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 함정 x 함정 (2)
숱하게 봐 온 등판이다.
또 그 꿈이었다.
요새 인사가 뜸했더니, 꿈에 출현하셨나.
자주 안 가서 삐지기라도 했어요?
이 일이 끝나면 납골당에 가야겠다.
일단은 시작한 일을 매듭짓고.
다시 눈을 뜬 순간이다.
시각보다 청각이, 청각보다 촉각이 먼저 반응하며 몸의 감각이 한순간 돌아왔다.
쐑!
내 귀를 깨운 소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뻗은 손에 턱- 하고 화살이 잡혔다.
무슨 눈 뜨자마자 화살부터 날아오나.
난 눈을 깜빡이며 몸 상태부터 살폈다.
등에 충격이 있어서 슈트가 손상됐다. 헬멧은 누가 벗겼나 본데.
로즈겠지.
지금 화살을 날린 쪽, 그러니까 시야가 확보된 이후 보이는 무리 쪽에서 벗긴 거라면 내 목이 얌전히 붙어 있긴 어려웠을 테니까.
내 눈앞에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여덟 명의 특수종이다.
하나같이 독특한 스타일이었다.
“일어났군.”
가장 왼편에 있던 놈이 말했다. 덩치가 크다. 그리고 아는 얼굴이었고.
프로메테우스의 크로커다일이다.
그 바로 옆, 딱 달라붙는 전투 슈트를 입은 남자도 보였다.
밀랍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표정 변화 없는 놈이었다.
그 옆으로 여섯이 더 있다.
여자가 둘, 남자가 셋, 성별 식별이 불가능한 과격한 친구가 하나다.
“크르르르.”
전신이 싯누런 털을 지닌 사자 대가리 변신족이다.
정상적인 변신족으로 보이진 않았다. 한쪽 귀도 없었고, 눈깔을 보니까 희번덕거리며 흰자만 보였다.
정신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저걸 보고 누가 정상이라고 하겠나.
이성적인 대화를 시도하면 당장 발톱부터 휘두를 태세다.
용케 안 덤비고 저리 버티고 있네.
실험체, 그중에서도 꽤 성공적인 실험체로 보였다.
“모닝콜 한번 참신하네, 잠 깨우려고 화살을 날려?”
난 벽에 등을 기댄 채였다. 등 쪽의 부상이야, 간질간질한 걸 보니,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다.
괜히 재생력을 지닌 불멸자가 아니란 말이지.
난 몸을 비스듬히 벽에 기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쪽을 노린 건 아니었는데요.”
여자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소곤거리는 수준의 목소리였지만, 들리긴 잘 들렸다.
“알지. 로즈 머리통에 구멍이라도 내려고 한 거지?”
난 말하며 로즈의 정수리 위에 손을 얹고 뒤로 당겼다.
그 말과 함께 로즈가 뒤로 휘청이며 쓰러졌다.
“쿨럭!”
피도 울컥 토해냈다.
얘 무리했네.
난 로즈의 허리를 받쳐 뒤로 앉혔다.
“그 짧은 사이 몸이라도 섞었나? 지극정성으로 지키더군.”
중앙에 선 남자다. 신기한 눈을 가진 놈이었다. 눈 안에 눈동자가 세 개다.
꽤 유명한 눈이었다. 이시스의 간부 중 하나, 환상안이다.
피부가 검은 편으로 아랍계의 외모다. 눈매가 깊고 코가 오뚝했다.
기름이 뚝뚝 흐르는 외모라 하겠다.
느끼한 거 싫어하는 여자들이 보면 진저리를 치겠는걸.
“내가 연봉을 좀 잘 챙겨 주거든. 회사에 충성하는 거지.”
상황 파악에 심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었다. 뻔한 일이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내가 기절한 사이, 로즈가 메두사의 눈을 발동했을 것이다.
그거로 특수종 여덟을 한 번에 묶어 시간을 끌려고 한 거겠지.
그러면 내가 일어날 거고 숨겨진 미션의 반은 성공한 것이 될 테니까.
폭발이 일어났을 때, 로즈가 미안이라고 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폭탄까지는 예상하지 못해서 아군을 위험에 빠뜨리게 했다고 생각한 거다.
애가 겉으로는 강하게 구는데, 의외로 여리다. 제 동생을 죽인 프로메테우스의 궁둥이에 칼빵을 놓는 것보다 회사의 구성원을 지키려고 한 거다.
괜찮다. 다 괜찮았다.
예상한 바니까.
난 무릎을 툭툭 털었다.
자, 일단 관절은 이상 없고 등판이 계속 간지럽긴 한데, 중상은 아니다.
중상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폭발의 중심에서 발악한 게 아니다. 나라면 괜찮으니까 그렇게 한 거다.
다들 그걸 알 거고 어머니조차도 걱정 안 하실 거다.
그나저나 얘네 진짜 유명한 애들 다 모아 왔네.
크로커다일 옆에 선 놈도 프로메테우스 삼대장 중 하나란 놈 아닌가?
맞는 것 같은데.
거기에 우측으로 이시스의 간부와 불멸교의 사도로 보이는 여자도 있었다.
‘테크니션’이란 별명의 불멸자다. 기어 여섯 개를 제 몸처럼 다룬다고 했던가.
반쯤 성공한 사자 변신족 실험체도 있고.
그 옆에 선 건 마법사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마나라는 게 감각에 틱틱 걸리니.
외모가 독특하긴 했다. 몸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렸다.
눈썹조차도 온전하지 않다. 전신이 그림이다. 그 와중에 눈만 깜빡이는데, 그 눈에 감정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다.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놈들이라는 건 확실하고.
이들은 테러범이 손을 모아 만든 어벤져스였다.
“당황하지 않는군.”
프로메테우스의 간부, 뇌전술사 류가 말했다.
홍콩에서 태어나 미국 하버드를 나온 친구라고 했던가.
“함정 파느라 수고들 했다.”
난 말했다. 그들의 말이 맞았다. 당황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이걸 노리고 왔으니까.
난 로즈의 머릿속에 주문 폭탄 따윈 없다고 말했다.
애가 너무 부담을 갖는 것 같아서 말해 줬더니.
“배신 따윈 안 해.”
되려 눈물을 찔끔 흘리며 이렇게 말하는 거 아닌가.
아니, 너 그 무슨 테러범 정보 안 물어와도 괜찮다고, 여기서 살아도 된다고 말해 준 건데.
“우냐?”
“안 울어!”
빽 소리를 지르더니, 로즈는 아는 걸 모두 말했다.
당연하게도 이 작전에 참여한 모두에게 난 정보를 오픈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비추어 봤을 때, 테러 어벤져스는 승리를 확신했을 것이다.
이런 구도만 만들면 NS를 찢어 죽일 수 있을 거라는 거지.
그래, 그 오만한 생각, 난 그걸 이용했다.
전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모아 놓고 보니까 NS에 괴물만 모여 있더라고.
그러니까 이런 구도가 되면 너희가 무슨 짓을 해도 우리는 안 진다는 거지.
“그래도 변하는 건 없다.”
크로커다일이 말하며 한 걸음 나섰다.
“니들 혹시 이겼다고 생각하는 거냐?”
내가 물었다.
놈들의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호, 그렇다 이거지.
“재밌네, 나도 내가 이겼다고 생각하거든.”
목을 좌우로 꺾으며 말했다.
“우리 여섯이면 청기사도 손쉽게 죽일 수 있다. 하물며 이쪽은 인베이더보다 사람을 죽이는 게 특기인 이들이 여럿이지. 거기에 지금쯤 흩어진 NS는 전부 죽었을 거다. 이번 일에 동원된 이들 이름이 낯설진 않을 테고, 해체사를 비롯해 꽤 많이 나섰거든.”
불멸교의 사도라는 여자가 말했다. 주절주절 말하며 날 관찰하는 걸 보니, 싸우기 전에 심리전부터 거는 걸 즐기는 타입 같았다.
“그래서?”
난 덤덤하게 되물었다.
전투 준비는 끝났다.
청기사와 싸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아 보이나?
에헤, 이거 왜 이러시나.
겉보기에는 내가 뺀질거리는 것 같지만, 나 노력파다.
무엇보다 이건 너희가 만든 함정이 아니라니까.
내가 판 함정이지.
* * *
광익의 믿음은 보답받았다.
‘이게 되네.’
처음에 이런 작전을 수행한다고 했을 때, 동훈은 고개를 저었다.
호랑이를 일대일로 때려죽일 수 있는 것과 굳이 호랑이 굴에 들어가 싸우는 건 다른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곧 납득했다. 아니, 납득당했다.
“다들 훈련이 부족했나 보군요. 이 정도로 자신감을 잃다니, 어머니, 동훈이 형 훈련 코스를 다시 짜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겠다. 내가 직접 손댔는데 약한 소리나 하고. 이 아줌마는 실망했다.”
“……실망하지 마! 가자! 이 작전 반드시 하자!”
지옥이 있다면 갱생 마녀의 곁에 있을 것이다.
그 훈련은 이런 평가를 받아도 무방했다.
본능을 잃고 날뛰는 변신족 갱생이 전문이라고 했던가.
자연히 그리될 것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구르는데 욕구 따위가 고개를 들이밀 틈이 있나.
그렇다고 개긴다고 덤비면 죽도록 얻어맞는다.
맞다 보면 지하 훈련장 천장에서 별이 보이고,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도 보이며, 가끔은 요단강의 돛단배와 사공도 만난다.
압도적 무력이 만드는 훈련 환경이다.
그걸 또 겪고 싶진 않았다.
“나도 좋아. 써먹고 싶은 게 있어.”
혜민은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다.
우미호는 반대할 줄 알았지만.
“괜찮겠어. 의뢰비를 뜯으면.”
홀로 이리 중얼거리더니 찬성했다.
얘는 제 동생을 구했는데도 아직도 돈만 벌 수 있으면 영혼을 반쯤 전당포에 저당 잡혀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동생이 어느 정도 회복기에 들었다고 하니, 이후 먹고 살 걱정을 한다고 했던가.
시작이 이랬다고 주먹구구식으로 준비한 건 아니다.
이렇게 헤어질 걸 예상한 거 아니었지만.
동훈은 자신 밑에 쓰러진 여섯 명의 불멸순교대를 바라봤다.
“후우우우.”
곰의 형태로 변한 동훈이 긴 숨을 뱉었다.
꿈틀거리는 놈들 여섯 중 멀쩡한 놈은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양호한 놈이 머리통만 똑 떨어진 놈이다.
순혈 무명가의 초 재생력이 있다면 머리와 몸이 분리돼도 금세 재생하겠다만.
‘그런 놈은 없군.’
동훈은 좌우를 둘러보며 생각하고 옆을 돌아봤다.
주문 싸움을 시작한 혜민이 보였다.
동훈은 잠시 전투를 복기했다.
전투는 한순간에 일어났었다.
등산복 불륜 페어가 만담을 나누는 사이, 용병 여섯이 먼저 덤볐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상대가 황당한 틈을 노렸다.
물론 그런 거에 당할 둘은 아니었다.
혜민은 순간적으로 헥사곤 필드를 발동해 막았고.
동훈은 옆으로 굴렀다.
그러면서도 동훈은 상대의 무장 상태를 살폈고, 눈치로 금세 상대의 정체를 알아냈다.
불멸순교대.
짝퉁 불멸특수대다.
불멸교가 전면 전투를 대비해 구성한 전술팀이다.
짝퉁 불특대란 말이 나오는 이유가 뭐겠나.
이들은 그 특수대의 전투 형태를 카피했고.
동훈에게는 너무 익숙한 타입이었다.
뭐, 동훈이 이전처럼 이성을 잃는 변신족이거나, 일반 불멸자였다면 압도적 전력차일 수 있었겠지만.
“갈겨.”
순교대는 많이 준비해 왔다. 총탄, 그것도 대물 저격총까지 꺼내 왔다.
이건 답이 없었다.
동훈은 전투 슈트를 양손으로 잡고 뜯었다. 곧 그의 가슴에 반달 문양의 털이 자라고 곰으로 변신.
투두두두!
그 틈에 탄이 무수히 날아왔으나, 갱생 마녀의 훈련은 과연 훌륭했다.
강체는 호흡을 통한 근육 강직이 원리다.
피를 타고나질 못해 강체를 전신에 두르고 싸울 순 없지만, 일순간 강철의 팔로 상대를 후리는 철완과 각력을 폭발시키는 강각의 비기를 익혔다면, 이런 것도 가능했다.
철갑(鐵甲).
일순간 강체를 몸에 두르는 변신족 비기였다.
호흡을 참아야 했고 움직일 순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야 더 없이 효율적이었다.
타다다다다 텅!
대물 저격총의 화력이 무용했다.
“……반쪽짜리 아니었나?”
순교대 중 하나가 중얼거리는 게 끝이었다.
이후 피할 건 피하고 못 피하면 강체로 때우며 거리를 좁혔다.
그게 끝이었다.
상대는 불멸자 여섯.
쥐 여섯 마리였고. 동훈은 실험체 출신이지만, 변신족에 가까웠으며 갱생 마녀를 통해 새로 태어난 몸이었다.
이 순간 그는 고양이었다. 물론 변신체는 곰이었지만.
그는 단숨에 여섯 명을 제압했다.
그 과정이 꽤 과격하긴 했다. 사지를 뜯고 내장이 통로 벽에 그라피티를 남기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리 단숨에 전투를 종결지은 거다.
강혜민을 도와야 하나 본 동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쟤들 뭐 하는 걸까? 그의 눈에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들어왔다.
* * *
혜민의 모친, 김주희는 참으로 오래 쫓겼다.
그 긴 세월 동안 과연 당하기만 했을까.
그녀는 기회가 되면 역관광할 준비를 했다.
그런 연유로 태어난 스펠 기어가 있었다.
‘주문 간섭자’란 이름이었다.
작동 원리는 단순했다.
일단 마나의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파악할 마나 유저가 하나.
이후 복잡한 수식을 이 또한 감각만으로 후려쳐 단숨에 구현해 내는 실력의 마나 유저.
주문의 발동에는 마나의 움직임이 뒤따른다. 주문 간섭자는 그리 발동하는 주문의 틈, 움직이는 마나의 틈에 그릇된 마나를 흘려 넣는 용도였다.
단순히 말하면 강혜민 전용 커스터마이징 스펠 기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걸 십분 활용했다.
등산 페어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마나가 충만했으니, 긴 세월 쌓아 온 마나의 흔적이 전신에 가득했다.
그야말로 재능만으로 채울 수 없는 양의 차이다.
단순한 주문만 번갈아 보내도, 혜민은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주문이 발동된다면 말이다.
“……디스펠?”
“아니, 아예 구현 전에 훼방 놓는데?”
“이게 돼?”
“그 계산을 다 한다고?”
엄마에게서 그동안 쫓겼던 얘기를 들은 뒤, 강혜민도 쌓인 게 있었다.
혜민은 그 쌓인 무언가를 담아 말했다.
“재능의 차이지. 그리 탐냈는데, 내가 얌전히 잡혀 갈 줄 알았나 봐? 아니, 시발, 대가리에 똥만 차셨어요?”
광익이 들었다면 지옥의 주둥아리라며 한마디 했을 터였다.
날 선 욕설이 찰지게 둘의 귀에 꽂혔다.
마나가 움직일 때마다 방해가 들어온다. 둘이 동시에 해도 마찬가지다.
혜민은 손에 든 짧은 봉을 휘두를 뿐이다.
마나를 감지하지 못하는 이가 보면 꽤 우스운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동훈이 보기에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한쪽이 요술봉을 휘두르면.
다른 쪽에서.
“이게 무슨!”
“말이 안 돼, 마나의 집합을 방해한다고? 이 모든 주문의 마나 배열을 외웠다는 거냐!”
이리 외친다.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혜민은 콧방귀를 꼈다.
당연하게도 외우지 않았다. 그냥 보이는 것뿐이었다.
강혜민은 재능충이었다.
그리고 주문을 쓰지 못하는 마법사 대 강혜민의 싸움이라면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강혜민은 마나 유저이자, 싸움꾼이었으니까.
제 마법을 믿은 탓에, 둘의 손에는 화기가 하나도 없었다.
다가온 혜민의 어퍼컷이 턱에 꽂힌 노인은 노란 치아를 허공에 흩날렸다.
동훈은 그걸 보며 예전 광익이 탈탈 턴 기남의 옥수수 사건이 떠올랐다.
이후 여자는 반항하는 몸짓을 보였지만, 무용했다.
혜민은 그녀의 머리에 브라질리언 킥을 갈겼다.
격투 훈련에 꽤 매진해 본 동훈이 보기에도 십 점 만점의 십 점짜리 타격이었다.
* * *
동훈과 혜민이 전투를 벌이는 시점에 위기에 빠진 이들도 있었다.
폭발을 예상치 못했기에 꼬여 버린 팀이다.
‘잘못하면 여기서 죽겠는데.’
우미호는 냉정함을 무기로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귀태의 등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의 적도.
냉정함이 가능성을 따져 본다. 살아남을 확률이 10% 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