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 황금 거인은 형광등보다 밝다.
관측자.
이중봉과 주일호는 자신의 자리를 관철했다.
움직이는 대신 상대를 관찰한다. 관측한다. 측정한다.
계산은 필요 없다.
지금 필요한 건 감각.
여기 최상급 불멸자 둘이 집중했다.
이중봉은 황금 거인을 바라봤다.
모든 사람은 본능이 있다. 반사적으로 전투 중에 급소를 보호한다. 그건 당연한 반응이다.
그럼 인베이더는?
인베이더도 마찬가지다.
휠 나이트는 후방이 약점이다. 놈은 뒤를 잡히지 않기 위해, 바퀴 달린 발로 돌진한다.
뒤를 내주려 하지 않는다. 행동 패턴에 그게 드러난다.
휠 나이트의 후방이 약점이라는 걸 알아내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가.
만티코어의 꼬리는 위협적이지만, 마지막 일격으로 꼬리를 휘두른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모든 건 관찰과 연구의 결과다.
상대의 움직임에 답이 있다.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네임드라고 다를까.
청기사 또한 약점이 존재했다.
물론 네임드 레벨이 되면 약점이라는 게 손대면 톡 터지는 수준은 아니다. 보여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지금은 의미가 있지.’
변신족 둘을 상대하는 황금 거인의 몸짓, 손짓, 걸음, 행동, 패턴 모든 것을 눈에 담는다. 눈에 담은 내용을 머릿속에 정리한다.
중봉은 그렇게 했다.
“가슴 중앙.”
일단 하나.
주일호도 같은 짓을 반복했다.
황금 거인은 음흉했다. 그렇다고 해서 작정하고 집중한 최상급 불멸자 둘의 감각을 속일 수준은 아니었다.
“턱.”
상대는 인간 형태의 황금 거인.
부위를 특정하기 좋다.
그렇다고 말로만 끝낼 순 없다.
둘은 특수 제작된 라이플을 들었다. 상대의 몸에 타격을 주는 건 불가능하다. 놈의 몸은 단단하다. 김정아의 캐쉬 히포를 비비탄처럼 만드는 강도의 몸뚱이다.
필요한 건 강도가 아니라 표시.
둘은 라이플을 들어 겨눴다.
“내가 턱.”
“확인.”
중봉이 말하고 일호가 답했다.
둘이 라이플을 들고 겨누는 사이, 이 둘을 보호하는 건 혜민의 몫이었다.
‘이게 되려나?’
혜민은 불멸자 아저씨 둘을 보며 그들을 덮치는 이들이 없는지, 확인했다.
누군가를 보호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마법사만큼 유용한 이들은 없다.
불멸자는 불의의 일격을 감지하고 대신 막아 줄 몸이 있고.
변신족은 누구보다 빠르고 강하게 적을 퇴치할 수 있으며.
초능력자는 특유의 능력으로 상대의 예상을 넘어서는 한 방을 날릴 수 있다.
그리고 마법사는.
뭐가 시작되기도 전에 중첩 방어 결계를 펼칠 수 있다.
누구보다 뛰어난 스펠 유저의 재능.
거기에 어머니는 스펠 크리에이터로서 일류 그 이상.
두 개의 합은 단순한 더하기 이상이었다.
혜민은 불멸자 둘의 머리 위로 헥사곤 필드를.
좌우로는 갤럭시 필드를.
그리고 혹시나 발밑에 들어올 적을 대비해 지뢰 형태의 주문과 헥사곤 필드를 깔았다.
모두 중첩, 두 겹의 형태다.
지금 당장 황금 거인의 주먹이 꽂혀도 둘에게 타격을 입힐 순 없다.
그게 강혜민의 할 일이었다.
‘손이 남으면 몇 가지 더하면 되는 거고.’
혜민은 그걸 위해 손가락을 까딱이며 준비를 끝냈다.
손가락을 튕긴다. 모든 마법사는 자기만의 고유 언어로 주문을 완성한다.
혜민도 그렇게 했다.
“눈 깔아!”
목소리에 실린 힘과 더불어 튕긴 손가락 사이에 낀 각인 된 주문이 발동.
막 바닥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은 황금 거인 눈앞에 검은 구름 따위가 꼈다.
누가 봐도 인위적인 일렁이는 먹구름이다.
인베이더의 시야를 가리는 게 의미가 있을까?
모른다. 눈이 있으니까 가리는 거지 뭐.
강슬혜는 바닥에 움푹 구멍을 만든 주먹을 보며 생각했다.
‘한두 방 정도는 견딜 만하겠는데.’
물론 아예 맞지 않는 게 더 최선이므로 그녀는 민첩하게 움직였다.
땅을 찍고 몸을 날린다. 좌우로 날래게 움직여 잔상을 남긴다.
황금 거인의 주먹이 그 속도를 따라붙는다. 발끝도 따라온다. 강슬혜는 피하며 주먹을 한 방씩 꽂아 줬다.
호랑이 기운의 주먹, 괴력의 잽은 흉기다.
다만, 황금 거인의 몸은 단단하기 그지없어서 괴력의 흉기라 할 주먹에도 작은 조각조차 흘리지 않았다.
‘작정하고 때리면 부술 순 있긴 하겠는데.’
그러려면 제대로 자세를 잡고 후려야 한다. 힘을 모아야 했다.
자연스레 몇 가지 공략법이 떠올랐다.
무수히 많은 세월, 인베이더와 싸우며 쌓은 경력의 힘이다.
‘군대를 동원하는 게 더 편하긴 하겠네.’
기중기나 와이어 따위로 팔다리를 묶고 작정하고 한 방을 꽂는다.
일단 다리를 때려 기동력을 제압하면 다음은 쉬울 것이다.
단단한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그게 청기사 급은 아니다.
불멸자만큼의 예민한 감각은 없지만, 강슬혜는 본능적으로 상대가 청기사보다 만만하다고 느꼈다.
‘급이 낮아.’
아들이 괜히 반푼이라고 부른 게 아니다.
거듭 피하자, 황금 거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손가락이 쪽 쪼개지더니 몇 개로 나뉘며 사슬처럼 날아들었다.
강슬혜는 피할 건 피하고 못 피할 건 주먹으로 쳐냈다.
이런 건 어려운 일 축에도 못 꼈다.
강슬혜는 생각을 이어 갔다.
‘지금 당장 군대를 동원할 수 없으니.’
그럼 본래 계획대로 하면 된다.
시야를 끄는 건 자신과 친구가.
장가희도 반대쪽에서 그녀만큼이나 부지런히 움직이는 중이다.
변신한 백호가 창을 휘두른다. 휘어지는 창대가 날아오는 황금 거인의 부산물을 튕겨 냈다.
손가락을 쪼개 만든 황금 사슬과 창날이 만나 허공에 불똥이 따다다다당 하고 튀었다.
‘상대하기 까다롭지만, 최악은 아니다.’
강슬혜가 내린 결론이다.
황금 거인은 확실히 둘에게 집중했다.
최상급 변신족 둘의 기세는 인베이더의 본능을 자극했다.
타닥!
그 순간, 총알 두 발이 거인의 몸과 턱을 맞췄다.
황금 거인은 특별히 방어막 따윈 지니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지금 사격을 피하지 못했다.
김정아가 쏘아 낸 첫발은 방어막의 유무 확인이었으니까.
쏘아 낸 건 두 명의 불멸자.
쏘아진 건 파란 페인트 탄.
저격이라면 혀를 내두를 두 명의 불멸자는 과녁을 정확히 맞혔다.
턱 밑과 심장.
그곳에 파란 페인트 탄이 터지며 묻어났다.
크어어어!
거인이 괴성을 지른다. 몇 번의 공수가 오간다. 변신족 둘은 시간을 끌고 시선을 끌고 주의를 끌었다.
반복이다.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공방의 순간, 틈과 틈을 쪼갠 사이다.
거인의 밑에서 뭔가가 치솟았다.
처음 한 방을 맞음으로 인베이더는 나를 머릿속에 지울 것이다.
여유가 있다면 쫓아와 때릴 수도 있지만, 그럴 틈은 주지 않는다.
두 명의 변신족이 주의를 끈다. 시선을 잡아챈다.
그사이 혜민은 불멸자 둘을 보호.
불멸자 둘은 페인트 탄을 쏴, 상대의 위크 포인트를 찾는다.
위크 포인트라고 했지만, 총알 몇 발, 칼질 몇 번으로 베일 수준은 아니다.
그럼 어쩌겠나. 한 방에 뚫어서 구멍을 내줘야지.
쓰러진 채로 난 작전에 들어간 일행을 바라봤다.
곧 몸을 다시 일으킨다. 머리가 띵 했다.
한 방의 충격이 어지간했다.
고개를 저을 필요도 없이, 금세 정신이 또렷해졌다.
불멸자의 회복력이다.
몸이 멀쩡해졌으니, 할 일을 하러 갈 시간이었다.
기척을 죽이고 움직인다. 앞으로 걷는다. 소리 없는 걸음은 불멸교 암살자의 그것처럼 하고.
움직임 자체는 변신족 그것처럼 날래게.
변신하고 나면 완벽한 기척 죽이기가 어렵다. 변신족 특유의 야성이 흘러나온다.
그래서 필요한 게 주의를 끌어 줄 사람이었고.
이제 무르익었기에.
달리며 송곳니로 손가락 끝을 긋는다.
피 두 방울을 왼팔 위에 찬 보호대 위로 떨어뜨렸다.
그리 움직이다 보니, 황금 거인의 가랑이 사이가 보였다.
그 사이로 들어가, 아래에서 위로 땅을 차고 뛰었다.
맨손은 아니었다.
피를 머금은 기생 라이플, 아니 이제는 기생 기어라고 불러 마땅할 무기가 변형되며 팔 위를 덮는다.
본래는 저격총이었으나 푸름은 이걸 업그레이드해 줬다.
기어 변형 형태, 블루 피어스.
팔찌가 갈라지며 그대로 팔 위를 덮는다.
내 피를 머금은 기생 기어가 그대로 팔 위를 타고 늘어난다. 라이플보다 배는 긴 창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긴 창은 푸른 빛을 띠었다.
“청기사의 에테르 블레이드 방식을 그대로 넣었다.”
강푸름은 그렇게 말했다.
난 닿는 모든 걸 쪼개 버리는 네임드의 무기 일부를 훔쳤다.
인베이더의 사체는 때론 기어가 되고 약이 되기도 하기에.
네임드를 잡아 얻은 보상이 지금 내 왼 손위에 구현됐다.
그대로 파란 페인트 탄이 묻은 포인트를 확인.
놈의 발등을 밟고 무릎을 찬다.
두 번의 도약으로 원하는 위치에 도달하는 건 금방이다.
파지지직.
에테르 에너지가 뇌전처럼 창을 타고 방전했다.
“쿼!”
보고 놀란 거인이 외친다. 찰나의 찰나를 쪼갠 틈이다.
놈의 눈앞에는 여전히 까만 먹구름이 있었다.
그대로 일격을 갈기려고 시야에 집중한 순간이다.
놈의 전신에서 빛이 터졌다. 황금의 섬광이다. 전신이 섬광탄이라도 된 것처럼 눈을 멀게 할 수준의 광량이었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위로 피부를 따갑게 하는 빛이 쏘아졌다.
눈은 감았지만, 노린 포인트를 놓칠 리 없었다.
불멸자의 감각이 조금 전까지 보던 이미지를 그대로 뇌리에 남겼고.
오감은 상대를 놓치지 않았기에.
난 피어스를 위로 꽂았다.
뇌전을 머금은 에테르의 송곳이 놈의 명치 부근을 뚫는다.
괴력과 기어.
두 개의 합이 무지막지한 외피에 구멍을 내고 속살을 헤집었다.
구현된 창의 길이는 2m가 넘는다. 놈의 몸을 관통했다.
감각 너머, 뭔가 날아오기에 고개를 숙여 피했다.
붕 하고 주먹이 머리 위를 스쳤다.
달릴 때부터 무호흡이었다. 그리 호흡을 참은 채로 임팩트를 오른손에 쥐었다.
관통한 창을 회수하자, 드드득 하고 빠지는 느낌이 손에 남았다. 동시에 임팩트 방아쇠를 당겼다.
에너지는 반도 안 되게 차 있었지만, 대쉬의 발판으로 삼긴 충분하다.
반동을 이용해 위로 솟구친다. 몸이 쭉 밀려 나가며 주변 사물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중력을 배반하고 솟구친 내 몸과 창은 그대로 놈의 턱을 꿰뚫었다.
꽈드드득.
턱부터 뒤통수까지 사선으로 뚫은 창이다.
그 위에서 참았던 호흡을 한 번.
“후우우우.”
에테르 에너지가 방전하며 전신을 한 번 스쳤다.
그와 함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은은히 배어 나오는 땀이 에테르 에너지와 가속하며 생긴 열기로 수증기가 되어 흩어졌다.
끄어.
턱이 꿰인 황금 거인은 손가락을 까딱였지만, 다음 공격은 없었다.
지지대 삼은 놈의 어깨에 발로 무게를 실으니. 뒤로 넘어간다.
후우웅.
묵직한 질량의 몸뚱이가 바닥에 처박혔다.
꽝.
먼지가 피어오르고 난 무기를 회수했다.
임팩트도 다시 홀스터에 꽂고 손을 탁탁 털었다.
“할 만하네요.”
청기사보다 못하다고 하지만 네임드 급이다.
그런 놈을 소수 정예로 잡았다.
처음 손발을 맞춘 것 치고는 꽤 훌륭한 업적이다.
“무지막지하네.”
지켜보던 중봉이 형이 읊조렸다.
뭐, 무지막지까지야.
황금 거인을 해치운 뒤로는 일이 더 쉬웠다.
길을 열고 처음 시작한 곳부터 병력 일부를 남겨 기지를 짓기 시작했다.
간이 초소 정도면 충분하다.
기관총 타입의 레일 건을 달면 될 것이다.
아더 사이드를 공략하는 것과 얼추 비슷했다.
예전에 진흙 사막에서도 초소를 세워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았나.
그것과 같았다.
그렇게 건물을 세우며 난 더 안쪽으로 향했다.
중심부로 향할수록 인베이더의 숫자가 적었다.
아무래도 안으로 돌입하는 순간, 신나서 전부 우리를 마중 나왔나 본데.
그렇게 화이트홀까지 쾌속 질주했고.
그 앞에 선 난 서슴없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생했으니, 그 결과물을 확인해야 할 시간 아닌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유일부대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NS의 병력을 만나야 했다.
위험지대, 무장 지대에서 항상 그들을 맞이한 인베이더 대신 말이다.
“누구십니까?”
나선 건, 말쑥한 외모의 불멸자다.
“유일부대 소속입니다.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대뜸 따지니.
불멸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개척 사업이요.”
“뭐? 개척 사업?”
여길? 안에 들어가서 확인할 게 산더미다. 현재 상황, 벌어진 일,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
들여보내달라고 요구하니.
“네, 뭐, 들어가세요. 전리품은 건들지 마시고요.”
NS 요원은 별 말없이 허락했다.
유일부대가 통과한 뒤, 각 단체에서 보낸 이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피닉스, 화랑, 협회, 경찰까지.
그들은 전부 비슷한 질문을 했고 비슷한 답을 듣고 안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NS는 규격 외.
회사 이름을 그렇게 짓고 정말 그걸 실현한 모습을.
인베이더의 시신이 산을 이룬다.
그 무엇보다 눈에 들어온 건, 한가운데 자리 잡은 황금 덩어리였다.
“탐내시면 곤란합니다. 저거 전부 특수 금속입니다.”
이세계의 금속은 독특한 에너지를 품는다. 저 황금 또한 그러했다.
그들을 향해 말한 건, 이동훈이었다.
눈 밑이 퀭하나, 더없이 만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걸 전부…….”
“네 NS에서 했습니다.”
“저 황금 덩어리는 혹시?”
“네, 맞습니다. 네임드 급, 소수 정예로 격파했습니다. 그러니 소유권 주장하고요.”
동훈은 쉼 없이 답했다.
도착한 모든 이들이 입이 떡 벌어질 일이었다.
하물며 유연호 까지도.
‘여기서 뭘 한 거냐?’
로스트 노쓰 외곽에 적당히 인베이더 처리해서 자리 잡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작정하고 여길 공략하겠단 거였다.
그것도 민간 군사 기업 하나가 달랑 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