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5분만 잔다
의뢰비 책정이 끝났다.
정확하게는 유리한 상황에서 뜯을 수 있을 최대한도로 돈을 뜯었다고 해야 맞겠지.
“양아치니?”
참다못한 긍낙이 삼촌이 이리 말할 정도였다.
나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우미호가 미쳐 날뛰었다.
“부족해. 현 상황에서 목표물과 가장 근접한 팀은 우리뿐이고 확인해 줄 사람도 우리뿐, 막을 사람도 우리뿐.”
그래, 알겠다니까.
어쩌겠나.
회사 살림살이 나아지라고 이러는 걸, 나도 장단은 맞춰줘야지.
솔직히 돈은 많을수록 좋은 법 아니겠나.
불멸특수대 입사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부유하다. 그렇다고 해서 들어오는 호박을 발로 걷어차 날려 버리는 일을 할 필요는 없었기에.
“……이 정도는 어떻습니까?”
행안부 장관의 물음에 난 단호하게 답했다.
“그게 최선입니까?”
“네?”
“그게 전부예요? 그게 최선이에요? 확실해요?”
“잠시만.”
불멸자의 예민한 청각에 장관의 어금니 가는 소리 따위가 들렸다.
그 후, 다시 의뢰비 책정을 시작했다.
난 거기에 또 최선이냐고 물었다. 짐작하기로 장관은 차라리 백두산이 터지길 바랐을지도 몰랐다.
똑같은 방식으로 긍낙이 삼촌한테 말하다가 양아치 소리를 들었다.
대답에 긴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사안이 어찌나 급한지 대답은 뚝딱뚝딱 잘도 나왔다.
그에 우미호가 만족할 만한 의뢰비가 치솟는 것도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그 정도면 괜찮아.”
그럴 만도 했다.
난 중간중간 사진을 찍어서 곱게 전송했다.
이럴 걸 예상하고 준비한 건 아닌데, 난 여길 오면서 NS 본사에 양방향 통신을 설정하고 왔다.
현 상황이 기밀 중의 기밀이란 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
덕분에 내가 보낸 사진을 보려고 정부와 그룹에서는 NS로 사람을 보내야 했다.
그 또한 실시간으로 이뤄졌다.
긍낙이 삼촌은 마침 우리 사무실에 있다고 했고 정부도 사람을 급파했다.
덕분에 그들은 내가 보낸 사진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주황색 뭔가로 찬 캡슐 형태의 커다란 원통과 테러범임이 분명한 무장 집단.
뭐, 지금쯤이면 저 사진을 분석 중일 건데.
난 직감으로 저 주황색 통이 바로 프로메테우스가 준비한 메인 디쉬라는 걸 알았다.
난 큰소리 칠만 했다.
최소한 벌써 기계 장치 한 개는 확보한 거니까.
거기에 이 일이 끝난 것도 아니고.
공터 너머로 네 개의 통로가 보인다. 저기도 전부 확인해 봐야 할 테니.
“NS 대표 휘하 작전팀, 의뢰 착수합니다.”
그리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액수는 뭐, NS가 하는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입 일부를 대체할 정도는 됐다.
아마도 의뢰 한 번으로 벌 수 있는 최고 금액이 아닐까?
쓸데없는 거에 순위 매기길 좋아하는 사람이 안다면 단연코 1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전화를 끊은 사이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놈이 목에 와이어가 감긴 채로 하는 말이 들렸다.
몇 가지 물어볼까나.
다른 장치 위치와 적의 규모 등, 포로로서 놈은 가치가 있었다.
난 걸으며 주변 정경을 눈으로 훑었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가장 먼저 코를 찔렀다.
바닥에 널브러진 인베이더 쪼가리도 몇 개 보였다.
오크인지 고블린인지, 남은 흔적만으론 구분이 안 된다.
이건 좀 과한데?
그냥 머리통만 터져도 죽을 인베이더를 걸레짝으로 환생시켜 버렸다.
가진 화력에 비해 과잉 대응이다.
왜 그랬을까?
눈에 놈들이 가진 장비가 보인다. 거치형 기관총부터 레일 건까지, 꽤 화려했다.
여기가 설치 포인트인가?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쓰러진 놈을 포함해 테러범의 숫자는 열넷.
가진 장비에 딱 맞는 인원이라고 볼 수 있었다.
실력은 그럭저럭이지만, 본래 부족한 실력을 기어로 채우는 건 특수종으로서는 당연히 가져야 할 태도다.
테러범은 그렇게 했다.
광학병기까진 아니어도 꽤 화려한 기어를 가진 놈도 있었다.
그건 이곳에 투자한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증명했다.
아까 기남이가 쏜 총을 향해 무형의 방패, 염력 방패를 두른 걸 봤다.
그걸 쓴 놈은 변신족이었다.
늑대인간으로 변한 상대는 전신에 염력 방패를 두르고 달려들었다.
사이오닉 기어를 가지고 있단 말이었다.
그걸 본 기남인 놈의 눈깔 앞에 섬광탄을 터트리고.
“내 눈!”
이라고 외치는 틈에 머리통을 레이저 블레이드로 도려 내듯 쑤셨다.
‘근데 여기가 설치 포인트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돈을 투자한다고?
백두산 터트리려면 그 근처까지는 가서 기계를 설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뭐, 그럴 말한 이유는 다 있긴 했다.
지휘관 놈이 또 입을 여는 걸 통해 난 그걸 알 수 있었다.
“운 좋은 놈들, 여기가 집결지였다.”
그래, 여기로 다 모이기로 약속했으면 그럼, 말이 되지.
과잉 대응도 그럭저럭 이해는 간다.
전부 모이기로 했으니, 애초에 조금의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려고 했을 테니.
살아서 통로에 진을 치는 건, 단 한 마리도 두고 보려 하지 않았을 거다.
그 와중에 우리는 정해진 루트가 아닌 곳에서 나타난 거고.
근데 저 지휘관 새끼 왜 이렇게 순순히 답하지?
의문이 떠오른 즉시 해소됐다.
“재수 없게 됐군. 거래하지. 날 살려 주면 아는 걸 다 말하겠다. 지금까지 말한 거로도 내가 가진 정보의 가치는 충분할 것 같은데?”
그래, 살려고 하면 저럴 수도 있지.
모든 정황을 받아들인 후에도 난, 위화감을 느꼈다.
어디 하나 잘못된 게 없음에도.
무엇하나 말이 되지 않는 게 없음에도.
‘이상해.’
그저 직감이 말할 뿐이다.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너무 딱딱 맞아떨어져서다.
보는 순간 납득이 갈 수준의 무장과 인원.
이들이 모인 이유도, 하는 짓도.
“기계는 작동하겠는데, 놔뒀으면 진짜 백두산 폭발했겠어.”
기계를 보는 쪽에도 소양이 있는지 팬더 형이 말했다.
저것도 진짜란다.
상황이 너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
난 걷다 말고 발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부스스.
머리 위에서 흙먼지 따위가 떨어졌다.
이곳은 땅굴이다. 당연히 머리 위에서 흙먼지가 떨어질 수도 있다.
난 적 지휘관을 바라봤다.
양팔과 다리를 제압당한 채, 꿇어앉은 채다.
목에는 와이어가 감겼고 뒤통수에 중봉이 형이 총도 겨누고 있다.
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고 해도 저 상황에서 뭘 하긴 힘들다.
물론 미리 준비했다면 다른 얘기가 될 거다.
부스스스스.
머리 위로 떨어지는 흙먼지의 양이 많아졌다.
과잉 대응으로 변신족의 코는 주변 화약 냄새를 구분하지 못한다.
불멸자의 감각이 아무리 예민하다고 해도 일정 범위를 벗어난 상황을 파악하긴 힘들다.
교묘하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이다.
“빙고다. 이 개새들아.”
지휘관이 말하고.
꽈-앙!
머리 위에서 폭음이 터졌다.
순식간에 감각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주변 상황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함정, 폭발, 매장.
몇 가지 단어가 머리를 스쳤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리에 남은 네 곳의 통로와 우리가 빠져나온 곳도.
되돌아가긴 늦었다.
왼쪽에 서 있던 혜민이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밀쳤다. 부드럽게 민다고 밀었지만, 어느 정도 충격은 있을 것이다.
잡생각을 지웠다.
몸을 움직였다.
퉁, 퍽, 훙.
주변에 있는 모두를 손바닥으로 날린 거다.
그리고 폭발과 함께 나랑 같은 반응 속도를 보인 사람이 몇 있었다.
어머니, 이중봉, 정기남, 박마리다.
마리는 곧바로 정직이와 요한의 뒷덜미를 잡고 뛰었고.
정기남과 이중봉은 좌우로 갈라져 몸을 날렸으며.
어머니는 그사이 몸이 굳은 이들을 하나씩 던졌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람을 쳐 내고 마지막에 로즈의 앞에 다가섰다.
머리 위에서 커다란 바위가 떨어지는 중이었다.
난 가슴 앞에서 양 주먹을 맞부딪쳐, 장갑에 내재한 갤럭시 필드 주문을 불러냈다.
텅.
머리 위에 떨어진 바위가 하늘 위에 뜬 별과 같은 장막에 막혀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폭발의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작정하고 매장한 폭탄이다.
그걸 위한 작전도 좋았고.
교묘했으며, 위장도 완벽했다.
우리가 이곳에 오는 것까지 계산한 거다.
꽝! 꽝! 꽝!
머리 위를 시작으로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터진 돌 파편은 그대로 총알처럼 몸 곳곳을 후렸다.
“하하하하! 다 죽어라! 다 뒈져 버려!”
지휘관으로 보이는 놈의 외침이다.
언제 맞았는지 왼쪽 눈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중이었다.
바위 파편에라도 두들겨 맞았나 보다.
그놈을 포함해 깨어있던, 정확히는 잡혔던 테러범 무리는 낄낄 웃었다.
함정이었군.
로즈의 어깨를 붙들었다. 어깨를 붙들고 나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운이 나빴다.
급히 움직이다 보니 불멸자의 직감으로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한 방.
내 발밑에서 쾅 하고 폭발이 일어났다.
“광익아!”
어머니의 외침이 들렸다.
반사적으로 장갑을 밑으로 향해 갤럭시 필드로 막긴 했지만, 모든 폭발의 여파를 막을 순 없었다.
등 부근으로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내가.”
이건 이중봉인데.
“늦었습니다.”
기남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가슴팍에 끌어안은 로즈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에 담긴 감정은 복잡다단해 보였다.
후회? 낙담? 당황?
모르겠다.
로즈가 그런 날 보고 읊조렸다.
“미안.”
아니, 네가 미안할 건 없는데.
그리 생각하며 마지막 힘을 모아 로즈를 안은 채, 허벅지에 힘을 주고 땅을 찼다.
펑!
디딤돌이 된 돌무더기를 부수며 내 몸이 직선으로 꽂혔다.
위, 옆, 바닥 전부 무너지며 보인 틈이었다.
등부터 시작한 통증이 꽤 강렬했지만, 이 정도야 잠깐의 휴식이면 충분했다.
NS 전 팀원이 흩어진 게 문제지, 상처 따위야.
품에 안긴 로즈가 가늘게 떠는 게 느껴졌다.
“5분만 잔다.”
난 말하고 눈을 감았다.
정말 잠깐의 휴식으로는 충분했다.
* * *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그 말에 프로메테우스의 삼대장으로 불리던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빨간 입술이 마저 열렸다.
“세최특 하나 잡자고 들어간 자원이 천문학적인 수준이야. 실패하면 크로커다일은 제 몸을 과학자가 한 점 한 점 뜯어 본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걸.”
“그분 혼자서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던 여자가 앞으로 몸을 숙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와인이 찰랑거렸다. 와인잔 밖으로 금방 쏟아질 것은 와인은 잔 위로 치솟았다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부하의 말에 여자는 그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이 호응 안 했으면 시작도 안 했어.”
“그쪽이라면, 불멸교 말씀입니까?”
“전부.”
“……전 그 전부가 나설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봅니다.”
“하,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말하며 여자는 와인을 입에 머금었다. 향을 맡으며 입안에 굴린 와인을 삼켰다.
그러며 다시 소파에 등을 기댔다.
푹신함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크로커다일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시작한 작전임은 맞지만, 이왕지사 시작했으면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될 일이다.
프로메테우스, 불멸교, 이시스.
세계 3단 테러 단체가 다 나섰다.
거기에 마법 연맹, 정확히는 숨겨진 다섯 번째 연맹이라는 스위퍼도 나섰으며, 미국에 본거지를 둔 매드 사이언티스트 집단 중 하나도 나섰다.
‘실패는 말도 안 되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전력 차가 너무 나지 않나.
“투자가 과했어.”
그녀는 여전히 특수종 하나를 잡기 위해 들어간 자원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부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요.”
여자는 걱정을 접었다.
이미 떠난 화살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을 잡아챌 순 없지 않나.
그녀는 엎질러진 물을 도로 담기 위해 초능력자를 고용하느니, 새로운 물을 마시는 게 효율적인 일임을 알았다.
“로즈는 어떻게 할까요?”
부하가 다른 주제를 물었다.
“다 쓴 볼펜을 어떻게 할까?”
“버려야죠.”
“그럼 됐네.”
그녀는 말했고 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모든 일이 끝난 뒤, 북쪽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일을 할 것이다.
남은 생존자 중, 불필요한 이를 죽이는 거다.
제 보스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다른 단체의 무력을 견제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기회가 되는 대로 손을 더 써야 할 것이다.
남자는 보스에게 허락을 구하고 곧바로 움직였다.
지금 출발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