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45화 (345/488)

345. 방아쇠를 당겼다.

네임드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학자, 연구자, 매드 사이언티스트까지.

그들은 이 의문의 답을 구하고자 했다.

한때는 인류 멸망의 선봉장이 네임드라 말하기도 했으니까.

물론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제는 네임드를 상대하는 법을 알기에, 네임드는 인류 멸망의 선봉장이 될 수 없다.

“간단합니다. 네임드를 상대하는 법, 양이 아니라 질로 싸우면 됩니다.”

미국 펜타곤에서 나온 의견이 시작이었다.

당연하지만, 엑스큐라시도 협회도 마찬가지의 결론을 내렸다.

군대가 안 된다면, 양으로 할 수 없다면.

질로 승부한다. 즉, 소수 정예가 답이다.

레일건의 원리를 이용한 포격을 견디는 놈도, 근거리에 붙어 휘두르는 레이저 블레이드에는 썰리므로.

병력 수천을 학살할 수 있는 괴물도 독특한 능력의 특수종 몇을 어찌할 수는 없다.

시대는 변한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눈앞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이진 않지만, 계속 변하며 발전하는 법.

외적으로는 여전히 네임드는 인류의 악몽이나.

내적으로는 상대할 수단을 준비해 둔 재해일 뿐이다.

상대할 수단을 갖춘 이후, 많은 학자는 의문을 해결하자고 했다.

네임드의 탄생이란 문제다.

당연하게도 답은 없지만, 그럴듯한 추론은 있었다.

“진화, 그게 답입니다.”

홍콩에서 열린 학회에서 한 명의 젊은 학자가 주장을 펼쳤다.

진화.

인베이더는 어떻게 특이종이 되는가.

태어날 때부터 특이종이 되는 건 아니다.

오래 살아남고 버텨 살다 보니, 그리되는 거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종이 변화하는 경험이다.

그 경험이 쌓이면 네임드가 된다는 거다.

물론 추론은 추론일 뿐이다.

입증할 수 없는 논리다. 하지만 얼추 맞는 말이라는 심증은 있었다.

다들 그러려니 하며 끄덕일 만한 이야기이긴 하니.

특별한 환경이 계속되면 인베이더는 진화한다는 것, 정설이 됐다.

지금 여기에도 그런 ‘특별한 환경’을 이겨 낸 존재가 있었다.

인베이더도 영역 싸움을 한다.

그 영역 싸움 끝에 승리하고 자리를 차지했으며 긴 시간 이 땅에서 살아남은 특이종.

본래는 암석 거인.

하지만 이제는 전신에 금을 두른 황금 거인이 되었다.

거인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무리를 감지했다.

분노와 함께 거인의 전신에서는 빛이 솟구쳤다. 그 빛이 하늘을 꿰뚫을 듯 솟았다.

NS뿐 아니라, 서울 전역 어디에서도 보일 정도로 곧게 솟은 빛이었다.

로스트 노쓰에 이상 상황 발생.

한국 정보를 비롯한 특수종 단체 전부에 비상이 걸렸다.

곧게 솟은 빛기둥이 일어난 게 보였으니.

“NS가 로스트 노쓰에 진입했습니다.”

“일전에 그쪽 땅 지분을 전부 소유하는 작업을…….”

“그곳에 정규직 사원 훈련소를 운영…….”

“건설 자재를 모았습니다.”

소란이 인다. 각 단체는 급히 부대를 소집, 출진했다.

당장 저 빛의 정체를 밝히는 게 급선무였다.

그리 움직인 이들 중에 피닉스 팀장도 있었다.

‘소풍 간다며.’

유연호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로스트 노쓰에 가서 뭘 하는지 미리 말해 줄 수도 있는 건데.

슬혜도 아들도 말해 주지 않았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한다.

‘회사 기밀이고.’

자신은 행안부 소속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서운한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서운하다.’

이게 다 아들 때문이다.

아내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팀장님, 현재 작전 투입 가능 인원 여섯 전원 모였는데, 안 가?”

늙은 팀원이 묻는다. 유연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시다. 아들놈이 뭘 하는지 나도 궁금하네요.”

피닉스 팀이 떠난다.

같은 시간, 단군 그룹에서는 강호응을 필두로 화랑 팀이 움직였다.

그 안에는 도안결과 정소진, 김운비가 합류했다.

정확히는 셋이 자원했다.

그 NS가 하는 일이니, 궁금했다. 가서 보고 싶었다.

특히나 도안결은 현재 자신과 유광익의 차이를 보고 싶었다.

전보다 늘었을까. 아니면 한 발 따라잡았을까.

그동안 피를 토하면서 훈련에 임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네임드가 다시 튀어나온다고 해도 맥없이 후방에 밀려나지 않을 정도로.

도안결은 성장했다.

이외에도 사이오닉 협회, 경찰청도 병력을 급파.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유일부대도 움직였다.

빛이 솟는다.

예민한 불멸자라면 저 빛에서 불길함을 느낄 만했다.

“더럽게 불길하네. 퉤.”

기남이 입안이 까끌까끌한지 바닥에 침을 뱉더니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꿀꺽.

하고 목울대가 움직인다.

지금 목울대를 치면 콜록거릴 텐데.

생각만 했는데도 손이 절로 움직인다. 기척을 감추고 손날을 슬쩍 보이자, 기남이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뭐야, 이 미친 새끼야.”

“나도 모르게 그만.”

근데 이 새끼 내 기척 죽이기에 반응하네?

“넌 진짜 또라이냐?”

정기남이 질린 표정을 짓는다.

“우리 엄마 옆에 있다. 다 듣는다.”

“괜찮아. 엄마는 다 이해한단다.”

옆에서 엄마가 한마디를 툭 뱉었다.

변신족 마더 테레사란 별명에 어울리는 이해심이다.

기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새끼도 성장했다. 예전이었다면 방어는 생각도 못 하고, 목울대를 얻어맞자마자 물을 토했을 텐데.

슥 하고 입가를 닦는 기남을 보니, 일말의 아쉬움이 남았다.

때릴 수 있었는데, 조금 더 신중할걸.

난 시선을 돌렸다. 미련을 남겨서 무엇하랴.

이미 지나간 일인걸.

“어머니.”

“응.”

“어머니 고향이 혹시 혹성 베지터인가요?”

“우리 아들 열 있니?”

“아니요. 전 더없이 멀쩡합니다. 컨디션도 더없이 좋고요. 그저 제가 싸울수록 강해지는 것 같기에 물어봤습니다.”

“드래곤볼?”

어머니도 소싯적에 만화책 좀 섭렵하셨다.

드래곤볼 속 사이어인은 싸울수록, 간신히 살아날수록 더 강해진다.

멀리서 뿜어내는 황금빛이 점점 밑으로 꺼지는 중이다.

“네. 제가 사이어인은 아닐까 의심하는 중입니다.”

“기남 군, 내가 미안해.”

어머니는 뜬금없이 기남이 새끼에게 사과했다.

갑자기?

기남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오늘은 상태가 전보다 괜찮네요. 평소보다 낫습니다.”

오늘따라 기남이 혀가 길다. 역시 아까 목울대를 쳤어야 한다.

“전 그럼 전투 본능을 해결하려 다녀오겠습니다.”

난 임팩트를 한 손에서 핑그르르 돌리며 발을 뗐다.

혹시 로스트 노쓰에서 네임드 급의 괴물이 나오면 어떻게 하나.

인류의 악몽.

병력을 잡아먹는 괴물.

군대로 해결할 수 없는 재해.

별의별 이름이 다 붙은 존재가 네임드다.

강렬한 이미지 덕에 명칭이,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옛말 아닌가.

황금빛이 꺼진다. 그 안에서 뭔가 꾸물거리는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안에서 기지개를 켠 존재가 네임드 급일까?

난 그런 의문을 품고 발을 뗐다.

열린 길을 향해 걷는다.

좌우로 총탄과 칼질하는 소리가 오케스트라처럼 귀를 때렸다.

나무뿌리나, 자갈, 가시가 돋친 길을 걸었다.

압착형 전투 부츠의 바닥은 두껍다.

길이 험하다고 해서 딱히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저 잘 깔린 보도블록과 아스팔트 대신 반파된 황무지를 걸으니, 내가 있는 곳이 이세계인지, 본래 세계인지 헷갈릴 뿐.

넓게 트인 길이다.

뛰지 않았다. 걸었다. 걸으며 슈트와 무기를 점검하며 주변으로 감각을 열었다.

농담 삼아 만화 얘기를 했지만.

지금 내 상태를 그저 혈통 덕분이라고 말하면 너무 섭섭할 것이다.

피를 토하는 훈련에 임한 시간과 노력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으므로 그렇다.

그나저나 아버지한테 너무 아무 말 없이 온 거 아닌가.

어머니가 회사는 회사, 집은 집이라며 공사 구분 철저히 하라고 하셔서 그리했지만.

아버지가 조금 토라지실 것 같은데.

뭐, 내 탓이라고 하시겠나.

다 어머니의 뜻에 따른 것뿐인데.

터벅터벅.

걷는 와중에 좌우로 머리를 들이미는 특이종이 보였다.

눈깔이 넷 달린 눈먼 개다.

저건 눈이 없어서 눈먼 개인데, 눈이 달리면 어디다 쓰나.

특이종은 일반 인베이더의 변이형.

변이는 꼭 좋은 쪽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손을 흔들었다. 손가락 사이에 낀 불릿이 쌕 하고 날아가 눈 달린 눈먼 개의 머리통을 깼다.

돌아온 불릿을 손에 쥐고 수납.

“어이, 거기 어디까지 가! 미친 새끼야, 거긴 들어가면 안 돼!”

뒤에서 이번에 뽑은 사원 중 하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여자 목소리였다.

귀가 쩌렁쩌렁하다.

“야, 무전 주파수 안 듣냐!”

현재 전장을 움직이는 건 우미호다.

그녀는 백 명의 병력을 한 자루 칼처럼 휘둘렀다.

적재적소, 판을 나누고 그 안에서 날뛴다. 아마도 내가 그 판밖에 발을 슬쩍 내밀었나 보다.

“야!”

거듭 외쳐도 듣지 않자, 기어코 대형을 빠져나와 나에게 달려오려고 한다.

이번에 사원을 뽑을 때 본 건 두 가지다.

하나는 근성.

두 번째는 인성.

쌍성 채용법이다.

근성이야 테스트를 통해서 봤고.

인성은 훈련을 통해서 봤다.

그 결과가 이거다.

난 달려오려는 사람을 두고 훌쩍 뛰어 버렸다.

그렇게 NS가 만든 길을 벗어난다.

“야, 야! 이 미친 새끼! 조장!”

그녀의 목소리가 뒤에 남는다. 인상적인 직원이었다.

길을 벗어나자, 대형 슬라임이 길을 막았다.

특이종이 많기도 하지.

긴 시간 동안 고였기에 제대로 썩은 물이 된 인베이더다.

슈트 허리춤을 손으로 훑어 섬광작열탄을 꺼내 던졌다.

펑. 화르륵.

슬라임의 정면에서 터진 작열탄은 불꽃을 일으키며 물컹거리는 젤라틴 같은 괴물을 집어삼켰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매캐한 향을 뿜어냈다.

난 앞으로 더 나아갔다.

막는 건 오롯이 인베이더 무리뿐이다.

오크 몇 마리가 달려든다. 임팩트를 들어서 휘둘렀다.

쩡!

막고 또 막는다.

그렇게 서너 번 막은 뒤, 안으로 들어온 오크의 목을 옆구리에 잡고 꺾었다.

우득.

왼발을 들어 위로 찼다.

퉁.

부츠에 고블린의 턱이 걸린다.

머리통이 터지며 뇌수와 피가 흩날렸다.

난 발을 차자마자 몸을 돌렸다. 뒤쪽을 향해 늑대를 닮은 무언가가 휙 하고 지나갔다.

불을 뿜는 늑대, 플레임 울프다.

쟤가 몇 번이었더라.

그게 뭐가 중요할까.

인베이더다.

화륵.

놈이 주둥이를 벌려 불을 뿜는다.

난 바닥에 있던 목이 부러진 오크 시체를 던졌다.

시체가 곧 불길을 막는 방패가 됐다.

그대로 앞으로 내달려 점프한 뒤, 위에서 밑으로 임팩트를 휘둘렀다.

빡!

머리뼈를 쪼개는 감각이 임팩트를 통해 손에 절절히 전해졌다.

내려서자마자 자이언트의 몽둥이가 날아온다.

피하는 대신 임팩트를 마저 휘둘렀다.

임팩트와 몽둥이가 만난다.

굉음이 터졌다. 거인은 그대로 몽둥이에 힘과 무게를 실었다.

거인의 힘이 어깨를 짓눌렀다.

힘으로 밀리면 갱생 마녀의 이름이 울지.

난 괴력의 혈통을 이어받은 변신족.

그대로 힘을 받아 내며 안쪽으로 한 걸음.

초 근접 거리에 도달한 뒤, 주먹을 위로 뻗는다.

폭발음 따위가 들리는 듯했다.

주먹 앞으로 갤럭시 필드가 발동했다.

알이 준 선물을 톡톡히 써먹는 중이다.

아, 방어 말고 공격용으로.

갤럭시 필드는 그 자체로 단단하기에 어지간한 전투 장갑보다 낫다.

자이언트가 눈과 코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붕 떠 날아갔다.

“크우?”

그 광경을 가까이서 지켜본 인베이더 한 마리의 발이 멈췄다.

쫄았니? 벌써 그러면 좀 섭섭한데.

틱.

그 틈에 뒤쪽에서 암살자의 칼날이 날아왔다.

물론 피했다.

난 변신족이자, 불멸자.

예민한 감각을 장기로 삼는다.

공감각 강화로 주변 모든 것에 손에 잡힐 듯이 보이니.

이 정도도 못 피하면 또 아버지의 별명이 운다.

덩달아 중봉이 형도 섭섭해할 거고.

난 사우전드 페이스의 피를 받고 팬텀에게 훈련받은 불멸자.

등 뒤를 노린 칼날의 주인은 인베이더 블랙 마스크.

입이 있는 자리가 마스크처럼 검은 삼각형으로 가려진 놈이다.

특기는 보다시피 암살.

피하고 팔꿈치를 휘둘렀다. 팔꿈치 끝에 블랙 마스크의 대가리가 맞았다.

마스크를 제외하면 서 있는 쥐를 닮은 놈이다.

맞은 놈이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괴력의 팔꿈치 치기다, 자식아.

앞쪽에 인베이더가 산더미다.

그 너머에 꺼질 듯 반짝이는 은은한 황금빛이 보였다.

황금빛과 내 사이에 가로막은 놈들이 많다.

그 모든 인베이더 무리를 향해 난 총구를 들었다.

여기까지 오며 에너지를 충분히 모았다.

위잉.

임팩트가 운다.

산탄 형태로 전환.

난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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