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20화 (320/488)

320. 보고 싶다.

역사적으로 테러 단체는 골치 아픈 집단이었다.

특수종 전쟁 당시에는 인권단체였던 곳이 테러 집단으로 변한 경우도 있었고.

과거의 망령이 뭉쳐 사이비 종교가 되기도 했으며.

오래전부터 중동 지역에 뿌리내렸던 테러 집단은 유연하게 특수종 무리를 수용해서, 최고의 테러 단체로 거듭나기도 했다.

각각 생겨난 시기와 역사는 다르지만, 하는 짓은 매한가지다.

테러를 통해 제 단체의 목적을 이루는 거다.

그중 프로메테우스는 상당히 미친 쪽에 속하는 집단이기도 했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온 신이 되리라.

인류의 숫자를 십 분의 일로 줄이고, 남은 인류를 전부 특수종으로 변이시킴으로써 인류를 종속시키리라.

가끔 사람들이 나보고 또라이라고 하는데, 진짜 미친놈들은 이쪽이지.

전 세계 인구를 십 분의 일로 줄여? 어떤 학살자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다. 그걸 최종 목표로 삼다니.

그럼 프로메테우스만 미친놈이냐?

그건 또 아니다.

사이비 종교인 불멸교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본래 불멸교는 순혈 오브 더 순혈, 고귀한 피를 가지고 태어난 불멸의 귀족 집단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변질되어 ‘불멸’이란 두 글자를 숭배하게 되었으니.

곧 교주를 신과 동격으로 여겼고, 믿음으로 인해 신력을 얻어 불로불사가 되겠단다.

아니, 염병 맞을 소리도 이 정도면 중병 아닌가?

차라리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더 멀쩡해 보인다니까?

실제로 몇몇 미친 과학자 무리는 불멸교와 자신을 동급으로 보는 걸 불쾌해한다고 한다.

똥 묻은 개끼리 서로 물어뜯는 꼴이다.

불멸교가 끝이냐?

아니다. 프로메테우스와 불멸교를 낳은 모친이 계신다.

친모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계모가 될 것이다.

저 대형 테러 단체는 모두 이쪽의 영향을 받았으니까.

이시스.

이집트 신화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여신을 말함이다.

본래 중동 테러 단체였는데, 특수종 집단을 받아들여 최종 병기 씹새가 된 놈들이라고 보면 된다.

과거, 미친 과학자 무리는 크게 세 무리로 뭉쳤다.

핍박받다 못해 뭉친 세 집단의 이름이 칼루넨, 일루젼, 더 라운드였다.

이 셋은 무력이 필요했고, 무력 집단으로 중동 테러 단체를 받아들였고.

간간이 소말리아 해적 같은 친구들도 끌어들임으로 규모를 키웠다.

연구를 통해 폭발형 인간 따위를 만들기도 한 이들이 바로 이시스의 모체다.

이 최종 병기 씹새가 바라는 건 더 상큼했다.

일반인, 특수종, 인베이더 할 것 없이 살아남은 이들을 모아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

바로 이시스 왕조의 건설이다.

캬, 과하게 미치면 이런 소리도 지껄이는구나 싶다.

프로메테우스의 사상은 여기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게 정설이기도 하다.

이 땅을 지배할 군주를 대신하기 위한 집단이라는 종교적 믿음도 설파하는 짬뽕 집단이기도 하다.

하여간 굵직한 테러 똥강아지 무리는 이 셋이고.

“전년도 인베이더 사고 사망률.”

나는 지금 로즈의 브리핑을 듣고 있다.

전직 테러범이 홀로그램을 펼쳐서 한쪽으로 밀었고, 새로운 창을 열며 말을 이었다.

“전년도 테러 사고로 인한 사상자 숫자.”

전직 테러범이 테러 사상자를 따지는 걸 보니, 아이러니했다.

실제로 테러범 무리는 자기들 기지에서 저럴까?

“이봐, 올해는 테러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실적 최우수 사원 나와. 올 한 해 테러를 성실히 수행했으므로 이 상을 수여한다.”

“야, 너 실적이 이게 뭐냐? 아는 지인, 학력, 혈연 다 쓰란 말이야. 이 새끼야? 테러가 장난이야? 영업, 이따위로 할래?”

이따위 소리를 지껄이려나?

물론 아니겠지.

로즈한테 슬쩍 들어 보니, 거의 점조직 운영이고 일단 반쯤 세뇌당하는 게 기본이라고 하니까.

특수한 능력을 갖춘 사람일수록 세뇌 단계는 더 깊어진다고 들었고.

아마 프로메테우스가 날 노렸을 당시에 혹해서 넘어갔으면, 평생 노예처럼 부려 먹었을 거란 말도 덧붙였다.

갈 생각도 없었지만, 안 가서 참 다행이다.

“줄었군.”

회의실은 홀로그램을 선명히 보기 위해 불을 끈 상태였고.

방금 그건 뒤쪽에 앉아 있던 중봉이 형의 목소리였다.

캄캄한 상태에서 홀로그램 불빛이 목젖까지만 비췄고, 얼굴에는 까만 음영이 졌다. 그걸 보니 배후의 악당 같아 보였다.

중봉이 형만 있는 건 아니었다.

NS의 주요 인사가 다 모였다.

중봉이 형을 본부장으로 취임시킨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이 양반은 조직도를 몇 번 해체하고 재조립하더니, 현재의 형태를 만들었다.

구조만으로 보안이 가능한 구성이다.

NS는 내부에 지원부서를 제하고는 전부 팀뿐이다.

첫 번째로 팀장 이중봉.

팀명은 팀장 재량이었고, 중봉이 형은 팀 이름을 ‘미들픽’이라고 지었다.

예전, 불멸특수대 시절 미들픽 도그 베이비라고 했었던가?

그게 정겨웠던 것 같다.

팀장의 재량은 팀명을 짓는 걸 넘어 팀원 구성도 가능하다.

그래서 현재 미들픽 팀의 구성은 총원 셋이다.

이중봉, 이동훈, 김정아.

제멋대로의 구성이지만, 마음에는 쏙 들었다.

향수가 느껴지는 구성이지 않나.

그다음 팀장은 정기남이다. 미들픽 도그 베이비의 적극 추천이었다.

팀명은 디파이언스.

내가 대신 지어 줬다.

이름 좀 지으라고 했더니, 반항을 일삼기에 대충 알아서 지었다.

팀원은 알아서 챙기라고 했더니, 정직이랑 마리, 김근육을 데려갔다.

마지막 팀은 팀명 나인테일스.

별명 구미호, 본명 우미호가 팀장이다.

팀원은 김요한, 방귀태, 로즈.

저 개나리 둘이 팀장이라니, 애들 많이 컸다.

어느새 팀장까지 달고.

잘 키운 선인장을 보는 기분이었다.

“묘하게 불쾌하다. 눈알을 돌려라.”

내 눈빛을 느낀 기남이 말하고.

“미호를 음흉한 눈으로 보지 마라. 변태 대표.”

귀태가 말했다.

“풉.”

마지막은 그걸 보던 미들픽 도그 베이비의 비웃음이다.

회의고 뭐고, 다 뒤집어엎고 싶어졌다.

이대로 테이블을 들고 휘두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는 중에도.

“그리고 이게 지지난해 사망률.”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로즈는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다.

홀로그램 두 개가 허공에 겹쳐졌다.

흥미로운 그래프가 내 시선을 빼앗았다.

인베이더 사고와 테러 집단의 사망률이 현저히 줄었다.

해가 갈수록 줄어가는 추세였다.

그만큼 인류가 잘 대응하고 있다는 의미다.

인베이더를 상대하든 테러 집단을 상대하든 말이다.

하물며 대규모 사고가 몇 건이고 터졌는데도 이렇다.

네임드 청기사가 죽은 이후, 그 경향은 더 짙어졌다.

“그래서?”

비약 치료 중임에도 정아 누나는 이 자리에 왔다.

상대가 프로메테우스인 이상 나도 말릴 도리가 없고.

더 잘 싸우라고 약을 준 기분이 들었다.

“테러 집단의 가치를 말하는 중이다.”

로즈는 설명을 이었다.

짧게 치자면 이런 거다.

폭우를 향해 총을 갈기면 어떤가.

폭우가 멈출까?

해일이 일어나는 곳에 가서 변신한 뒤, 멋지게 발차기를 날리면 어떤가.

해일이 멈출까?

둘 다 어림도 없는 말이다.

나도 안다.

그럼 인베이더는 죽일 수 있는 존재일까?

그렇다.

내가 네임드를 죽임으로써, 현재 그 어느 때보다 그걸 확고하게 증명했다.

테러 집단은 상대할 수 없는 집단인가?

아니다. 그 또한 내가 증명했다.

서울 근교까지였지만, 적어도 탈탈 털어서 내보냈다.

양지의 사업체든, 음지의 사업체든.

번갈아 털었다.

불멸교가 보낸 암살자도 털었다.

무슨 짓을 해도 야무지게 받아쳤다.

그렇게 프로메테우스는 몇 번 처맞더니 오래된 프로젝트를 발동했다.

프로젝트명 디재스터, 재해다.

인베이더로도, 수작질로도 안 된다면.

“화산 폭발, 목표는 백두산.”

로즈의 목소리와 함께 홀로그램이 변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목표란다.

그 기반이 되는 정보가 탄탄했다.

칠 년 전, 정부 소속 과학자 하나가 기계 하나를 개발했다.

무슨 촉진기라고 하고 원리가 어떻다고 하는데,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기계 연구가 진행되었다면 그 기계는 다양한 방면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게 중요했지.

남은 연구 자료를 정리하는 중에 시간이 남아도는 대학원생 하나가 논문을 냈다.

그 촉진기의 효용은 증폭기에 있다고.

그리고 증폭기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건 휴화산을 터트리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게 요지였다.

얼추 말이 되는 소리라고 했다.

고로 문제였다.

그 과학자 새끼와 프로토타입 기계는 어디로 갔는가?

정부 소속 과학자는 나중에 시신으로 나타났다.

프로메테우스의 연구소에서.

“그 증폭기를 백두산에 설치해서 터트리는 것, 그게 목적이다.”

로즈가 말을 끝맺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프로젝트지만, 말은 됐다.

로스트 노쓰.

현재 북한은 없다. 그곳은 인베이더의 놀이터나 다름없는 곳이다.

뚫고 가는 것 자체가 일이 된다.

일이 된다고 했다. 고생은 하겠지만, 불가능은 아니다.

증폭기 자체의 효용성이다. 네 곳 이상 설치하면 폭발한다는데.

진짜 그거 몇 개 설치한다고 휴화산이 터져서 화산 폭발이 일어날 수 있나?

이건 확인할 이유가 없다.

아니면 마는 거고.

맞다면 막아야 하는 일이 맞다.

화산이 안 터지면 산사태라도 일어나겠지.

그럼 이게 우리 쪽에 영향을 미칠까에 관한 의문은 필요 없었다.

화산 팡파르가 터지면 충청도 위쪽으로 개판이 될 확률은 90% 이상일 테니.

“당장 출발해야 한다.”

로즈가 말했다.

“뭘 믿고?”

정아 누나다.

“맞는 말이야. 함정일 확률이 높아.”

우미호도 거들었다.

로즈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차분한 어조였다.

“세최특에게 약속했다. 프로메테우스의 주요 작전을 캐는 조건으로 입사한다고. 무엇보다 내 머릿속에는 주문이 걸려 있고.”

말하며 로즈가 제 머리를 오른 검지로 툭 찔렀다.

사실 주문 따윈 없지만, 로즈는 그렇게 믿고 있을 거다.

“그래서 믿으라는 건 어렵지. 테러범의 말은 다 따져 봐야 하는 법이니까.”

정아 누나는 까칠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연관된 일이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따져,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건 사실이다.”

로즈는 담담했다.

애초에 이런 취급을 받으리란 걸 아는 놈이다.

나한테는 까불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런다.

로즈도 눈치는 있다.

“정부를 포함, 그룹과 협회에도 전혀 없는 내용의 첩보야. 신빙성이 떨어져.”

우미호가 말한다. 대충 옳은 말이다.

난 우미호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 첩보가 만약 거짓이라면 무엇을 위한 것일까 하고.

“하지만 오래된 프로젝트라는 건 알겠어. 가능성도 알겠고.”

우미호가 말을 잇는다.

나도 생각을 잇는다.

테러 집단의 목적은 여실하다.

그들이 노리는 바는 명확하다.

“현 시간부로 정보를 통제, 밖으로 내뱉지 않고 팀을 구성 후 현장에 들어가는 게 방법이라고 본다.”

“동의.”

팬더 형이 손을 들어 우미호의 말에 힘을 실었다.

“총력전이 되겠구먼.”

중봉이 형이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물론, 출발 전에 정아 누나가 로즈의 정보 출처를 탈탈 털어 볼 것이다.

난 이미 아는 내용이다.

그녀는 이걸 위해 반쯤 목숨을 걸었다.

혜민이 도운 것도 알고.

암시장의 인력도 썼다.

부르르.

홀로그램 폰이 울었다. 손목시계 형태의 폰을 조작하는 사이, 또 다른 울림이 울렸다.

각각 다른 연락이었다.

월급루팡 2인조였다.

둘이 사귀나. 타이밍 기가 막히네.

[작대기] 너 외국에서도 엄청 유명하더라. 곧 돌아간다.

언제 오느냐고 한 열 번쯤 물어본 것 같은데 이제 연락이 왔다.

무심한 인간이다.

[통나무] 내 주식 잘 있지?

……이 양반은 돈 벌려고 주식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하다 보니 이게 취미가 된 거지.

근데 어디에 있길래 이런 걸 물어봐.

인터넷 한 번 켜 보면 나오는걸.

부르르.

그사이 세 번째 연락이 울렸다.

알이었다.

툭하면 바꾸는 메신저 대화명을 최근에는 고정해 뒀다.

[돈 줄] 요즘 분위기가 안 좋은데, 김근육 데리고 우리나라에서 놀다 가.

얘는 전에도 이랬다. 그래서 진짜 잠깐 갔더니, 한 1년쯤 쉬다가 가라고 졸라 댔다.

미친 애새끼 같으니라고.

제 누나도 보고 싶고, 그 와중에 나한테도 칭얼대고 싶은 건데.

한 나라의 왕쯤 됐으면 그만 좀 해라.

대강 셋에게 답장을 보내는 사이, 멋대로 굴러가던 생각을 멈췄다.

테러 집단의 목적이 뭐든 상관없었으므로.

난 그들을 만날 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하도 잘 숨어다녀서 찾는 게 어려운 놈들이었으니까.

아, 보고 싶다. 크로커다일도, 프로메테우스의 간부진도, 전부 보고 싶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백두산으로 떠나는 내내 그럴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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