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37화 (337/488)

337. 재밌네, 이거.

[공고.

·모집 분야 : 현장 전투 요원.

·담당 업무 : 인베이더와의 전투 및 방어 시설 관리.

·자격 요건 : 학력/전공 무관. 신입 환영, 지방 근무 가능자(기숙사 제공), 남녀노소 국적 무관.

·기본 우대 사항 : 군필자, 유단자, 기숙사 생활 필수, 유관 업무 경험자(인베이더 전투 유경험자).

·특별 우대 사항 : 화기 없이 눈먼 개와 1:1로 싸워 이길 수 있는 남녀노소.

·근무 예정지 : 기밀.

근무 조건 : 정규직.

·급여 : 회사 내규에 따름. (생명 수당, 전투 수당 별도)

·직급 : 면접 후 결정.

·복리후생 : 3일 근무 1일 휴식 패턴, 4대 보험 외 기타 실비, 생명, 재생, 위험 지역 거주 보험 가입, 각종 장비 제공, 우수 사원 포상 제도, 연속 근무 포상 제도 등.

·전형 절차

1. 서류 접수

2. 면접

3. 최종 합격

·특이 사항 : 지원 시 테러단체와 관련되어 있다면 천국의 문에 키스하게 해 줌.

지원 시 NS가 아닌 다른 단체에 이중 소속되어 있다면 즉각 해고 조치.]

채용 공고 조회 수가 끝 모를 듯 치솟아 뉴스에까지 나오는 판이었다.

그 밑에 달린 댓글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했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관련 얘기가 나오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 패기 보소. 테러단체에서 스파이 보내면 죽여 버리겠다는데?

- ㄷㄷㄷ.

- 프메 지금 오줌 지릴 듯.

- 세최특보며 줄줄줄.

- 지린내 풀풀풀.

- 프로 오줌싸개로 등극극극.

- 라임 보소.

- 방구석 여포 새끼들은 테러단체가 옆집 개새끼인 줄 아나, 지리긴 뭘 지려.

- 발끈? 첩자 새끼세요? 그러다 걸리면 천국의 문이랑 딥키스인데 괜찮겠어요?

패기를 두른 공고다.

재미로 떠드는 놈.

옹호하는 놈.

자신은 현실적이라는 착각 속에서 테러단체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놈.

그만큼 말이 많이 나왔다는 거다.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몰려서 댓글을 남기고 떠들어 댔다.

무엇보다 이 채용 공고 세부 내용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게 하기 충분했다.

일단 연봉이다. 회사 내규에 따른단다.

NS의 연봉은 과연 이 금액으로 책정해도 회사가 잘 돌아갈까 싶을 정도의 고액 연봉이다.

결혼 정보 회사에서 현재 가장 높은 주가를 올리는 직장이기도 했다.

어지간한 대기업은 씹어 삼키는 수준의 연봉과 복지는 임직원의 위상을 드높였다.

거기에 생명 수당과 전투 수당이 별도다.

그런데 자격 요건이 남녀노소 국적 무관이란다.

이건 뭐, 가리지 않고 받겠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 이 연봉에 이 복지, 안 갈 이유가 없지.

- 미친 새끼, 이건 목숨을 거는 게 아니라 아예 죽겠다는 수준 아니냐?

- 이거 지원할 사람 있으려나?

- NS가 정식 채용 공고로 농담하는 건 아닐 건데, 눈먼 개랑 1:1로 싸우라는 거 진심이란 거지?

- 군필자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인 거지, 인베이더랑 주먹다짐한 사람이 아니라고 누가 말 좀 해 줘. 세최특 군대 안 다녀왔지?

- 기숙사 생활 필수라는 거 보니까 서울은 아닌 게 확실하고.

공고를 읽던 남자는 생각했다.

‘진짜 눈먼 개랑 싸우라고 하진 않겠지? 입사 테스트를 보겠다는 거겠지?’

불멸특수대 지원했다가 떨어진 어중이떠중이였지만, 그는 나름 머리가 돌아가는 쪽이었다.

그의 생각이 맞았다.

실제로 눈먼 개랑 싸우라고 할 순 없다.

면접 자체에 목숨을 걸라고 할 순 없으니까.

‘그럼 해 볼 만하지.’

불멸특수대 탈락자 하나가 지원했다.

같은 시간, 아내와 아이를 떠올리는 남자도 있었다.

중사로 불명예제대.

누명을 쓰고 끝낸 군 생활이다.

배운 기술도 없어서 일용직으로 몸을 굴리며 사는 중이었다.

주로 하는 일은 인베이더 사체 분해.

인베이더 사체에서는 유독성 가스나 인간의 몸에 해로운 에너지 파장이 나오기도 한다.

다들 꺼리는 일이란 얘기다.

수명을 깎는 일이다. 잘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자는 돈이 필요했다.

아이의 몸에는 난치병이 자리 잡았고 수술비만 억 단위로 들었다.

가진 게 빚뿐이었기에.

그에게 이건 기회였다.

남자는 고민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며 홀로그램 게임방 구석에서 손을 움직였다.

그런 그의 귀로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미쳤네, 이런 걸 누가 지원한다고.”

“그러니까 돈 없고 빽 없으면 전부 NS에 갈 줄 아나 보네.”

철없는 아이들의 시답잖은 얘기다.

이건 과연 죽으러 가는 길일까.

모른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뿐.

가능성을 보고 지원한 사람.

절박함에 나선 사람.

“이거라면.”

육상 선수로 한창 주가를 올리다가 발목 인대 부상으로 은퇴한 전 운동선수.

“나도 해도 되는 겁니까?”

파키스탄 출신의 불법 체류 노동자.

“차라리 여기 지원하고 말지.”

회식 자리에서 제 궁둥이를 쓰다듬는 개자식이란 이름의 상사 낯짝에 하이킥을 못 먹인 탓에 과음한 여직원.

“눈먼 개 잡은 적 있는데, 되려나.”

예순이 넘었지만, 새로이 일자리를 찾는 노인.

각계각층의 사람이 NS 채용 공고에 손을 올렸다.

회사 서버가 폭주했다. 백 명을 뽑는데, 만 명이 지원했으니까.

아무리 욕한다고 해도 회사에서 내건 조건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건 기회였고.

어떤 이들에게는 이건 탈출구였다.

광익이 전직 불멸 교주를 찾아 나선 사이 터진 일 중 하나였다.

다만, 이런 소란에도 NS는 그리 시끄럽지 않았다.

“커헝!”

지하에 갇힌 사자 한 마리만 빼고.

“대표님은 저걸 그냥 두고 가면 어쩌라는 건지.”

정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사자가 울음을 토할 때마다 가슴이 뜨끔했다. 손이 굳었다.

그런데 굳이 저 사자를 훈련장 구석에 둔다.

잘 가둬 두긴 했는데 뛰쳐나오면 곧바로 끔찍한 참상……이 되진 않겠네.

“울음소리가 귀엽네.”

“아들놈이 주워 오면 꼭 엄마가 돌보게 되지, 이놈이 사자를 주워 왔으니 키우는 것도 내가 책임져야지.”

돌아온 변신족 교관, 장가희와 대표 모친의 대화다.

저 둘한테 걸리면 미친 사자도 어금니가 털릴 것이다.

정직은 눈치로 저 사자가 둘에게는 살기를 덜 뿌리는 것도 알았다.

“시끄럽군, 목구멍에 총알이라도 박아 줘야겠어.”

이건 불멸자 교관 주일호의 말이다.

“놔둬라. 귀여운데, 한잔?”

마지막은 단군 그룹의 후계 중 하나인 대표의 삼촌, 이긍낙이다.

의외로 주일호와 이긍낙은 죽이 잘 맞았다.

정직은 주변을 둘러보며 미친 사자가 튀어나와도 크게 위협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정기남, 김근육, 박마리.

그 누구한테 덤벼도 사자 한 마리쯤은 제압할 것이다. 그리 보였다.

그래도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크허허허헝!

시끄러운 건 시끄러운 거고.

‘대표님은 요새 통 얼굴이 안 보이시네.’

자리를 비운 대표를 떠올리며 정직은 훈련에 매진했다.

이전 전투에서 배운 게 많았다.

그중에서 제일 크게 배운 건 아직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과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니까.

정직은 집중했다. 곧 그의 귀에 사자 울음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 * *

어디 산골짜기, 또는 북극에서 이글루라도 짓고 살지 않는 이상 사람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머리를 감으려면 샴푸도 사야 하고 먹고살려면 쌀이라도 사야 하지 않겠나.

하물며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모든 전자 기기와 척지고 사는 게 아니라면 제 모습을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

거기에 힌트도 있었다.

난 불멸교 사도와의 대화에서 유무인이란 사람이 국내에 있다고 확정했다.

말하지 않아도 말에 담긴 의미를 반추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 나선 길이었다.

“늦었어. 이제는 안 돼.”

조수석에 앉은 미호가 대뜸 말했다.

음, 뭐?

“혜민이랑 괜히 얼굴을 붉히기도 싫고. 빨리 정리해.”

애가 열이 있나, 오늘 먹을 약을 안 먹었나. 왜 이러는데.

“나랑 둘이 있을 시간 가지려고 일부러 핑계 댄 거잖아. 회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갑자기 이런 델 온다고? 좋아. 너 잘 감췄어. 하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조금 늦었어. 마음 접어.”

조수석 옆으로 지는 해가 멋지게 바다 위를 비춰, 출렁이는 주황빛을 뿜어냈다.

이곳은 한적한 시골 마을, 남해가 인접한 곳이다.

내 옆으로는 낮은 담으로 만들어진 돌담길도 보였고 저 멀리 등대도 보였다.

바다 내음이 물씬 풍겼고 오징어를 널어 둔 곳도 간간이 보였다.

남녀가 어울려 머리 식히러 오기 좋은 곳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너랑 같이 있으려고 대표의 직위를 이용해서 할 일도 없이 여기에 왔다?”

“접어. 동생을 구한 거랑 내 마음은 별개니까. 차라리 전장에서 네 고기 방패가 되겠어.”

처음 봤을 때부터 우미호는 머리가 좋았다.

셜록 홈스 개나리란 별명을 붙여 주기도 했다.

그녀의 머리는 비상하며 상황을 파악할 줄 알았다.

더불어 사람 보는 눈도 좋았고 냉정함을 갖추기도 했다.

나 말고 이런 사람이 필요해서 데려왔더니, 혼자서 추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아니다.”

“그래. 접어.”

“아니라고.”

애가 아니라는데 자꾸.

“알았어. 아니야. 접어.”

이거 알고도 장난 거는 것 같은데.

요새 얘도 귀태 형이랑 분홍빛 냄새를 풀풀 풍기더니.

“재밌냐?”

“아니, 조금 억울해.”

미호가 답한다. 반쯤 장난으로 말을 시작한 건 자기인데 뭐가 또 억울한가.

“초능국 왕자가 안 왔으면 방귀태랑 난 죽었을 거야.”

이전 전투 이야기다.

나도 잘 아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 누구라도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순 없다.

로스트 노쓰에서 미호와 귀태는 목숨이 간당간당했다.

그거로 귀태가 아직도 병원 침대 신세다.

앞으로 한 달은 그래야 할 거다.

혼혈 불멸자의 재생력은 느리다.

약으로 재생력을 끌어올리는 건 수명을 깎아 먹는 일이니, 자연 치유가 가장 좋았다.

“정기남이 죽도록 훈련할 때, 나도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했어.”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난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아니지, 우미호도 피를 토할 정도로 몸을 굴리긴 했다. 나도 안다.

우미호의 눈을 바라봤다. 딱히 걱정할 건 없어 보였다.

불멸자는 쉬이 죽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죽음의 위기, 생명이 경각에 달린 경험을 하기 쉽지 않다.

그런 경험을 겪게 되면 불멸자의 마음에는 병이 생기기도 했다.

불감가학이라든지, 감각 폭주라든지 하는 것들.

다행히 그딴 징조는 안 보였다.

다만, 자신이 도움이 될 순 있나 하는 자잘한 걱정이 보였을 뿐이지.

“연인 포지션이 아니라면 동료 포지션에서 짐이 되진 않을 거다.”

미호가 말했다. 담담하지만, 낮은 톤의 말투에서 단호함이 느껴졌다.

그래. 그럼 난 응원을 해 줘야겠지.

“노력해라. 우미호, 게으름 피우지 말고 훈련해. 오가는 내내 기척 죽이기 연습 시작. 채찍을 구해야겠어. 찰싹찰싹 때려 주마.”

“……미친.”

미호가 날 무슨 변태 보듯 봤다.

파이팅을 해 줘도 이러네.

하여간 애들이 성격이 꼬여서 정상이 없다.

나만 멀쩡한 것 같다.

그 말을 끝으로 미호가 고개를 돌려, 조수석 창가에 턱을 기댔다.

시골 마을, 바다, 지는 해, 선선한 바람, 여름 냄새 따위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우미호가 훈련과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잠을 줄이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 왔다.

나도 안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기에 그녀는 쉬지 않았다.

우미호는 불멸특수대에 몸담은 뒤로 제대로 된 휴가조차 써 본 적이 없는 애다.

불현듯 지금 우미호한테 필요한 건 휴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휴가라도 줘 볼까.

부르르.

그사이 미호의 홀로그램 폰이 울었다.

“네.”

짧은 통화 내용이 귀를 스쳤다.

전화를 끊은 미호가 말했다.

“입사 지원자가 넘쳐흘러서 곤란하다는 연락, 첩자를 구분해서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감별사가 부족해.”

“천천히 해.”

그건 나도 방법이 없다. 거짓말 탐지 능력까지 속이는 놈이 빈번한 세상이다.

이중봉, 정기남 둘이 나서서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는 것밖에 수단이 없다.

그런데 그 둘은 하루의 반은 훈련에 시간을 쏟아부으니까.

이럴 땐 어쩔 수 없다.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라야 했다.

그럼 로스트 노쓰에 있는 화이트홀을 확보하는 게 늦어질 테고.

이세계 소재 구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겠다.

회사 자원을 소모해야 하니, 돈이 천문학적으로 들 것이다.

번 만큼 빠져나가는 걸 넘어, 버는 것보다 더 빠져나가는 거다.

상황이 조금 나빠지긴 하겠다만, 그거로 회사가 망할까.

그럴 턱이 있나.

그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작은 담 너머 수돗가가 마당에 있는 시골집이었다.

난 집 옆에 있는 공터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미호가 뒤를 따라왔다.

툭툭 걸어 담 너머에서 안쪽을 바라보니, 작은 평상에 앉은 괴팍해 보이는 노인네가 있었다.

그 노인네와 눈이 마주쳤다.

“뭐여?”

눈빛, 호흡, 손의 위치, 발의 위치, 근육의 움직임.

그 모든 게 그 사람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게 한다.

난 그리 했다. 순혈을 뛰어넘는 예민한 감각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찰나 만에 내린 결론이다.

상대는 그냥 시골 노인네처럼 보였다.

재밌네, 이거.

다 알고 왔는데, 이리 완벽하게 제 정체를 감춘다. 놀랄 일이지 않나.

“유광익, 내 이름요.”

난 당당히 이름을 밝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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