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 저 노친네가.
퍼즐 조각 하나를 위에 올려 탑을 완성한다.
3D 입체 퍼즐로 만든 바벨탑이다.
그걸 본 전뇌 공주는 흡족함에 절로 미소를 보였다.
‘재밌다.’
즐겁다.
조각 하나하나를 모아서 완성품을 만드는 과정이 더없이 즐거웠다.
포장을 뜯자마자 설명서는 쓰레기통에 구겨 버렸다.
그딴 건 필요 없었다.
아무리 복잡한 구조라 해도 퍼즐 피스 하나하나는 쓰임새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난해하고 어려울지 몰라도 전뇌 공주에게는 쉬웠다.
딱 뇌를 즐겁게 달구기 좋은 수준의 놀이였다.
그럴 만했다.
그녀의 뇌는 전자의 세계를 노닌다.
그 세계 안에는 정크 파일부터 시작해서 불필요한 쓰레기가 널렸다.
쓰레기 사이에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걸 나누고, 다시 필요한 것 중에서 연관성 있는 것을 엮고 조립한다.
그게 전뇌 공주가 인터넷 세계에 동기화해서 하는 일이었다.
정신이 전자식 동기화를 이룬다고 해서 이 모든 게 뚝딱 이뤄지는 게 아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전자의 세계는 그녀의 놀이터였고 집이었으며 모든 것이었다.
그 안에서 보낸 생활, 농후한 경험이 그녀에게 불필요한 정보를 조립해 유의미한 내용을 만들게 하는 능력을 줬다.
그러하기에 그녀는 몇 가지 단서만으로 유무인이란 사람이 준비하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독특해.’
불멸교의 창시자라고 했다.
대외적인 내용은 그렇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 반대쪽에 서 있지 않나.
몇 개의 우연이 겹치고 그녀 개인의 노력으로 알아낸 모든 건 광익에게 전해졌다.
그걸 전한 게 벌써 며칠 전이다.
소재 파악보다 한참 더 빨랐고 그걸 들은 광익은 며칠 뒤, 유무인이란 전대의 영웅을 만나 봐야겠다며 떠났다.
‘그럼 둘은 목적이 같은 건가?’
모르겠다. 대표는 봐도 속을 알 수 없는 타입이었다.
혜민이 언니가 왜 조심하라고 하는지 알겠다.
그 묘한 신비주의는 생긴 것과 별개로 탁월한 매력 포인트였다.
“좀 쉴까.”
전뇌 공주는 중얼거리며 자리에 누워 발가락을 매만졌다.
피로감이 느껴졌다. 수명을 깎지 않는 수준으로 능력을 쓰라는데, 그게 어디 쉽나.
감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한정직이란 놈팽이가 도와주긴 했지만, 도움은 어디까지나 도움, 깨닫고 행하는 것 자신이다.
전자의 세계에서 특정 정보를 찾는 건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그래도.’
보람 따위가 느껴졌다.
이제까지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으므로, 전뇌 공주는 이 순간 NS에 몸담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넘긴 정보로 대표가 제 이득을 취하겠다고 사람을 죽이진 않을 거 아닌가.
이 일이 세상에 도움이 될 것 같냐고 물으면 모르겠다고 답하겠지만, 적어도 해악은 끼치진 않을 거 아닌가.
더욱이.
정보를 알아내는 것까지야, 그녀의 일이지만, 그 이후야 제 알 바가 아니었다.
나머지는 대표의 몫이었다.
* * *
들어서자마자 노인네가 코딱지를 파서 튕겼다.
난 몸을 틀어 피했다.
“와, 너 잘 피한다. 잘한다. 잘한다.”
이건 뭐, 작정하고 정신 나간 척을 하네.
“……우리 봉사활동이 목적이었어?”
미호가 물었다.
아니, 그럴 리가.
“비즈니스 하러 왔지.”
말하며 평상 앞까지 다가갔다.
노인네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여 날 쳐다봤다.
난 그런 노인네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오징어볶음.”
이건 무슨 개소리인가.
“오징어볶음이 먹고 싶다.”
왜 그런 말을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할까.
그 눈에는 한 줌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갈 숨기는 기색이 안 느껴졌다.
이게 만약 연기라면 너무 탁월하다.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니까.
하지만 아니다.
육감과 직감이다. 난 이 노인네가 정신이 나가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사실, 육감이 아니더라도 이미 조사를 끝내고 온 마당이고.
어떤 미친 노인네가 불멸교 전복을 위해 정보를 모으고 힘을 기르나.
그것도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제 몸을 숨기면서 말이다.
이 거처를 알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전뇌 꼬맹이의 눈 밑이 검었었다.
제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있는 전뇌 꼬맹이가 의연한 척을 했을 뿐이다.
내가 볼 때는 수명만 안 깎았을 뿐, 그동안 비축한 체력을 다 날려 먹은 것처럼 보였다.
거처만 알아낸 것도 아니다.
전뇌 꼬맹이가 준 정보에는 이 작자가 철새 버금가게 터전을 옮긴다는 것도 있었다.
지금 거처도 길어야 이틀이라고.
이 모든 건 시시각각 위협하는 불멸교의 손을 피하기 위한 것.
그러면서 무슨 치매 노인네 흉내인가.
“냄새나는 놈하고는 말 안 해!”
노인네가 갑자기 꽥 소리를 지르더니 고개를 팩 돌렸다.
난 그 앞에서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와 함께 왔다면 손자의 포지션이다.
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유야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유무인이란 사람의 특성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 노인네는 정부도 못 믿고 그룹도 못 믿는다.
전부 척지고 살되, 불멸교는 때려 부수고 싶다.
그럼 불멸교를 향한 마음의 저의는 진심일까?
그러리라 생각한다.
최초의 불멸교는 교단이 아니었으므로.
그때의 불멸교는 핍박받는 불멸자를 대변하는 집단이었을 뿐이다.
그게 변질됐을 뿐.
불멸교의 전신을 만든 할아버지는 이후 조직을 떠났다.
그사이 이야기야 책으로 써도 반 권쯤은 나오겠지.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아까 미호한테 말했듯이 여긴 비즈니스를 하러 왔다. 그거뿐이다.
난 나한테 이 얘기를 전해준 사도에게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 사도가 아니라면 유무인이란 사람을 찾을 생각도 안 했을 테니까.
사도, 유무인, 불멸교, 아버지, 정부, 단군 그룹.
모든 걸 생각의 범주 안에 넣은 뒤, 난 한 가지 가정을 했다.
유무인은 홀로 불멸교와 싸웠다.
그런데 그 싸움이 효율적이었나?
아니, 그렇게 보긴 어려울 것이다.
걸핏하면 암살 위협에나 시달리고 살아왔겠지.
그렇다고 이제 와서 정부에 손을 내밀 수도 없다.
무엇보다 내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는 건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었다. 불멸교는 그 상대를 말려 죽이는 집단이다.
암살 웨이브를 치는 집단이다.
당한 나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나야 뭐, 반쯤을 즐겼지만, 보통 특수종에게 이런 짓거리를 하면 다들 미쳐버리겠지.
특히나 예민한 불멸자를 미치게 만들기 딱 좋은 짓이다.
숨 쉬는 것마저 불멸자 암살자를 경계하면 쉬어야 할 테니.
내 생각에는 유무인은 아들을 그런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우전드 페이스고 뭐고 간에.
아들만큼은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건 아버지의 바람이 아닐까.
비록 한평생 아버지 노릇을 못 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단군 그룹에 손을 벌려?
그건 더 말도 안 되지.
하물며 제 아들이 그 단군 그룹의 후계라 부를 딸과 결혼했으니.
더더욱 접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내 가정이자, 추측이 빛을 발한다.
만약 그 불멸교 사도가 이쪽 편이라면?
그러니까 유무인의 사람이라면?
그럼 이들에게 난 어떤 존재로 보일까.
불멸교의 패악질에 유무인은 그 누구도 아군으로 삼지 않았는데.
그 패악질을 씹어 삼키고 테러 집단이 단체로 모여 만든 함정을 역이용해서 카운터를 날리는 친구라면?
캬, 이거 욕심 안 나겠나.
그런데 얘가 내 손자네?
이제까지 아버지를 보호하듯 그러고 싶을 것이다.
물론, 이건 전부 내 가정, 추측, 추론일 뿐이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확인해 볼 가치는 있었다.
수십 년 불멸교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닌 스토커가 아군이 되면 효율적이므로.
그러니까 이건 비즈니스다.
난 유연호의 아들이 아니라, 유무인의 손자가 아니라, NS의 대표로 와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양반은 절대 곁을 내주지 않을 터였다.
반쯤은 사적인 감정도 섞이긴 했다.
아버지의 덤덤하고 태연한 말투에서 난 어떤 분노도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그건 일부러 감췄다는 소리다.
어머니도 눈치채셨을 거다.
그 말투에서 난 역으로 감정이 남았다고 느꼈다.
아버지 노릇 못해서 열 받는다면 주먹이라도 주고받으시던지, 뭐 특수종답게 해결하시겠지.
하지만 이대로 불멸교랑 싸우다가 할아버지란 작자가 골로 가시면 그건 아버지 마음에 평생 흉이 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이 부분만큼은 내 사심이다.
“나 냄새 안 나는데.”
난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흥, 웃기시네.”
노친네가 삐진 척 고개를 팩 돌렸다.
그러더니, 툭 말을 뱉는다.
“난 예민한 놈도 싫어해. 양아치 같은 새끼들이거든.”
까득.
노친네의 입안에서 어금니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나처럼 너그러운 사람이 어디 있다고.”
“너그러움?”
옆에서 미호가 초 치는 소리를 하긴 했다만, 대답은 됐을 거다.
냄새나는 건 변신족.
예민한 건 불멸자.
“너 변태냐? 나 변태도 싫다.”
혹시 협회랑 손잡았냐고?
알면서 이러시네.
“변태라니, 그런 거랑은 담쌓았지.”
난 평상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먹을 거 없어요? 배고픈데.”
“나 먹을 것도 없다. 근데 너 누구냐?”
노인네 눈빛이 아까와는 달라졌다.
그런데 여전히 치매 노인네다.
재밌네, 재밌어.
“유광익이요.”
“근데?”
“비즈니스 합시다. 혼자서 되겠어요?”
불필요한 얘기는 뺀 채, 몸쪽 꽉 찬 직구다.
그럼에도 흔들림이 없다.
“아.”
옆에서 미호가 짧은 탄성을 뱉었다.
목적어가 빠진 얘기, 보통이라면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 무슨 말 하는지 감도 잡기 어렵겠지만.
난 미호한테도 정보를 넘겼다. 거기에 내 사견도 메모로 어느 정도 쓰여 있으니.
지금쯤 대강 숙지했을 테고.
나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얘라면.
“할아버지, 서울 구경하실래요?”
적절한 순간에 치고 들어올 줄 알았지.
“서울 좋아요. 맛난 것도 사드리고 좋은 곳도 데려가 드릴게요.”
옆에서 들으니, 피라미드 회사에서 파견 나온 영업직 같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니까.
“NS, 나인테일스 팀장 우미호입니다.”
우미호가 딱 부러지는 말투로 이어 말하자, 그제야 이 노인네 눈빛이 조금 진지해졌다.
“다 알고 왔나 봐?”
“그럼 아무것도 모르고 한 회사의 대표가 여기까지 왔을까요.”
난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갑자기 껄껄 웃었다.
목을 뒤로 젖혀, 고개를 꺾으며 아주 큰 소리로 웃어 젖혔다.
“재밌네, 재밌어.”
이제야 할아버지도 재밌나 보다.
난 처음부터 재밌었다.
“미호야.”
그걸 보며 내가 입을 여니, 눈치가 비상한 우미호가 홀로그램 창을 열었다.
“근로 계약서예요. 취직하실래요?”
이제까지는 혼자 했다. 불멸교란 집단을 상대로 맨주먹을 휘둘렀다. 그건 달걀로 바위 치는 격이었을 거다.
그런데 여기서라면? NS 안에서라면?
조금 다른 문제일 거다.
난 유무인이란 양반에게 기회를 주는 거였다.
아버지의 역할도 하시고.
그 와중에 원하는 것도 하시라고.
어차피 불멸교는 지워진다. 유무인이란 사람이 없어도 그리된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다.
각오는 눈으로 말한다.
웃음을 멈춘 할아버지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한순간 진지한 공기가 감돌며 눈의 대화가 오갔다.
‘얌전히 따라와서 일이나 하시죠.’
‘손주란 놈이 뱀인 줄 알았더니 용이구나.’
‘용이라니요. 저 호랑이입니다.’
‘헛소리 뱉는 건 연호를 하나도 안 닮았구나.’
‘네, 이건 어머니 쪽이에요.’
‘좋아, 그럼 이 할애비가 몸을 의탁해도 되겠느냐?’
‘얼마든지.’
나이 먹었으면 어린 사람 수발도 좀 받고 살면 좋지 않겠나.
그렇다고 지금 당장 할아버지 취급은 어렵다.
아버지와 사이가 어떻게 매듭짓고 나면 그다음에야 두고 볼 일이지.
눈의 대화가 끝났다.
노친네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진지함이 사라지고 이제까지의 눈빛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사탕 주면.”
“……네?”
“사탕 주면 갈게. 근데 너 누구야?”
이 양반이 또 치매 노인네가 됐네.
이쯤 되면 반쯤은 진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예끼 이놈!”
그리 생각하자마자 노친네가 호통을 쳤다.
“못생긴 놈, 저리 가라. 난 얘랑 갈란다.”
그러더니 대뜸 미호의 팔짱을 낀다.
“할아버지, 눈이 밝으시군요.”
미호가 그 말에 동조했다.
“어디가 밝다는 거냐?”
“외모를 보는 눈이 밝으시네요.”
미친 건가.
나보고 못생겼다고 말하는 거 보면 모르냐.
저 눈은 이미 망가졌다. 아마 오랜 시간 살아온 불멸자로서 시력을 잃었을…….
“새 날아간다.”
할아버지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새 새끼 배에 까만 점 있다.”
할아버지가 이어 말했다.
난 미간을 찌푸리며 하늘을 바라봤다.
머리 위로 아주 높게 갈매기가 날고 있었다.
집중해서 보니, 배 가운데에만 까만 털이 나 있었다.
“나 눈 좋지? 정말 좋지? 못생긴 놈아, 사탕 줘!”
저 노친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