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23화 (323/488)

323. 양민 학살

“아무도 없다고요?”

긍낙은 출장을 다녀온 참이었다.

덕분에 일주일이나 NS에 놀러 오지 못했다.

최근 전라도 너머에서 테러범이 기승을 부린다기에 갔는데, 잔챙이 몇 놈만 잡고 끝났다.

들어온 정보에 비하면 허탈한 일이었다.

그렇게 일을 끝낸 긍낙은 NS에 와서 인포메이션 아가씨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참이었다.

그러자 인포메이션 담당이 광익과 누님을 포함 위층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 아니겠나.

“다 같이 단합 대회라도 갔어요?”

NS는 외부 임무를 그리 많이 맡지 않는다.

애초에 이쪽에 배당되는 일이 많지 않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본래 국내에 있는 PMC, 민간군사기업은 정부나 그룹, 협회를 끼고 있어야 일을 받아먹는 법이니까.

광익이 원하면 그룹 차원에서 지원이 있었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NS는 초능국 무역을 전담하는 중이고, 암시장의 배후가 되었으며 독보적인 판독기 기술까지 갖췄다.

그 덕분에 협회에서 NS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긴 하지만.

이들이 일이 부족해서 칭얼댈 일은 없다는 거다.

“아니요. 일정을 발설하는 건 기밀이라서요.”

긍낙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 담당이 아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자리 비울 테니, 알고만 있으라고 했겠지.

그럼 얘네는 어딜 간 건데?

궁금했다.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단합 대회?

‘진짜 단합 대회 간 거면.’

삐뚤어질 것이다. 누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조카 놈은 자신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다.

그동안 자기가 차도 주고 해 달라는 건 다 해 줬다.

인듀어도 빼돌렸고, 그룹 차원에서 커스터마이징 훈련 기구까지 만들어 줬는데.

자기를 빼고 놀러 갈 순 없는 거다.

그리 생각하며 걷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살기가 슬며시 흘러나왔나 보다.

빌딩 안, 카페테리아에 있던 일반인 몇이 몸을 부르르 떠는 게 보였다.

긍낙은 살기를 수습했다. 덩달아 마음도 함께 수습했다.

‘일이겠지.’

이중봉이 입사한 이후로, 대외적인 이미지 구축을 위해 꾸역꾸역 외부 임무를 꽤 맡는다고 듣긴 했다.

그러니 일일 것이다.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다 같이 가는 건 이상한데?

어디 네임드라도 뛰쳐나왔다는 소식이 있던가?

없다.

긍낙은 최근에 특수종 세상을 시끄럽게 할 만한 일이 뭐가 있는지 곱씹어 봤다.

‘테러범 새끼들 회동.’

무려 이시스, 프로메테우스, 불멸교의 회동이 있었다.

그 안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회동 자체가 문제가 될 확률은 농후했다.

다만, 그 회동은 이미 끝난 일이고.

그나마 있었던 사건 중 하나가 전뇌 공주 사건인데.

그건 조카가 이미 꿀꺽하지 않았나.

협회에서 엄청나게 따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듣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은 이렇다는 거다.

다시 단합 대회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호응이 새끼도 출장 중이라고 하던데.’

설마 강호응은 데려가고 자신은 두고 갔나?

‘피가 안 섞였다고 따 시키나.’

그러면 정말 삐뚤어질 것이다. 아주 많이.

긍낙은 잡다한 생각을 이어 가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고민해도 이들 전부가 나갈 일은 없다. 어떤 임무가 이들을 전부 움직일까.

‘세최특에, 갱생 마녀랑 팬텀에, 그 밑을 받치는 이들도 하나같이 뭐.’

긍낙은 이곳을 자주 들락거려서 안다. 여긴 호랑이 굴이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들이밀면 살점 하나 안 남기고 씹어 삼킬 무력 단체다.

고로, 네임드가 게이트를 뚫고 나와서 염병을 떨거나.

테러범이 단체로 개수작을 부리지 않는 이상 이들이 단체로 움직일 일은 없다.

‘역시 단합 대회인가.’

그리 생각이 굳어지는 사이다.

부르르.

진동 모드로 해 둔 홀로그램 휴대 전화 시계가 떨렸다.

본사였다.

“네, 이긍낙입니다.”

전화를 받은 긍낙의 발이 멈췄다.

“말해.”

“그래서?”

“현재 상황은?”

“파악한 정보 정리해 둬. 팀 구성은?”

“강호응이?”

긍낙은 제 자리에서 몇 마디를 되묻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특급 첩보였다.

테러범 무리가 모여서 백두산을 폭발을 노린다는 거다.

그거로 한국에 타격을 줄 거라고.

미친 새끼들이다.

그 여파가 과연 한국에만 미치겠는가.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을 흐른다. 그래, 백두산이 터진다고 치자, 용암이 흐르고 화염이 치솟는 스펙터클한 판타지의 한 장면이 실화가 된다고 치자.

‘방화벽.’

용암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수틀리면 서울 위쪽으로 벽을 세우면 된다.

로스트 노쓰야, 이미 포기한 땅이니 그렇다 치고.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지진, 여파.’

어느 하나도 쉬이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서울에 있는 빌딩이 우수수 쓰러지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돌아 버리겠네.’

아무리 감추고 숨겨도 막상 일을 시작하려면 사람이 움직이고 자원이 움직여야 한다.

정부와 그룹, 협회는 이런 일을 대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첩보 단체를 운영한다.

이런 대규모 작업이라면 발각되는 건 당연했다.

다만, 그 과정이 문제였다.

‘너무 늦었어.’

놈들이 보안을 기가 막히게 유지했다.

장치가 발동하기 전에 막아야 하는데.

‘지금 팀을 꾸려서 간다고 해도 막을 수 있을까? 근처에 전투 가용 팀이 있을까?’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 와중에 다시 전화가 울렸다.

우우웅.

모르는 번호다. 위성 전화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긍낙은 곧바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

“삼촌.”

광익이였다.

“야, 너, 어디야?”

“백두산이요. 여기 일이 좀 있는데요, 제가 설명을 드리자면.”

어디?

“너 왜 거기 있냐? 알고 갔냐?”

“오호, 그룹 정보력 좋네요. 알고 있다면 얘기가 빠르죠.”

광익이 말했다.

긍낙은 또 발을 멈췄다.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조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의뢰받습니다. 자자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의뢰가 아닙니다. 지금 백두산에서 아주 살벌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거 놔두면 일 납니다. 의뢰비 제가 부를까요? 아니면 책정해서 주실래요?”

“10분, 아니 5분만.”

긍낙은 곧바로 그룹에 연락을 넣었다.

광익이는 단합 대회가 아니라 백두산에 갔다.

어지간한 전술팀이 갔어도 백두산 사태를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NS가 갔다면.

‘테러범 새끼들 엿 뷔페 파티지.’

고로 아직 기회는 있었다.

* * *

“야, 시발, 급한 불부터 끄자. 피닉스 팀장 어디 있냐?”

행안부 장관은 속이 터진 화산처럼 불타올랐지만, 화를 낼 타이밍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테러범 회동, 백두산 폭발.

두 가지 이슈가 동시에 터졌다.

일단 대통령께 보고했고.

대통령은 곧바로 올드 포스에 지원을 요청했다.

중국이든, 러시아든, 당장 백두산으로 쳐 뛰어가라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첩보가 너무 늦었다.

그만큼 이번에는 보안이 철두철미했다.

하물며 이걸 위해 이 미친 테러범 새끼들이 자신들의 기지 몇 개를 던졌다.

살을 주고 뼈를 벤다. 그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게 이득이 맞아?’

그래, 백두산 터져서 난리 부르스 나고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에서 어디 저기 밑에 있는 경기도 안산쯤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지들이 버린 것도 만만치 않은데?’

최근 타격해서 없앤 테러범 기지가 열여섯 군데다.

전부 알짜배기였다.

불멸교의 사도도 둘이나 잡았고.

프로메테우스의 간부도 다섯이 넘게 죽었다.

이 한 번을 위해 버린 패가 너무 많지 않나.

“피닉스 팀장님 위치 파악 불가입니다. 이 첩보도 마닐라 쪽에서 팀장님 직계로 직접 올라온 겁니다.”

“지금 당장 사람 보내도 늦은 것 같지?”

“네. 그룹에서도 비슷한 시뮬레이션을 돌린 거로 압니다.”

아찔하다.

백두산을 터트려? 이런 미친 망상을 하는 놈이 어디 있나.

하긴, 수년 전에는 부산 앞바닥 밑에 무슨 파도 분사 장치를 설치하려고 했었지.

그때는 해일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건 실패했다.

피닉스 팀이 제압하기도 했으며, 기계 장치도 어설펐다.

그 파도 재생 장치는 이제는 개조되어 워터파크에서 쓰고 있다.

부르르르.

그 타이밍에 전화가 울렸다.

위성 전화다.

위성 전화는 군사용이다. 그것도 작전이 아니면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물며 장관 직통으로 전화가 오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피닉스 팀장이겠지.

장관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연호야!”

“아들입니다.”

“……응?”

장관은 당황했다. 피닉스 팀장이 아니다.

“연호의 아들인데요.”

유연호의 아들? 그게 누군데?

아! 세최특이다.

“유광익?”

“네. 저 광익인데, 장관님 의뢰 안 하실래요?”

찾아가는 의뢰 서비스인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제가 지금 백두산에 있거든요.”

그 말에 장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

“백두산이요.”

하늘이 도왔다. 적어도 장관은 그리 생각했다.

* * *

아니, 이 양반들이 진짜 훈련을 너무 열심히 했다. 진짜.

무장한 용병 무리를 발견한 직후, 난 싸움을 준비했다.

인베이더를 만나고 나서는 딱 한 번 칼질 한 번 하고 아무것도 안 했다.

다 알아서 죽이더라고.

다들 하나같이 잘만 싸우더라.

하물며 그 정직이까지 이제 어디 내놔도 안 부끄러울 정도였다.

슬슬 몸이 찌뿌둥한 참에 나서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이중봉과 정기남이 눈빛을 교환했다.

둘이 나 중간에 두고 뭐하니?

그러더니 좌우로 갈라져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이?

그래도 수신호는 보내고 갔다.

당장 제압, 정리하겠다는 신호다.

언제 나 몰래 둘이 손발을 맞췄는지, 둘의 호흡은 완벽했다.

좌우로 찢어져 나간 두 명의 불멸자는 곧 훌륭한 암살자였다.

그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공터 벽을 끼고 움직였다.

그림자 속에 숨은 그들은 기척을 죽였다.

완벽에 가까운 잠행이다.

이제까지 지나온 땅굴도 천장 높이가 그리 낮지 않았지만, 공터는 위가 트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빛이 없는 위쪽은 불멸자의 감각으로도 얼마나 높은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넓이도 어지간한 운동장 넓이는 됐다.

공터를 기준으로 앞쪽 너머 네 개의 통로가 더 보이기도 했다.

적당히 젖은 흙 위로 바퀴 굴러간 자국과 발자국이 가득했다.

한쪽에 쌓인 화기 따위가 보이기도 했다.

중앙에는 거치형 레일건도 놨다.

한 방 한 방이 오거의 몸통을 분쇄할 수준의 대형 화기다.

자동소총으로 무장도 했다.

칼을 찬 놈도 있었다. 도끼를 가진 놈도 있었다.

수류탄도 몇 개 보이나, 바닥에 지뢰 따위는 설치하지 않은 거로 보였다.

내 감각으로 비추어 봤을 때, 저 테러범 집단은 초능, 불멸, 변신이 섞인 파티였다.

각기 자리 잡은 위치를 보면 아마추어는 아니다.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도.

좌우, 잠행으로 움직인 두 명의 불멸자를 막긴 어려웠다.

일단 좌측 외곽에서 코를 비비던 용병 하나의 목에 와이어가 걸렸고.

동시에 우측 외곽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맨 끝에 있는 놈 턱 밑으로 칼날이 치솟은 거다.

와이어와 칼날은 동시에 상대의 숨통을 끊었다.

“습……!”

바로 곁에 있던 다른 놈이 입을 열었다. 습격이라 외치려 했을 것이다.

그놈의 머리통에는 짧은 칼날이 꽂혔다.

기남이의 커스터마이징 기어였다.

충격으로 발동되는 레이저 쓰로잉 나이프.

불멸자답게 정확하게 미간에 칼날을 꽂았다.

레이저 블레이드가 맞는 순간 발동에 방탄이 분명한 헬멧을 쪼개고 머리통에 꽂혔다.

소리치던 놈이 뒤로 넘어갔다.

“습격이다!”

“어디야!”

“이런 시발!”

무장한 무리가 상대를 찾는다.

불멸자로 보이는 놈 중 하나가 헬멧을 벗어 던졌다. 툭 하고 떨어진 헬멧이 바닥을 구른다.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이나, 그거 실수다.

헬멧을 벗든 안 벗든 네 눈에는 안 보일 거다.

보일 턱이 없다.

이미 좌우 벽에서 위쪽으로 움직인 둘이다.

둘은 그대로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위!”

머리통에 총알이 꽂혀 안구가 터지면서도 불멸자는 외쳤다.

프로 의식이 남다른 친구였다.

하지만 그게 또 소용이 있진 않았다.

둘은 비스듬한 공터의 벽을 타고 위에서 밑으로 사선으로 총알을 몇 번 갈기더니, 공터 중앙 조명이 만들어 낸 그림자 사이를 오갔다.

총을 쏘고도 기척을 숨긴다. 그냥 기척 죽이기는 아니다.

기척 속이기도 섞었다.

불쑥불쑥 둘이 튀어나올 때마다 테러범 무리는 죽거나 전투 불능이 됐다.

양팔이 잘린 채 바닥에 퍼덕거리는 친구가 발차기만으로 싸우는 장면은 과장된 거라니까.

일단 팔이 잘리면 더럽게 아프니, 바닥을 애벌레처럼 기게 된다.

고통 감내 훈련을 최고 레벨로 이수했다면 모를까. 보통은 그렇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양민 학살?

저 둘은 물 만난 물고기였다.

방앗간에 들른 참새였다.

인베이더 상대로는 그리 활약하지 않던, 불멸자 둘은 테러범을 만나 날뛰었다.

거기서 내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참 구경하다가 일행에게 합류하란 통신을 보냈다.

다가온 우미호는 상황을 한눈에 파악했다.

“전투 지원은 필요 없을 것 같고, 위성 전화 있지?”

그러곤 나한테 대뜸 묻는다.

“있는데.”

“세상에서 제일 나쁜 일은 돈 많은 사람을 위한 무료 봉사야.”

우미호가 정상이 아닌 건 알고 있었다.

“맞지.”

귀태만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보니.

“NS는 군사 기업, 기업은 이윤을 위해 일해야지. 이런 일을 무료로 할 거야?”

미호가 말했다.

난 금세 알아들었다.

정부가 바보가 아니라면 지금쯤 상황 파악이 끝났을 거다.

도시와 나라 수호에 의무가 있는 단군 그룹도 마찬가지다.

뭐, 모르면 알려주면 되고.

찾아가는 의뢰 서비스.

그걸 할 때였다.

자, 그럼 내 몸값 더하기 우리 팀원 몸값은 얼마나 하려나.

난 전화를 들었다.

의뢰비 책정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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