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44화 (344/488)

344. 뚫린 길 너머에는 무엇이 있나.

긴장감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동안 했던 수많은 훈련, 배운 이론이 전부 이 순간을 위한 것임을 알기에.

혼혈 불멸자도, 불명예 전역자도, 전 국가 대표도, 태권도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어 지원한 동네 누나도.

지금은 전부 훈련받은 전투 요원이 되었다.

혼혈 불멸자, 지금은 NS의 정규직이 된 남자는 발에 뭔가에 턱 걸리는 걸 느꼈다.

덫이라도 된 것처럼 땅에서 빠끔 모습을 드러낸 굵은 나무뿌리였다.

근처에 나무 따위는 보이지 않지만, 뿌리는 남았다.

공을 차듯 허벅지 근육에 힘을 주자, 반쯤 썩은 뿌리는 힘없이 뚝 끊어졌다.

바닥이 고르지 않았다.

뾰족한 자갈이 놓인 길도 있었고 얼기설기 이어진 넝쿨 같은 게 널려 있기도 했다.

물론 크게 상관은 없다.

이제까지 이런 환경에서 훈련해 왔다.

‘전부 계산 안쪽이었겠지.’

머리가 조금 돌아가는 이들이라면 인지할 수 있다. 꼭 앞을 내다보는 영리한 자가 아니라도 금세 알 수 있는 사실.

애초에 이 일을 위해 정규직 채용을 했다는 것.

“시이발, 손 떨려 뒈지겠네.”

조금 전 눈먼 개 머리통 세 개를 연달아 맞춘 동료의 말이 들렸다.

“잘만 쏘더니만.”

“쏘는 건 쏘는 거고 떨리는 건 떨리는 거고.”

말하며 동료가 총열을 흔들었다.

과열된 총열에서 열기가 후끈 피어오르며 파란 연기를 뿜어냈다.

총열을 달구는 탄환과 그걸 견디는 합금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푸른 증기, BLUE STEAM.

이 현상 덕분에 이들의 무기 명칭은 블루 스팀 시리즈가 되었다.

총열을 허공에 휘젓자, 푸른 증기가 흩어지며 묘한 형태를 만들어 냈다.

수증기보다 무겁고 짙은 질감이다.

혼혈 불멸자는 동료의 말을 십분 이해했다.

이 중에서 전투 경험이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없는 이들이 태반이다.

그러니 훈련만으로 이런 실전에 투입한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하물며 이런 전장이라니.

대규모 인베이더가 튀어나오는 전장, 그야말로 범람하는 괴물 무리에 갇힌 꼴이다.

본래는 이건 미친 짓, 자살이나 다름없다. 생명 포기 각서를 썼든 말든, 수틀리면 튀었어야 한다.

‘근데 이럴 수가 있는 건가?’

본래라면 도주가 최선이었을 전장이지만, 아니었다. 아니게 됐다.

적어도 지금은 도망갈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불멸자의 감각도, 이성도 다 그리 판단했다.

‘회사 이름은 NS.’

규격 외란 의미다.

그 말 그대로였다.

그들이 손에 쥐여 준 장비가 그러했고.

몸에 걸치게 해 준 슈트가 그러했다.

레일건 소총은 암석으로 이뤄진 인베이더의 머리를 뚫었고.

충돌 전차나 다름없는 바퀴 달린 인베이더의 갑주를 깼다.

“휠 나이트다.”

“집중 사격!”

조장의 한마디에 특수 제작된 탄환이 휠 나이트의 갑주에 구멍을 슝슝 뚫는다.

실전은 훈련보다는 쉬워야 한다.

군사 훈련을 수료한 혼혈 불멸자는 그걸 안다.

아무리 고된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전장의 총소리 한 방에 전열이 개판이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얘기이므로.

이들도 그러했다. 그러했었다.

초반 인베이더를 보고 몸이 얼고 전열이 무너지기도 했으나, 총알 한 발에 관통당해 픽픽 두세 마리씩 쓰러지는 눈먼 개를 보면 생각이 조금 바뀌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교관이었던 조장들이 있었다.

‘이들이 규격 외 전력.’

회사 이름 한번 기가 막히게 잘 지었네.

혼혈 불멸자는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당연했다. 조장이라 불린 이들은 자신이 한때 꿈꿨던 불멸특수대 요원 따위는 우습게 씹어 먹을 전력을 보여 주지 않나.

1조 조장 박대기.

지금 막 조장은 달려드는 눈먼 개의 머리에 구멍을 내는 대신 손으로 개의 이마를 짚으며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러자, 눈먼 개의 시선이 조장을 쫓는다. 딱 하고 허공에 놈의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조장은 돌격과 놈의 송곳니를 피하는 걸 공중제비 한 번으로 동시에 했다.

피하는 거로 끝나지도 않았다. 공중에 뜬 채로 단분자 커터를 칼집에서 뽑았다가 도로 수납한다.

뽑혔던 칼은 개의 머리를 잘랐다.

그대로 땅에 내려선 뒤, 전면 그러니까 최전방이나 다름없는 곳에 서서 소총을 연사로 갈긴다.

불멸자, 그것도 훈련과 노력을 더 했기에 보일 묘기가 그의 손에서, 발에서, 몸에서 엿보였다.

대충 연사로 갈긴 탄환이 사방에 불꽃과 피의 비를 뿌렸다.

‘총의 반동까지 이용했어.’

저건 불멸자로 태어났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박대기 조장은 레일건 총기 반동까지 이용해 몸을 틀고 팔을 꺾어 방아쇠를 당겼다.

이게 전장이 아니고 조장의 손에 들린 게 칼과 총이 아니었다면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 같았으리라.

그만큼 유려했고 그만큼 화려했다.

‘대단해.’

혼혈 불멸자는 미래의 자신을 봤다.

박대기가 알았다면 한때 교관이었음에도 심심한 조의를 표했을지도 모를 생각이었다.

물론 그 모든 걸 감안해도 박대기는 그를 말리진 않을 것이다.

지금 자신의 몸이 그걸 증명하고 있으므로.

‘가볍다.’

박대기는 각성 이후 이렇게까지 몸이 가벼울 수 있을까 싶었다.

NS 대표, 세최특의 선생이라는 두 작자가 돌아온 뒤로 훈련 상황은 더 미쳐 돌아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라는 의문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적이 삼만팔천육백 번쯤 됐다.

그래도 견뎠다.

고행을 바란 게 아니라 안온함을 원했다면 화림에 남아 있었을 테니까.

어찌 보면 이건 자신을 향한 신의 물음일지도 모른다.

박대기는 독실한 크리스찬 집안이었다.

너, 네가 선택한 길을 견디겠느냐?

신이 물었고, 박대기는 자신을 증명하기로 했다.

몸이 가볍다. 평소에는 집중력이 필요한 사격에도 거침이 없다.

아니, 하도 구르며 총을 쏘던 버릇이 남아 있기에 오히려 지금이 더 쉬웠다.

‘변신한 백호랑이나 곰탱이랑 싸우는 것보다야.’

눈먼 개나 챔피언, 오거, 오크 따위를 상대하는 게 몇만 배는 쉬웠다.

실제로는 이곳이 목숨이 오가는 전장이니 더 위험한 건 맞다. 그래서 더 긴장해야 했으나.

박대기가 체감은 반대다. 그만큼 훈련이 지랄 염병 같았으므로.

“만티코어입니다!”

눈이 밝고 시야가 넓은 조원의 외침이다.

한순간 주변에 있는 챔피언 두 마리와 엘프 셋, 하트리스 두 마리의 머리통에 연사로 구멍을 낸 박대기는 짧게 생긴 여유와 함께 시선을 돌렸다.

“……총기 고장! 총기 고장!”

철컥철컥.

만티코어 바로 앞쪽, 조원 하나가 덩그러니 놓였다.

어떤 총이라도 이상은 일으킬 수 있었다.

블루 스팀 시리즈라고 다르진 않았다.

탄피 따위가 걸릴 일은 없으나, 푸른 증기가 미처 다 빠져나가지 못해 안에서 뭉쳤다.

해결은 쉽다. 총기 중간쯤을 잡고 바깥쪽을 향해 열면 끝이다.

길어야 십 초 이내에 해결할 수 있으나, 긴장한 대원의 손은 더뎠다.

그 틈에 ‘넘버링 20’의 ‘만티코어’가 달려왔다.

팍팍! 우득!

땅을 박찬다. 중간을 가로막는 눈먼 개를 즈려밟자, 눈먼 개의 머리통이 으깬 감자가 됐다.

몸무게만 해도 수백 킬로가 훌쩍 넘는 놈이기에 눈먼 개 따위는 그대로 압사다.

사자를 닮은 갈기, 그 안에 자리 잡은 낯짝, 전갈의 꼬리, 등에는 날개가 달렸다.

“끼에끼이이이익!”

형편없는 품질의, 망가진 리코더에서나 날 법한 소리가 울렸다.

흥분한 만티코어의 하울링이다.

외침은 곧 살기가 되어 상대의 몸을 굳게 만든다.

조원의 손이 덜컥 굳었다. 반쯤 열린 총기에서 푸른 증기가 훅 뿜어져 올라왔다.

만티코어의 턱이 쩍 벌어졌다.

그 입이 위아래로 늘어난다. 사람 따윈 단숨에 물어뜯어 삼킬 듯했다.

전투의 흥분, 긴장감 등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전열을 이탈한 대원이다.

박대기는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조장의 손길이 닿을 리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은 없다. NS에서 자신은 그저 일개 요원일 뿐.

핵심 전력 축에도 못 낀다. 결론만 말하면 이곳에 자신들만 있는 건 아니다.

턱. 서걱!

고장으로 일어난 총열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증기 너머 뿌연 뭔가가 호선을 그렸다. 그 선을 따라 증기가 갈라졌다.

호선은 그대로 만티코어의 앞발을 후렸다.

만티코어도 반응했다. 앞발로 막았다. 그리고 잘렸다.

잘린 앞다리가 허공에 빙글 돌며 피를 뿌렸다. 피에 맞은 증기가 흩어진다.

칼로 갈라져, 벌어진 증기 너머로 전투 슈트로 무장한 변신족이 보였다. 그녀는 양손에 도끼를 들었고 왼손의 도끼로 만티코어의 돌격을 저지했으며, 지금 막 오른손의 도끼를 횡으로 휘두른 참이었다.

후앙.

도끼가 만티코어의 목을 벤다. 만티코어는 제 목 근육의 유연함을 자랑하듯 뒤로 휘청 젖혀 피했다.

훙 하고 도끼가 놈의 코앞을 스쳤다.

동시에 놈의 꼬리가 치이익 하는 소리를 남기며 휘어지고 짓쳐 들어왔다.

증기를 가르고 전장에 참가한 마리는 오른손 도끼를 한 번 더 휘두르는 거로 꼬리를 쳐냈다.

방금 횡으로 휘두른 도끼를 어느새 방어에 쓴다. 놀라운 반응속도다.

이 자리에 있던 몇몇은 도끼가 그저 번쩍하더니, 순간이동 하듯 꼬리를 쳐낸 결과만 봤을 뿐이었다.

만티코어의 발, 이빨, 꼬리, 날개 그 무엇보다 빠른 도끼질이다.

튕겨 나간 꼬리 끝에서 녹색 점액질이 튀었다.

꼬리를 쳐낸 직후, 마리의 도끼는 쉼 없이 움직였다.

곧 도끼질, 참격이 그녀 앞에 둥근 원을 만든다. 그리고 그 원은 기다릴 것도 없이 만티코어에 몸에 닿았다.

넘버링 20 만티코어.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인베이더 중 하나.

순살(瞬殺)이다.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로 화한다.

“뒤로.”

마리가 도끼를 털며 말하자, 대원이 그제야 뒤로 돌아 대열에 합류했다.

“……존나 멋있어. 지렸다.”

그걸 지켜보던 동료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전투 헬멧 바이저 너머로 보이는 또랑또랑한 눈과 콧대.

불멸자의 외모만큼은 아니지만, 귀엽다고 하기 충분할 이목구비다.

하지만 그 손속과 도끼는 귀엽다고 할 수 없다.

귀여움과 과격함.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가 묘하게 조화롭게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미소녀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분위기였으니.

이 자리에 있던 몇몇 이들이 후일 추종자가 되는 게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리라.

팅.

두 자루 도끼를 교차해서 때린 박마리는 다시 움직였다.

전장 곳곳에 이들이 있었다.

NS가 진짜 규격 외라 불리게 만드는 이들.

광익은 오늘 전투에서 그 누구도 죽게 둘 생각이 없었다.

“시발, 뒈질 뻔했는데, 넌 저게 눈에 들어오냐?”

살아남은 직원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들며 말했다.

“넌 이게 눈에 안 들어와?”

동료가 혀를 찼다.

부인할 수 없는 물음이다.

사실 증기를 뚫고 나오는 모습이 뇌에 각인 됐다.

“아니, 잘 들어와. 난 진짜 살짝 지렸거든.”

말하며 살아남은 직원이 낄낄 웃었다.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지린내가 풍기는 것 같았다.

크게 뚫린 길이 금세 인베이더 무리에 막힌다.

하위 인베이더가 썰리자, 고위 인베이더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휠 나이트와 리빙 아머는 하도 자주 봐서 정들겠다.

그러자 상대하기 어려운 놈들도 드문드문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은 만티코어, 그다음에는 유니콘이다.

순결의 상징이라는 놈이, 어째 다리 사이로 뭔가를 덜렁거리며 뛴다.

잡히면 끝이 좋지 않은 놈이다.

생김새 때문에 유니콘이지, 놈이 하는 짓은 어떤 것도 유니콘이란 세 글자와 어울리지 않는다.

저 인베이더는 다른 생명체에 기생충을 심는 놈이다. 다리 사이에 매달린 촉수로 그렇게 한다.

어지간하면 스치기도 싫은 놈이다.

결론만 말하면 부하를 거느리는 커맨더 형태의 괴물이라 하겠다.

유니콘 주변으로 기형 생명체가 한 다발이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총알 세례로 전부 안녕이다.

만티코어는 마리가 나서서 슥삭 했고.

기남이는 레이더의 역할에 충실히 하는 중이다.

김근육과 정직이의 모습도 언뜻 보였다.

위험할 것 같은 곳.

상대하기 어려운 인베이더가 나오는 곳.

그런 곳만 중점적으로 틀어막는다.

그럼 아무도 죽지 않는다. 난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게 게임이라면 미션 난이도가 극악이다.

<이제 막 훈련받은 훈련병 100명을 데리고 최악의 전장에 데려가서 한 명도 죽이지 않기.>

게임 만든 새끼 멱살 잡고 싶은 미션인데.

이게 또 그렇게 어렵진 않다.

“어려울 건 없지.”

팬더 형도 말했었다.

우린 그걸 실현했다.

싸우는 놈들은 총과 칼로 최대한 무장시키고.

그래도 위험에 빠진 건 특수 부대가 구한다.

개념을 나누기 위해 특수 부대인 거지, 맨날 보는 얼굴이다.

중봉이 형이랑 엄마, 과외 선생 둘이랑 등등.

모세의 기적처럼 뚫린 길 앞.

모든 건 잘 돌아간다.

이제 기지를 건설하고 마무리하면 끝이다.

난 이리 잘 돌아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쿵쿵 뛰었다.

줄넘기 뛰듯 심장 박동이 멈추지 않는다. 육감을 넘어선 무언가, 그러니까 예감에 가까운 직감이다.

이 길 너머에서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

그리 생각하며 먼 곳에 시선을 두는 순간이었다.

열린 길 너머, 황금빛 광채가 솟았다.

위로 쭉 뻗은 빛은 보는 그대로 장관이었다.

“크워어어어어어!”

빛과 함께 터진 외침.

강력한 살의, 살기가 담긴 하울링이다.

그 외침이 가슴 언저리 한쪽을 시원하게 후볐다.

찡하다. 심장이 반응한다. 솜털이 쭈뼛 선다.

하울링만으로 판단이 섰다.

네임드 급의 괴물이다.

아마도 그동안 방치되어 온 로스트 노쓰를 지키는 왕이리라. 예감이 그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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