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 면접은 사탕을 따라.
유무인의 인생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실패라는 두 글자의 연속이라 할 수 있었다.
‘실패지.’
모든 게 실패다.
가정은 불화로 망가졌고.
평생을 걸고 이룩한 일은 통째로 뺏기고 신념은 무너졌다.
이런 삶이 어찌 실패가 아닐까.
아들을 잃고 아내를 잃었다.
삶을 잃었고 친구를 잃었고 미래를 강탈당했다.
모든 걸 잃은 뒤, 남은 걸 꼬집어 보자니 딱 하나뿐이었다.
복수 또는 결자해지라 부를 만한 일.
‘내가 벌인 일은 내가 꿰매야지.’
정부를 믿을 순 없다.
불멸교는 자신이 나온 후, 정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새로운 팀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사람을 모았다.
그러나 곧 포기해야 했다.
‘지랄맞은 새끼들.’
불멸교의 암살 시퀀스는 전부 자신이 만든 거였다.
그런데 그게 이제 역으로 자신을 노린다.
불멸자가 핍박받지 않게 하려고 이룩한 모든 것이 자신을 노리는 칼날이 되었다.
수백 아니, 수천 번의 암살 시도가 있었다.
유무인은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러며 혼자서 스토킹을 시작했다.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집단일 뿐, 그가 한 건 스토킹이 맞았다.
불멸교의 모든 걸 알았기에 새로이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좇으면 그뿐이었다.
자신이 만든 곳이다.
모든 게 자신의 손에서 시작된 곳.
그러니 찾아 쫓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이유 또한 참으로 정당했다.
자기가 만든 악마는 자신이 죽여야 옳지 않겠나.
유무인은 주변에 사람을 두지 않았다.
불멸교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이시스, 프로메테우스, 불멸교.
세계를 뒤흔드는 세 개의 테러 단체다.
그리고 불멸교는 이 세 곳 중 가장 지독한 짓을 일삼았다.
어쩔 수 없었기에 홀로 살았다.
아들이 자신을 미워함을 알면서도 용서를 빌 수 없었다.
누군가를 가까이하면 죽는다.
그가 만든 것이므로 자신이 만든 형벌이었다.
불멸교의 암수를 피할 사람은 자신 외에 없었다.
그런 자신도 치가 떨며 사는 삶이기에.
누군가를 끌어들일 수도 없었다. 이제는 혼자가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랬다. 그랬었다. 희망 따윈 없는 우물 안에 갇힌 전대의 불멸자는 그리 살았었다.
‘이건 괴물인가?’
제 손자라고 들었는데 그 손자라는 아이는 생활 방식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활달했다.
불멸교고 프로메테우스고 간에 덤비면 때린다. 후려친다. 박살 낸다.
무자비했다.
고작 1, 2년 사이에 성장한 능력은 그 누구도 이 아이를 무시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다 청기사를 죽였다.
청기사 슬레이어.
네임드를 죽인 특수종이자, 불멸교의 암살 위협에도 코웃음을 치는 미친 재능의 특수종.
이후 알려진 사실은 더 살벌했다.
아버지는 정부의 요인.
어머니는 단군의 후계 중 하나란다.
그러니까 혼혈이다.
혼혈인데, 혼자서 다 씹어 삼킨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이게 말이 되나?’
유무인은 자신을 숨긴 채, 관찰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다.
연호한테는 손을 벌릴 수 없어도 이 아이한테는 도움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겠다고.
그렇다고 무작정 힘을 합치자고 할 순 없다.
뜻이 같다면, 자신을 받아 줄 수 있다면, 그럼 찾아오겠지.
불멸교 사도의 정보는 희망과 절망이 반쯤 섞인 채 보낸 메시지였다.
손주 놈이 오해했지만, 사도란 애도 자신의 첩자는 아니었다. 이용한 것뿐이지.
유무인은 그렇게 NS에 발을 디디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는 치매 걸린 노인네 역을 고수해야 했다.
아들을 볼 낯이 없고.
손주에게 몸을 의탁한 것 또한 들 낯이 없는 일이며.
며느리를 볼 낯도 없어서.
“사탕 줘!”
이 한 마디에는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 * *
아침부터 투둑투둑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곧 후두두둑 하고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장마는 시작도 안 했는데, 여름비가 내렸다.
그걸 보며 NS 인사팀 직원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비까지 오네.’
NS는 야근을 장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이 쌓이는 걸 보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순간도 있는 법이었다.
‘이걸 그냥 놔두고 가면 내일의 내가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도 무리다.
쌓인 일이 턱 끝까지 차오르다 못해 곧 자신을 익사시키기 직전이다.
그들에게 야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자, 같은 말 반복하긴 싫지만, 알죠? 야근 수당 아무리 잘 나와도 몸 상하면 의미 없어요. 쉴 사람은 쉬어요.”
인사관리 부서 매니저가 말했다. 지금 입을 연 매니저의 안색 또한 좋지 않다.
그럴 만도 했다.
대표가 뿌려 둔 정규직 채용 건 때문에 바쁜 게 자신뿐일까.
지원자가 일이백도 하나고 일이천도 아니다.
백 명을 뽑는 데 만 명이 지원했다.
여기에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 통역까지 필요했다.
‘아니, 한국말을 못 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뽑겠다고.’
좋다. 여기까지도 어찌어찌 감당할 만했다.
대표는 인사팀 직원 또한 대거 늘려 뒀다.
결론만 말하자면, 단순하게 서류 정리 및 면접만 보는 거라면 상관없었다.
그런데 NS 정규직 채용에는 항상 딸려 오는 문제가 있었다.
첩자 문제다.
다른 기관에서 보내는 눈과 귀가 사내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
그걸 해결할 방법?따로 있을 리가 있나.
NS는 무식하고도 인내심이 필요한 방법을 택했다.
“다음.”
이중봉, 정기남 두 특수종 팀장이 직접 나선 거다.
예민함을 무기로 삼은 둘은 손짓, 버릇, 말투 등 작은 단서를 통해 상대를 파악한다.
이러니 오래 걸린다.
일단 면접까지는 어찌어찌 진행하는데.
면접 이전과 이후 가리지 않고 서류상 의심되는 이들, 1차 면접에서 의심되는 이들을 고르고 골라서 직접 보고 파악하는 거다.
이게 시간을 잡아먹었다.
이러니 아무리 일을 빨리 처리해도 일이 쌓인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의심을 산 사람을 조사하는 건 또 누구 몫인가.
인사팀의 몫이었다.
달달한 믹스 커피 한 모금이 식도를 타고 위장에 자리 잡았다.
직원은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비라도 내리지 말지.’
우산도 안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비까지 내리니 인사팀 직원은 고달픔을 느꼈다.
아무리 고액 연봉자에 결혼 정보 회사에서 가장 사랑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쌓인 일에 치이는 일개 직장인일 뿐이었다.
‘아, 어디 누가 사람 좀 걸러 줬으면 좋겠다.’
그리 생각하며 다시금 서류를 정리하고 면접자를 모아 안내하는 와중이었다.
“고생하시네요.”
대표가 돌아왔다.
인사팀 직원은 제 뒤에 선 열 명의 지원자를 면접장으로 데리고 가는 중이었다.
대표의 옆에 우미호 팀장과 처음 보는 노인네가 서 있었다.
노인네에게서 불쾌한 악취가 났다.
“아, 대표님, 정규직 면접 진행 중입니다.”
대표가 지원자 쪽을 보기에 인사팀 직원이 먼저 말했다.
그리고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어, 너, 내 사탕 훔쳐 먹은 놈.”
노인네가 중얼거리더니, 단숨에 뛰쳐나갔다.
인사팀 직원은 악취가 자신을 스치는 걸 느꼈다.
노인네는 어느새 지원자 중 한 명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흔드는 중이었다.
“악! 왜 이러세요!”
머리칼을 잡힌 여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요년, 사탕 맛있더냐? 요년! 내 사탕 내놔.”
노인네가 머리칼을 쥔 손을 흔들며 외친다.
“악! 악!”
여자 지원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직원은 갑자기 일어난 일에 몸이 굳었다. 어버버 하는 사이, 대표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오호, 눈이 좋으시네.”
짧은 감탄이 섞인 말이었다.
그 옆에 선 우미호 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긴 세월 괜히 칼침 맞아 가면서 버틴 게 아닐 테니까.”
둘의 대화에 인사팀 직원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여긴 어디, 난 누구.’
기절하고 싶었다. 혼란스럽다.
직원은 간신히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고 그는 현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행동을 택했다.
“대표님?”
바로 곁에 이 회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있으니, 그에게 물으면 되는 거였다.
“저 사람 탈락이요.”
대표는 단호했다.
그 한마디에 남은 지원자 아홉이 웅성거렸다.
“탈락?”
“이유가 뭔데?”
“저 노인 사탕을 뺏어 먹은 거야? 저 여자가?”
“……염병,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들이 하는 말이 은근히 들리지만, 직원은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 또는 자신의 연봉 건강을 위해 대표의 지시를 이행했다.
“놓으시면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노인네에게 말하고.
“아니, 이 년이 내 사탕을 훔쳐 갔다니까.”
대표가 난동 직전의 노인네에게 사탕 하나를 던지니, 상황 수습은 금방이었다.
인사팀 직원 몇이 더 나타나 남은 지원자를 면접장으로 데려갔다.
여자는 인사팀 직원 아니라 경호팀이 나섰다.
우미호 팀장의 지시였다.
반쯤 멍한 정신으로 우두커니 서 있자.
“남은 지원자가 얼마나 돼요?”
대표가 다가와 묻는다.
“네, 금일은 900명가량이 대기 중입니다.”
아직 오전 나절이다.
수용할 공간이 만만치 않아서 회사 앞 공터에 천막까지 쳐 둔 마당이었다.
“후딱 끝내면 좋을 것 같은데.”
대표가 말하며 노인네를 바라봤다.
그리고 노인네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손톱 사이로 비듬이 후두두 떨어졌다.
* * *
난 오가며 휴게소에서 산 계피 사탕 한 뭉치를 손에서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결과를 보면 원인이 보인다.
그리고 때론 우연이 겹쳐 일어난 일이 필연적으로 흘러갈 때가 있다.
난 지금 상황을 그렇게 봤다.
유무인은 불멸교의 전신(前身).
그는 불멸교의 잔재를 안다.
과연 그것만 알까?
그의 삶은 테러와 함께했다.
그 수많은 시간 그가 본 건 테러범이요, 그가 생각한 건 불멸교 하나뿐.
불멸교 스토커, 암암리에 뒷골목에서 할아버지를 칭하는 명칭이다.
괜히 그런 이름이 붙은 건 아닐 터였다.
거기에 할아버지는 처음 보는 재주도 발휘했다.
우미호의 감각에는 걸리지 않은 듯했지만, 내 감각에는 걸렸다.
사탕이라 외치며 여자 지원자의 머리칼을 잡아채고 흔들 때.
내 귀에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몇 개로 중첩되어 들리기도 했고 은근한 속삭임으로 들리기도 했다.
겉으로야 그냥 생떼 부리는 치매 노친네 같았지만, 그 속내는 전혀 다르다는 거다.
할아버지가 머리칼을 잡은 여자, 나도 그 여자 지원자를 꼼꼼히 살폈다.
가만히 있었다면 딱히 특이점을 찾긴 힘들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난리를 피우자, 몸의 움직임에 흔적이 엿보였다.
첩자, 불멸교 출신이다.
암살자의 은밀함이 엿보이는 행동 양식이 감각에 걸렸다.
당황한 척하며 반사적으로 사람의 급소 부위로 손이 간다. 물론 곧바로 자세를 바로 하긴 했다.
그녀의 실수는 아주 잠깐이었다.
그저 내가 그걸 놓칠 호구가 아니었을 뿐이지.
그러니 결론만 말하자면.
할아버지는 첩자를 알아볼 눈을 가졌다.
내가 모르는 방법을 이용해 상대의 심리를 뒤흔들 줄도 안다.
곧 지금 정규직 채용 면접에서 가장 큰 골치인, 첩자 색출이 된다는 것.
능력이 있다면 활용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이거 다 줄 테니, 갑시다.”
난 그런 할아버지에게 계피 사탕을 봉지째로 던지고 면접장으로 데려갔다.
천 명에 가까운 지원자가 멀뚱히 바라보는 사이, 치매 걸린 늙은이가 날뛰었다.
뭐, 모르는 사람이 보면 미쳐 날뛰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는 아주 훌륭한 첩자 감별사였다.
예상하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오자마자 할아버지는 제 능력을 증명한 셈이었고.
“너, 구려! 구린내나!”
“이 할배가 미쳤나. 누구한테 구린내가 난데!”
“어, 그래. 냄새가 나긴 하는데. 넌 아니네.”
훌쩍 사람 하나를 지나친 뒤, 다른 사람을 향해 눈을 흘긴다.
“네 이놈, 나라 팔아먹을 관상이로다!”
“……네?”
그놈은 맞았다.
얘기 한 마디에 사람을 솎아 낸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솜씨다.
그리고 난 할아버지가 그 솜씨를 부리는 사이, 할아버지의 수법을 관찰했고.
관찰하며 내면세계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