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 첩자를 피하는 방법
버티느냐, 버티지 못하느냐.
난 그걸 보고 싶었다.
지원자 대부분이 간절한 건 알겠다.
하지만 그 간절함의 정도가 다 같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이곳에 입사해서 해야 할 일은.
보통 정신 상태로는 어렵다는 게 내 판단이다.
뭐, 나만의 판단은 아니고.
경영진이라 부를 만한 이들이 다 동의했다.
“노숙자를 데려왔어?”
면접 상황을 총괄하는 동훈이 형이 다가왔다.
귀에 속삭였으나, 할아버지는 불멸자다.
“이 눈탱이 이상한 놈이? 누가 노숙자여?”
“귀가 밝으시네.”
팬더 형이 멋쩍게 웃더니, 날 바라봤다.
“밖에 면접은 어떻게 된 거냐?”
“감별사를 새로 하나 구해서.”
말하며 눈으로 노숙자 노인네를 가리키자, 팬더 형이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노숙자 노인네는 겉으로 보면 일반인처럼 보인다.
특수종의 냄새를 일절 풍기지 않는다.
“왜? 뭐?”
눈길을 느낀 할아버지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일단 좀 씻으시죠.”
팬더 형은 불멸과 변신의 혼혈.
다만, 불멸보다는 변신의 피가 짙다. 고로 후각이 뛰어나다.
그리고 치매 노인네 그 자체를 연기하는 할아버지를 곁에 둔 난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후각을 차단했다.
“냄새는 무슨.”
불멸자는 예민하다. 잠깐 씻지 않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에 치를 떤다.
예민함이란 자신에게도 청결을 강요하는 법이니까.
그런데도 용케 이렇게 살았다.
할아버지는 사탕이나 달라며 까맣게 변색된 치아를 들이댔을 뿐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난 은근히 할아버지께 물었다.
“쟤들 어떻게 구분한 거예요?”
솔직히 궁금했다. 그래, 말로 하는 재주는 그렇다 치자.
그거로 의심 가는 애들을 완전히 솎아 낸 건 알겠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지원자 모두에게 말을 걸진 않았다.
할아버지는 나름대로 사람을 구분하고 의심되는 이들만 짚었다.
나머지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특정했고 효율적으로 말에 기운을 싣는 짓을 했다는 거다.
그 물음에 할아버지가 빤히 내 눈을 쳐다보다가 입술을 쭉 내밀며 답했다.
“난 내가 만든 건 안 잊어버려.”
불멸교는 암살 명가.
그들은 칼을 잘 숨기고 숨긴 칼을 잘 쓴다. 프로메테우스나 이시스보다 확연히 뛰어난 장점이다.
프로메테우스나 이시스 출신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
아니, 그들은 아예 입사 시도도 안 했을 거다.
이미 내가 탈탈 털어놨으니까.
하지만 불멸교는 달랐다. 그들은 중봉이 형이든, 나든 눈을 속일 자신이 있는 거로 보였다.
불멸교 스토커인 할아버지만 아니었다면 그랬을 거다.
솔직히 나도 말에 기운 싣는 거 없었으면 못 알아봤을 테니까.
그만큼 완벽하게 자신을 감춘 놈들이다.
말한 뒤, 할아버지는 고개를 빼서 내 얼굴을 가까이에서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근데 너 누구였더라?”
이놈의 치매 코스프레.
* * *
불멸교에는 긴 시간 세뇌를 통해 만든 첩자가 있었다.
전부 혼혈 불멸자로 각 경찰이나, 기타 특수종 관계 부처에 잠입시킨 이들이기도 했다.
실제로 첩자 중 하나는 행안부의 장관 비서가 되기도 했다.
특징을 꼽자면 이들은 전부 개인적으로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을 두고, 그 선생의 말이라면 백두산 천지에서 용암이라도 퍼올 수 있다는 거다.
세뇌가 이렇게 무섭다.
당연히 선생은 불멸교가 준비한 사람이고 그들은 이들에게 암살 기술을 가르쳤다.
결론만 말하자면 불멸교의 숨겨진 칼이라는 이 첩자 무리는 거짓말 탐지에도 걸리지 않고 마법에도 색출되지 않는다.
우연이 겹쳐 작정하고 의심한다고 해도 뒤가 깨끗해 쉬이 발각되지 않는 불멸교의 비장의 한 수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첩자가 전부 탈락이다.
단 한 명도 통과하지 못했다.
각양각색의 인재가 완벽하게 거절당했다.
“전부?”
불멸교주는 놀라 되물었다.
그 앞에 선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초대교주가 합류했다고 합니다.”
여자는 한때 불멸특수대 안에 잠입했던 첩자다.
그 이름은 최미남.
주문을 다룰 줄 아는 불멸교의 사도이자, 프로메테우스와도 연관된 이다.
“그 양반을 진즉에 죽였어야 했어.”
교주가 어금니를 빠득빠득 갈았다.
불멸자 답지 않게 흥분이 잦은 위인이다.
그렇다고 머리가 안 굴러가는 쪽은 아니니.
“더 자극하지 마.”
교주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최미남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녀 자신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나, 지금의 유광익은 너무 컸다.
‘미리 처리했어야 했다.’
진즉에 죽였어야 할 사람은 초대교주가 아니라 이쪽이었다.
첩자라도 미리 보냈어야 했는데, 뭐든지 한 발씩 늦는다.
하물며 이번 일은 우연이 그를 도왔다.
행운이라고 해도 좋을 터였다.
미남은 그리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걸 입 밖에 내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미남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어두컴컴한 환경을 좋아하는 교주 때문에 방 밖으로 나오니 형광등에 눈이 부셨다.
최미남은 속이 쓰렸다.
이번에 준비한 칼은 확실히 성공할 줄 알았는데.
방심할 타이밍이었고 당장 암살 시도를 하는 것도 아니라 사람 몇 명 심는 게 전부였으니까.
이거 때문에 경찰과 그룹, 협회, 행안부를 비롯한 정부 각 부처에서 사람을 빼 왔다.
손실이 크다.
불멸교는 이시스나 프로메테우스보다 몸집이 작다. 타격이 작지 않았다.
전 불멸교주는 한때 모든 불멸자를 통괄하는 자였다.
어찌 보면 망국의 왕이라 할 수도 있다.
본래 그 왕국이 망해서 죽었어야 할 망령이다.
그 망령이 제 후예, 불멸교 왕자라 부를 만한 광익에게 붙었다.
‘위염 걸리겠네.’
불멸자에게 어울릴 질환이 아니다.
미남은 조용히, 하지만 신속하게 연락을 전했다.
작전 실패라고.
* * *
“보스, 감사합니다.”
“네, 딸 아이 맛난 거 좀 사 주고요.”
“네.”
혜민의 모친은 암시장 보스가 된 이후, 사람을 품는 데 주력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주체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손해가 컸다.
보너스를 줬더니, 뒤통수를 치려고 한 놈도 있고.
도박에 빠져서 어디 첩자 노릇을 하는 놈도 생기고.
약에 중독되어서 사리 분별을 못 하는 놈도 있었다.
본래 암시장은 어둡고 음습한 일이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순 있나.
그녀는 심지가 굳고 바른 사람을 골라냈다.
가족이 있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 위주로 물갈이를 했다.
지금에 와서는 그녀가 자리를 비워도 암시장을 잘만 돌아갔다.
무력이야, NS가 뒷배로 있다 보니 어디서 사납게 구는 놈도 없고.
가끔 일이 터지긴 했는데.
NS가 나설 것도 없었다.
최근에 약 처먹고 몸에 다이너마이트를 두르고 나타난 불멸자가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이걸 어쩌나 싶기도 했는데.
“나 강호응이오. 돕겠소.”
이리 말하며 단군 그룹 후계 중 하나가 어디선가 튀어나오더니.
“머리통만 날려 버리면 될 것 같은데, 허락해 주시면 그렇게 하죠.”
기척을 기가 막히게 죽이며 불멸자도 하나 다가왔다.
“피닉스 팀원입니다. 거기까지만 알고 계시면 되고요.”
가면을 쓴 불멸자는 말했다.
암시장은 안전했다. 정부와 그룹, 하물며 협회도 이쪽은 언터처블이다.
암시장이 망하면 당장 경제적 타격을 무시 못 한다. 그들로서도 신경 쓸 만했다.
여기에 스위퍼 쪽, 본래 암시장 주인이었던 곳에서 들어오는 건, 제 딸이 다 해결했다.
“안 그래도 요새 실전이 좀 필요했어.”
압도적으로 상대를 조졌지만, 그건 상대가 혜민을 잘 몰랐기에 생긴 일이다.
이제는 아니다. 스위퍼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마법사를 보내는 게 아니라 혼혈 변신족이나 프리랜서 따위를 보냈다.
혜민은 그런 이들을 상대로 실전 경험을 쌓았다.
주문을 최소한도로 쓰고 격투 능력을 키웠다.
그리 암시장은 그녀가 손을 떼도 잘 돌아가게 놔둔 채, 그녀는 NS 본사로 향했다.
정규직 채용 중에 주문으로 모습을 숨기거나, 이상한 짓을 하는 놈을 걸러 내기 위해서다.
혼자서 하긴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NS에 따로 마법 전담 부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더 있으면 좋겠는데.’
사소한 생각을 넘기며 그녀는 NS 본사 곳곳에 숨겨 둔 스펠 기어를 활용했다.
암시장이 자리 잡은 뒤, 그녀는 본래 하던 일에 매진했다.
본래 하던 일, 그러니까 주문 연구다.
그 주문 중 마나 탐지를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걸리면 나비가 꼬이게 하는 것도 있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한 이들은 전부 NS가 만든 화원을 통과했다.
그 화원 자체가 곧바로 마나 탐지 기능이 탑재된 기어나 다름없었기에.
“웬 나비가 이렇게.”
“예쁘다.”
“회사가 돈이 많으니까 정원을 만드네.”
사람을 걸러 내는 데 더없이 훌륭한 작업이었다.
서류에 미리 주문 소양을 적지 않은 모든 이들이 여기서 걸러졌다.
스위퍼와 불멸교 둘 다 준비한 칼이 이가 빠지고 부러졌다는 얘기였다.
물론 전부 광익의 작품은 아니었다.
정규직 채용이란 말을 듣자마자 이런 세심함을 보인 건, 동훈과 미호였다.
당연하게도 마법 사냥꾼 집단 스위퍼의 수뇌진도 성질이 날 만한 일이었다.
“바늘 들어갈 틈도 안 보이는군.”
스위퍼의 참모라 불리는 이가 먼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사이, 광익은 먹고 자고 훈련했다.
다들 면접관으로 근무 중인지라 훈련장이 한산했다.
* * *
오랜만에 혼자 몸을 움직이니, 꽤 즐거웠다.
머릿속에 상대를 정하고 턱을 당긴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잇헬이라 이름 붙은 커스터 마이징 도구는 더없이 훌륭한 도구다.
작은 동작에도 부하를 준다. 몸의 부하는 곧 근력과 체력을 기르는 힘이 된다.
그리 땀을 흠뻑 빼는 중에 툭 말을 뱉으며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게으르기라도 해야 할 놈인데.”
목소리와 기세는 익숙하다.
하지만 외모가 완전히 변했다. 완벽한 변신, 그보다 어울릴 말은 없다.
하얗게 센 머리를 얌전히 뒤로 넘기고 눈썹을 다듬고 적당한 셔츠와 팬츠를 골라 입었다.
빗장뼈가 셔츠 사이로 흘깃 보였다.
단추 하나 더 풀면 양로원 할머니를 줄 세울 수 있을 듯했다.
미소년, 미청년, 미중년의 계보를 잇는 미노년이다.
지금 당장 모델로 데뷔해도 부족하지 않을 분위기와 외모였다.
“이런 걸 환골탈태라고 하는 건가.”
절로 감탄이 나올 말이다.
지용성 스트레스는 치킨으로 해결하고 수용성 스트레스는 샤워로 해결한다고 했던가.
깨끗하게 씻고 나온 할아버지의 표정이 한결 좋아 보였다.
그 덕분인지, 치매 노인네 역할을 잠깐 접은 할아버지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악바리 같은 건 다 제 아비를 닮았구나.”
“유연호 씨가 그랬어요?”
“그럼.”
“어릴 때 둘이 별로 못 봤다고 하던데?”
“멀리서 몰래 봤다.”
“굳이요?”
“그때 네 아비는 날이 좀 서 있었거든.”
언뜻 들은 얘기다.
아버지의 과거, 젊은 날의 아버지는 예민 보스다.
건드리는 게 그 누구라도 주리를 틀어 버리고 얼굴에 칼을 꽂던 불멸의 괴물.
“용케 정부의 녹을 먹고 있지. 그게 영 마음에는 안 든다마는.”
난 수건으로 얼굴과 목에 땀을 닦으며 냉장고를 열었다.
누가 맥주를 넣어 놨다.
두 캔을 꺼내 하나를 던졌다.
불멸자답게 정확한 투척이다. 호선을 그린 맥주캔이 팔짱 낀 할아버지의 팔 틈에 쏙 들어갔다.
“……얼굴만 빼고는 다 닮았어.”
그놈의 얼굴.
“제 얼굴도 어디 가서 못난이 소리는 안 듣는데요.”
“그러냐? 그럼 네 아비 얼굴은 어떻디?”
그건 반칙이지.
중봉이 형, 정기남, 강푸름, 아버지의 미모는 반칙이다.
꽃미남 그 자체다. 하물며 그 매력이 전부 다르다.
최근 NS 인기 투표에 변동이 있긴 했다.
중봉이 형의 출현으로 1, 2, 3위가 오락가락한다고.
강푸름이 얼굴을 잘 안 비춰서 순위가 떨어진다고 했던가.
하.
기도 안 차서.
난 왜 10위 안에도 안 들어 있는데?
하물며 처음 보는 이름이 10위 언저리에 있던데.
박대기였던가?
할아버지가 그런 날 보고 낄낄 웃었다.
치이익.난 맥주캔을 따고 꿀꺽 삼켰다.
훈련 후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탄산이다. 청량감이 발끝까지 타고 내려갔다.
시원하다.
“아버지 어릴 때 얘기 좀 해 주세요.”
거듭 말하지만, 다들 면접에 바빠, 사람이 없었다.
여긴 할아버지와 나뿐이었다.
치매 노인네 역할을 잠시 잊은 할아버지는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곧 우린 맥주캔을 하나둘 비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보통 할아버지가 얘기하고 내가 듣는 쪽이었으나, 나중에는 내가 말하기도 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데 할아버지는 좋은 청자이기도 했다.
“그건 잘했다.”
“알이란 놈은 나라 말아먹을 관상은 아니겠구나.”
“네 어미가 걱정은 안 하디?”
“그 사도는 내 편이 아니다. 속인 거지.”
리액션이 너무 좋더라고.
그리 잡다한 얘기 중, 할아버지가 물었다.
“보니까 따라 할 수 있더냐?”
앞뒤 잘라 먹은 말이지만, 이해야 어렵지 않았다.
말에 힘을 싣는 것.
“언령이라고 부른다.”
할아버지가 덧붙였다.
“네, 보니까 되던데요.”
그 말에 할아버지의 눈빛이 떨렸다.
기쁨과 허탈함이 적절히 섞인 눈이다.
“그거 누구한테는 가르쳐야 하지 않아요?”
“네놈이 이미 가졌는데?”
“전 누구 가르치는 건 잘 못 해요. 그리고 그건 제가 알아서 가진 거지, 배운 게 아니니까.”
정직이 가르치며 느낀 점이다.
그냥 하면 되는 걸 애들이 잘 못 하더라고.
답답해서 그쪽은 반쯤 포기했다.
그래서 이번 면접도, 그 이후의 일도 떠넘겼다.
“그럼 그 애 넘겨다오. 눈빛이 좋더라.”
할아버지가 사람 하나를 짚었다.
겉으로 치매 노인네를 연기할 테니, 아마 꽤 고달프겠지만.
그래도 남는 건 많을 것이다.
별칭이지만, 한때 불멸의 왕이라 불렸던 사람이다. 배울 게 없진 않을 거다.
“손자한테 줄 건 없고요.”
“엿이나 먹어라.”
별거 아닌 말인데도 우린 친구처럼 낄낄댔다.
이거, 아버지랑 사이가 풀어져야 하는데 나부터 친해져 버린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긴 했다.
그리 퍼마시고 놀고 잔 뒤다.
다음날 일찍 푸름의 호출을 받았다.
두 번째 기어가 완성됐다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