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34화 (334/488)

334. 아버지가 와 계셨다.

푸름은 기어에 반쯤 미친 불멸자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를 모르진 않았다.

연구에 몰두했을 때야 바로 옆에서 수류탄이 다발로 터져도 그러려니 할 테지만, 지금은 그 연구에 제동이 걸렸다.

강푸름의 머리가 연구에서 일반인 쪽으로 돌아섰다.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요구하네요?”

기어 개발팀.

강푸름은 자신의 팀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그 팀의 서포터이자, 자신을 대신해 대외적인 일을 처리하는 여자 부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합의 불가라고 하네요. 하, 진짜, 적당히 좀 하지.”

“협회 말고 다른 루트는 없어요?”

“아시잖아요. 아더 사이드 소재는 기본적으로 독점권을 인정해 주는 거, 협회 개새끼들.”

부소장은 갈수록 입이 험해졌지만, 푸름은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 할 일은 잘하는 사람이니까.

“꼭 필요하시죠?”

욕 반 한탄 반을 섞어 뱉던 부소장이 물었다.

“네.”

아다만티움부터 시작해서 기생석, 축능석까지.

일전 광익이 구해 준 금속은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해 줄 연료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연구를 위해서는 다른 소재도 많이 필요한 법이었다.

예를 들어 ‘봄의 화원’이라 불리는 이세계의 꽃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봄의 화원은 협회가 관리하는 이세계였다.

그리고 협회는 NS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판독기 사업을 통째로 뺏겼으니, 그럴 만도 하지.

강푸름은 이해했다.

그렇다고 이 금액을 이해할 순 없다.

다른 단체에 파는 것보다 최소 열 배 이상의 비용을 요구하지 않나.

그렇다고 이쪽에서 꺼낼 카드가 따로 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일대일 거래를 할 만한 소재가 부족하다.

푸름은 현재 NS가 돌아가는 구조를 안다.

초능국 무역, 판독기, 암시장.

그 외 자신이 개발한 물건의 소유권.

연구팀 입장에서 보자면 그리 좋은 구조는 아니었다.

원자재를 구할 루트가 없으니까.

초능국 무역에서 나온 소재를 일부 돌려서 쓰긴 하지만, 그 무역 사업에 제동을 걸긴 어렵다.

그쪽에서 나온 수익이 회사 운영에 큰 힘이 되니까.

‘무지막지한 복지와 연구 시설.’

푸름은 제 연구 시설을 돌아봤다.

지금 눈에 보이는 입자 가속기를 비롯해 분자 판독기, 쾌속 조형기, 홀로그램 프린터, 레이저 스캐너.

전부 최신형이다.

개중에는 투자를 통해 선점한 물건도 여럿 있었다.

이리 돈을 펑펑 써 대려면 그만한 돈을 벌어야 하는 법이다.

‘무역에서 원자재를 더 뺄 순 없다.’

암시장에서 빼 오는 것도 한계다.

김중고는 블루홀 연구팀을 돈 잡아먹는 코끼리 새끼라고 부르곤 했다.

그만큼 이곳에서 소모되는 자원이 만만치 않음을 말한다.

이걸 줄일 방법, 있다.

‘정부에서 하나 안 빼 주려나?’

아더 사이드를 넘어가는 통로, 화이트홀을 확보하면 된다.

원자재를 확보하는 루트가 생기면 다른 곳과 거래도 무난하게 이뤄질 테고.

연구에 필요한 소재라도 나온다면 지금처럼 정부와 단군, 협회 쪽에 손을 내밀어 자재를 부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푸름은 거기까지 사회인 모드로 생각을 마친 뒤, 접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으므로.

그저 광익에게 연락만 남겨뒀다.

소재가 부족하니, 화이트홀을 확보하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이후는 연구원 강푸름이다.

“몰라요. 구해 주세요.”

“네?”

“무조건 구해 주세요.”

사회인 강푸름은 회사와 부소장의 과로를 걱정하지만, 연구원 강푸름은 그런 거 모른다.

“필요합니다.”

말만 하고 쌩 하니 안으로 들어가자, 지켜보던 부소장이 읊조렸다.

“얼굴이라도 못 생기던가.”

부소장은 차마 저 얼굴에 침을 뱉거나 욕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 * *

푸름에게 온 연락을 보며 난 생각했다.

이 자식 어떻게 알았지?

화이트홀을 하나 막 찾은 참인데.

테러 단체 궁둥이를 떼찌하고 돌아온 뒤, 나흘이다.

난 푹 쉬었다. 잘 먹고 잘 놀았다.

간간이 두 과외 선생이 여행 중 얻어 온 걸 듣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으며.

겸사겸사 아버지에게 할아버지의 정체를 물으려 하는데, 마침 출장 중이셨다.

난 회사 일에 전념했다.

“사람을 더 뽑아야 하나.”

회사 일이 가중될수록 반 시체가 되어 가는 중고 형이다.

몸무게가 8kg이 줄었다.

“자동 다이어트군요. 안 그래도 형은 좀 쪘어요. 지금이 더 보기 좋네요.”

먹을 건 챙겨 먹으면서 과도한 업무량에 빠진 살이다.

그 와중에 NS 소속이기에 단련의 시간도 견뎌야 했으니.

어느새 쫀쫀한 말 근육의 몸을 가진 중고 형이다.

“……와이프가 좋아하긴 하더라.”

최근에 귀국한 형수님이 밤마다 그 말 근육 복근을 쓰다듬으신다고.

젊어, 아주 청춘이야, 우리 중고형.

“정부나 단군이나 똑같아. 소재 금액을 후려쳐.”

중고 형에게 받는 보고 중에는 현 상황에 대한 것도 있었다.

푸름의 연락과 대동소이한 내용이다. 이세계 소재로 NS의 돈을 빼먹으려 한다는 거다.

“협회는요?”

“거긴 뭐, 개씨이입새끼이들이지.”

회사 매출을 관리하는 중고 형이다.

그에게 협회가 제시하는 금액은 ‘이 새끼가 한번 해 보자는 거 같은데?’라는 의미다.

그런데 머리끄덩이 잡고 싸워도 부족한 판에 그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게 속이 타겠지.

정부랑 단군 그룹의 인맥으로 누르려고 해도 통하지도 않고.

정부와 단군조차도 화이트홀 문제에는 그리 적극적이지도 않다.

난 현 상황을 이해했다. 진심을 담아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완전히 이해했다.

NS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가질 수 없는 게 있다.

아더 사이드 통행권, 화이트홀이다.

정부도, 단군도 절대로 안 내준다.

협회는 말할 것도 없고.

이해는 한다. 지금도 매출이 한국을 넘어 글로벌을 찢는 중이다.

여기에 화이트홀을 얹는다?

달리는 말에 날개가 달리는 격이다.

지부 이름은 페가수스로 할까 싶다.

하여간 다른 기득권 처지에서야 당연히 저리할 수밖에.

“일반인까지 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안전을 확보하려면 현재 인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푸름의 연락, 중고 형과의 대화, 한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상념을 날리는 한 마디가 귀에 꽂혔다.

팬더 형이었다.

회의실 한쪽에 앉은 형이 덤덤히 말했고.

“안전 인프라 구축이 되어도 대부분 인원이 이동하려면 전용 노선버스나 트램 따위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이건 정부에서 해 줘야 하는 거라서요.”

반대쪽에 앉은 미호가 홀로그램 맵 위로 노선이 생기면 좋을 곳을 체크하며 말했다.

“인프라 확보 전에 소탕 작전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로스트 노쓰가 왜 버린 땅이 되어야 했는지는 잘 알지 않나? 블링크 홀 현상을 클로징 할 순 없어요.”

홀로그램 위로 몇 가지 선을 그리다 지운 미호가 말을 이었다.

로스트 노쓰에서 발견한 화이트홀 확보를 위한 회의 중이었다.

참석한 인원은 총 다섯.

중봉이 형, 팬더 형, 구미호, 떠벌이 요한 형하고 나.

그리고 난 그들의 진지한 대화 사이, 회의 중심에 서서 주도했다.

“지금이 몇 월이죠?”

“6월인데.”

옆에서 요한 형이 조용히 답했다.

아직 팬더 형과 미호가 세차게 토론 중이다.

중봉이 형은 그저 듣고만 있다.

난 그들의 대화 사이에 한마디를 던졌다.

“시즌이네요.”

내 말에 둘이 날 바라봤다. 난 말을 이었다.

“정규 채용 시즌이요.”

“……너 회의 안 들었지?”

팬더 형이 묻는다.

사실 제대로 듣진 않았지만, 여기서 안 들었다고 하는 건 삼류다.

들은 척하는 건 이류.

일류는 둘 다 하지 않고 제 할 말을 하는 법이다.

“한 삼백 명 뽑죠.”

중봉이 형이 날 빤히 본다.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생각을 정리했는지, 곧 눈을 반짝하며 중봉 형이 말했다.

“특수종 위주로?”

짧은 순간 생각이 통했다.

그 한 마디가 머리 잘 돌아가는 셋에게도 같은 영감을 줬다.

“블링크 홀은 해결할 수 없으니까.”

팬더 형이 말하고.

“홀은 놔두라는 거죠. 대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만 취하면 되니까.”

요한이 받고.

“클로징은 무시, 루트만 딴다. 험로겠네.”

미호가 마무리했다.

간단한 이야기다.

블링크 홀은 이상 현상이다.

그 끔찍한 현상이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 일어났다면 그야말로 대재앙이 다름없는 그런 이상 현상.

닫히지 않는 블랙홀이 여기저기 열린다.

그것만큼 끔찍한 일이 어디 있을까.

일부 학자는 블링크 홀이야말로 인류의 세 번째 재앙이라 부른다.

첫 번째는 테러블 이어, 두 번째는 휴즈 게이트다.

그러니 이 세 번째 재앙은 놔두고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간다는 거다.

어지간한 인베이더에게 당하지 않는 무리만 움직이는 거다.내 앞의 셋이 내린 결론이 이거다.

난 조금 더 나아갔다.

“꼭 특수종만 뽑을 필요는 없고요.”

내 말에 이건 또 무슨 미친 소리니 하는 눈빛이 꽂혔다.

난 어깨를 으쓱하고 설명했다.

꼭 특수종일 필요는 없다니까 그러네.

“위험 부담이 너무…….”

요한 형이 말을 흐렸다.

“해 보고 안 되면 안 하면 되니까. 뭐.”

난 회의를 끝냈다.

* * *

테러 없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나와 연단에서 외쳤다.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테러 단체 배척, 대한민국이 앞장서겠습니다. 어둠 속에 숨은 그들을 더는 그냥 두지 않겠습니다!”

덕분에 대통령 지지율이 껑충 뛰었다.

물론 연설 하나로 된 건 아니었다.

정부가 타이밍 좋게 잘 받아먹은 거다.

난 테러 단체의 함정을 정면으로 깼다.

프로메테우스, 불멸교, 이시스, 스위퍼.

로즈의 말을 따르면 네 집단 모두 이번 일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을 거란다.

당연했다.

함정 하나 파겠다고 포기한 기지가 몇 개인가.

정부와 단군 그룹의 눈을 속이려고 뿌린 미끼가 몇인가.

결국, 함정 카드를 발동했으나 내가 카드를 힘으로 찢었으니, 피해가 막심한 게 맞았다.

테러 집단의 규모는 줄었고 활동 영역은 축소됐다.

정부는 그걸 알고 연설을 후려친 거고.

특히나 내가 있는 곳에서는 프로메테우스를 비롯해 그 어떤 새끼도 코빼기도 못 비치는 중이다.

연설은 마치 정부가 테러를 잠재운 듯 보였다.

다만.

“이 모든 일의 공로는 NS에게 있습니다.”

대통령이 저리 말함으로 그 공로가 나한테 몰렸을 뿐.

<역시 NS!세최특이 있어 대한민국은 안-전.청기사 슬레이어란 이름이 장난은 아니잖아?>

한 명의 안티도 없는, 사실 있어도 난 안 본다.

날 좋다고 하는 사람의 얘기 듣기도 바빠 죽겠는데 뭐.

어쨌든 다들 날 칭송하기 바빴다는 거다.

그 덕분에 방송 스케줄 잡긴 편했다.

안 그래도 러브콜이 무시무시하게 들어오는 판이니, 골라잡으면 됐다.

근데 요리 프로그램 특별 출연은 왜 요구하는 건지 모르겠다.

얼굴 가리고 노래 부르라는 방송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말이야.

어쨌든 케이블 방송 특집이었다.

<청기사 슬레이어의 매력 탐구 시간>이라는 좀 난잡한 제목이 붙긴 했지만, 내가 좀 매력적이니까.

가슴이 크고 눈매가 단정한, 혼혈 불멸자가 분명한 여자 진행자의 질문으로 시작된 방송이었다.

질문의 대부분 쓸데없는 내용이었다.

내 키, 몸무게, 취미 따위를 묻곤 했으니까.

“훈련이요.”

“취미가 훈련이에요?”

여자 아나운서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 웹소설도 읽긴 해요. 아, 저 말단병사에서 군주까지의 팬입니다. 웹툰 잘 뽑혔더라고요. 작가님 사랑해요.”

감정 없는 한 마디지만, 반응은 좋았다.

“인간적이시네요. 청기사 슬레이어가 방에서 홀로그램 폰으로 웹소설을 읽는 모습이 상상이 안 가는데요. 혹시 이상형을 물어도 될까요?”

물으며 여자 아나운서의 동공이 조금 커진다.

땀구멍이 열리고 숨소리가 더 짙어진다. 조금이지만, 흥분 상태다.

난 오랜만에 내 이상형 얘기를 꺼냈다.

“섹시하고 청순하고 고아하고 귀엽고 지적이며 배려 깊고 같이 놀아 주고 얼굴 예쁘고 몸매 좋고 어우동과 신사임당이 반반씩 섞인 그런 여자입니다.”

“……무척 명확하시네요.”

“네. 제가 이런 건 단호해서요.”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네,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학자의 눈빛을 보여 주니, 아나운서가 허탈한 웃음을 뱉었다.

“그래요.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요.”

특집이라고 해 봤자 꼴랑 1시간짜리다.

난 마지막이 되고서야 여기 나온 목적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도 될까요?”

“네? 네.”

카메라 몇 대가 내 쪽으로 돌아선다. 빨간 불빛을 보며 난, 입을 열었다.

“NS에서 정규 채용을 할 겁니다. 연봉과 조건은 사이트에서 확인하세요.”

짧지만 굵은 한 마디와.

“발전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전보다 낮은 연봉, 타협하는 복지 따위 없습니다.”

포부를 밝히고.

“목숨 걸고 일하러 오세요. 웰컴 투 규격 외 컴퍼니.”

깔끔하게 끝맺었다.

방송은 초대박이 났다.

실시간 방송이었는데 NS 구직을 위해 따로 파둔 사이트 서버가 폭주했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말단병사에서 군주까지 작가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내 영향력 한 번 죽이네.

그리 방송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왔니?”

아버지가 와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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