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 클리닝
“너 더 마른 것 같다.”
“일이 많아서.”
한때 비만 불멸자였던 강푸름이 이제는 삐쩍 곯은 불멸자가 되었다.
마른 팔뚝 위로 전완근이 도드라져 보였다.
서포트하는 다른 연구원 안색도 피로가 역력하다. 어두운 피부톤이 그걸 증명했다.
“몸 사려 가면서 하세요.”
“받은 만큼 하는 거지.”
강푸름이 내 말을 잘랐다.
“다른 연구 시설에서는 상상도 못 할 대우를 받고 있다. 이 정도는 다들 좋아서 할 거야.”
의외로 푸름은 이런 부분에서 가혹했다.
근데 이게 또 매력적이라고 하는 연구원이 있으니.
외모지상주의 같으니라고.
물론 난 외모지상주의를 욕하지 않는다. 내 얼굴이 어디 빠지지 않는다니까?
요즘 세상은 수수한 미남이 더 잘 먹히는 법이다.
“……설마요.”
부소장이 푸름의 말에 고개를 저었는데 내가 뜨끔했다.
그 설마가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이거.”
푸름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한테 물건을 건넸다.
새로운 기어, 정확히는 내 커스터마이징 기어를 만들었다고 했었다.
푸름이 준 건, 묵직한 구슬이었다.
야구공보다는 조금 작지만, 무겁다.
“피를 묻혀 봐. 그리고 던져.”
이전처럼 긴 설명은 없다.
그가 말한 대로 했다.
피를 묻히고 구슬을 툭 던졌다.
날아간 구체가 딱하고 벽을 때리고 튕겼다. 구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각도로 휘어지더니, 호선을 그리며 내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
오.
한 번 더 해 봤다.
훙, 딱, 착.
자동으로 돌아오는 핸드 불릿이다.
묵직함을 보니, 어지간해서 부서지지도 않을 테고.
다만, 이 과정에서 난 뭔가 구체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 이 돌멩이 친구가 날 지배하려 하는 것 같았다. 마음이 침범당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따위에 당하진 않는다.
푸름을 바라보자, 그가 입을 연다.
“맞아. 어지간히 정신이 올곧지 않으면 먹히겠지만, 너는 괜찮을 거라 믿었다.”
이리 진중하게 말하니, 농담 한마디 건네기 어려웠다.
난 손에 쥔 구체를 살살 만지다가 문득 할아버지를 보고 배운 걸 응용해 봤다.
손에 착 달라붙은 구체에 말 대신 근육으로 말을 걸었다.
말 안 들으면 쥐어서 깨 버린다.
의지를 담아 전한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마음먹고 그 기세를 전하는 건, 야생의 살기를 의도적으로 뿜는 것과 비슷하므로.
그리고 이건 먹혔다.
아주 잘 먹혔다.
“이세계에 있는, 사람 피를 마시면 따라붙는 암석초에 아다만티움으로 형태를 고정해서 만든 거야. 사이오닉 에너지가 필요해서 축능석을 쪼개서 넣기도 했다. 컨트롤이 너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자주 손을 대서 네 기운을 익숙하게 물들이면 그나마 좀 나아질 거다.”
줄줄이 푸름이 설명을 이어 갔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미 익숙해졌다.
더욱이 필요한 건 다 알았다.
던지면 돌아온다는 거.
“그리고 그건 재미 삼아 만든 거야.”
푸름이 말한다. 그가 준비한 선물은 고작 핸드 불릿 따위가 아니었다.
그래, 세컨 기어가 준비되었다고 불러 놓고 돌멩이 하나 주고 끝내면 서운하지.
임팩트에 비하면 이 돌멩이는 장난감 수준이었다.
사람 정신을 좀먹으려고 아득바득 난리 치는 것치고는 효율도 그리 좋지 않고.
이후 푸름이 꺼낸 물건을 본 나는 말을 잃었다.
“이 미친 새끼.”
그리고 극찬을 보냈다.
“여기까지가 1조.”
불명예 전역자와 파키스탄에서 온 불법 체류자, 혼혈 불멸자 포함 총 열 명이 한 조였다.
2차 면접 통과자다.
“통과하면 알 거라면서, 전혀 모르겠는데.”
조원 중 하나가 떠들었다.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멍든 여자다.
보호 장구 위로 맞았는데도 저렇다.
“많이 맞은 순서대로 통과인가?”
팔이 부러졌던 조원이다. 곧바로 치료받아서 지금은 움직이는 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급속 재생 치료라니.
돈이 무지하게 드는, 재벌이 아니면 구경도 못 하는 의료 기구와 의료진이 투입됐다.
아무리 금전 개념이 없다고 해도 이건 좀 과하다고 느낄 정도다.
그러니 NS가 이 일에 얼마나 무게를 두는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팔이 부러진 조원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다들 어디 한 군데 박살 나거나 기절한 사람이 태반이다.
“난 한 대로 끝났어.”
혼혈 불멸자가 말을 툭 뱉는다.
그는 훌륭한 실력을 보였다. 몸을 굽히고 피해서 버텼다. 한 방에 기절했을 뿐.
“몸 튼튼한 순서로 뽑은 건 아닌 것 같고.”
그가 말을 이었다.
조원 중 하나를 보며 한 말이다.
예순은 훌쩍 넘어 보이는 노인네가 조원 중 하나로 껴 있었다.
이쪽도 멀쩡한 몸은 아니다. 갈비뼈가 나가서 몸에 보호대를 차고 있다.
급속 재생 치료를 했지만, 아직 통증이 남았는지, 숨을 쌕쌕 내쉬고 있다.
중사 출신 남자는 조원과 현 상황을 살피며 조용히 숨을 골랐다.
면접이 끝나자마자 끌려오다시피 왔다.
그저 포기할 수 없어 버티고 버틴 거다.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살아남는다.
그 하나만 생각해도 벅차다.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곧 1조로 호명된 이들 앞에 누군가 다가왔다.
면접관이었던 남자다.
중사는 그의 체형을 기억했다. 자신을 신나게 두들겨 팬 사람이었다.
“면접으로 악감정 품은 사람 없겠죠? 그럼 곤란합니다.”
면접관은 전부 얼굴을 가렸었다. 곧 보호 장구에 해당하는 헬멧을 벗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눈매가 가지런하고 피부에 광이 났다. 적당히 흐른 땀이 머리를 적셨는데 광고의 한 장면 같았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잘생긴 남자였다.
“제 이름은 박대기.”
그가 말을 잇는다. 다들 그의 입을 바라봤다.
제 이름을 밝힌 면접관이 이어 말한다.
“면접 따위로 악감정을 품으면 이후에는 절 죽이고 싶어질 테니까 한 말이었습니다. 감정 따위 가질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부터 여러분은 칼입니다. 총입니다. 무기입니다. 전 여러분을 군인이자, 전투 요원으로 바꿀 겁니다. 네.”
말하는 도중이다. 혼혈 불멸자가 손을 들었다.
“훈련에 낙오되면 어떻게 됩니까?”
갈비뼈가 나간 노인을 염두에 둔 말이다.
“아, 이걸 먼저 해야 했는데 전 지금부터 면접관이 아니라 교관입니다. 나이를 떠나 지금부터는 말을 놓겠습니다. 이의 있습니까?”
다들 답이 없다.
이제는 면접관이 아닌 교관이 된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손 내려, 새끼야. 내가 질문해도 된다고 했나? 한 번 더 손을 들면 그 손모가지를 잘라서 네 목구멍에 쑤셔 박아 주마.”
…….
“대답은?”
“넵.”
“예.”
“대답은 하나로 통일한다. 같은 박자로 네! 강하고 짧게, 다시 대답.”
“네!”
우렁찬 대답이 이어졌다.
“벌써 낙오할 걱정을 해? 그런 정신 상태로 면접을 통과했나? 널 통과시킨 면접관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1조 10번, 네 번호다. 이 조에서 낙오자가 나오면 이제부터 네 책임이다. 이의 있나?”
혼혈 불멸자는 눈치가 빨랐다. 손을 드는 대신 입을 열었다.
중사는 그 누구보다 분위기 파악이 빨랐다.
당연했다. 이건 군대 훈련소 분위기와 흡사했으니.
‘훈련소라니.’
그는 그제야 NS가 사람을 뽑은 기준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포기하지 않을 자질.’
한순간 면접관의 태도가 머릿속을 스친다. 그는 한결같았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도로 괴롭혔다.
그리고 면접을 그리 봤다면.
“반항했으면 재밌었을 텐데.”
교관이 입맛을 다셨다. 눈이 뱀처럼 사이하게 빛났다.
반쯤 미친놈으로 보이기 충분했다.
통과한 열 명의 가슴에 시린 겨울바람과 같은 차가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래, 면접을 그렇게 봤다면 앞으로 훈련도 매한가지다. 그보다 심하면 심했지, 가벼워지진 않을 것이다.
그건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더없이 정확했다.
박대기, 한때 불멸특수대였으나, 광익 덕에 목숨을 구한 뒤, NS에 입사한 불멸자다.
그는 열 명의 조원을 보며 결심했다.
적어도 자신이 받은 훈련 강도의 반은 전해 주리라고.
‘지옥이었지.’
NS의 훈련은 유황불이 불타며 가시가 전신을 감싸는 지옥과 다름없었다.
인사팀장은 말했다.
입사한 이들이 최소한 기본은 해야 한다고.
그리고 NS의 기본은 그 수준이 꽤 높았다.
“그럼 산책부터 하자고.”
박대기는 말하며 몸을 돌렸다.
그 뒤를 열 명이 주춤거리며 따라왔다.
“전부 열 맞추고 발도 맞춘다.”
엉거주춤하게 따라오던 이들이 바삐 발을 놀렸다.
박대기는 딱히 오와 열을 맞추라 강요하지 않았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되리라.
지원자는 한 줄로 뒤따라왔다.
박대기는 걸었다.
첫 번째 코스, 훈련장까지의 이동이다.
박대기는 그렇게 했다.
그들은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지금부터 오롯이 걸음으로만 산과 강을 넘어, 로스트 노쓰 근처 훈련장까지 이동해야 할 테니.
보통 고생이 아닐 것이다.
그리 시작된 훈련이다.
걷고 또 걷는다. 중간중간 물자를 보급받는 시간을 제외하면 걷는 게 전부다.
도착한 훈련장에서도 휴식은 없었다.
“한가하게 배 깔고 누워 쉬게? 그럴 시간에 칼이라도 한 번 더 휘둘러.”
박대기는 지원자를 몰아쳤다.
훈련이 시작된다.
칼을 휘두른다. 총을 쏜다. 웨이트 트레이닝, 유산소 트레이닝, 미친 듯이 몸을 굴린다.
중사도 오버 트레이닝에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다.
예순이 넘은 나이로 버틸 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노인은 버텼다.
구역질하고 팔다리 근육이 파열되고 실핏줄이 터지면서도 버텼다.
나중에는 반쯤 정신이 해롱거리기까지 했다.
혼혈 불멸자가 노인 곁에 붙었다.
“혈액형 뭡니까? 마셔요.”
그는 제 손목을 그어서 노인 입에 피를 붓기도 했다.
“불멸자의 피요. 정신이 번쩍 들걸.”
“고맙네.”
“낙오하지 마요. 아저씨가 낙오하면 나 죽을지도 몰라.”
중사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른다.
박대기라 자신을 밝힌 교관은 변태 사이코패스였다.
하루하루 자신들을 말려 죽이고 싶어 환장했다.
그 미친 자는 정말 그럴지도 몰랐다.
“난 한 입으로 두말 안 해.”
이런 말을 입에 붙이고 사는 놈이다.
1조를 괴롭힐 때 교관의 눈에는 희열이 엿보였다.
그건 가학성이다. 중사는 그리 생각했다.
일단 살아남는 게 전부다.
그렇다고 다른 조 교관이 멀쩡하다는 소리도 아니다.
다 비슷했다.
특히 얼음장 같은 얼굴을 한 여자의 조에서는 매일 곡소리가 났다.
갱생을 위한 대련이라고 했던가?
전신에 용이나 호랑이 따위를 그린 남자 무리가 모인 조였는데.
거기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곡소리가 나왔다.
이곳은 지옥이다.
중사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버텼다. 버텨 냈다.
애초에 이런 위인들만 모아 뒀다. 그 효과는 확실했다.
끝내 그들은 낙오 없이 견뎌 냈으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세기 힘들다. 그만큼 정신과 육체를 가혹하게 달군 시간이었다.
어느 날, 박대기 교관이 앞에서 담배를 꺼냈다.
“피울 사람?”
혼혈 불멸자만 손을 들었다.
그가 앞에 나서자, 교관이 담배를 직접 물려 주고 불도 붙여 줬다.
“맛이 어때요?”
교관이 말을 높였다.
“네, 죽여 줍니다.”
“오늘로 훈련은 끝납니다. 이제 실전에 투입되는데, 실수하지 않으시겠죠?”
마지막 물음을 던질 때, 교관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1조가 답했고.
곧 그들에게 무기가 지급됐다.
칼 한 자루, 총 한 자루, 전신을 감싸는 전투 슈트까지.
근접 무기로 받은 칼은 칼날이 검고 얇았다. 다만, 얇은 것치고는 무게감이 있었다.
총은 일반적인 소총을 닮았지만, 총신이 더 길었고 역시 무게감이 느껴졌다.
보통의 소총보다 배는 무겁다. 그래도 문제는 없다.
그동안 이것보다 무거운 소총과 칼을 들고도 산을 개처럼 뛰어다녔다.
“출진.”
박대기는 교관에서 곧 조장이 되었다.
그들은 1조가 되었고 전진했다.
헬멧을 쓰니, 시야 한쪽에 감지 장치가 보였다.
그동안 훈련용으로 여러 번 사용했기에 당황하는 사람은 없었다.
곧 레이더에 감지되는 것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적 발견. 개체 수 셋.”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둘이 말하고.
원거리 타격 임무를 맡은 셋이 총구를 겨눈다.
“근접 타격은 배제, 전원 사격 준비.”
조장 박대기가 말한다. 곧 모든 조원이 총구를 들어 겨눴다.
곧 적이 보였다.
쿠르르르!
인베이더, 스톤 비스트 세 마리였다.
돌로 만든 네 발 달린 괴물이다.
보통이라면 5.56mm 탄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일반인이라면 보이는 순간, 줄행랑을 쳐야 하나.
이들은 이제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격발.”
조장의 말에 그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다가오는 스톤 비스트 세 마리의 전신에 구멍이 뚫렸다.
난 그걸 보며 통쾌함을 느꼈다.
이걸 위해 들이부은 시간과 돈이 얼마인가.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확연하게 나오는 중이었다.
“1조 타격팀 전진합니다.”
팬더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전의 시작이다.
미션 명은 클리닝, 청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