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 어머니만은 내 편이시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시죠?”
모인 이들을 향해 동훈이 툭 말을 내뱉었다.
당연한 소리를.
“여러분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동훈이 말하면서 제 홀로그램 워치를 조작했다.
곧 그들의 눈앞에 녹화된 영상이 떴다.
‘영상을 찍었어?’
유연호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동시에 그는 동훈의 속내를 짐작하기도 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곰탱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렇지 않나.
‘로스트 노쓰는 아직 위험하다.’
아무리 안전을 보장한다고 해도 말만으로 그걸 누가 믿을까.
그런데 영상이 남았다면?
대강 흔적을 보니, 인류 쪽 사망자가 하나도 없다.
의료팀이 대기하고 있지만, 분주하진 않다.
따로 사체를 보관하는 장비가 눈에 띄지도 않고.
자잘한 부상은 있지만, 사망자는 없다는 거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부드럽다.
로스트 노쓰를 진짜 먹고자 한다면.
이곳에 사람을 들이고 뭔가를 하려고 한다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야겠지.’
그 안전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것.
무력이다.
내가 지켜 줄게, 나만 믿어.
이리 백번 말해서 뭐 하나, 백문이 불여일견.
한번 보여 주는 게 빠르다. 이제는 청기사 슬레이어라고 까지, 불리는 아들의 말이 아무리 무거워도.
눈앞에서 만든 영상만큼의 파괴력은 없을 것이다.
영상 공개만으로 NS가 취할 이득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수월해질 테고.’
투자 자본이 들어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지 않다.
이 땅은 NS의 것이라고.
인류가 버린 땅을 자신들이 소유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 누가 이들에게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까.
그 누가 이 땅에서 나오는 것에 소유권을 주장할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유연호는 한가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에 보물이 있구나.’
이만한 전력과 자본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거다.
전략적 요충지라고 보기도 어려운 땅이니.
당연히 보물에 비견하는 게 숨었을 거다.
추측하기로는…….
“여기에 화이트홀이 있겠군요.”
경찰 쪽 사람이다. 눈매가 말끔한 여자였다.
그 말에 동훈은 답 대신 생긋 웃었다.
그게 대답이 됐다.
연호의 눈에 홀로그램 영상이 들어왔다.
그가 보기에는 아직 어설픈 무장 병력 백.
그 앞으로 인베이더가 달려든다.
그들은 싸웠다. 치열했다. 지금도 저 앞에서 폭발음이 간간이 들려왔다.
‘효율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손실 없이 가장 빨리 우수한 전력을 얻을 방법임은 맞았다.
가혹한 훈련 이후, 목숨 건 실전.
병력을 만드는 데 이보다 좋은 방법이 어디 있다고.
다만, 이 과정에서 병력 손실이 일어난다면 다 개소리가 되는 거다.
이상적인 방법이 좋은 방법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했다.
처음 눈에 띄는 건 장비다.
뭐가 달려들든 머리통을 뚫어 버리고 근접전에서는 뭐든 갈라 버릴 듯한 칼이다.
“저 총이랑 칼은?”
화랑에서 온 사람이 물었다. 인상적일 수밖에 없지.
동훈은 그리 생각하며 답했다.
“자체 제작입니다. 시제품은 이쪽.”
동훈이 타고난 장사꾼은 아니지만, 기회를 놓치는 머저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이 작전이 성공하리라 생각했고 이후의 일도 대비해 놨다.
미호가 전장 전체 조율에 온 힘을 다했다면.
동훈은 그 외의 일에 무게를 실었다.
이왕 시작한 일, 광익의 말대로 하면 딱 좋을 듯하여.
“뽑아 먹을 수 있는 건 다 뽑아 먹자고요.”
가끔 보면 능구렁이도 그런 능구렁이가 없다.
동훈은 영상을 멈추고 말했다.
“구경하셔도 됩니다.”
로스트 노쓰에서 일어난 황금빛 기둥 때문에 급히 달려온 이들은 갑자기 관광객이 됐다.
쇼핑센터에 끌려온 기분이 된 그들은 시제품을 바라봤다.
깨끗한 책상 위에 놓인 총과 칼이 보였다.
그 외 섬광작열탄이나, 핸드 불릿 같은 소소한 물건도 보이고.
“레일건 형식으로 만든 소총입니다. 구조나 제작 과정은 설명 불가합니다.”
어차피 가져가면 분해해서 살펴보겠지만, 소재가 없으면 만들 엄두도 못 낼 물건이다.
“단분자 커터입니다. 다이아몬드도 감자 깎듯 벗겨 낼 수 있을 겁니다.”
칼도 마찬가지고.
“정부 허가는 받고 이러는 겁니까? 군수업은 민간 군사 기업의 영역이 아닐 텐데요?”
이번에는 정부 쪽 사람이다. 여기에 피닉스 팀만 온 건 아니니까.
행안부 쪽에서 따로 파견한 B팀 팀장이었다.
“허가증이요.”
누굴 바보로 아나.
대통령은 표창장을 주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그걸 이용해 작은 허가증을 얻었다.
물론 핑계가 적절했다. 세최특에 어울리는 커스터마이징 무기 연구가 진행 중이다.
개별 무기 개발을 자회사에서 하면 불법이니, 허가증이 필요하다는 아주 적절한 핑계.
고로 불멸특수대에서도 가진 그 허가증이 필요하다는 요청.
대통령은 곧바로 승인해 줬다.
“……허가했네.”
B팀 팀장이 읊조렸다.
“영상 더 보여 주시죠.”
화랑 강호응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두꺼운 팔뚝이 겹쳐 있는 게 통나무를 겹쳐 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이들 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자가 아니더라도 저기 쓰러진 황금 덩어리가 네임드 급 괴물이란 건 안다.
그럼 저걸 어떻게 죽였는지 궁금한 건 마찬가지다.
“그러시죠.”
동훈은 여유로웠다.
멈췄던 홀로그램을 재생하자 이후 전투 장면이 이어졌다.
싸움과 싸움.
전투와 전투.
눈썰미가 예리한 이들은 이 전투의 핵심이 백 명의 병력이 아닌 걸 알았다.
‘중간중간 실력자가 날뛰는군.’
눈에 띄는 건 도끼 두 자루를 들고 날뛰는 변신족과 어디선가 총을 쏴 갈기는 저격수다.
포위되거나 흥분해서 손발이 엉킨 이들을 구하며 싸운다.
보통의 실력과 경력으로 저런 싸움은 불가다.
‘세최특만 괴물은 아니란 거지.’
NS를 모르는 대부분은 그리 생각했고.
그들을 잘 아는 이들은 다른 생각을 했다.
‘마리야.’
연호는 마리가 날뛰는 걸 보고 가슴이 뿌듯하면서도 걱정했고.
‘작정했군.’
강호응은 기업가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봤다.
하루 이틀 준비한 일이 아니다.
이미 자재까지 실어와 초소 건설을 하는 걸 보니, 길어도 한 달 이내에 모든 걸 끝낼 심산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황금 거인을 상대하는 소수 정예 또한 보았다.
동훈은 아낌없이 보여 줬다.
어차피 뻔한 구조의 전술이다.
대부분 단체에서 이미 연구된 전술이고.
홀로그램 안, 푸른 뇌전을 방전하는 창이 솟아 황금 거인의 턱을 꿰뚫었다.
“저 창?”
“네, 청기사 겁니다.”
“저건 안 팔고?”
“네, 안 팔고.”
“과연 세최특인가.”
“하.”
“변신족으로 시선을 끌고 위크 포인트를 찾아, 이격에 끝.”
“네임드 급으로 보이는데 맞습니까?”
갖가지 말이 나온다. 동훈은 필요한 말만 골라 답했다.
“반푼이라고 하더군요. 사장님은.”
네임드 급은 맞다는 소리다.
협회 직원 중 하나는 이곳에 오면 크게 따질 생각이었다.
부협회장 대신 이사 직함을 달고 온 거니까.
부협회장은 이상하게 NS에 우호적인지라 대신 왔는데.
‘따져도 되나?’
아니, 따질 게 있나.
이미 땅의 소유권까지 가져간 마당인데.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게 한 돌발 행동을 책임지라고 하고 싶다. 그 말을 준비해 왔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디가 위험한 돌발 행동인가.
이들은 계획했고 실행했으며 성공했다.
본래 성공한 사람의 말은 진리가 되는 법 아닌가.
물론 권력으로 찍어 눌러 결과만 좋다고 다가 아니라 따질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그게 가능할 것인가.
‘호응도 안 해 줄 것 같은데.’
주변 눈치를 보니, 정부에서 온 피닉스 팀장은 더없이 흐뭇한 표정이고.
화랑에서 온 책임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경찰은 꿀 먹은 벙어리고.
유일하게 자신과 동조할 듯한 유일부대 책임자는 말을 잃었다.
“이게 돼?”
저딴 말이나 지껄이고 있으니.
협회 이사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본래는 약점을 잡아서 전뇌 공주의 문제도 따지려 했지만.
‘지금 말을 꺼내면 대역 죄인이 될 것 같은데.’
협회 이사는 눈치가 있었다.
“개척 사업인가.”
강호응이 말했다.
NS 직원에게 그 말을 들었던 유일부대 책임자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스트 노쓰는 골치 아픈 걸 넘어, 문제만 일으키는 지역이다.
얻을 건 없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계륵.
그곳을 이제는 명실공히 회사 하나가 잡아먹은 순간이었다.
이런 일이 겹쳐 일어나기에 역사는 변하는 게 아닐까.
유일부대 지휘관은 그런 생각을 했다.
변수, 세상 모든 일에는 변수가 있다.
그중 좋은 변수도 있고 나쁜 변수도 있는 법이다.
화이트홀에 들어선 나는 일단 좋은 변수를 봤다.
이곳은 용암 바다도 아니고 하늘에서 벼락이 미러볼마냥 쉴 새 없이 번쩍거리며 비처럼 내리는 곳도 아니었다.
하늘은 높고 맑다.
구름 한 점 없는 더없이 쾌적한 날씨다.
주변에는 꽃이 산개했다.
특A급 이상을 넘어서 S급이라 불리는 형태의 아더 사이드였다.
흔히 이런 형태를 특수종 세상에는 ‘꽃밭’이라고 불렀다.
꽃과 나비가 노는 세계란 거다.
위협적인 건 독초 몇 개와 독충 몇 개, 짐승이 전부인 곳.
더없이 쾌적한 곳.
그래서 꽃밭이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야.
화이트홀을 넘어서는 건 멀미를 동반하고 가끔은 이세계에 몸이 적응하려면 휴식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다행히도 이곳은 중력은 그대로고 공기도 깨끗했으나.
문제가 있었다.
이건 나쁜 변수다.
“좀 많네요.”
뒤따라온 이들을 향해 내가 말했다.
앞은 꽃밭인데 그 뒤에는 꽃밭의 주인이 있었다.
네임드 급, 그러니까 내가 반푼이라 부르기 충분한 놈이 둘이 더 있었다.
금빛 바실리스크와 금빛 만티코어다.
“여기 어디 금맥이 있나. 왜 다 저 모양이냐.”
중봉이 형이 태연하게 말했다. 긴장감 따윈 느껴지지 않는 말투다.
“모르죠. 그건 저걸 치우고 생각해 봐야겠죠.”
나쁜 변수는 두 개였다.
하나는 금색 인베이더 둘.
다른 하나는 그 뒤에 자리 잡은 공장이다.
거대한 자궁, 자이언트 웜.
파란 핏줄과 빨간 핏줄이 거대한 막 덩어리 위에 펼쳐져 있고 안쪽에서 심장 비슷한 게 박동한다.
그리고 앞쪽에는 세로로 갈라진 통로가 있으며.
그 안에서 인베이더가 얇은 막을 뚫으면 기어 나왔다.
나온 인베이더는 끈적끈적한 액체를 손으로 걷어 내고 눈을 떴다.
눈을 뜬 놈은 큰 소리로 제가 태어났음을 알렸다.
“크후어어어어어!”
걸어 다니는 무식한 소의 울음.
넘버링 81의 미노타우르스다.
도끼 대신 손톱을 무기로 삼고 둔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몹시 날랜 놈이며.
넘버 팔십 번 대 이후 인베이더는 전부 특이종 이상이라고 봐야 옳았다.
“살면서 저렇게 큰 플랜트는 처음 보네.”
“한국 밖에서도 못 봤어.”
특이종 인베이더가 있다면 다른 것도 있을 수 있다.
가령 특이종 플랜트 같은 것도.
이세계에 진입했고 꽃밭까진 좋았으나, 나쁜 변수가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그래서 문제냐고 누가 묻는다면.
문제는 무슨, 일이 늘었을 뿐이지.
“야근 수당은 회사에 요청하세요.”
야근 확정이다.
“유광익, 아까 움직임에서 실수가 있었다.”
말하고 움직이려는 데 뒤에서 작대기 선생이 말했다.
고개를 갸웃하자.
“동선이 잘못됐어.”
잔소리다. 예전 훈련받던 시절이 떠올랐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처럼 할 순 없어도 그만한 안목은 갖춘 사람이니.
“잔소리 듣기 싫어 죽을 것 같은 얼굴이네. 그래도 귀는 열어야지. 고칠 건 고치고 살아야 하니까. 우리 사장님이 다시 꽝익이 되면 안 되잖아, 안 그래?”
중봉이 형도 거들었다. 진지한 척 말한다. 슬쩍슬쩍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뭐, 틀린 말 할 인간은 아니다. 그래서 더 재수가 없다.
“아니, 사장님 중심의 핵심 포메이션인데 여기서 이러시면 어쩔? 누가 책임질? 사장님 쓰러지면 공격 수단이 없는 건데, 거기서 무리하시면 되겠음? 안 되겠음?”
중봉이 형이 랩을 쏟아 냈다.
아, 잔소리.
주둥이 꿰매 버리고 싶네.
우두커니 듣고 있자니, 어머니가 와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들.”
그래, 어머니만은 내 편이 되어 주실 터.
저 둘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해 주세요.
아들이 구박받는 모습 보니, 가슴이 쓰리시지요?
“주변에 좋은 사람을 많이 뒀구나. 다들 바른말을 할 줄 알아. 음음.”
어머니는 마지막에 콧노래까지 불렀다.
저 멀리서 미노타우르스가 고함 지르고.
이쪽에서는 두 명의 불멸자와 한 명의 어머니가 염장을 질렀다.
“오빠, 힘내.”
혜민이만 날 응원했으나, 그 입꼬리는 좀 내리고 말하지 그러냐?
이게 재밌냐? 엉? 이게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