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 지부 위치 선정 완료
NS를 떠난 주일호는 기초 단련에 힘썼다.
몸의 기초 능력 즉 근력을 비롯한 순발력을 등을 기르기 위해 힘썼다.
‘불멸자는 우직함이 장점이다.’
하루하루의 단련 끝에 낙이 있는 법.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주일호는 세계 곳곳의 전장을 떠돌았다. 용병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한국은 너무 조용해.’
그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 다니는 경험이 필요했다.
그는 그리했다.
감각을 예전으로 돌렸다.
그때 우연히 장가희를 만났다.
순전한 우연이다.
전장에서 적으로 마주쳤으니까.
“혼자 좀 빡세지 않아?”
장가희가 물었고 주일호는 수긍했다.
이후는 함께 움직였다.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다음에 그 다중능력자를 만나면 쉽게 당하지는 않을 정도로.
장가희도 그런 듯했다.
그리 돌아올 때 광익에게 연락이 왔고 그는 그대로 무장 지대로 들어왔다.
아이러니하지만, 무장 지대가 자신과 장가희의 훈련장이었으니.
더없이 익숙한 지형이라 할 수 있었다.
좌표를 받은 그는 땅굴에 진입했다.
주일호, 장가희 둘 다 조금 늦게 도착한 참이었다.
이미 폭발이 있었고 NS는 뿔뿔이 헤어진 채로 전투에 돌입했으니.
둘이 같이 움직이는 건 낭비였다.
“찢어진다.”
“안 그래도 그러자고 하려고 했다.”
장가희와 헤어진 이후,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기척을 감지하며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안쪽까지 잠입했고.
교묘하게 숨은 암살자를 찾았다.
불멸교 암살자였다. 그는 그들을 죽이며 움직였다.
땅굴 안에서 빈틈을 노리던 암살자는 대부분 주일호 손에 죽었다.
그리 도착한 곳에서 그는 광익의 전투를 봤다.
이미 자리 잡은 암살자 셋을 죽인 뒤였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기가 막힌 솜씨로군.’
가진 힘을 이용해 크로커다일을 죽인 건 예상안.
이후 마법사를 죽인 것까지도 예상안.
놀란 건 흑표범을 죽였을 때다.
흑표범을 죽인 건, 기척 속이기와 죽이기, 흩날리기를 섞어 쓴 일격이었다.
‘가르칠 필요가 없어.’
자신이 떠돌며 깨달은 일격과 유사한 기술이었다.
인식 범위 밖의 공격이다.
기척을 섞어서 혼란을 준 뒤, 보이지 않는 일격을 넣는 것.
주일호는 그걸 인식 너머의 칼날이라 불렀다.
‘가르치며 큰소리 좀 쳐 보려 했더니.’
한때의 제자는 이미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하물며 갈고 닦아 완벽에 가까운 제 기척도 알아챈다.
“잘 있었냐?”
그렇게 주일호는 나타났다.
그리고 둘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거래 내용은 남은 것 같은데?”
사도가 묻는다. 그녀는 덤덤해 보였다.
아는 얼굴이었다.
참 오래도 살아남았군.
사도는 자신을 힐끗 보더니, 다시금 광익에게 집중했다.
“궁금은 한데, 그게 목숨값은 돼?”
“되지 않을까?”
“내가 거절하면?”
“그럴 필요가 있어? 나 하나 죽이는 것보다 정보의 가치가 더 높지 않아?”
사도는 진심을 담았다.
주일호는 얌전히 옆에서 기다렸다.
광익의 할아버지라면, 유연호의 부친이다.
자신도 들은 적이 없는 내용이었다.
“좋아. 말해.”
광익은 호쾌했다.
“좋아. 네 할아버지는 불멸교에 있어.”
“인질로?”
광익이 숨도 안 쉬고 되묻는다.
“아니.”
사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약속은 지키겠지.”
“지키겠지. 아마도.”
“불안하게 하는군.”
“그게 내 매력이라서.”
“좋아, 믿겠어. 네 할아버지의 이름은 유무인.”
유무인? 주일호는 그 이름을 알았다.
역사서에 자주 나오진 않지만, 가끔은 등장하는 이름이었으니까.
테러블 이어에서 활약한 불멸자, 그러니까 이 세상에 최초로 등장한 불멸자 중 하나였다.
* * *
유무인.
학창 시절 내 성적은 꽤 훌륭했다.
그 덕분에 유무인인 특수종 세상의 영웅 중 하나로 추앙받는 이름이라는 건 금세 떠올랐다.
작대기 선생을 슬쩍 보니, 저쪽도 눈치챈 것 같았다.
“올드 포스의 오점이지. 교주는.”
음?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은 건가?
“불멸교주를 말하는 건가?”
작대기 선생이 끼어들었다.
“맞아, 유무인, 불멸교의 초대 교주이자 유연호의 부친 그리고 네 조부지.”
음?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니까 테러 집단을 만든 수장이라고?
맞아?
“내가 한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
아찔한 충격 따윈 없었다.
그저 아버지가 말하지 않은 게 궁금할 뿐이지.
아니, 그걸 안다고 내가 충격을 받을 거로 생각하셨나?
그런데 초대 교주라면 지금은 아니라는 건데.
근데 이게 중요한가?
전혀 모르겠는데.
놀랍긴 한데, 이게 가치가 있는 정보인지는 모르겠다.
난 임팩트를 들어 머리에 대고 긁었다.
“거래는 유효하겠지?”
사도가 물었다.
난 그걸 몸소 증명해 줬다.
철컥.
상대 무리가 워낙 허약해서 임팩트를 못 썼다.
그래도 몽둥이로는 적당히 썼기에, 에너지는 모였다.
난 임팩트 총구를 사도가 만든 방어막에 딱 붙였다.
“뭐 하는 거야?”
사도가 묻지만, 무시한 채, 집탄 형태로 방아쇠를 당겼다.
뻐-엉!
굉음이 터졌다.
임팩트에 모인 압축 에너지는 곧바로 폭발, 사도의 방어막 위쪽에 구멍을 만들었다.
불투명한 방어막은 곧 무너졌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이거 정말 무식한 무기라니까.
이게 풀차지 샷도 아닌데 말이야.
“불멸교 사도, 다음에 날 노릴 거면 교주랑 사도 전부 손을 잡고 와야 할 거다.”
“어지간하면 그런 일은 피하고 싶군.”
그게 전부였다.
사도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한쪽 벽에 붙더니, 교묘하게 조작, 곧 쿠르릉 하고 벽에 통로가 생겼다.
비밀 통로도 있었냐.
사라지는 사도의 등을 보고 있으니, 작대기 선생이 옆에 다가왔다.
“뒤를 밟아 볼까?”
“속일 순 있겠지만, 영리해 보이던데 곧바로 움직일까요? 저라면 며칠은 어디 숨어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서 완벽하게 숨을 기회를 찾을 거고. 무엇보다 제가 느껴본바, 불멸교가 막 산뜻한 집단은 아닌 것 같거든요. 여기 참여한 모든 사람이 죽었는데, 저 사도 하나만 살아 돌아가면 교주가 어이구 고생했네 하면서 궁둥이 두드려 줄 것 같진 않으니, 교로 돌아가진 않을 것도 같고요.”
“……친할아버지 얘기 들으면서 거기까지 생각한 거냐?”
“할 수 있으면 불멸교 내부 사정을 더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건 말 안 해 줄 것 같아서요.”
할아버지가 초대 교주라니, 나머지는 그쪽에 물어보면 되겠지.
말하는 거 보면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으니.
치매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처음 테러범 새끼들이 일으킨 폭발 때문에 안쪽 통로가 엉망으로 엉켰고 재밍 장치는 어찌나 야무지게 켰는지, 통신 기기는 먹통이다.
결국, 여기저기 흩어진 직원을 하나하나 찾아야 할 터였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싸우는 것보다 그게 더 고된 일이 되려나?
잡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부스스.
한쪽 벽이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벽이 모래 알갱이 흩어지듯 바닥에 흩어진다.
초능 에너지가 여실히 느껴지는 현상이었다.
빤히 보고 있으니.
“유광익, 불러 놓고 마중도 안 나와!”
불퉁한 표정을 지은 어린 왕자가 나타났다.
삿대질하며 내려선 그가 날 보더니 쪼르르 다가왔다.
“안 반가워?”
“반가운데요.”
“표정이 아닌데?”
“이게 반가운 표정 맞는데요.”
“칫, 오다 주웠다.”
알이 오다 주웠다고 제 뒤쪽을 가리켰다.
난 상당히 철저하게 작전을 짜긴 했다.
죽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알에게 부탁도 했고, 그럼에도 조금은 걱정했다.
괜히 죽은 사람이 나올까 봐.
초능국 사람 사이로 데려온 NS 일원이 보였다.
하나같이 꽤 고생한 몰골이다.
특히나 방귀태는 반죽음 상태인데.
기남이도 뭐, 멀쩡하진 않네.
정기남은 오자마자 내 주변을 둘러본다.
작대기 선생을 보고 날 다시 보더니, 어금니를 꽉 깨물고 물었다.
“너 혼자?”
“뭘?”
“혼자 싸웠냐?”
“혼자 했다.”
작대기 선생이 나 대신 답했다.
정기남은 그 말에 눈꼬리가 쳐졌다.
쟤는 상태가 왜 저러냐.
“서방, 안 다쳤어?”
혜민아, 여기 네 서방이 어디 있니?
그 말은 무시했다.
근데 어머니가 안 보이는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대쪽 검은 동굴처럼 보이는 통로에서 어머니가 나왔다.
“아들?”
옆에 요한과 중봉이 형이 함께다.
“아니, 이중봉 팀장님 꿀 빨았어요? 다친 곳이 없네.”
내가 모두를 대표해 한마디 했다. 다들 고생했는데, 어디서 혼자 꿀을 빨고 있어.
“꿀은 무슨.”
요한이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쪽은 뭘 했나, 꽤 궁금했다.
몸에 피가 튄 걸 보니, 얌전히 홀로그램 게임이나 하다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로스트 노쓰에 이런 게 있을 줄 몰랐는데, 좀 놀랄 거다.”
요한이 다가오며 말했다.
알았다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얘기하잔 말이었다.
그사이 로즈가 다가와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크로커다일, 뇌전의 류, 이시스의 흑표범, 환상안, 마법사까지, 한바탕 뒤집히겠군.”
음? 뭐가?
내 눈을 본 로즈가 말을 이었다.
“삼대 테러 집단이 세미나라도 열게 생겼다고.”
그리 말하면서 로즈는 꽤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이 작전의 입안자로서 부담스러웠으려나.
“너 이 자식, 왜 숨겼냐?”
팬더 형이 다가오더니, 툴툴거렸다.
초능국의 지원을 말하는 것일 터.
“공식적으로 왕자님은 자기 나라에 있는 거라서요.”
보안이 생명인 일이다. 날 위해서도 초능국을 위해서도.
초능국은 타국을 위해 왕가의 힘을 쓰지 않는다. 이건 올드 포스와 맺은 협약이다.
그걸 정면으로 어긴 셈이니까.
당장은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넘기더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뭐, 이것도 생각이 있긴 하다.
어쨌든, 그때는 모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서 짜릿했습니까?”
“짜릿해서 지렸다.”
팬더 형이 말하고 그 옆으로 정아 누나가 다가왔다.
표정이 참.
전에는 보지 못한 상기된 얼굴에 생동감이 어린 표정이다.
이전에 농담하는 거랑, 웃는 거랑 겹쳐서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딱한 표정의 사수라 얼음 공주라는 별명까지 붙였었는데 말이야.
정아 누나는 다가와 읊조렸다.
“고마워.”
그 한 마디에 참 많은 게 응축되어 있었다.
그녀의 복수는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프로메테우스의 팔 하나랑 다리 하나쯤은 자른 셈이었다.
수장이 직접 왔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직 안 끝났어요.”
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 말 그대로다.
난 나름대로 목표가 있고 그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거기에 프로메테우스가 설 자리는 없다.
정아 누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고마움을 비롯해 복잡한 감정이 섞인 눈빛이다.
난 그저 묵묵히 바라만 봤다.
딱히 말이 필요한 순간은 아니라 생각하며.
“둘 분위기 이상한데, 그러지 마. 날 질투에 눈먼 여자로 만들지 마.”
혜민이가 우리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정아 누나가 풋 웃더니 말했다.
“내 스타일 아니야. 나 얼굴 봐. 많이 봐.”
“……나 마음이 복잡해. 기쁘면서도 괴로워. 오빠 얼굴이 적당히 생긴 게 슬프면서도 기뻐.”
혜민이 말했다. 난 이 복잡한 동생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쿵.
“아!”
“좀 조용히 있어라.”
난 어머니를 찾았다.
“아들, 무슨 일 있니?”
어머니는 날 보자마자 물었다. 눈만 마주쳤는데, 무슨 말입니까.
엄마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 연기력 죽여 줬는데 말이야. 테러범 애들이 다 놀라서 까무러쳤는데, 전부 당했는데.
“내가 아들 얼굴도 못 알아보는 엄마일까. 뭐니?”
그러더니 물었다.
“엄마가 천사소녀 네티라고 했을 때도 그러려니 해서, 저 이것도 그러려니 하긴 하는데요.”
이곳에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 믿는 사람이다.
이게 큰 비밀이라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불멸교 사도가 제 출생의 비밀을 말하더라고요.”
“출생의 비밀?”
말이 거창하지만, 그냥 할아버지 정체가 좀 유별난 거다.
“친할아버지 성함이 유무인 맞아요?”
어머니는 한참 날 보더니, 되물었다.
“그게 누구니?”
우리 어머니, 학창 시절에 공부랑은 담쌓았다고 하셨던가.
삼촌 둘이 입을 모아 말했으니, 그게 맞을 것이다.
“아니요. 그렇다고 하네요.”
“그러니? 돌아가서 네 아빠한테 물어보자. 혹시나 숨겨 둔 동생 같은 이야기 나오나 했다. 아유, 아버지 주리를 틀 뻔했지 뭐니.”
그걸 농담이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실현 가능해서 더 무섭잖아요.
“그럼 당장.”
이제 가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아니, 광익아. 볼 게 있다니까.”
요한이 날 잡았다.
“뭔데?"
“따라와 봐.”
그 덕분에 단체로 저벅저벅 통로를 따라 걸었다.
중간중간 라이트 비즈를 켜서 주변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정리하면 꽤 괜찮지 않을까 하는.
주변 인베이더만 정리하면 좋은 거처가 되지 않으려나.
들어 보니 테러 단체 애들이 두고 간 인프라도 좀 되고.
주변에 인베이더야, 여기를 아더 사이드라고 생각하고 쓰면 되지 않나.
로스트 노쓰에 본사를 두면 방문자가 목덜미를 잡으려나.
그게 오히려 노리는 바다.
다들 하도 드나들어서 귀찮은 참이다.
본사를 여기에 두면 일반 직원이 출근하기 힘들어서 안 되긴 하겠다.
그리 생각하며 옮긴 걸음의 끝이다.
“……오.”
나도 모르게 짧은 감탄사를 뱉었다.
작은 연구실 같은 곳이었다.
곳곳에 개 대가리 시체가 널린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 캐비닛 몇 개가 쓰러진 벽이 눈에 들어왔고.
그 벽 한가운데에 하얀 통로가 보였다.
인 게이트, 그러니까 화이트홀이었다.
NS의 지부 위치가 결정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