎아내리려 하는 자신이 거기에 있었다.
“시발.”
기남은 인베이더 무리를 보며 읊조렸다.
기분이 더러웠다.
시기심.
타인이 자신에게 가졌던 것.
이후 자신이 누군가에게 가졌던 것.
그 시기심은 한순간 사라졌다.
‘그게 언제였지?’
아, 기억났다.
유광익이 피를 토하면서 훈련하는 걸 봤을 때다.
고통 감내 훈련을 한다고 제 몸을 저미는 걸 봤을 때다.
몸에 이상한 걸 입고 날뛰는 걸 봤을 때다.
인베이더 무리 사이로 뛰어들어 미친 짓을 한 걸 봤을 때다.
NS에 입사한 이후도 같았다.
유광익은 천재다.
재능이 있으니 노력도 할 만하다고?
그래 맞는 말이다.
하는 것마다 다 잘되면 재미를 느끼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나아가면?
“목표를 잡아라. 멈추지 마.”
형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유광익이 그러했다.
놈은 목표가 있다. 그러니 멈추지 않는다. 고작 재미 따위를 느끼며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 놈이 제 몸을 그렇게 혹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보통의 불멸자, 아니 순혈 중의 순혈이 모였다는 정가에서도 저런 식으로 훈련한다면 금세 미쳐 버릴 것이다.
불감가학병에 걸리거나, 정신이 나가 버리겠지.
하지만 유광익은 한다.
그러면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다. 저건 괴물이다.
지금 보여 준 모습도 괴물 그 자체 아닌가.
인베이더 무리 사이를 날뛰는 특수종.
홀로 싸운다.
하지만 위기감 따윈 없다. 저건 괴물이다.
그럼 난?
“난 순혈의 정기남.”
광학병기를 체크하고 품에 지닌 무기를 정리한다.
“괴물을 따라잡는 남자다.”
혼잣말을 지껄이고 있으니, 괜히 미친 방귀태가 떠올랐다.
픽 웃어 버린 기남은 앞으로 나섰다.
여기 나도 있다. 나도 싸우겠다. 나도 너의 훈련에 동참한다. 널 따라잡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
기남은 되뇌고 인베이더 무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쟤도 상당히 미쳤구나.”
“그렇습니까?”
강슬혜는 제 옆에 선 변신족을 보며 말했고.
그 변신족의 시선은 전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불꽃으로 치자면 불멸자의 불꽃은 파랗다. 뜨거우나 겉보기에는 차갑다.
하지만 저기 전장으로 뛰어 들어간 아이는 붉은 불꽃을 형상화한 듯했다.
반대로 변신족은 붉은 불꽃처럼 보이곤 한다.
겉보기에도 뜨겁고, 안도 뜨겁다.
하지만 이 아이는 다르다. 파란 불꽃처럼 보였다.
제 혈통을 뛰어넘은 이들의 특징.
강슬혜는 그렇게 생각했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특수종과 변신족을 만났다.
불멸자의 육감과 직감이 아닌 경험으로 인해 생긴 통찰력이다.
“회사는?”
“관뒀습니다.”
“차기 화랑 팀장 내정자라고 들었는데?”
현재 후계 구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남자가 갱생 마녀의 동생이다.
어지간한 정보는 들을 수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도안결은 놀라지 않았다.
“필요 없습니다.”
피가 끓는다. 도안결은 이제까지 자신의 마음을 외면했다.
“가고 싶으면 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한때는 동료였으나, 이제는 친구가 된 둘의 말이 떠올랐다.
소진과 운비다.
도안결은 주변 모든 이들에게 시기를 받던 천재였다.
변신족에서 나오기 힘든 냉철함을 갖춘 천재.
하지만 그 시기는 금세 사라졌다.
유광익을 본 이들은 도안결보다는 세최특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괴물.
두 글자로 치환되는 재능의 소유자.
도안결은 안다.
고작 재능만으로 이리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보지 않았음에도 뼈를 깎는 노력이 있으리라 짐작했다.
따라잡으려 했다.
어렵지만, 좋은 목표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유광익이다.
그를 직접 보진 못했다. 그가 한 일의 여파만 봤을 뿐.
쫓을 수 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의 발뒤꿈치에 손도 닿지 않는다.
짜증과 분노가 치솟는다.
그와 동시에 심장이 요동쳤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기대? 기쁨? 설렘?
설렘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쪽에 가장 가까웠다.
도안결은 처음 여자를 품었을 때보다 몇 배나 흥분했다. 변신족 특유의 호르몬이 전신을 가득 채웠다.
“화랑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왔다는 거니? 재밌는 꼬마구나.”
강슬혜가 흐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실제로 흥미가 돋는 표정이었다.
“훈련입니까?”
도안결은 앞뒤 다 자르고 말했다. 광익의 움직임이 눈에 보인다. 그는 가진 모든 걸 다 보여 주는 대신 이런저런 걸 시도하는 중이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렇지.”
강슬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안결은 앞으로 걸어갔다. 저게 훈련이라면 자신도 그 훈련에 몸을 담으리라.
그가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노력해서 따라잡을 것이다.
그게 제 삶의 이유다.
도안결은 변신족 각성 이후 타성적으로 흘러가던 삶에 변화를 느꼈다.
그는 지금이 더없이 즐겁다.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잡고 전장으로 발을 뗐다.
도안결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강슬혜도 웃었다.
“재밌네.”
시대를 풍미한 강자는 어느 시대나 있는 법이다.
자신도 그런 사람의 등을 보고 커 왔으니까.
호응이는 도안결의 재능을 높게 샀다. 순혈의 변신족이며 늑대의 피를 이은 아이라며.
화랑을 이끌어 갈 인재라고 했던가?
‘잘못 봤다. 동생 놈아.’
저 아이는 무리를 이끄는 재주보다 홀로 나아가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아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정표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럼 알아서 한다.
이정표를 만들어 보이겠다고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우하하하! 내가 바로 유광익이시다!”
저 앞에서 신나서 제 커스터마이징 기어를 쏴 대는 아들이면 충분할 테니.
부채꼴로 퍼지는 충격파가 인베이더를 쓸어버렸다.
그걸 본 강슬혜는 또 피식 웃었다.
어디 다치거나 죽진 않을까 걱정해야 할 타이밍이지만.
‘걱정이 돼야 말이지.’
하도 미친 짓을 많이 하는 아들이다 보니, 이 정도는 무난하게 느껴졌다.
하물며 저리 흥분해서 날뛰면서도 제 자리는 잘 지키지 않나.
겉은 흥분했으나, 속은 차갑다.
그건 제 아빠를 쏙 빼닮았다.
그게 퍽 흡족했다.
“멈춰!”
할아버지한테 배운 언령을 인베이더에게 실험해 본다.
이미 수차례 해 본 작업이다.
청각 기관이 있는 놈들한테는 통한다.
어지간히 집중하지 않으면 의미는 없지만, 통한다는 게 중요하다.
그럼 청각 기관이 없는 놈들한테는?
당연하게도 안 통했다.
“멈춰, 자식아. 가만히, 손! 발! 대가리 박아!”
언령을 어떻게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막 팔을 물어뜯으려고 달려드는 스톤 비스트의 머리통을 팔꿈치로 찍은 뒤, 난 땅과 수평으로 몸을 띄워 반 바퀴 돌았다.
그 사이로 훅하고 뼈로 만든 창이 지나쳤다.
본 나이트라고 불리는 인베이더다.
뼈로 만든 무기를 지닌 해골 병사쯤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뼈다귀밖에 없어서 총알로 죽이긴 힘들다.
보통은 근접 병기로 가루를 내야 움직임을 멈춘다.
물론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임팩트, 산탄 방식.
반 칸 정도 모인 에너지를 뿜어내면 끝이다.
임팩트는 납탄 따위가 아니라 충격파를 방사형으로 뱉는다.
본 나이트가 회색 가루라 변해 흩날렸다.
다시 본래의 실험으로 돌아왔다.
청각 기관이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 치환하면 어떨까.
말 대신 기세로.
기세를 넘어 살기로.
“크헝!”
입에서 절로 호랑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달려들던 본 나이트의 발이 덜컥 멈췄다.
멈추라는 신호를 담은 기세에 반응한다.
그걸 보며 난 나이프를 꺼내 가로로 그었다.
범위 안에 있던 놈들 머리가 다 잘렸다.
다시 십여 차례 칼을 휘둘러 놈들을 전부 조각 단위로 분해했다.
이거 쓸 만한데.
이후, 임팩트의 활용, 기생 라이플을 1초 내외로 뽑아서 쏘는 훈련까지.
인베이더 무리 사이, 실전을 겪으며 난 무기를 다루는 훈련을 거듭했다.
그러길 한참이다. 옆으로 묘한 기척이 잡힌다.
“정기남?”
“이름 부르지 마라.”
전신에 피 칠갑을 한 놈이 말한다. 헬멧 위를 손등으로 닦은 놈이 달려들던 인베이더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광학병기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기남의 손에서 떠난 나이프가 나비처럼 날았다. 곡선을 그려 흔들리며 난다. 날아든 나비는 적과 조우한 순간, 빛을 뿜어냈다.
물리적인 충격이 가해지는 순간, 레이저 블레이드가 나오는 무기다.
스스스스스슥.
그렇게 걸리는 족족 잘라 낸 레이저 나비가 허공에 긴 곡선을 그리며 기남의 손으로 돌아왔다.
“쳐다보지 마라.”
눈길을 느낀 기남이가 말했다.
하여간 까칠한 자식.
“뭐하러 왔냐?”
“그건…….”
대답을 듣기 전, 이번에는 반대쪽이다.
아우!
늑대의 울음이 터진다. 인베이더의 울음이 아니다.
기쁨과 환희를 담은 변신족의 하울링이었다.
파박파박.
늑대 인간 한 마리가 인베이더의 머리통을 밟으며 매섭게 달려온다.
그 발에 걸린 게 호박이라도 되는지 밟는 족족 터트린다.
오롯이 변신족의 각력으로 부리는 묘기는 아니다.
기어다. 저것도 커스터마이징 기어겠지?
늑대 인간의 발에 강화 부츠라니, 안 어울리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인베이더의 머리를 디딜 때마다 발밑에서 빛이 터진다.
저쪽도 광학병기다.
레이저 블레이드 방식이 아닌, 방사 형태다.
밟고 힘을 주면 레이저 빔을 쏘는 거다.
발바닥 레이저 빔이라니, 누가 구상한 건지 엄청 독특했다.
“도안결?”
“오랜만이군.”
달려온 늑대를 알아보니, 놈이 읊조린다. 근데 너 왜 웃고 있냐?
그런데 이 두 새끼는 왜 여기에 있는 거냐?
“가랑이 찢어 먹진 않을 테니, 상관 마라.”
기남이 마저 말을 잇는다.
“……뱁새라. 그래 지금은 그게 어울리겠군.”
도안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미친놈은 많다. 난 둘을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이 둘을 존중해 기남이가 한 말에 십분 동의해 줬을 뿐이다.
“가랑이 찢어질 뱁새가 둘이구나.”
“아니, 가랑이는 안 찢는다.”
반응이 즉각적이다. 기남은 욕을 도안결은 덤덤하게 답했다.
어째 불멸과 변신의 반응이 바뀐 것 같다만.
뭐, 상관없지 않나.
“다음에는 인듀어라도 입고 와라. 맨몸으로 오면 훈련이 되겠냐?”
내가 한소리 하니.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
안색이 파랗게 질린 둘이 답한다.
이거 훈련이니까, 훈련 도구는 챙겨야 할 거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말이야.
둘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냄새나는 변신족.”
“바퀴벌레와 말을 섞진 않겠다.”
너희 처음 보지 않냐? 근데 뭐 만나자마자 사이가 이렇게 안 좋아.
곧 둘은 좌우로 흩어져 달렸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니까.”
난 상관하지 않았다.
내 훈련하기도 바빴다.
그럼 이번에는 뭘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