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52화 (352/488)

352. 재수 없네.

“또 오는데?”

서른쯤 먹은, 이번 정규직 채용 합격 후 전투를 거듭한 남자였다.

그가 중얼거리자, 옆에서 헬멧을 고쳐 쓴 동료가 고개를 돌렸다.

“또?”

쿠르르르르릉.

부우우웅!

오프로드를 달리는 바퀴 소리와 배기음이 섞여 들렸다.

대형 트럭이 저 멀리서 줄지어 오는 중이다.

“날마다 내 뒷배경이 변하는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

“정확히 하자고. 낮 다르고 밤이 달라.”

입사 후, 상식이 많이 깨지는 경험을 많이 했으나.

‘손해가 막심할 텐데.’

NS는 이번 일에 돈을 들이부었다. 있는 힘껏, 돈을 썼다.

자재를 나르고 공사를 진행하고 계약한 모든 회사에 비용을 세 배 이상 줬다고 들었다.

그것도 부족해서 안전 보장까지 걸었다.

혹시나 인베이더로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나오면 그 또한 모두 보상.

모든 걸 정부와 단군이 공증을 섰다.

NS의 행보는 과감했다.

이곳에 발이 묶인 사원 무리는 모르지만, 뉴스에서 연일 보도될 정도로 미친 행동의 연속이었다.

트럭 수백 대가 줄지어 오고.

반나절이면 뚝딱뚝딱 초소 비슷한 게 지어졌다.

임시 숙소는 이틀 만에 생겼다.

조립식 컨테이너를 개조한 숙소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샤워 시설이라든지, 화장실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외에도 본부로 봐 둔 땅은 개간 작업이 한창이었다.

땅을 파내고 나무를 잘라 내고 건물의 기반을 다졌다.

이 모든 게 로스트 노쓰에 진입해 저지선을 만들자마자 시작한 일이다.

작정했다는 거다.

“이러다 회사 망하는 거 아닌가.”

아무리 투자의 개념이라고 해도 이만한 비용을 이 눈먼 땅에 쏟아부어?

“알아서 하겠지. 우리는 월급만 따박따박 나오면 되는 거고.”

“그래. 그건 그렇지.”

“솔직히 망할 것 같진 않잖아.”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았다.

그는 전투가 이어지던 날을 떠올렸다.

살면서 그만큼 비정상적인 일을 본 적이 없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을 홀로 이뤄 낸 이가 있었다.

그걸 보고 놀라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거다.

“홀로그램 영사 아니지?”

누군가 그리 묻기도 했다.

당연히 아니다. 실물과 홀로그램을 비교 못 하는 눈깔이라면 떼고 다녀야지.

흥분이 들끓던 첫 전투 이후에도 인베이더는 계속 몰려왔었다.

남자는 숨이 턱 끝까지 차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인베이더는 끊임없이 왔다.

인권위원회가 들었다면 당장 이 불합리한 노동을 멈추라고 말할 수준으로 그들은 싸웠다.

인베이더는 끊길 듯 끊이지 않고 나타났고 덕분에 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로스트 노쓰의 악명이 괜히 높은 게 아니었다.

처음 나흘 동안 이들은 그걸 실감했다.

뀌에에엑!

돼지 울음 비슷한 걸 내며 달려드는 인베이더, 넘버 24 멱따는 멧돼지다.

네 발로 달려 뿔로 들이받는 공격 형태를 지녔고 가죽과 머리통이 단단했다.

어지간한 총탄은 전부 튕겨 내는 단단한 두개골이 장기인 놈들.

물론 상대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전면 준비된 사수로부터 발사.”

조장의 명령에 레일건을 쏜다.

두두두두두두둥!

한순간 파란빛이 터졌다.

동시에 사격을 시작해, 총구에서 모인 빛이 모여 커졌다. 눈 부신 빛이 한순간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뀌엑!

그거로 끝이었다. 달려드는 눈깔이 툭 튀어나온 시끄러운 멧돼지가 죽었다.

머리통에 구멍이 숭숭 뚫려 쓰러진다. 달려오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널브러진다.

널브러진 멧돼지 위로도 총알 몇 방이 더 꽂혔다.

쉬웠다. 더없이 쉬운 싸움.

하지만 지치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끝이 없이 몰려오는 게 문제지.

영원히 싸울 순 없다.

아무리 우월한 무기를 가졌다고 해도 숫자에 당할 순 없는 법이니까.

로스트 노쓰에 머문 인베이더의 숫자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많았다.

놈들은 계속 왔다.

‘계속’이 공포로 느껴질 때쯤.

초반 전투의 승리로 인한 열기가 식고 아드레날린이 가라앉을 때쯤.

“다들 하루 휴식입니다.”

NS 대표가 나섰다. 홀로 앞으로 툭툭 걸음을 옮겼다.

무장이라고는 손에 든 길쭉한 막대기로 보이는 게 다였다.

이 무슨 미친 짓인가.

다들 토끼 눈이 돼서 대표의 등을 쳐다보자.

“괜찮습니다. 물러나세요. 전원 대기.”

조장과 그 윗선이 나서서 전 대원을 물렸다.

“아니, 그래도.”

사원 중 하나가 말한다. 이건 너무 말이 안 되지 않나 싶어서.

하지만 대표는 홀로 나섰다.

NS 입사 후 그는 상식이 많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그중 제일이 오늘이었다.

퓨어 골드를 발견한 뒤다.

안쪽에 기지를 설립하는 것과 기타 등등 할 일이 참 많았지만.

그런 잡다한 일은 전부 뒤로 미뤄야 했다.

“로스트 노쓰부터 정리가 끝나야, 이쪽 일도 되겠어.”

“주변 자재 회사, 건축 회사는 선정했고 계약도 사인만 끝이니까.”

“그럼 선배가 그쪽 맡아 주세요. 전 도로 쪽을 손볼게요. 정부 쪽이랑 합의를 봐야 할 테니.”

“그건 정부 인사 중 누가 말 좀 잘해 주지 않을까?”

아버지와 내 바로 곁에서 팬더 형과 우미호가 떠들었다.

“저거 나 들으라고 하는 거지?”

“아마도요.”

“도와 달라고 하는 거고?”

“그렇죠.”

“왜 대놓고 말 안 하고?”

“먼저 말하면 한 수 지고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거고 그럼 정부와 협의 할 때 손해를 볼 수 있으니까요. 가능성을 차단하는 거죠.”

“손해 좀 보면 어때서? 모든 거래에서 다 이득을 볼 순 없는 건 아니냐?”

난 아버지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버지.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굳이 손해를 볼 필요는 없다. 아버지가 알려 주신 말이잖아요.”

“……그걸 나한테 써먹니?”

“대신 정부도 이곳에서 나온 자원을 거래할 때 이득을 보겠죠. 그 와중에 거래를 튼 피닉스 팀장님은 보너스를 받을지도 모르고요.”

“저 둘이 저러는 게 아들 때문이었구나.”

아버지가 허허 웃었다.

네, 아버지, 아들이 성장했습니다.

이제 어른이 되었죠.

“한 번 도와주시죠. 혈연 좋다는 게 뭡니까.”

“대한민국은 이게 문제야. 혈연, 지연, 학연.”

아버지는 혀를 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선뜻 도울 것이다. 당연했다.

안 하면 단군이 할 텐데?

정부가 나서는 게 아니라 엑스큐라시가 나서면 일이 복잡해진다.

이곳에 NS랑 협의해서 사유 도로를 만들어 버리면.

로스트 노쓰가 개발된 이후, 손해가 막심할 테니.

“이 삼촌은 무척 서운하구나.”

호응 삼촌이 다가와 말했다. 어깨가 처지는 시늉을 하는 게 보기 부담스러웠다.

“여기 자원 NS가 가진 무역 회사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요. 그쪽은 초능국만으로도 벅차고요. 그러니 자재 수출을 맡아 주시죠.”

당연하게도 사유 도로보다 이쪽이 파이가 더 크다.

“삼촌이 힘써 보마.”

호응 삼촌은 나한테 말할 때 삼촌을 강조한다. 왜 이러는 걸까.

“이 삼촌이, 유광익의 외삼촌이, 강호응 삼촌이.”

자꾸 저러고 있잖아.

“왜 저래요.”

“쟤가 겉보기와 다르게 정이 깊어.”

옆에서 어머니가 답해 줬다.

우리는 홀에서 나왔다. 나오며 인베이더가 득실득실 모인 게 또 보였다.

“정리되겠냐?”

아버지가 묻는다. 안 되면 모든 계획이 무산된다.

“될 때까지 해야죠.”

난 인베이더 무리를 보며 깨닫는 게 있었다.

이거 그냥 놔두기에는 너무 좋은 훈련장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누가 들었다면 기겁했을 수도 있지만, 나한테는 꽤 괜찮은 훈련 코스가 될 것 같았다.

아버지와 삼촌이 돌아간 뒤, 난 내 생각을 실행했다.

“듣다 듣다 이런 참신한 미친 짓은 또 처음이지만, 네가 한다고 하니까 말리지는 못하겠다.”

“인정한다. 네가 최고다. 최고의 또라이다.”

이중봉 새끼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여간 말 참 얄밉게 해요.

“나만 할 거 아닌데요.”

“……음?”

나서며 던진 말에 이중봉 씨가 고개를 모로 꺾었다.

“저거 뭐라고 하고 간 거냐?”

“미친 소리요.”

뒤에서 들리는 대화를 무시하고 나섰다.

싸우는 이들의 가장 앞으로.

최전선이다.

손에는 임팩트를 들고 몸에는 인듀어를 찼다.

시작은 가볍게.

인베이더가 끊임없이 몰려오는 곳이라니, 이 얼마나 좋은 훈련장인가.

모의 훈련 시스템을 이렇게 만들려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갈 것이다.

난 달려드는 오크 한 마리를 보며 생긋 웃었다.

시작은 일단 변신 없이 버티기다.

인듀어는 방호복 대신이다.

빡.

달려드는 오크의 머리통을 임팩트로 후렸다.

깨진 두개골과 핏줄기, 뇌수 따위가 허공에 흩날렸다.

이후 임팩트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내가 그렇게 휘둘렀기에 임팩트는 제 가치를 증명했다.

뻑, 빡! 콰직!

부수고 깨고 죽인다. 반복 후, 에너지가 차면 발사.

방사형으로 퍼진 에너지 집합체가 인베이더를 휩쓴다.

깡그리 사라진 인베이더 무리다. 부채꼴 모양으로 깨끗해진 공간이 드러났다.

먼지 쌓인 마당을 예쁘게 쓸어 낸 것 같았다.

“시발, 죽인다!”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푸하.”

난 속이 시원해 웃고 임팩트를 다시 휘둘렀다.

“세미특!”

또 누군가 내 별명을 새로이 지었다.

세계 최고로 미친 특수종.

홀로 인베이더 무리를 향해 뛰어든 대가였다.

그리고 지금 난.

속으로 말을 걸고 있다.

아저씨, 인베이더가 밉진 않았어?

그는 날 살린 뒤 곧바로 죽진 않았다.

내게 등을 보인 아저씨는 날 살린 뒤에도 사람을 많이, 참 많이도 살렸다.

뭘 바래서?

그럴 턱이 있나. 그 양반은 어지간히 미친 사람이었다.

할 수 있으니까 한다.

그 양반 인베이더를 미워했으려나?

그랬을 것 같다.

참 처절히도 싸우고 살았으니까.

날 살려 줬다고 해서 그 사람을 대신해 살겠다는 건 아니다.

그건 어설픈 각오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 살겠다니, 그건 개소리지.

내가 이러는 거?

인베이더 한복판에서 날뛰는 거?

단순한 이유다.

딱 한 마디, 날 구원한 양반의 한 마디가 마음에 닿았기에.

그리 살고자 한다.

내가 만약 혼혈 특수종이 아니었다면.

재능이 없었다면.

그냥 일반인이었다면.

다른 삶을 살았을 거다. 그랬을 거다.

하지만 아니지 않나.

난 혼혈 특수종이며, 그 누구보다 뛰어난 혈통을 이었으며.

“내 재능은 세계 최고야.”

그건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증명한다.

인베이더가 달려든다.

아저씨에게 다시 묻는다.

“어때? 마음에 들어?”

육성으로 내뱉고 임팩트를 겨눴다.

앞뒤 분간 없이 내달리는 인베이더의 선두에 만티코어가 보였다.

흉악하고 포악하다.

비명과도 같은 괴성을 내지른다.

그걸 듣고 보며 난 방아쇠를 당겼다.

임팩트의 충격파가 다시 몰려온 적을 휩쓸었다.

“주먹에 힘 들어갔다.”

툭.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손을 올리며 말했다. 기남은 돌아보지 않았다.

요한은 그런 기남을 보며 술술 말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저건 정상이 아니었어. 괜히 따라잡으려고 용쓰지 마라. 안쓰럽다.”

요한의 말에 기남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그걸 본체만체하며 요한은 마저 말했다.

“가랑이 찢어진 뱁새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관둬. 저건 정신 나간 새끼니까.”

요한은 기남의 몸이 차갑게 식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 식으면서도 손에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니, 묘한 기분이 든다.

짧은 침묵 후, 기남은 어깨에 올라온 요한의 손을 쳐냈다.

“난 제정신으로 보이나?”

아니.

요한은 속으로 생각한 말을 뱉지 않았다.

그 말을 끝으로 기남은 앞으로 달려갔다.

기남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리까지 멀어진다. 요한은 기남의 등을 보며 중얼거렸다.

“너희 형이 무지 걱정하더라.”

정호남은 실제로 요한에게 부탁 비슷한 걸 했다. 뒤를 봐 달라는 그런 부탁.

“괜히 미안하네.”

어쩌겠나. 자신은 NS 소속인걸.

정호남의 부탁보다, 대표의 명령이 먼저 아니겠나.

“왜 부추기냐? 안 그래도 정신 사나운 애한테.”

옆으로 다가온 사람이 말했다. 불멸자 주일호다. 개인적으로 요한의 전투 기술 훈련을 도와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대표가 시켰어요.”

“하여간 음흉한 놈.”

광익은 기남이가 정신 사나운 것 같으면 도발을 일삼으라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재밌잖아.”

라고 답하는 놈이다.

그냥 재미를 위해서 그렇게 하겠나.

정기남이 괴롭히기 좋은 타입이라고?

얼추 동의는 한다지만.

요한은 괜히 헬멧을 눌러썼다.

“저긴 노는 물이 달라. 놔 둬라.”

“알아요.”

요한에게는 정기남조차 보이지 않는 위치에 선 천재다.

재능을 타고난 불멸자다.

그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선명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싶었다.

똑같은 사람인데, 같은 불멸자인데.

누구는 순혈, 누구는 혼혈.

배알이 꼴렸다. 눈꼴이 시었다.

그러다 광익을 봤다.

“미친 새끼들.”

요한은 웃으며 말했다. 광익은 혼혈이었다.

하지만 그 몸에 담긴 재능은 천재라는 말도 부족하다.

이 땅에 있는 어떤 것도 그를 규정할 수 없었다.

규격 내에 들어가지 않는 이를 두고 천재라고 한다면.

그 천재조차 뛰어넘은 이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

“재수 없네.”

“그건 나도 동의하지.”

옆에서 주일호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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