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 황금 거인은 느리지 않다.
꽈아아아아아앙!
방아쇠를 당긴 직후, 난 나름의 대비를 했음에도 뒤로 날아갔다.
부유감과 함께 충격에 밀려 몸이 떠밀린다. 난 힘을 주고 버티는 대신 그 반동에 몸을 맡겼다.
빙글빙글.
눈앞에서 하늘과 땅이 반복되며 스쳐 간다.
16배속으로 보는 동영상 같았다.
근데 하늘이랑 땅만 돌아가는 영상을 누가 본담.
충격을 어느 정도 해소한 뒤, 왼쪽 손가락으로 바닥을 콱 찍었다.
드드드드드.
몸이 뒤로 밀리다가 멈춘다.
자연스레 바짝 낮춰, 바닥에 배가 닿을 듯 말 듯 한 자세가 되었다.
자, 보자.
임팩트 풀 차지 샷 한 번 날렸다가 내가 입은 데미지가 어느 정도냐.
일단 오른 어깨 탈구됐고.
쏘면서 충격을 받아 내려고 팔꿈치를 갈비뼈에 바짝 붙였었는데.
덕분에 갈비뼈도 몇 대 나가고 팔꿈치 뼈도 금 갔다.
허허.
이게 바로 양날의 검이란 거냐?
강푸름은 머저리가 아니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양날의 검이라고 해도 내가 받은 데미지와 비교도 할 수 없는 피해를 상대에게 줬다는 거다.
발사 형태는 방사형.
타격 범위는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확실하다.
일정 범위 안, 충격파가 닿는 곳에서 살아남은 인베이더는 없다.
임팩트는 애초에 납탄 따위를 발사하는 총이 아니다.
아다만티움 총탄도 아니다.
축적된 에너지를 충격파의 형태로 뿜어내는 신개념의 기어.
나의 커스터마이징 기어다.
그렇다고 해도.
“와 씨.”
절로 엄지가 올라가는 광경이 아닌가.
깡그리란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순 없다.
살점, 뼛조각, 인베이더의 신체 일부를 이뤘을 게 분명한 조각의 나열들.
땅도 일부 파였다. 방사 형태로 드러낸 황무지 밑은 붉은 흙이다.
먼지가 나부낀다. 쪼개지고 부서져 자갈에서 모래가 된 것들이 작은 회오리를 만들어 휘몰아치다가 픽 하고 사라졌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어 그 먼지를 쓸어 갔다.
그리고 내가 만든 초토화의 현장 너머.
전신에 황금빛을 두른 인베이더가 보였다.
안녕, 친구야?
한 방 먼저 먹였는데 기분이 어떠니?
난 그 형태를 토대로 네임드 급 상대의 원류를 추측했다.
인베이더 55 암석 거인의 특이종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그렇다.
암석 거인은 체고 5m 이상의 바윗덩이로 이뤄진 인베이더.
지금 상대는 그보다 크다.
대강 가늠해도 7m가량은 되겠다.
머리통이 어지간한 아이 몸뚱이보다 크겠다.
대두다.
전신이 황금색 돌이 번쩍거린다.
결론만 말하면 그 몸에서 뿜어내는 빛과 덩치로 원근감이 무색하게 만드는 몸뚱이였다.
꽤 거리가 있음에도 한 걸음이면 닿을 거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황금 거인은 임팩트로 만든 광경을 보더니, 주먹을 들어 제 이마에 댔다.
크우우우.
그리고 나직이 신음을 흘린다.
만약 인베이더도 신음을 흘린다면, 저건 신음이 맞으리라.
놈의 마음이 어렴풋이 읽혔다.
‘이거 네가 그랬냐? 그 조그만 손으로?’
난 저 멀리 원근감을 부수는 거인 새끼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줬다.
응. 내가 그랬다.
너도 놀랐냐?
나도 놀랐다. 자식아.
나도 풀 차지 샷은 처음이니까.
하긴 에너지 채우기도 만만치 않았다. 인베이더 무리 사이에서 혼자 솔로 댄스를 추지 않았나.
쩍.
왼손으로 어깨 어림을 때려 탈구된 오른쪽 어깨를 다시 집어넣었다.
갈비뼈나 팔꿈치 쪽은 이미 회복 완료다.
푸스스.
임팩트의 틈새 사이로 푸른 연기가 새어 나오기에 비틀어 열었다.
푸확.
블루 스팀이다.
푸른 증기와 열기가 함께 뿜어져 올라왔다.
난 푸른 증기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놀란 건 놀란 거고.
우리도 우리 할 일 해야 하지 않겠니? 황금 친구야?
저게 진짜 금이면 대체 얼마냐.
요새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말이야.
사회가 불안할수록 금값은 오른다.
플랜트 형태의 블랙홀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했고 금값은 올랐다.
쿵, 쿵.
황금 거인이 다가온다.
걸음걸음마다 울리는 진동이 그의 움직임을 알린다.
암석 거인의 특징이 뭐더라?
여우 같은 곰이었던가.
풀어서 말해 영리한 짓을 잘한다는 거다.
가령, 지금처럼 둔하고 느림보 같은 움직임을 보이다가 갑자기 반응 속도를 높이는 식으로 말이다.
암석 거인일 때도 그 정도다.
네임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진 모른다.
하지만 인베이더가 범람하는 곳에서 살아남은 새끼가 멍청하진 않으리라는 건 안다.
느리다.
굼뜨다.
보폭도 짧다. 내 가랑이는 요만큼밖에 안 벌어진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 개수작이었다.
“아들, 무슨 짓을 한 거니?”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어머니다.
“오셨어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총 한 발 쐈을 뿐이다.
“그거야? 새로 만든 기어가?”
“네, 임팩트.”
혜민이도 왔다. 전신 슈트로 무장한 모습이 어색하다.
무엇보다 슈트 위로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물건이 몇 개 달렸다.
왼쪽 허리춤에 단 빨간 머리 인형은 어디에 쓰는 걸까.
“미친 새끼.”
이건 통신 모듈을 통해 들어온 기남이 목소리고.
“청기사 슬레이어라더니, 저런 걸 잡은 거냐?”
“저런 걸 잡았으니까 슬레이어라고 거창한 이름이 붙는 거지, 물어서 뭐 해.”
내 불멸자 과외 선생과 변신족 과외 선생도 붙었다.
“아니요. 저런 건 아니었고요.”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난 임팩트를 홀스터에 끼우며 말을 이었다.
“저런 건 네임드라고 부르기 어렵죠.”
어설픈 유인책.
그에 앞서 느껴지는 건 기세.
청기사는 보는 순간,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무리 대비책을 세웠다고는 하나 과연 네임드란 말이 퍽 어울릴 놈이었다.
불가사리란 이름이 붙은 슬라임 계열의 네임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저건 좀 반푼이 같지 않나.
난 즉석에서 이름을 지었다.
“반푼이네요. 저건.”
황금 거인은 반푼이다.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황금 거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삐뚤삐뚤 난 네모난 황금 이빨이 보였다. 참 가지런하기도 하지.
누가 공들여 만든 성벽 같아 보이는 이빨이다.
그 주둥이가 열리고.
쿠어어어어어!
놈의 괴성이 전장을 울린다. 피부가 찌릿찌릿하다.
이 정도면 서울까지 아련한 메아리 정도는 닿았겠다.
네임드를 상대하는 법은 소수 정예.
그건 이미 입증된 이론.
청기사를 죽이며 실현된 이야기.
그걸 한 번 더 할 뿐이다.
“플랜 에이로?”
한 명이 더 합류했다. 이중봉 나으리 되시겠다. 난 슬쩍 눈을 돌려 중봉이 형과 눈을 마주쳤다.
문득 걱정되기에 마음을 담아 한 마디 건넸다.
“전처럼 자살 특공대 하면 안 돼요. 착한 중봉이는 그러기 없기.”
“우리 오빠는 착한 사람이에요.”
혜민이 말하고.
“인성 교육은 우리 몫이 아니었지.”
“인정한다.”
두 과외 선생의 합이 맞았으며.
“……아들을 대체 어떻게 키운 거요?”
내 말을 들은 중봉이 형은 대뜸 어머니께 따졌다.
“내 아들 키울 때 기저귀라도 보태 준 것처럼 얘기하시네. 이 정도면 건장하게 잘 컸지.”
어머니는 지지 않았다.
쿠어어어!
우리는 너무 쫄지 않았다. 사실 살기 어림 외침에 반응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황금 거인이 또 한 번 하울링을 뱉었다.
물론 이번에도 우리는 무시했다.
이 정도로 오금이 저려서 요실금을 할 거였으면 여기까지 자리 잡지도 않았다.
강슬혜, 갱생 마녀, 어머니.
장가희, 통나무 선생.
변신족 둘이 좌우로 움직인다.
난 청기사를 상대해 봤다. 그리고 인류는 긴 시간 인베이더와 싸웠다.
그리고 난 상대가 어떤 타입이든, 네임드를 상대할 법을 고민했다.
나만 고민한 건 아니고.
동훈이 형이랑 미호, 기남이, 요한이 형, 중봉이 형, 어머니 등등.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그래서 만든 포메이션이다.
내가 전면에 서고 혜민이가 후방.
중앙에 중봉이 형과 작대기 선생이 섰다.
이거 의외로 되게 든든하네.
혼자서 상대하는 것보다 몇 배는 수월하게 느껴진다. 든든하다. 내 뒤를 받쳐 주는 사람이 있기에 평소보다 몇 배는 기운이 넘쳤다.
만약 상대하는 인베이더의 덩치가 크고 물리력이 동반된 상대라면.
이 포메이션은 턱 밑의 창이 된다.
뭐, 가랑이 사이의 창이 될 수도 있고.
“온다.”
중봉이 형이 말하고 눈을 부릅떴다.
난 쿵쿵거리며 다가오는 황금 거인의 속도를 가늠하며 슈트를 벗었다.
임팩트 홀스터만 허벅지에 다시 감았다.
“오빠, 여기선 안 돼. 둘이 있을 때 벗어.”
뒤에서 혜민이 헛소리를 뱉었다. 속삭인다고 속삭이는데 다 들리게 속삭인다.
얘는 오늘도 약을 안 먹었구나.
“보기 좋네.”
우측에서는 장가희 선생도 한 소리를 뱉는다. 휘파람까지 적절히 섞어 준다.
몸을 위아래로 훑는 눈이 요사스럽다.
“어린 남자 넘보는 거냐? 주책이다.”
주일호 선생이 핀잔을 준다.
“둘 사이가 은근히 좋아졌네.”
그걸 보던 어머니가 한 마디.
난 그걸 듣고는 킥킥 웃었다.
그래도 한마디 안 할 수 없지.
“여기 놀러 왔습니까?”
슈트를 벗어서 곱게 접었다. 이게 얼만데 변신하면서 부숴 먹겠나.
꾸드득.
근육이 움직인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가속한다. 아랫배에서 시작된 뜨거운 용암 같은 열기가 피의 흐름에 동참한다.
양팔에 털이 솟는 게 보였다.
검고 윤기 나는 털, 그 사이로 푸른 빛의 줄무늬가 그려진다.
눈높이가 달라지며 인간형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렬한 힘이 근육 사이사이에서 용솟음쳤다.
“크허허허헝!”
흥분을 참지 못해 기합을 터트렸다.
“귀 아프다. 자식아.”
“아들 사춘기니?”
“우렁차고 좋네.”
“우리 오빠 목청 좋다!”
중봉이 형을 시작으로 어머니, 장가희 선생, 혜민이 한 마디씩 내뱉었다.
내 하울링을 들은 황금 거인이 질세라 주둥이를 벌린다.
크허-.
뭐라 외침이 터지기도 전이다.
놈의 주둥이에서 폭발이 일었다.
눈으로도 쫓기 어려운 속도의 대구경 탄환이 놈의 주둥이를 때린 거다.
누구 솜씨겠나.
포지셔닝의 천재이자, 한 저격하시는 정아 누나의 솜씨 되시겠다.
대구경 탄환에도 황금 거인은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놈은 그대로 들렸던 턱을 내리고 무시무시한 눈빛을 뿜었다.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 안에서 황금색 빛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빛이 흘러나왔다.
거, 되게 살벌하네.
그래도 여전히 속도는 느리다. 걸음에 제 질량을 속인다. 무게감이 느껴진다. 저 덩치가 절대로 빠르게 움직일 것 같진 않다.
그래, 그렇게 보인다.
저 수작 언제까지 부리려나.
뭐, 이런 건 즐기게 놔둬야 옳은 걸까.
팡.
땅을 차고 마주 달린다. 흑호로 변한 몸이 공기를 찢는다. 주변 모든 게 잔상처럼 뒤로 밀려났다.
단숨에 내달려 임팩트를 뽑았다.
이 무기의 위력을 보았기에 놈은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황금 거인은 예상대로 움직였다.
대신 느릿느릿 움직이는 대신, 한순간 변신한 내 속도에 따라붙는 속도로.
바람이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렸을 때는 이미 금빛 바위가 눈앞을 가득 채운 뒤였다.
임팩트를 세로로 들어서 막는다.
충격이 몸을 뒤흔든다. 억지로 힘을 비틀어 비껴 낸다.
드드득.
황금 바위가 임팩트를 타고 옆으로 튕겨 나갔다. 건물 부술 때 쓰는 거대한 쇠공, 레킹볼을 받아 내 옆으로 밀어낸 것과 같은 짓이다.
곡예와 같은 짓이지만, 이런 개 내 특기다.
튕겨 낸 그대로 안으로 걸음을 옮겨 크게 한 걸음.
놈의 근접 거리로 파고든다. 싸움은 이제부터…….
이 새끼가?
뒤쪽에서 훅 뭔가 날아온다. 한순간에 감각이 열려, 상대가 한 짓을 파악했다.
놈의 가랑이 사이에서 세 번째 다리가 훅 내려와, 위에서 밑으로 내 뒤통수를 때렸다. 임팩트를 급히 뒤로 돌려 막았다.
손등뼈가 으스러질 충격이다.
몸이 앞으로 훅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좌우에서 어머니와 장가희 선생이 달려들었다.
작전 시작이다.
그나저나 뒤통수가 더럽게 아팠다.
순간 정신이 출장 나갈 뻔했다.
충격을 해소하며 앞으로 구른다. 구르며 쓰러진다.
황금 거인은 이 타이밍에 날 놓친다.
그에게 위협이 되는 나머지 둘을 향해 손을 뻗는다. 손이 그냥 손이 아니다.
손 위로 몇 개의 바위 줄기가 줄줄이 뻗어 나온다.
그 줄기 하나하나가 위협적인 황금 바위 채찍이 됐다.
저 음흉한 새끼.
암석 거인은 그런 재주 없단 말이다.
몸에서 뭘 자꾸 뽑아내.
별칭 촉수 괴물인 넘버링 78의 헌드레드 핸즈의 특기다.
백 개의 손, 원형의 몸을 가진 인베이더로 몸에서 자유자재로 촉수를 뽑아내는 놈이다.
그 숫자가 백 개가 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지만, 이름은 저렇게 지었다고 들었다.
하여간 그 인베이더는 특기다.
고로 저건 그냥 암석 거인의 진화 판이 아니라 두 개의 인베이더가 섞였다.
최소 네임드 급은 되는 거란 거지.
그래도 여전히 청기사 급은 아닌 것 같은데.
여기까지가 내가 날아가며 한 생각이다.
바닥에 텅 하고 몸이 부딪치고 구를 때쯤.
시베리안 호랑이가 손톱을 세우는 게 보였다. 황금 거인의 채찍과 손톱이 만난다.
따다다다다당!
허공에 불똥이 튀었다. 누가 보면 불꽃놀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반대쪽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보인다.
이쪽은 파란 눈의 백호다.
백호 한 마리가 휘어지는 창 같은 걸 들어 휘두른다. 날아오는 황금 암석 채찍과 만난 창과 터지는 불꽃의 환영.
잔상이 남는다.
난 눈을 감고 감각을 북돋웠다.
잠시, 내 차례는 뒤로 미룬다.
지금 필요한 건 관측자.
이 포메이션의 시작 포인트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