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정기남
기남은 세 가지의 약을 동시에 먹었다.
불멸특수대 시절이었다면 반쯤은 미친 짓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형인 정호남이 봤다면 당장 동생의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을지도 모를 짓이었다.
물론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약을 먹는 것도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었다.
기남은 그동안 꾸준히 그렇게 해 왔다.
칼로리 증량, 근력 향상, 동체 시력 향상.
먹은 약은 세 가지, 전부 다른 종류다. 감각이 더 예민해질 필요는 없었다.
“바퀴벌레 약쟁이 새끼.”
해체사가 말하며 손가락을 두둑 소리 나게 꺾었다.
변신족과 불멸자는 오래된 앙숙이다.
해체사는 특히나 불멸자를 싫어하는 편이었다.
한편이라고 같이 온 놈도 마음에 안 드는 판이니, 말해 뭐 할까.
그중에서 특히 싫은 타입이라면.
‘저런 새끼지.’
자신의 앞에서 저렇게 꼿꼿하게 서서 덤비는 놈을 보면 손가락 마디가 쑤실 정도다.
당장 저 어설픈 근육을 찢어 내고 싶었다. 팔뚝을 끊어 내고 내장을 훑어 내고 싶었다.
목을 잘라서 모가지부터 뒤쪽 구멍에 쑤셔 넣으면 보기 퍽 좋을 것이다.
해체사의 눈알이 희번덕거렸다.
불길한 상상을 하고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놈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그걸 보는 기남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 내면을 살피자면 동요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 맞을 터였다.
그는 전신을 흐르는 약 기운을 느끼며 한 가지 생각에 집중했다.
‘인간 벌목꾼.’
노필두란 작자의 별명이다. 그는 프로메테우스의 간부급이었으면서 한때 이중봉과 싸웠던 상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유광익이 죽였지.’
해체사는 그 노필두와 동급 또는 그 이상이었다.
저 작자를 여기서 죽일 수 있다면.
‘한발 더 나아가는 거다.’
정기남은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
그러므로 저 테러범을 죽일 것이다.
전술적으로 현 상황이 좋다고 할 순 없었다.
장소가 좁을수록 불멸과 변신의 싸움에선 변신이 유리한 법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불리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적어도 기남은 그리 생각했다.
자신은 기어를 가지고 있다. 약도 먹었다.
무엇보다.
“바퀴벌레 새끼, 생으로 찢어 버리고 싶네.”
상대는 자신을 얕봤다.
두두두두.
거리가 있기에 기남은 다시 기관단총을 갈겼다.
섬뜩할 만큼 날카로운 타이밍이었으며 놈이 움직일 공간을 미리 선점하는 예측 사격이었다.
해체사는 탄을 보고 요리조리 몸을 움직였다.
좌우로 뛰는 것만으로 바닥이 패고 튀었다.
예측 사격을 의미 없게 만드는 움직임이었다.
그리 뛰는 사이 놈의 몸에 털이 숭숭 솟아나기 시작했다.
우호!
초저주파 울음도 동반했다.
야생의 살기가 피부를 찌른다. 기남은 아랫배에 힘을 주고 상대를 눈에 담았다.
약 기운이 돌며 상대의 모습이 흐릿하게나마 잡혔다.
해체사의 길게 자란 손톱이 위에서 밑으로 떨어졌다.
기남은 총을 버리고 뒤로 뛰며 권총을 꺼내 들고 갈겼다.
투두두두둥!
전부 옥토퍼스 탄이 담긴 개조 글록이다.
변신족의 비술이라 할 수 있는 강체가 아닌 이상, 타격이 있을 터였다.
해체사는 기남이 던진 총을 잡더니 붕붕 휘둘렀다.
타이밍 좋게 날아간 탄이 전부 기관단총 몸통에 맞으며 튕겨 나갔다.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 힘든 묘기였다.
해체사도 특수종 세상에서 이름 날린 강자였다.
보고 맞힌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증거로 팔뚝에 핏자국이 보였다.
갈색 털 위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새까만 피부로 뒤덮인 얼굴, 길게 늘어난 팔.
놈의 변신체는 오랑우탄이었다.
저 손에 잡히면 지금 입은 전투 슈트가 아무리 질겨도 일곱 살짜리 손에 잡힌 색종이처럼 찢어질 것이다.
“그 총에는 탄이 얼마나 있나? 수십 발보단 적겠지.”
변신체의 목소리는 인간일 때보다 굵었다.
“네 머리통에 구멍 낼 만큼은 있지.”
기남은 처음으로 입을 열며 오른손을 늘어뜨렸다.
총구를 들어 겨눌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거 타이밍이었다.
해체사는 이 상황 자체가 웃긴다는 듯, 원숭이 낯짝으로 킥킥거렸다.
키호우 키오후우.
깊은 울림이 섞인 웃음소리가 났다.
해체사의 눈깔이 반달처럼 휘었다.
그와 동시다.
기남은 순식간에 총구를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거리를 둬야 했다. 그럼 상대가 거리를 좁힐 것이다.
기남은 왼손바닥 안쪽에 레이저 블레이드를 교묘하게 숨겨 뒀다.
머리통에 꽂기만 하면 필승이다.
권총의 연사력으로 상대를 저지하는 건 무리였다.
당연하게도 다시 변신족에게 유리한 거리를 내줬다.
후웅.
채찍처럼 휘어진 팔이 왼쪽 어림에서 튀어나왔다.
라이트 비즈가 만든 음영 바깥에서 그리 날아오니, 마침 어둠 속에서 머리를 들이민 뱀 같았다.
기남은 권총을 갈기며 왼팔을 귀 옆에 붙이는 척하다가 레이저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위에서 밑으로, 걸리면 팔뚝을 썰어 버릴 생각이었다.
해체사의 팔은 진짜 뱀이라도 된 듯 예측할 수 없는 각도로 휘어졌다.
무지막지한 근력으로 만든 묘기였다.
레이저 블레이드가 허공을 그었다.
그 뒤 다시 휘어진 손톱의 끝이 갈비뼈 부근을 스쳤다.
틱.
손톱 끝이 스치며 전투 슈트의 옆구리 부분에 긴 자국이 남았다.
조금만 깊었다면 슈트를 찢고 옆구리도 찢어졌을 터였다.
이 모든 공격을 피하려면 기남은 한 수 앞을 예측해야 했다.
그는 그렇게 했다. 아니, 아까부터 그러는 중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순간 속도의 차이로 이미 몸 여기저기가 뜯겼을 터였다.
예측과 동시에 움직인다.
예민해진 감각이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다.
발동작 하나, 손동작 하나, 눈깔이 돌아가는 것, 모든 게 단서였다.
속임수가 섞인 공격을 피하고 간간이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겨우 몇 분이었지만, 서로 꼬리를 잡으려고 달려들어 빙빙 도는 꼴처럼 보였다.
서로 어떤 이득도 취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틱.
방아쇠를 당긴 순간, 기남의 권총 슬라이드가 뒤로 튀었다.
탄을 다 갈긴 거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기남은 총을 상대의 얼굴로 던졌다.
해체사는 혀를 내밀며 기꺼이 권총을 이마로 받아 냈다.
‘여기서.’
승부처였다.
왼손에 든 블레이드를 휘젓는다.
팅.
쓰로잉 나이프가 근거리로 접근한 놈의 이마를 노리고 날아갔다.
해체사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푸호오!”
괴성을 지른 놈의 얼굴이 순간 사라졌다. 칼날이 날아오는 타이밍에 뒤로 몸을 눕힌 거다.
기남이 날린 칼날이 퍽하고 뒤쪽 벽에 박혔고.
그 타이밍에 기남은 아무것도 들지 않은 오른손을 허공에 저었다.
해체사는 기남의 오른손 궤적을 보고는 왼발로만 몸을 지탱한 채, 땅과 수평으로 몸을 팽 하고 휘돌렸다.
기남의 오른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속임수, 기척 흩날리기를 합친 비장의 한 수였다.
숨긴 일격은 기남의 오른발이었다. 기척 감추기로 숨긴 일격.
광익이 봤다면 노필두와 자신의 싸움이 떠올랐을 법한 흐름이었다.
압축 부츠 바닥에 장치된 칼날이 솟았다.
위잉!
당연하게도 광학 병기였다.
빛의 칼날이 반짝인다. 손바닥 반만 한 길이의 레이저 블레이드가 해체사의 턱에 꽂히기 직전이다.
우우우우웅!
놈의 가슴 털 사이, 근육 사이에 박힌 구슬이 빛을 뿌리며 터졌다.
빛이 터지는 걸 보고서야 거기에 구슬이 박혔다는 걸 알 정도로 작은 구슬이었다.
기남은 육각형으로 빛나는 방패를 봤다.
반투명한 방어막, 헥사곤 필드였다.
퍽!
레이저 블레이드는 헥사곤 필드를 갈랐다.
다만, 그 덕분에 타이밍 어긋났고 해체사는 그 틈에 뒤통수를 바닥에 일부러 찧으며 피했다.
슈컥.
완전히 피하지 못한 놈의 얼굴에 세로로 긴 선이 생겼다.
꽤 큰 상처였지만, 머리를 쪼개진 못했다.
놈의 갈라진 오랑우탄 낯짝 사이로 피가 주룩주룩 흘렀다.
입술조차 반으로 잘린 놈이 분노를 머금은 눈으로 기남을 노려봤다.
“재롱은 다 부렸냐?”
‘스펠 기어군.’
가슴에 이식한 종류다. 아까 총탄에 반응하지 않을 걸 보면 놈의 의지로 발동하는 종류였을 테고.
이건 예상 밖이군.
기남은 덤덤히 상대의 얼굴을 바라봤다.
벌떡.
복근의 힘만으로 허리를 튕겨 일어난 해체사가 다시 달려들었다.
더 말은 필요 없었다.
기남은 비장의 한 수를 썼고 그건 해체사가 숨겨 둔 방어막 덕분에 피했으니.
그는 그러면서도 조심했다.
혹시나 다른 게 튀어나오면 막을 작정이었다.
해체사의 왼손이 기남의 허벅지를 잡아챘다.
일단 기동력부터 부숴 놔야지.
그 뒤에 몸을 잘근잘근 쪼개서 분해할 것이다.
얼굴과 내장은 마지막이다.
놈이 고통에 내지르는 비명을 들을 것이다.
우드드득.
기남의 허벅지 피부를 찢고 들어간 오랑우탄의 손가락이 근육을 가르고 뼈까지 부쉈다.
“크흥!”
신난 해체사가 코웃음을 쳤다.
왼쪽 허벅지를 해체당한 놈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고 있었으므로.
다른 공격은 없었다.
그렇게 끝이 날 듯했다.
해체사는 신이 나 오른손을 뻗었다. 마저 다른 다리까지 조질 요량이었다.
그리 손을 뻗는 사이, 앞으로 쓰러지던 기남의 몸이 자신의 팔을 쥐고는 툭 하고 밑으로 쓰러지더니, 발목을 잡아챘다.
모든 건 한순간에 일어났다.
‘엇?’
해체사는 당황했다.
조금 전까지 해체사는 기남의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지금의 속도는 그가 기억한 범주를 벗어난 한 수였다.
발목을 잡아챈 놈이 힘을 준다.
“멍청한!”
해체사는 상대를 농락하려 했다.
상대는 불멸자, 이런 수작이 먹힐 리가…….
기우뚱, 발목이 들렸다.
‘어떻게?’
기술이었다.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발목 태클.
넘어지며 해체사가 손을 뻗었지만, 기남은 어느새 상대 발목을 축으로 손을 뻗어 해체사의 뒤로 돌아갔다.
더없이 깔끔한 움직임의 결과다.
기남이 오른팔로 해체사의 목을 감았다.
‘이대로 목을 조르겠다고?’
해체사는 목에 힘을 줬다. 그래. 인정한다. 순간적으로 펼친 놈의 서브 미션 기술은 자신보다 우위였다.
그렇다고 해서 가진 근력의 한계를 벗어날 순 없다.
그리 생각하며 뒤로 드러누웠다.
아예 힘을 줘 바닥으로 찍어 누를 셈이었다.
쿵!
“큭.”
바닥에 쓰러진 기남이 외마디 비명을 뱉어 냈다.
그럼에도 기남은 팔에 힘을 빼지 않았다.
오른쪽 다리로 자신의 다리를 휘감고 왼팔은 겨드랑이 사이를 끼워 팔을 막고 오른팔에는 여전히 힘을 주며 버텼다.
순간적으로 몸이 묶인 셈이다.
물론 이것도 시간문제였다.
이 정도로 질식할 리는 없었다.
그리 뒤로 누운 해체사의 눈에 머리 위에 떨어지는 둥근 무언가가 보였다.
“전술 고기 방패.”
뭐? 이 미친 새끼가?
오롯이 불멸자만 할 수 있는 전투법이다.
해체사의 눈앞에서 떨어지는 것, 기척을 흘리고 감추고 속이며 던진 기남의 수류탄이었다.
꽝!
곧 폭발이 일어났다.
드드드드.
폭음에 땅굴이 흔들렸다.
“끄아아악!”
비명을 내지른 해체사는 곧 전신이 녹아내리는 덕에 변신이 풀렸다.
기남은 그런 해체사를 보며 나이프를 꺼내 백린탄에 노출된 제 팔과 다리, 허리춤의 살점을 잘라 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광경이었으나.
불멸자이기에 가능한, 이긴 자의 세리머니라 해도 좋았다.
뼈까지 녹아내린 해체사의 눈에 묵묵히 제 팔다리를 자르는 놈이 보였다.
‘독종 새끼.’
해체사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그는 곧 전신에 휘몰아치는 극통에 정신을 놓았다. 마지막 숨결을 뱉는 것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남이 제 팔다리를 자른 나이프를 놈의 목에 꽂았으므로.
그 뒤 블러드 젝을 꽂은 기남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김정아의 앞에 무릎 꿇은 불멸자가 보였다.
“이 미친년.”
이전에 보였던 부드러운 신사와 같은 어투는 사라졌다.
눈을 치켜뜬 고문 감별사가 말했다.
기남은 김정아가 이겼다는 걸 알고 몸을 웅크리듯 말며 앉았다.
전신이 욱신거렸다.
마약의 진통 효과가 있어도 꽤 아팠다.
물론 그럼에도 보람찬 일이었다.
‘이제 한 걸음.’
노필두를 죽인 유광익처럼 자신도 해체사를 죽였다.
마지막에는 감상에 젖어, 전술 고기 방패 따위를 말하기도 했다.
아무도 못 들었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기남은 잠시 눈을 감았다.
몸이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