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40화 (340/488)

340. 심술 난다, 심술 나.

말에는 힘이 깃든다는 말이 있다.

은유적인 표현이다.

“다 잘 될 거야.”

이리 되뇌다 보면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인해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대체로 말에는 힘이 없다.

말에 힘이 있다는 건, 그 사람의 가진 권력, 자격, 금력을 말함이다.

그런데 지금 유무인, 개인적으로 친할아버지가 되는 저 노친네에 말에는 진짜 힘이 깃들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판타지 소설에서 많이 본 것 중 하나다.

언령.

물론 ‘나가 죽어’라고 말한다고 그걸 들은 작자가 곧바로 나가서 성수대교에서 다이빙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힘은 아니다.

구백여 명 중 의심되는 몇몇 사람에게 말을 거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무슨 냄새!”

꽥 소리를 지르는 남자는 감정적으로 보였다.

그 감정에 거짓이 없어 보인다. 버럭 화를 내기에 오히려 결백해 보인다.

그러나 결백하지 않다.

그는 할아버지가 은근히 손을 내밀어 소매를 잡아채려 하자, 금세 손을 뺐다.

다혈질에 과격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한순간 눈빛이 가라앉는다.

그 눈빛, 손이 움직이는 궤적, 태도 모든 것을 토대로 육감이 반응했다.

이제까지 불멸교가 신물 나게 나에게 보낸 암살자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봐, 구린내 난다니까. 너.”

확신에 찬 한마디.

그 과정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눈에 보이고 오감에 걸린다. 귀에 들리고 육감에 잡힌다.

난 불멸자이자 변신족.

말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수단이 있다. 야생의 살기가 그것이다.

짐승의 그것을 닮은 울음은 초저주파를 담아, 부지불식간에 상대의 사지를 붙든다. 이지를 찍어 누른다.

그럼 지금 할아버지가 하는 건?

살기와는 다르다. 그런 과격한 방식이 아니다.

기척 죽이기의 일환이다.

내 불멸자의 핏줄은 ‘기척’이라 통칭하는 몸의 기운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특기를 지녔다.

지금 할아버지가 보이는 게 그 일부다. 목소리에 그 기운을 섞은 거다.

갑자기 들이닥쳐 헛소리를 내뱉는 늙은이.

당하는 처지에서는 의외의 한 마디.

그 늙은이가 내뱉는 말은 심상을 흔든다. 곧 평정심을 무너뜨린다.

평범한 말 한마디에 저럴 순 없다.

곧 할아버지 유무인의 말에는 힘이 깃들었다.

그건 기척 흩날리기와 비슷했지만, 달랐고 이제까지 봤던 불멸자의 기예와는 궤가 다른 것처럼 보였다.

몇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거치고 겹친다.

아버지는 사우전드 페이스란 별명을 가졌다.

천의 얼굴이란 별명.

표정, 몸짓, 행동, 말투 모든 걸 이용해 사람을 속이는 재주다.

할아버지는 비슷하지만, 다른 특기를 지녔다.

말 몇 마디로 상대의 속내를 잃고 심리를 무너뜨리는 재주.

보고 느끼고 듣고 파악했기에 난 곧 깨달았다. 당장 숙달했다 말할 수는 없어도 흉내는 낼 수 있겠는데?

“미호야.”

목소리에 슬쩍 기운을 담아 부르자.

“……응?”

묘한 위화감을 느꼈는지 미호의 대답이 늦다.

말에 담은 기운이 과하다.

조금 낮추고 톤을 조절하고 상대의 마음을 흔든다. 심장을 조인다.

그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 조합, 다시 입을 열어 본다.

“귀태 형이랑 잤니?”

부르르.

순간 미호가 어깨와 손을 떨었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당황함이 역력한 얼굴이다.

그러더니, 툭 내뱉는다.

“네가 어떻게?”

알았냐고? 몰랐지. 지금 네가 말해 줬지.

네가 말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물어봤거든.

평소라면, 평소의 우미호라면 절대 당황하지도 대답하지도 않았을 물음이었다.

꽤, 아니 상당히 재밌는 재주였다.

그사이에도 할아버지는 사람을 걸러 내는 중이었다.

“너! 내 달걀을 훔쳐 먹었지?”

길면 1분 내외.

“넌 얼굴이 왜 그렇게 생겼니?”

짧으면 10초 내외.

순식간이다. 900명을 다 걸러 내는데, 한 시간 조금 더 걸렸을 뿐이다.

하루에 못 끝내 밀렸던 면접이 순식간에 끝났다.

이후에는 준비된 테스트에만 통과하면 그만이었다.

그거야 머릿수로 해결할 수 있는 거니까.

이거 중봉이 형이랑 기남, 동훈이 형의 일이 훅 줄었는데.

“너 무슨 수작 부렸지?”

미호가 물었다.

눈치는 기가 막히게 빨라 가지고.

“내가 뭘? 대답은 네가 해 놓고.”

“못 들은 거로 해.”

“딱 한 명한테만 말하면 안 될까?”

“나 왜 불길하지. 누구?”

“김요한.”

떠벌이 김요한, 요한 방송의 주인, 다른 사람 이야기 떠드는 데 최고로 신난 인간.

그가 알면 NS 전체가 다 안다.

고로 곧바로 공식 커플 등극이란 거다.

“죽여 버린다?”

“불멸교 암살자도 날 죽이지 못했는데? 시도는 좋았다. 노력하도록, 우미호 팀장.”

난 뒤쪽에 다가오는 인사팀 직원을 보며 뒤에 말을 덧붙였다.

미호는 안색을 금방 바꿨다.

조금 전까지 불멸자 임에도 살기를 쭉쭉 뿌리더니, 금세 평소와 같다.

적당히 쌀쌀맞고 효율적인 인간으로 돌아갔단 거다.

“저기, 팀장님, 저 그, 노인분이 하신 대로 들여보냅니까?”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참으로 황당한 장면이나, 대표와 팀장이 그냥 놔두니, 다른 직원이 나서서 말릴 수도 없었다.

하물며 내가 데려온 사람인데.

“그러세요.”

우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돌아가는 상황을 알았다는 거다.

얘는 머리가 좋다.

내가 유무인이란 노인에게서 뭔가를 봤다는 걸 알아봤고 지금 하는 행동이 유의미하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고로 이건 선별이 맞다는 결론까지 냈겠지.

“정말요?”

직원이 땀을 흘리며 물었다.

흐르는 땀이 더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거 근데 사람들이 알면 난리 치긴 하겠다.

벌써 여기도 반쯤 난리고.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대뜸 사람을 이렇게 골라내는 게 맞습니까?”

정의감 넘치는 몇몇 이들이 먼저 입을 뗀다.

인사팀 직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자신들도 답할 말이 없을 테니, 이해한다.

“여긴 NS 정규직 채용 현장입니다. 불만 있으신 분은 돌아서서 나가시면 됩니다.”

“나중에 이 일에 대한 설명은 들을 수 있습니까?”

정의감 넘치는 사람에 이어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 물었다.

“합격하시면 자신이 왜 합격했는지 알 겁니다.”

직원은 말을 잘 골랐다.

사실 자기도 모를 텐데, 일단 수습에 힘을 줬다.

뭐, 저런 몰골로 사람을 골라내니, 떨어진 사람 중 일부는 기가 찰 노릇이겠지.

테러 단체나, 기타 흑심을 품고 온 놈들이라면 신나서 공론화시킬 만하다.

난 무시하기로 했다.

그래서 뭐.

힘 있는 놈이 깡패다.

진짜 억울하게 떨어진 사람도 있겠지.

그럴 수도 있다.

세상에 완벽한 건 없으니까.

그런데 내가 자선 사업한다고는 안 했다.

난 내가 책임질 범위 안의 일만 책임질 뿐이다.

그게 전부였다.

“네, 그렇게 하세요.”

대표 승인이 떨어졌다.

인사팀 직원의 표정이 묘해졌다.

속 시원해 보이기도 했고 걱정이 가득해 보이기도 했다.

꽤 열정적이고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그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하고 돌아섰다.

“한 봉지로는 어림도 없어.”

사탕 사냥꾼이 어느새 다가와 으름장을 놓았다.

“미호야.”

대비로 사 둔 청포도 사탕 한 봉지가 미호의 가방에서 나왔다.

쏙 그걸 낚아챈 할아버지가 날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심술 난다. 심술 나.”

그리 말하고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치매가 도진 것 같으니, 무시다.

“널 죽일 순 없어도 김요한은 죽일 수 있지.”

뒤에서 미호가 해답을 찾아내 말했다.

그래. 내 입을 못 막으면 들을 귀를 막으면 된다.

하여간 영리해.

“그럼 방송에 나가서 말해야 하나.”

“미친 새끼니?”

난 미호의 평정심이 무너지는 걸 보며 낄낄 웃었다.

언제나 적당히 차갑고 퉁명스럽던 표정이 저리 생생하게 변하는 걸 보는 게 참으로 재밌었다.

“너 변태냐?”

할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아닙니다.”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창 2차 면접이 진행 중인 곳이었다.

* * *

“염병, 이게 무슨 테스트야!”

얼굴을 얻어맞은 지원자 하나가 바닥을 구르며 말했다.

조금 전 발을 걸어 상대를 자빠뜨린 면접관이 고개를 갸웃했다.

“꼬우면 나가세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

면접관이 작달막한 몽둥이를 어깨에 턱 걸쳤다.

간단한 테스트다.

보호 장구 착용하고 면접관에게 버티기.

문제라면 그 면접관이란 이들이 전부 NS의 전투 요원이란 거다.

그것도 최소 불멸특수대 요원급이고.

“군필자 우대라고 했지. 싸움 잘하는 사람 뽑는다고는 안 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옆에서 다른 면접관에게 얻어맞은 이가 억울한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말하고.

“싸움이라 이거지? 내 특기다. 이 새끼들아.”

그 바로 옆에서는 양아치 전신 문신남이 보호구를 차며 가슴을 탕탕 친다.

곧 양아치가 앞으로 나서더니,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나와, 조져 준다.”

상대는 정아 누나.

어, 이쪽은 특수종은 아닌데, 훈련 정도를 봐서는 어지간한 혼혈 불멸자도 못 덤비는 위인 되시겠다.

그리고 그녀는 테러범을 싫어하는 동시에, 그쪽 냄새를 풍기는 모든 이들을 공평하게 싫어한다.

고로 쟤는 줄을 잘못 섰다.

“우랴!”

우렁차게 기합을 외친 놈은 3초를 못 버텼다.

정아 누나의 안쪽으로 파고드는 스텝을 놓쳤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 치는 몽둥이를 못 봤으며.

쩡! 꽝.

맞은 직후 멱살 잡혀 바닥에 메다꽂아질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다.

머리통부터 떨어진 놈을 보며 정아 누나가 조용히 읊조렸다.

“의료진.”

“네.”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이 나섰다.

나 의료진이요 하고 써 붙인 거나 다름없는 복장이다.

약간은 과시용이기도 했다.

다쳐도 얼마든지 고쳐 준다는 그런 과시.

보호 헬멧을 벗은 문신충은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퍽 인상적인 광경이다.

이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기에, 몇 명은 그러려니 하는 듯했고.

또 몇몇은 여전히 불합리하다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했으나.

문을 박차고 돌아서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1차로 구두 면접은 통과한 사람이니까.

구두 면접의 통과 조건은 사인이다.

비밀 유지 및 생명 포기 각서를 쓰는 것.

그만큼 간절하고 그만큼 자신 있는 이들만 모아 놓고 싶었다.

그리고 이들 중 누구도 면접관을 이긴 사람은 없다.

당연하다.

NS의 훈련 방식은 독특하나, 우직하다.

이쪽을 아는 사람이라면 불멸특수대나, 단군 그룹의 화랑보다 더 치열하다고 할 터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아 면접관 마크를 단 이들이다.

양아치 문신충이 덤빌 만한 위인들이 아니라 이거다.

어디서 제대로 운동 좀 배우지 않고 덤비는 건 좀 무리긴 하지.

개중에는 나름 뛰어난 실력을 보인 이들도 있다.

가령 저 작자.

솜씨가 꽤 있다. 싸울 줄 안다. 다만, 승패가 갈리자 조용히 고개를 흔드는 남자가 보였다.

“졌습니다.”

제 실력을 다 보였다고 생각하는지, 몰아치더니 저리 말한다.

면접관이 묻는다.

“여기까지 맞습니까?”

“네, 제가 보여 드릴 수 있는 건 다 보여 줬습니다.”

상대한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탈락이다.

저건 안 돼.

기준은 명확하다.

그 기준을 밝히지 않았을 뿐.

알려 줘서야 일만 많아진다. 그러니 지금이 딱 좋았다.

“으아아아!”

다시 처음 본 면접관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게 무슨 테스트냐고 부르짖던 여자다.

면접관은 봐주지 않았다.

덤비면 찍고 때리고 후려쳤다.

“포기?”

쓰러진 여자를 향해 면접관이 물었다. 그 말에 여자가 일어나더니, 냅다 달려든다.

“우아아아!”

기합 소리 좋고.

뭐, 다른 사람에게는 비명 비슷하게 들리겠다만은.

얻어맞는다. 세차게 얻어맞는다.

이 테스트에서는 지망생이 기절하거나, 또는 포기라고 하지 않으면 끝이 없다.

면접관이 먼저 끝내는 경우가 없단 거다.

하다 하다 안 되면 기절시키는 거고.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면접관은 상당히 가혹한 명령을 받았다.

되도록 많이, 되도록 오래, 되도록 잔인하게 괴롭힐 것.

그들은 그렇게 했다.

다른 기업이 압박 면접이니 뭐니 할 때, 우리는 구타 면접을 준비했다.

음, 좋다. 그 현장의 선 난 지금 뿌듯함을 느낀다.

비밀 유지 각서와 생명 포기 각서에 사인한 자만이 들어설 수 있고.

들어서면 신나게 얻어터진다.

좀 심할 때는 팔이 부러지거나, 다리가 부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끄아아악!”

“다리가 부러졌네요. 포기합니까?”

면접관의 물음에 고통을 참아 내는지, 보호 헬멧 안쪽에서 가쁜 숨소리가 들렸다.

“안 해!”

저 작자는 합격이었다.

이 테스트의 기준은 딱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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