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32화 (332/488)

332. 싸움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불멸교 사도는 방어막을 회수하지 않았다.

이 방어막은 특별하다. 그리고 일회용이었다.

유지 시간은 30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이 직사각형 형태의 방어막은 상하좌우 어떤 공격도 막아 내는 사이오닉 기어였다.

‘적절했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 타이밍만 늦었으면 전신이 갈가리 찢겼을 것이다.

그보다 운이 나빴다면 저 사자의 위장에 제 살을 헌납했을지도 모르고.

방어막은 물리력에 한해서는 절대의 강도를 자랑한다.

‘그래도 불안하기 짝이 없긴 하지만.’

하지만 괜찮다.

그녀는 철두철미했다. 이런 순간도 염두에 뒀다.

그걸 위해 준비한 패가 두 개는 남았다.

관자놀이를 따라 땀이 흘렀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툭툭 멍한 시선을 걸어오는 세최특이 보였다.

“보아라. 내 눈을 바라봐.”

환상안이 발발 떨며 말했다. 어지간히 집중하는 듯했다.

성공일까?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 준 것만 봐도 세최특은 규격 외의 전투력을 보였다.

‘특히나 주문을 미리 간파하는 눈도 가졌어.’

사도는 환상안에 걸리지 않을 방법을 세 개는 알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고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세최특은 괴물이었다.

머리 쓰는 수준도 보통이 아니었다.

자신 또한 이런 종류의 전술을 즐기기에 안다.

상대에게 착각하게 만들어 스스로 함정에 빠트리게 하는 건 사도의 특기였다.

그리고 세최특은 태도나 말투와는 달리, 하는 짓이 영악하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이 함정을 역이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고.’

전투의 흔적도 그걸 여실히 나타낸다.

처음 달려든 크로커다일을 상대하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세최특은 기세를 숨겼다. 철저했다. 일부러 기세를 드높이지 않았다.

말만 앞서는 놈인 척했다.

사도는 일부러 말을 늘렸다. 대화를 이어 갔다.

그 과정에서 세최특의 목소리에서 불안감을 읽어 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감정을 잘 숨기는 타입이라 생각했다.

이유 없는 자신감은 곧 불안감은 반대말이었다.

사도는 그리 생각했다. 그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다.

세최특은 자신감이 너무 과했다.

“적당히 해요. 시간 많아요?”

옆에서 마법사가 종알거렸다. 그렇게 대화를 끝냈다.

상대의 심리를 떠보는 걸 실패한 적이 손에 꼽는 사도다.

고로 이건 심리전의 패배였다.

‘말을 앞세운 것도 의도한 건가? 크로커다일을 노리고?’

이전, 화림 습격 작전의 실패는 소문이 날 만큼 났다.

햇병아리를 상대로 도망간 크로커다일은 얼굴에 먹칠한 셈이었다.

‘그것까지 노렸나?’

크로커다일이 덤비면 상대적으로 쉬운 싸움이 될 테니까?

맨 처음 과격한 변신족과 싸우는 건 어떤 이득이 있나.

적어도 몇 명의 눈으로는 상황 파악을 어렵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법사의 눈으로 변신족끼리의 싸움을 봐 봤자 눈에 담을 수도 없었을 테니.

‘지켜보는 마법사의 방심을 유도할 수 있지.’

모든 게 노림수다. 과한 추측일까?

천만에다. 결과가 알려 주지 않았나.

크로커다일이 달려들었을 때, 사도 또한 내심 승리를 반쯤 확신했었다.

자신도 속은 거다.

결과는 어떤가.

크로커다일의 은색 약물 비늘이 깨졌다. 그는 목이 부러져 죽었다.

벽에 처박힌 채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널브러졌다.

숨소리가 안 들렸다. 생기도 안 느껴지고, 저건 시체다. 크로커다일은 죽었다.

이후, 세최특은 마법사부터 죽였다.

변수 차단이다. 변신족 전투로 생긴 간극을 이용한 멋진 개인 전술이다.

그때부터 흑표범을 둔 채로 상황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싸움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시작은 이쪽이 했지만, 그 중간부터 모든 과정과 이득은 탈취당했다.

‘마지막 꼼수를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는걸.’

식은땀이 흐른다. 오래 산 불멸자는 때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느끼지 못한다.

어지간하면 죽지 않는 굳건한 정신력의 반작용으로 쉽게 흥분하지 않는 거다.

그런 사도가 아드레날린이 솟는 걸 느꼈다.

다리 사이가 축축할 정도로 짜릿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놓인 게 얼마 만인가.

“다가와라. 더 다가와라. 날 봐. 내 눈을 봐라. 행복의 쇠창살에 가둬 주마.”

환상안은 집중한 채로 중얼거렸다.

행복의 쇠창살이라니, 저자가 하는 건 정신 속박의 일종이었다.

최면으로 가사 상태에 빠뜨리는 기술이다.

사도는 다가오는 세최특의 걸음을 보고 확신했다.

‘안 먹혔어.’

완벽하게 최면에 빠진 연기라니.

저런 수준의 특수종이 반항하는 낌새도 안 보이는 걸 보니, 확신이 들었다.

저거 안 당했다.

“조금만 더.”

사도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응원은 한다. 환상안이 아니라 세최특을 속이는 게 목적이니까.

세최특은 속에 구렁이 수백 마리는 잡아먹은 놈이다.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 몇인 놈이, 제 아비보다 더 능숙하게 전장을 요리했다.

‘괴물 새끼.’

“자, 넌 그 안에서 산다. 행복하게 산다.”

환상안의 이마에서 땀이 뚝 떨어졌다. 그는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전신에 한 줌의 기력도 남기지 않은 채로 전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아, 멀미나.”

광익은 손이 닿는 거리에 오더니, 미간을 한 번 찌푸리고 환상안의 뺨을 갈겼다.

짝!

“억!”

오른뺨을 얻어맞은 환상안은 옆으로 날아가 사도가 만든 방어막에 머리를 부딪쳤다.

맞은 환상안이 고개를 들었다.

너무 놀랐는지, 무슨 말도 못 하고 어버버 거리는 넋 나간 소리만 읊조렸다.

저게 이시스의 간부, 환상안이라니.

누가 봤다면 이걸 믿기나 할까.

“넌 왜 눈깔에 이발소 간판 같은 걸 달고 있냐.”

그 말에 사도는 급히 입술을 깨물었다. 웃을 뻔했다.

“……너 왜 안 걸려?”

환상안이 맞은 뺨 쪽에 제 손을 올린 채 물었다.

방어막에 몸 한쪽을 기대고 쭈그려 쓰러진 모습이 참으로 처량해 보였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니까. 강슬혜 여사의 말씀이다.”

말하며 세최특이 이두박근을 보인다.

‘저 미친 새끼가.’

웃기려고 그러는 건가.

사도는 다시 한번 보이지 않게 혀를 깨물었다.

웃으면 안 된다. 목숨을 건지려면 집중해야 한다.

“그게 돼? 정신을 근육처럼 단련했다고?”

환상안은 용케 그 말을 알아듣고 답했다.

“돼.”

세최특은 답하며 먼 곳을 응시하는 척을 했다.

어쩐지 아련한 눈빛이다.

“너도 어릴 때부터 변신족 엄마한테 휘둘리고 명언 조언하는 불멸자 아빠한테 시달려 봐. 그럼 돼.”

농담을 섞어서 말했지만, 저게 정답이다.

변신족이 강조하는 게 무엇인가.

극기다.

곧 자제력이란 말이다.

본능을 정신력으로 누르라고 한다. 물론, 이건 이상론에 불과하다.

어느 정도 욕구는 풀어 주고 다른 방법을 통해 욕구를 컨트롤하는 게 정답이다.

실제로 지금은 많은 변신족이 그렇게 하고 있고.

‘하지만 갱생 마녀라면.’

극기로 아들을 단련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올드 스쿨 타입이니까.

불멸자라고 정신력을 소홀히 할까.

전혀 아니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고통 감내 훈련.

팔이 잘리고 내장이 찔려도 비명을 내지르지 않는 걸 자랑으로 삼는 이들이다.

불멸자가 가장 강조하는 건 인내.

변신의 극기든, 불멸의 인내든.

어쨌든 정신력을 강조한다.

세최특의 부모는 사우전드 페이스와 갱생 마녀.

둘 다 특수종 세상에 한 획을 그을 만한 능력자다.

저 둘의 아들이 세최특인데.

‘환상안 따위에 휘둘릴까.’

이시스 간부의 초능이라고 해도 상대가 너무 나쁘다.

“너가 내 고양이 재웠냐?”

세최특이 잠든 사자를 힐끗 보더니, 짜증을 부렸다.

“반려동물이 주인한테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넌 곱게는 안 죽인다. 특별히 고통 감내 훈련 백팔 단계로 간다.”

고통 감내 훈련 백팔 단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이라면 죽어도 당하기 싫었다.

환상안의 마음도 사도와 같았다.

이시스의 간부였던 환상안이 말했다.

“잠만 재웠는데.”

“깨워. 애 상태 이상하면 너 뒤지는 거야.”

곧 환상안이 매드 라이언을 깨웠다.

크헝.

잠에서 덜 깬 사자는 가까이 있던 광익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것도 부족해서 아예 물려고 했다.

아까와는 태도가 딴판이었다.

광익은 그런 사자의 뺨을 때렸다.

뻑!

묵직한 타격음이 뒤따랐다.

그러더니 쓰러진 매드 라이언을 내려다봤다.

낑.

매드 라이언은 금세 눈을 깔더니, 광익의 눈치를 보다가 다시 배를 깠다.

‘저거 이시스의 골칫덩이라고 하지 않았나?’

매드 라이언, 미친 사자, 말을 듣지 않아 반쯤 포기한 실험체, 상대를 물어뜯는 데만 심취한 욕망의 결정체.

이시스의 왕을 비롯한 몇 명을 제외하면 컨트롤이 불가능한 미친 실험체.

“낑, 헥.”

저건 개인가, 고양이인가, 사자인가.

의문이 들게 만드는 장면이다.

“봐, 애가 주인도 못 알아보고 물려고 했는데, 이거 부작용 아니야? 너 눈깔 대답해라.”

이건 무슨 짓인지.

“아닌데, 쟤 원래 저러는데.”

“이 새끼가.”

광익이 왼손을 들었다. 환상안이 반사적으로 뺨을 막았다.

짝!

소리는 반대쪽에서 났다.

다시 얻어맞은 환상안은 제 어금니 몇 개를 뱉었다.

짝 소리에 어금니를 털려면 얼마나 섬세하게 때리는 걸까?

사도는 그게 궁금하면서도 겉으로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러는 애가 어딨어? 애가 원래 착했거든.”

미친 새끼가 진짜.

사도는 허벅지를 꼬집었다.

언제 봤다고 자기 애완견 취급인가.

“근데 사자는 고양이로 봐야 하나, 개로 봐야 하나.”

세최특이 홀로 중얼거렸다.

그것도 모르면서 제 반려동물이라고 하는 건가.

“눈깔, 쟤 조정해서 이거 풀어 봐.”

세최특은 중얼거리더니, 툭 말했다.

사도를 향한 말이었다.

뺨을 얻어맞고 어안이 벙벙한 환상안은 잠시 주춤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딱히 의리를 찾을 사이는 아니었다.

“그럼 난 살려 주는 거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환상안이 말하고.

“살려 준다.”

세최특이 답했다.

환상안은 다시금 집중했다.

사도는 눈을 감았다. 그거면 충분했다.

저 능력의 단점이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발동하지 않는 것.

그게 아니라도 정신을 방어하는 기어가 있어도 된다.

다 없다면 환상안을 마주한 순간 혀를 깨물거나 허벅지에 칼빵 좀 넣어도 되고.

통증은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니까.

고로 저 능력은 수단 좋은 불멸자에게는 무용했다.

“……눈 떠.”

환상안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 같으면 뜨겠냐.

“못하겠어?”

세최특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퍽.

작은 소음이 들렸다. 사도는 환상안이 죽었음을 알았다.

눈을 뜬 사도와 세최특이 시선이 맞닿았다.

능구렁이, 아까부터 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나 했더니, 자신을 떠본 거였다.

지금은 눈빛에 장난기가 가셨다.

잠깐의 침묵이 둘 사이에 오갔다.

침묵을 깬 건 사도였다.

“날 살려 주면 네 출생의 비밀을 알려 주겠다.”

숨겨 둔 패를 깔 시간이었다.

* * *

출생의 비밀?

설마 엄마가?

아니다. 둘의 사이를 보라, 그럴 턱이 없다.

어릴 때의 기억을 더듬어 봤다.

출생신고부터 사진 따위까지.

그쪽은 아닌 것 같은데.

“진짜?”

말하며 손톱으로 방어막을 슬쩍 긁었다.

틱틱.

안 긁힌다. 어지간히 단단했다.

한 사흘 밤낮 작정하고 때리면 부술 순 있다.

그게 아니라도 임팩트가 있으니까.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주문 냄새는 안 난다. 그럼 초능 계열일 거다.

“이 방어막은 뭔데?”

내가 물었다. 궁금하기도 했고 출생의 비밀이란 말에 끌려다닐 필요는 없을 테니까.

사도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말 들어 본 적 있어? 산 초능력자보다 죽은 능력자의 염원이 더 강하다는 거?”

있다.

아주 드물지만, 초능력은 기본적으로 체력과 의지력의 합산이다.

그 의지력이 죽음의 순간에 폭발하며 염(念)을 담는 거다.

가끔 물건이 혼자 움직이거나, 바람 한 점 없는데 방문이 닫히는 건 전부 이런 경우였다.

염력술사의 염이 물건에 깃든 거다.

사람들이 그걸 보고 유령을 봤네, 귀신을 봤네 하는 거다.

세상에 유령이나 귀신은 없다. 대신 죽은 초능 특수종의 염은 있지만.

“그런 종류 중 하나다. 방어막을 만드는 초능 특수종이 연인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 염원을 담아 만든 기어지.”

“남자 친구가 그걸 만들고 죽었어?”

“내가 그 여자 주인공처럼 보여?”

“아니.”

시답잖은 대화다.

“사람은 뿌리가 있는 법이지. 네 할아버지가 누군지 궁금하진 않아?”

할아버지?

“단군 그룹 회장님?”

“외가 말고.”

이것 봐라? 뭔가 했더니, 진짜 아는 게 있는 눈치네.

“살려 준다고 약속하면 두 가지를 약속한다. 하나는 네 친할아버지의 정체. 둘은 내가 준비한 암살자를 물리는 것.”

꽤 괜찮은 거래로 들렸다.

하나만 빼고.

“암살자는 없어.”

“음?”

사도가 되묻는 사이, 난 그녀 뒤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통로 위쪽, 매달려 있던 작대기 선생이 뚝 떨어졌다.

“잘 있었냐?”

주일호, 월급 루팡 중 1호가 돌아왔다.

아마도 2호 통나무 선생도 돌아왔을 거다.

“암살자는 다 처리했거든.”

난 작대기 선생의 인사에 대강 고갯짓하고 말했다.

대화의 우위를 잡는 건 분위기와 흐름에 있는 법.

난 끌려가는 흐름을 되돌렸다.

사도의 눈에서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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