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43화 (343/488)

343. 장비빨

문제가 있다면 파악한다.

이후, 해결한다.

간단한 일이다. 문제만 정확하다면 더 없이 ‘간단한’ 일이었다.

심플 이즈 베스트.

문제를 직시하고 단순하게 다가간 것, 그게 내가 한 일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경찰청 소속, PWAT 팀장 이지혜.

이지혜는 자신의 명함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창가 너머에서 달빛이 은근히 들어와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은근히 필요할 땐 연락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현재 세상을 가장 달구는 남자에게서 온 연락이다.

‘비서를 시켜도 될 것 같은데.’

항상 직접 연락한다. 이건 관심일까.

그동안 예쁜 놈, 잘생긴 놈, 돈 많은 놈, 돈 없는 놈, 몸 좋은 놈, 둔한 놈, 예민한 놈, 다 만나 봤다.

그리고 그 수많은 만남 중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기에 그녀는 의심했다.

‘어장 관리인가?’

볼 일 있을 때만 오는 연락임에도 이지혜는 이게 어장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연락은 로스트 노쓰의 관한 정보 요청이었다.

잃어버린 북쪽에 관한 정보는 군에 가장 많지만, 경찰청에도 꽤 있다.

로스트 노쓰 진입 시 행동 강령을 만들기 위해 눈먼 돈을 쏟아부어 만든 연구 자료였다.

기밀? 아니다. 기밀 축에도 못 낀다. 어지간한 보안 등급이면 꺼내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청장의 허락을 맡을 필요도 없었다.

이지혜는 어장 관리자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빚진 거야.”

“밥 살게요.”

“밥 말고.”

“술 살게요. 독한 거로.”

눈치가 빠르다. 이지혜는 전화기 너머 상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광익이 해맑게 웃었다.

수수하게 생겼으나, 좌우대칭이 맞는 준수한 얼굴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달만 같이 지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생각만 했다.

저 남자는 이제 자신이 올려다볼 수 없을 만큼 높이 갔다.

한 기업의 수장이자, 세최특, 네임드 슬레이어.

이름 뒤에 붙은 사족이 길다. 길어졌다.

이지혜는 최근에 자꾸 주변 남자와 광익을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니 눈에 차는 놈이 있을 턱이 있나.

‘역시 처음 만났을 때, 자빠뜨렸어야 했는데.’

이지혜는 생각을 접었다.

어장에 갇힌 물고기의 세상은 좁다.

유일부대장은 정보 요청서를 책상 위에 던지고 몸을 뒤로 젖혔다.

의자 등받이가 부드럽게 뒤로 젖혀졌다.

부대장은 반쯤 누운 채로 입을 열었다.

“이거 요청서 맞지?”

“맞습니다.”

참모가 답했다.

“격의가 없네.”

격식도 없다. 그렇다고 공식 루트로 온 것도 아니다. 이메일 한 통이 전부였다.

그걸 뽑아서 가져온 게 참모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겠죠. 딱히 기밀 사항도 아니니까.”

“그래서 이걸 들어줘야 하나?”

“들어줘야 합니다.”

참모는 머리가 좋다.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하여 내린 결론일 것이다.

꼭 참모의 조언이 아니라도 부대장도 안다. 무시는 무리다. 들어주지 않을 이유도 없다.

NS의 유광익.

그자가 직접 신세를 지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도 없다.

“들어줘.”

요청 내용은 로스트 노쓰의 관한 것.

군부대는 기밀에 관련된 사항을 빼고 다 보냈다.

이걸 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참모와 부대장은 같은 생각을 했다.

사실 그리 깊게 생각할 것도 고민할 거리도 아니었다.

노리는 바가 너무 명확했다.

‘잃어버린 북쪽을 다시 찾는다?’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북쪽을 솎아 내고 정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나, 그 안에서 얻어 낼 건 너무 적다.

그러니 비효율적이고 쓸모없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본인이 하겠다면 어쩌나, 하라고 둬야지.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아니지. 오히려 한 발 걸쳐, 신세를 더 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는 김에 북쪽에서 작전 수행 경험 있는 팀 붙여 준다고 하고.”

그리고 이 친절은 거절당했다.

인력은 충분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리 만만하진 않을 텐데.’

특수종 부대가 들어가도 꽤 고생하는 곳이다.

인력이 충분하다는 말, 그 말에서 느껴지는 자신감.

그 자신감의 저변에는 무엇이 있나.

이 또한 깊은 고민이 필요 없다.

정규직 채용에서 과한 조건을 걸었다고 들었다. 그들을 군대처럼 키운다는 소문도 들었고.

‘그래도 일반인으로는 어렵지.’

자신도 특수부대를 투입해서 뚫으려 한 적이 있었지만, 중간에 비용이 감당이 안 돼서 관뒀다.

요즘 말로 하면 가성비가 쓰레기였다.

그걸 일반인 부대로 뚫어?

특수종이 아니라 일반인 부대로 해결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가 될지도 모른다.

솔직히 누가 아나.

저 잃어버린 북쪽에 ‘잃어버린’ 보물이 잠들었을지.

이미 포기한 지 수년이 지난 땅이기에 뭐가 있을지 모를 곳이지 않나.

물론 복권에 당첨되길 바라는 것만큼이나 확률 적은 이야기이기도 했기에.

“그럼 놔둬.”

국경을 책임지는 유일부대장은 손을 놨다.

로스트 노쓰의 블링크 홀 현상은 해결이 안 된다.

덕분에 인베이더가 끊이지 않는 땅이 됐다.

그 외에도 산적한 문제가 산더미다.

혹자는 말하기도 했다.

로스트 노쓰 내부에는 네임드급의 괴물이 숨어 있을 거라고.

고이고 고여 버린 북쪽의 땅은 이제는 언터처블의 공간이 되었다고.

“이거 꽤 해야 하냐? 진짜? 진심으로?”

“화이트홀이 있다고 해서 그게 꼭 돈이 된다는 건 아니잖아?”

“너도 알잖아. 이거 도박이야, 너 도박 좋아했냐? 차라리 어디 가서 카드를 쳐. 카드 쳐서 회사 날려 먹을 일은 없으니까.”

클리닝 프로젝트의 시작 당시, 중고 형은 피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실제로 눈이 빨갛게 충혈돼서 뻑뻑해진 눈가를 비비며 말해, 진짜 피눈물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난 그런 중고 형의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다. 우리 중고 형. 다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아니, 시발! 하지 말자고.”

“안 들려요. 이미 끝났어.”

옆에서 미호가 거든다.

“너도 이제 아는구나. 눈깔이 돌아갔어. 그럼 귓구멍을 막더라고.”

옆에서 중봉 형이 믹스 커피를 호로록 마시며 한 마디 덧붙였다.

“광익이 눈깔 돌아갔네.”

셋이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드물게 미호가 미소를 보이고 중봉 형이 제가 말해 놓고 낄낄 웃었다.

“농담으로 넘어갈 때냐고.”

중고 형은 진짜 울었다.

대성통곡은 안 했는데, 눈물 찔끔 맺힌 거 내가 봤다.

“이제 안정적으로 돌아가나 싶었더니.”

작은 회의실 안에서 난 묵묵히 중고 형을 위로했고.

팬더와 미들 픽은 낄낄거렸고.

미호는 묵묵히 다음 스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보 수집의 단계였다.

막 정규 채용이 끝나고 훈련에 돌입하던 때였다.

홀로그램 TV에서는 블랙홀의 변화에 관한 뉴스와 다큐멘터리가 한창 쏟아지는 중이었다.

겹문 현상에 이어, 또다시 격변이 일어났다고.

격변은 격변이었다.

공식적으로 홀이 두 가지 형태로 나뉘었으니까.

하나는 스탠다드.

이제까지의 홀과 같다. 겹문 현상이 있는 걸 듀얼홀, 이전 버전을 싱글홀이라고 구분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구멍은 구멍이다.

그리고 새로운 버전이 나왔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누가 때 되면 업데이트라도 하는 것 같다.

이번에 나온 건 플랜트(Plant)홀.

홀 바깥에서 기괴하게 생긴 내장 덩어리 같은 게 인베이더를 쏟아 내는 형태다.

이전에 내가 때려잡았던 이상 현상과 같다.

인베이더를 처리하지 않고 그냥 놔두면 팽창하는 홀이 있다. 팽창이 끝나면 플랜트 형태가 되기도 했기에 생소한 개념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에 나온 건 나올 때부터 플랜트, 공장 형태인 게 다를 뿐이지.

그래서 인류가 또 다른 위기를 맞았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또 아니다.

인류의 힘은 이미 어지간한 걸 해결할 무력을 갖췄다.

네임드가 튀어나왔는데 내가 없어도 네임드를 잡을 수 있다. 일전에 테러범이랑 한바탕 놀고 난 뒤, 느낀 점이다.

세상에 숨겨진 강자는 꽤 있다는 것.

어쨌든 클리닝 작전은 중고 형 말대로 반쯤은 도박이다.

화이트홀 너머의 이세계가 용암 바다 따위면, 쪽박이다.

그리고 만약 이게 쪽박이면 타격이 있다. 회사가 자금난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나.

인베이더가 저리 판치고 날뛰는 걸 두고 보기 싫은걸.

그리고 화이트홀이 망해도 대안은 있다.

길은 언제나 있는 법이니까.

“성공하면 초대박이에요. 넘어가세요.”

미호가 중고 형을 달래자, 그제야 형이 숨을 골랐다.

“회사 관두고 싶다. 명이 줄어드는 기분이야.”

“형도 사직서 가슴에 품고 다녀요? 주세요. 수리해 드림.”

반쯤 장난으로 말했는데, 이 말에 중고 형이 날 죽일 듯이 노려봤다.

뭐, 사소한 일이었다.

훈련이 이어지는 동안, 난 경찰, 행안부, 군대, 단군에 정보를 요구했다.

다들 수월히 줬다.

누군가는 술을, 누군가는 약속을 얻고자 했지만, 적당히 넘어갔다.

거, 별 쓸모도 없는 정보 주면서 난리는.

하물며 중요한 건 다 빼놓고 주면서 말이야.

원하면 전뇌 공주를 써서 탈탈 털 수 있지만, 이런 일에 그 꼬맹이의 수명을 써서 되겠나.

사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불필요하다고 느낀 이 정보가 나한테는 더 중요했다.

“블링크 홀, 인베이더의 범람, 해결되지 않은 요소만 가득.”

지도에 선을 긋는다.

훈련장으로 쓰던 곳은 전진 기지가 됐다.

그곳을 토대로 그어진 선.

로스트 노쓰를 가로지르는 선이다.

목적지는 화이트홀이 있는 곳이며, 우리가 할 일은 길을 여는 거였다.

일반인 부대로 이곳을 뚫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기에.

난 목숨 대신 돈을 걸었다. 쏟아부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돈은 충분한가, 고민해 보라.

돈이 충분하다면 어지간한 문제는 해결이 될 테니.

그러니까 돈을 바른 장비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채웠다.

광학병기는 아니다. 레이저 블레이드는 레이저 소총 따위는 단점이 너무 명확하다.

돈이 드는 것과 별개로 장치의 열화가 심해, 지속 시간이 개판이었다.

그리고 광학병기보다 지금 개발한 병기 쪽이 돈은 더 들었다.

그 결과다.

10개 조로 편성된 부대원이 전후좌우 모든 방향을 겨누고 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투두두두두두두두두두둥!

둔탁한 파열음 따위가 총열에서 폭발하듯 쏟아졌다.

그리고 그 모든 소음은 한발 늦게 귀에 도달했다.

음속을 아찔하게 넘은 총탄이다.

다가오는 인베이더의 머리에 구멍이 뻥, 몸통에 구멍이 뻥 뚫렸다.

개중 머리통이 그대로 터져 나가는 놈들도 있었다.

이게 바로 현 NS 전투 부대의 기본 무장 중 하나.

레일건(Railgun) 소총이다.

전기의 힘을 이용해 탄환을 발사하는 방식으로 탄환이 날아가는 모습이 열차가 가속하는 방식과 비슷해 붙은 이름이 레일건이다.

전자기 소총 따위로 불러도 되고.

하여간 발사 과정에서 강력한 자장이 발생하기에 총신을 자주 갈아 주거나, 수틀리면 가열된 총신이 폭발하는 위험한 무기다. 무기였다.

지금은 아니다.

강푸름은 아다만티움 합금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총신을 더럽게 단단하게 만들어 음속을 넘는 탄환이 날아가도 견디게 제조했다.

대신 좀 무겁지만, 왕관을 쓰는 자 무게를 견디라는 말도 있지 않나.

지금 학살 수준으로 인베이더를 상대하기에, 그 무게를 견디기 즐거울 것이다.

지켜보는 즐거움도 꽤 있고.

“3조 바다, 근거리 전투 돌입.”

정찰조 역할이자, 레이더 역할인 기남의 목소리다.

예민한 불멸자의 감각이 사방에 다가오는 적을 감지했다.

3조가 곧바로 반응했다.

전원 허리춤에 꽂아 둔 두툼한 칼날의 전투 나이프를 뽑는다.

칼날이 검다. 빛을 머금는 흑색이다.

저 또한 과학이 이뤄 낸 마법이다.

바닥에서 암석 거인이 일어났다.

저게 인베이더 몇 번이더라.

하여간 일어난 거인의 주먹을 피한 두 명의 조원이 상대의 다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단단한 돌과 얇은 칼날이 만난다.

칼날이 두부를 썰 듯, 다리를 파고든다.

스거억.

작은 소음이 뒤따랐다. 불똥 따윈 튀지도 않았다.

다리를 가르고 나온 칼날이 보였다.

얇디얇다. 칼날이 휘청거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저리 얇은데도 곧게 서 있다.

저 또한 아다만티움 합금.

처음에 아다만티움 합금 개발에 기뻐하던 연구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난 그게 왜 그렇게 신나는 일인지 몰랐지.

이런 거 뚝딱뚝딱 만들어 낼 줄 알았으면 나도 같이 신나 했을 거다.

돈은 수십억 단위가 훌쩍 넘게 들었지만, 그 역할은 톡톡히 했다.

저 칼날은 기본 무장 두 번째.

단분자 커터란 물건이었다.

실제로 모든 걸 베는 칼은 될 수 없으나, 강푸름은 한없이 그에 가까운 나이프를 만들었다.

넘어진 바위 거인 위로 누군가 올라가 머리통에 총구를 들이댔다.

모든 레일건 소총은 그 모태가 내 커스터마이징 무기와 같다.

발사 방식이 두 개란 거다.

쏘아지기 직전, 난 레일건 총구 끝에서 뿜어지는 빛 따위를 봤다.

그리고 빛은 터졌고.

꽈-앙.

소음은 뒤따라 울렸으며.

소리가 닿기도 전에, 괴물의 머리통은 깨졌다.

내려선 NS의 신입 직원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인베이더는 많았다.

참 많았으나.

퍼버버버벙!

전부 대가리가 터지기 바빴다.

전 대원은 헬멧에 내장된 광역 판독기로 인베이더가 다가오는 걸 미리 알았고.

소총과 칼로 쏘고 썰었다.

완벽했다.

내 앞으로 길이 뚫렸다.

인베이더가 범람하는 로스트 노쓰 사이로 뚫린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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