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25화 (325/488)

325. 이 멍청이가

로즈에게는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보가 필요해.’

애초에 프로메테우스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대가로 자유를 얻은 몸이었다.

그조차도 유광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고.

그녀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자유롭게 햇빛을 보며 사는 삶을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었던 혈육을 위해서라도.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의 꼬리 끊기는 너무 훌륭했다.

‘끊겼다.’

자신이 가진 라인이 전부 잘렸다.

자잘한 정보는 얻을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내용을 알아내긴 어려웠다.

대강 한국을 시작으로 대규모 테러가 일어나는 건 안다.

그걸 위해 프로메테우스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 것도 안다.

딱 그것만 알았다.

로즈에게 필요한 건 위치와 시간, 수단이었다.

“슬슬 말할 때 되지 않았냐?”

어쩌다 세최특이 그리 물을 때면 로즈는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광익은 그리 묻고 나서도 딱히 재촉하진 않았다.

그래, 재촉하진 않았다.

하지만 로즈는 알았다.

‘아무것도 못 하면 난 없는 사람이 되는 거지.’

감옥에 도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머리통에 있는 주문이 터질지도 모르고.’

시한폭탄 같은 주문이 뇌 속을 유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전직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담담할 순 없었다.

로즈는 어떻게든 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프로메테우스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끊겼던 자신의 라인이다.

그쪽에 정보가 쏙쏙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쉽게?’

로즈는 알았다. 이건 함정이다. 하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게 숨길 순 있을 것이다.

정보의 출처를 많이 따지진 않을 거다.

‘아니, 유광익이라면 몰라도.’

이동훈, 우미호는 만만히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물론 그 또한 넘어갈 순 있었다.

처음 감옥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만만하게 굴었던 태도가 여기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테니까.

‘나만 아는 정보라는 식으로 몰고 가면.’

“밥 안 먹니?”

식사 자리에서 너무 골똘히 생각에 잠겼나 보다.

앞자리 앉은 광익의 모친이 말했다.

“먹어요.”

이조차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이유 없이 친절한 여자다. 그 여자가 세최특의 모친이고.

인간관계도 잘 이용하면 방패로 쓸 수 있는 법이다.

로즈는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했다.

프로메테우스 쪽에서 친히 조작도 했다.

앞뒤는 맞지만, 적당히 어느 정도 눈을 가린 정보 조작이다.

‘다 보여 주는 것보다 비장의 한 수는 내가 가지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게 좋아.’

팽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당연하다.

‘내 머릿속에 주문이 담겨 있는 걸 알면 당연히 이해하겠지.’

이건 자신의 목을 죄는 족쇄이자, 좋은 핑계가 될 수 있었다.

우미호가 의심한다면.

“아는 걸 다 불면 내 머릿속 주문이 폭주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하지?”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실제로 로즈는 저 대사를 다른 방식으로 써서 우미호의 의심을 걷어 냈다.

마지막까지 의심한다고 해도, 피하기에는 떡밥이 너무 크다. 백두산 폭발을 무시하고 지나칠 순 없다.

‘프로메테우스가 이 일을 위해 투자한 것도 만만치 않으니까.’

속을 것이다.

유광익은 까맣게 모른 채, 당할 것이다.

그리 생각을 정리하고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받은 정보를 전하기 직전의 타이밍이었다.

“사실 네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다.”

커피숍 앞에서 광익이 대뜸 말했다.

“너보다는 내가 들어 있는 게 많을 텐데?”

그걸 들은 로즈는 코웃음을 치며 받아쳤다.

둘만 있는 자리였다. 이리 같이 있는 걸 보면 미친 주문쟁이 꼬맹이가 또 난리를 칠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말을 받아치자, 광익이 피식 웃는다.

“멍청아, 그게 아니라 주문 같은 거 없다고.”

움찔.

로즈는 손에 든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놀라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놀랐냐? 주문 넣어 보려고 하긴 했는데, 넣으면 너 백치가 될 확률이 높다고 해서 안 넣었다.”

세최또.

세계 최강의 또라이.

그 말이 퍽이나 어울리는 놈이었다.

‘이 멍청이가.’

이걸 자신한테 왜 말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안심하고 할 일 해.”

배신하라고 등을 떠밀어 주는 건가?

프로메테우스는 이 작전만 성공하면 돌아올 문을 열어 준다고 했다.

로즈의 동공이 요동쳤다.

그걸 본 광익은 웃었다.

“야, 너 눈 떨려. 감동받았냐? 넣어 둬라. 다른 애들이 알면 난리 나니까 비밀로 하고, 특히 우미호한테 걸리지 마라.”

어깨를 툭 치고 광익이 지나쳤다.

로즈는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 * *

“곤란한데, 우리 둘은 찢어졌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강슬혜의 말에 중봉이 좌우를 살피다가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었다.

강푸름이 만든 새로 만든 전투 슈트는 훌륭했다.

폭발 파편을 슈트가 전부 막아 줬다.

잔 상처 따위도 없었다. 하물며 얼굴 전면은 트라이앵글 필드가 막았고.

‘훌륭하군.’

그리 제 상태를 체크 한 중봉이 강슬혜의 말에 답했다.

“이게 낫지 싶은데. 주요 전력이 이쪽이라면, 작정하고 아군을 찾으면 되니까.”

페어로도 훌륭하다.

불멸자 중 탑 티어와 변신족 중 탑 티어다.

“일행이 찢어진 것 치고는 우리 쪽이 제일 낫지 않을까요?”

거기에 김요한도 함께다.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타입이다.

고로 나쁘지 않은 파티였다.

“다른 남자 둘이랑만 있으면 남편이 질투해.”

그 말에 중봉은 빤히 강슬혜를 보고 말했다.

“내 타입 아니야.”

“……때리고 싶네.”

같이 지내다 보니 허물없이 지내게 된 둘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이이기도 하고.

알음알음 서로 활약을 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알고 지내다 보니 서로 인정하는 셈이 된 타입이었다.

“두 분이 싸우시면 여기 있는 새우의 등이 쪼개질 것 같은데요.”

“새우치고는 우리 요한 씨는 너무 잘생겼지.”

강슬혜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셋은 폭발 타이밍에 몸을 피하며 한쪽 통로에 들어온 참이었다.

앞쪽이 컴컴했다.

불멸자인 이중봉과 요한의 시야로도 앞이 보이지 않으니, 정말 빛 한 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셋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두 명의 존재감이 너무 컸다.

셋은 곧 앞으로 나아가자는 판단을 내렸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뭐라도 하겠다는 거다.

뒤쪽 흙더미를 판다고 해서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으니.

“폭발은 예상 못 했는데.”

“모든 게 다 예상대로 흘러갈 순 없으니까. 쉽게 살았구나. 너.”

“너는 반말이고.”

이중봉 팀장이 흘리듯 말하자, 강슬혜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나이 따지고 사는 것보다 친구처럼 사는 게 편하지 않아?”

“그건 남편이 질투 안 하고?”

“하겠지. 남편은 나를 너무 사랑하거든.”

그걸 들은 요한은 생각했다.

‘위기감이 없네.’

그러며 또 생각했다. 이대로 통로를 나아가다 보면 뭐가 나올까 하는 그런 생각.

어쨌든 제자리에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 쭉 걸었다.

그리 걷다 보니, 앞이 막혔다.

“뚫고 간다.”

이중봉은 주저 없이 말했고, 강슬혜는 한 손만 변신해 벽을 손톱으로 긁었다.

그게 어지간한 굴착기보다 빨랐다.

앞을 막은 벽은 생각보다 얇았다.

중간에 시멘트 따위가 나오며 구조물이란 확신을 줬다.

“일부러 막아 둔 벽이군요.”

“말 안 해도 안다.”

“우리 요한이 입이 심심하구나.”

요한의 말에 중봉과 슬혜가 한마디씩 거들었고, 곧 벽이 뚫렸다.

뚫린 벽 너머로 빛이 쏟아졌다.

눈가를 찌푸린 사이, 불멸자 둘은 귀로 먼저 기척을 들었다.

크르르르.

그리고 강슬혜는 그보다 먼저 코로 노린내를 맡았다.

곧 셋의 눈에 반쯤 괴물에 가까운 모습의 변신족이 보였다.

하나같이 네 발로 땅을 기는 모습이다. 전부 개의 머리를 가진 변신족 실험체 무리였다.

주변을 보니 무슨 실험실 따위로 보였다.

꼬르륵 거품이 올라가는 생체 캡슐 몇 개가 배경으로 펼쳐졌다.

그 안에 반쯤 고깃덩이로 보이는 것들도.

“누구냐?”

“운 나쁜 놈들이군.”

동시에 두 개의 말소리가 들렸다.

중앙에 선 놈이 보였다.

개 대가리가 둘 달린 변신족이 보였다. 여기서 유일하게 두 발로 섰으면 손에 채찍 따위를 들고 있었다.

철컥.

중봉은 말없이 제 화기의 노리쇠를 당겼고.

요한은 간단한 감상평을 남겼다.

“켈베로스가 되다 만 개 대가리 같네요.”

“센스 있는 한 줄 평이다.”

강슬혜는 그 평이 퍽 마음에 들었다.

“NS 놈들이지? 잘근잘근 씹어먹어 주마.”

트윈 개 대가리가 말하며 착 하고 채찍으로 땅을 때렸다.

크르르르.

입가에 침을 흘리던 네 발로 땅을 달리는 변신족 실험체 무리가 앞에 모였다.

대략 서른 마리가 넘는 듯했다.

하나같이 전투력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요한은 아찔했다.

‘잘못하면 개밥이 되겠는데.’

그렇다고 뒤로 물러난다는 답은 없을 것이다.

불멸자의 다리로 침 흘리는 변신족 실험체를 따돌릴 순 없을 테니.

피할 수 없다면 싸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 * *

“다쳤습니까?”

기남의 물음에 김정아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

전투 슈트 덕분이다. 자잘한 찰과상도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기남이 자신을 감싼 덕도 컸다.

“그럼 됐군요.”

기남이 말하며 일어났다.

폭발의 여파를 간신히 벗어난 둘은 왼쪽 첫 번째 통로로 몸을 피했다.

김정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켰다.

“둘? 갱생마녀를 원했는데, 이거 영 시원찮군.”

그 둘의 앞으로 안광을 번쩍이는 인영이 나타났다.

기남은 말없이 손목을 돌렸다. 약간 욱신거렸다. 김정아가 위험한 걸 보며 반사적으로 감싸다가 바닥을 잘못 짚었다.

‘인대가 조금 상했군.’

이 정도는 괜찮다. 그리 큰 부상도 아니다. 통증도 미미했다.

“팬텀이라도 나왔으면 좀 나았겠지요.”

안광의 뒤다. 다른 놈도 튀어나왔다.

하나는 말쑥한 차림의 남자였고 다른 하나는 반바지 하나만 달랑 걸친 근육질의 남자였다.

기남은 라이트 비즈 하나를 바닥에 굴렸다.

구슬에서 빛이 흘러나오며 주변을 비췄다.

전면에 선 팔짱을 낀 근육질의 남자가 그걸 보며 입을 열었다.

“쉴 시간이라도 주랴?”

“프로메테우스?”

“자우 쳉이다.”

아는 이름이었다.

중국인, 별명은 해체사.

손가락을 단련한 변신족이자, 맨손으로 사람을 해체하는 걸 즐기는 테러범이다.

“뒤쪽은 내가 맡아.”

기남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이다. 뒤에서 일어난 정아가 말했다.

근육질 뒤쪽, 말쑥한 셔츠 차림의 남자를 향한 말이었다.

그도 자신을 향한 말임을 눈치챘다.

“절 아시나요?”

부드러운 말투다. 찰랑거리는 금발이 눈에 띄었다.

김정아는 웃었다. 그건 기쁨에 찬 웃음으로 보이기도 했고 자조적이 웃음으로 보이기도 했다.

“조금.”

웃음 끝에 말하자.

금발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미안해요. 전 기억이 나질 않아요.”

말하며 웃는다. 그 웃음은 뇌쇄적이었다.

웃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순혈 불멸자다.

기남은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며 김정아의 상태를 살폈다.

김정아의 얼굴은 어느새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괜찮아. 기억 안 해도 돼.”

김정아는 놈을 보는 순간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그건 제 부모를 죽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채, 헤맸을 때의 일이었다.

불멸특수대에 입사해 간신히 얼굴을 몇 개를 찾았다.

그중 하나다.

고문 감별사.

불감가학병에 걸린 불멸자다.

상대의 고통을 보며 사정하는 초유의 변태다.

김정아는 놈을 알았다.

제 부모를 죽인 일이 놈의 심심풀이였다는 것도.

그러니까 그녀는 그동안 간절히 바랐던 상대를 만난 거였다.

기쁨에 찬 웃음이 나올 법도 했다.

우연이었지만, 곧 필연이었다. 김정아는 저 작자를 만나기 위해 그토록 찾아 헤맸으니, 지금이 아니더라도 마주쳤을 상대였다.

“꼭 만나고 싶었어.”

“이건 참 곤란하네요. 전 평범한 사랑은 못 하는데, 괜찮겠어요?”

금발의 변태가 농담을 건넸다. 김정아는 다시 웃었다.

미소를 띤 그녀는 말없이 허리춤에서 토가레프를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라이트 비즈가 비추는 통로 안쪽에서 울린 총격이다.

그 한 발이 시작이었다.

기남도 반사적으로 기관단총을 겨누고 쐈다.

두두두두두두!

변신족, 해체사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팟 하고 사라진 놈은 머리 위로 뛰더니, 묘기를 보였다.

천장을 밟으며 뛴 거다.

기남은 한순간 상대를 향해 방아쇠를 움직였다.

두두두두!

총구에서 뿜어지는 불꽃이 위로 늘어졌다.

그러나 상대는 그보다 더 빨랐다.

놈은 천장을 몇 번 차더니, 총격 범위를 넘어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놈의 손끝이 곧 기남의 눈을 쑤실 듯 날아왔다.

기남은 준비하고 있던 레이즈 블레이드 나이프를 아래에서 위로 그었다.

쉭.

레이저 블레이드는 발동하지 않았다

기남의 무기는 충격에 따라 발동하는 거다. 고로 상대에게 스치지도 못했다.

해체사는 제 몫만 챙긴 뒤, 뒤로 물러났다.

그 손에 살점과 엉킨 강화 플라스틱 조각 따위가 보였다.

쓰고 있던 헬멧 조각과 기남 볼 일부였다.

지직.

기남이 쓰고 있던 헬멧에 파인 자국과 함께 스파크가 튀었다.

기남은 헬멧을 벗었다.

한순간 상대를 놓치면 똑같은 결과가 벌어질 것이다.

감각을 예리하게 갈고 닦아야 했다. 헬멧은 조금이지만, 감각을 가로막았다.

“킁. 너 살 냄새 되게 좋네?”

해체사가 제 손에 쥔 살점에 코를 씰룩이더니 말했다. 여유가 물씬 풍겼다.

기남은 상대가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 왼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곤 곧바로 입 안에 약을 쑤셔 넣고 삼켰다.

마약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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