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17화 (317/488)

317. 불협화음

“바퀴벌레가 말대꾸?”

변신족은 기남의 어설픈 도발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이건 뭐, 작정하고 싸우자는 거지?

요즈음은 상대적으로 이런 일이 많이 줄었지만, 본래 변신과 불멸은 사이가 안 좋다.

특수종 전쟁 이후, 불멸이 올드 포스와 함께하고 변신이 엑스큐라시에 몸담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특수종이 세상에 나서기 전부터 불멸과 변신은 사이가 나쁘다고 했다.

불멸은 조용함을 미덕으로 삼고 변신은 본능에 휘둘리며 사니.

“시끄러운 짐승 새끼가, 말대꾸?”

기남의 말은 쌍수를 든 환영에 하이 파이브를 날린 격이었다.

싸우겠네.

둘 사이를 싸늘한 공기가 채운다. 곧 변신족의 콧김은 줄었다.

호흡을 조절한다는 건 당장이라도 뛰어들어서 주먹으로 네 면상을 피떡으로 만들 준비가 끝났다는 거다.

기남이는 그에 반해 팔을 늘어뜨리고 길고 느린 호흡으로 전환했다.

우리 기남이,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물리적으로도 근접한 거리에서 변신은 어떤 특수종보다 유리한 종이다.

하물며 싸우기 직전에 호흡을 조절하는 꼴을 보니, 이 변신족 친구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순혈 또는 혼혈이어도 최소 순혈 수준의 무력을 갖춘 변신족일 것이다.

물론 우리 기남이도 순혈 정가의 초초초 엘리트다.

“끼어들 거요?”

오, 변신족 친구는 이 와중에 침착하기까지 하네.

난 고개를 저으며 한 걸음 물러났다.

내가 시작한 싸움도 아니고 말이야.

동쪽에서 뺨을 맞은 우리 기남이는 말이 없다. 묵묵히 변신족과 눈싸움에 전념할 뿐이다.

기남아, 눈 안 깜빡인다고 이기는 거 아니다. 알지?

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옆으로 두 걸음, 뒤로 한 걸음 움직여 벽을 등졌다.

거기서 다시 반 발자국 옆, 단단한 벽을 등지고 섰다.

불멸자의 감각을 동원해 찾은 자리였다.

여기가 일등석이었다.

팟.

시작은 변신족이었다. 당연한 얘기다. 이 거리에서 변신족과 불멸자가 싸운다면 추가 너무 한쪽으로 기운다니까.

감각이 오버 클록 하며 상대의 움직임을 프레임 단위로 끊기며 보였다.

변신족이 땅을 박차며 주먹을 뻗는다. 그 와중에도 손에 사정을 뒀다.

맞으면 얼굴이 피떡이 될지언정, 머리통이 터질 만큼 힘이 들어가진 않았다.

얼굴을 때리는 주먹은 속임수이기도 했다. 기남이가 반응하며 그대로 왼 팔꿈치나 무릎이 튀어나올 거다.

고로 노리는 건 막는 팔이나 다리 하나를 부러뜨릴 요량인 거다.

그러니까 사정을 봐준다는 거고.

기남이의 늘어뜨린 팔이 움직인다.

그와 동시다.

틱. 삑. 찍.

실제로 들린 소리가 아니다. 그저 이런 이미지가 연상됐을 뿐.

묘하게 거슬린다. 감각을 헤집는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조화롭지 못하고 어색하고 끊기며 듣기 싫은 소리다. 즉, 불협화음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감각이 자연스레 이 불협화음의 원천을 찾았다.

오감과 육감의 영역이 열린다.

육감의 눈이 뜨이며 그 원류를 찾아 쫓았다.

기남이의 팔이 흔들린다. 박자가 묘했다.

팔이 끝이 아니다. 입술이 동그랗게 말린 것도 보였다. 휘파람이라도 부는 모양새다.

발끝으로 땅을 톡톡 차기도 했다.

모든 게 부자연스럽다.

이 모든 과정을 몇 초 내외로 인식했기에, 난 그 효과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일 터였다.

금세 기남이 한 일의 결과가 보였으니까.

달려들던 변신족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발을 헛디딘 건 아니다.

본래 몸을 쓰는 건 변신족의 특기다.

변신족은 특기를 살렸다. 회전, 근육의 쓰는 정도, 모든 걸 본능적으로 통제해 주먹을 내질렀다.

다만, 묘하게 주먹을 뻗는 자세가 뻣뻣해지고 딱딱했다.

마치 이 동작을 처음 해 본 것처럼 상·하체가 따로 논다.

변신족이 당황했다. 나라도 놀랄 거다. 한평생, 특히나 변신족 각성 이후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던 몸뚱이가 어색하게 움직이니.

난 지금 변신족의 상태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입스다.

물론 정신적 문제가 있어서 생긴 건 아니다.

이건 전부 정기남의 수작이었다.

억지로 불협화음을 만들어 본능을 앞세워 덤비는 변신족의 감각을 흐트러트리는 수작.

예민하지 않다고 해서, 무디다고 해서 오감이 없는 건 아니다.

상대의 감각을 헤집어 짧은 순간, 입스에 빠지게 하는 수작이었다.

변신족의 주먹은 기남의 볼을 스쳤다.

그것만으로 기남의 볼살은 풍압에 눌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고개를 옆으로 틀어 피한 기남은 한 손으로는 상대의 주먹을 바깥으로 쳐 내며 흘렸고, 다른 손으로는 손바닥의 단단한 부분을 세워 올려 쳤다.

변신족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꺾었지만, 기남의 손바닥은 상대의 움직임을 읽은 것처럼 곡선을 그리며 턱을 후렸다.

떡!

소리와 함께.

“끅!”

변신족이 짧은 신음을 흘렸다.

턱을 부여잡은 변신족이 뒤로 뛰었다.

한 대 맞았다고 해서 곧바로 기절할 수준은 아니지.

하지만 턱은 급소 중 하나다.

강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아무리 변신족의 몸뚱이가 튼튼해도 급소는 급소다.

그리고 기남이가 불멸자라곤 해도 평소 훈련량이 살벌하다.

근력이 만만치 않다는 거다.

한 대 맞은 변신족의 눈이 반쯤 풀렸다.

그러면서도 가드를 올려 방어를 굳건히 했다.

칭찬해 줄 만 움직임이었다.

다만, 저 변신족은 자신이 뭐에 당했는지도 모를 터였다.

나도 처음 보는 거고.

다만, 아까 주먹을 흘리는 움직임은 중봉 씨의 특기다.

고로, 요즘 중봉이 형한테 착 달라붙어 다니더니, 배운 거라는 거겠지?

재밌는 기술이었다.

난 몇 번 머릿속으로 정기남이 한 짓을 되풀이했다.

상대의 호흡을 읽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후, 그 호흡과 감각을 흔드는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야 할 거고.

아까 입술을 오므린 이유는 보통 인간의 청각에는 감지되지 않는 소리를 냈기 때문일 거다.

난 보고 겪고 경험하는 것으로 금세 배웠다.

배웠기에 간단히, 시험 삼아 써 봤다.

손을 흔들고 발을 톡톡 바닥에 차 보는 거로.

입술을 오므려 소리를 내는 건, 아무리 나라도 안되고.

정기남이 그런 날 보더니, 손으로 입가를 훔쳤다.

그 손안에는 특수 제작된 휘파람 전용 도구가 있겠지. 인간의 청각을 넘어서는 초음파 따위를 내는 기어일 터였다.

그렇게 눈을 두 번 깜빡이는 사이, 습득 완료다.

“이런 시발.”

기남이 그런 날 보고 축복을 건넸다.

“그래. 그게 바로 한국 최초의 자동차지.”

“미친 새끼가.”

“무슨 짓을 한 거요? 염병, 방금 존나게 이상했는데.”

변신족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허공에 잽을 몇 번 뻗으며 말했다.

우리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에서 사람 나온다. 너 혼나겠다.”

그 말에 변신족이 뒤를 돌아봤다.

말 그대로다. 사람이 나왔다. 중년 남자다. 그 남자는 문을 지키던 변신족을 노려보더니, 날 보고는 말했다.

“오셨으면 바로 들어오시지, 그랬습니까?”

“환영 인사가 정겨워 잠깐 친분 좀 쌓았죠.”

친분 두 번 쌓으면 서로 몸뚱이에 총알구멍을 내주든 사지 중 하나를 부러뜨려 줬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대기해라. 입 다물고.”

변신족은 제 부하를 나무라고 우리 둘을 안내했다.

난 그 뒤를 따라가며 기남에게 속삭였다.

“너 그 기술 시험하고 싶어서 일부러 그랬지?”

그랬을 거다. 알면서 물었다.

그러자 기남이 고개를 옆으로 휙 꺾고 귀를 손으로 털며 답했다.

“두 번 말하지 않는다. 귀에 대고 말하지 마라. 불쾌해서 귀를 뜯어 내고 싶으니까.”

역시 우리 기남이, 반응이 팔짝팔짝 뛰는 갓 잡은 도미 같다.

난 일부러 귀에 더 속삭여 줬다.

피하면 피하는 걸 예상해서 먼저 귀에 바람도 넣어 줬다.

“나도 돌아가면 연구팀한테 휘파람 도구 만들어 달라고 해야지. 훅, 훅.”

그러며 할 말도 다 했고.

“또라이 새끼야. 제발 좀 닥치고 그냥 가자.”

그런 우리를 힐끔힐끔 보던 변신족은 큼하고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장난 칠 자리가 아닙니다.”

어딘지 모르게 학교 선생님께 혼나는 기분이 들었다.

더욱이 그 꾸짖음에 기남이 날 무섭게 노려봤다.

같이 놀아 놓고 이러기냐?

이건 연대책임이지.

폐업 신고한 마트 안쪽은 한적했다.

예전에 쓰던 가판대 몇 개를 옆으로 쓰러뜨리고 가운데를 공터처럼 비워 놨다.

형광등은 이미 먹통인지 켜지지 않았지만, 아래에서 위로 쏘는 조명이 주변을 환히 밝혔다.

그 가운데, 세 부류로 나뉜 집단이 보였다.

일단 익숙한 복장이 하나.

불멸 전용 방검방탄복을 입은 집단이 하나다.

자유분방하게 서 있는 것 같지만, 누구라도 덤비면 곧바로 방아쇠를 당길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 반대편, 비슷한 전투 슈트를 걸친 무리다.

각진 자세로 도열한 변신족이다.

둘은 서로를 노려보는 중이고.

한쪽에 전투 슈트와 무장이 제각각인 집단인 초능 협회가 보였다.

자, 보자.

아는 얼굴이 둘이나 있다.

하나는 불닭, 협회에서 나온 책임자로 보였다.

빨갛게 염색한 머리를 위로 세우고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게 꽤 위협적으로 보였다.

고추장 찍어 먹은 수탉 같은 느낌이다.

변신족 대표는 익숙한 얼굴이다.

“세최특이 왔으니까 다시 시작해 볼까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쪽은 꽤 억울하답니다? 아시잖아요? 그쪽이 시작한 일이라는 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아니고 작정하고 먼저 시비를 걸고 인제 와서 모른다고 오리발을 내밀면 어떻게 하나요? 이거 굉장히 황당하거든요. 다시 특수종 전쟁이라도 벌이자고 이러는 건가요? 그럼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었겠죠? 그래서 조율자로 NS를 요청했습니다.”

정소진이다.

얘는 여전히 말이 많네.

사람에 따라 말을 많이 하는 거로 상황을 제 페이스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정소진이 그랬다.

“안녕들 하세요?”

내가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를 건넸으나, 반응하는 사람은 없다.

“시비를 먼저 건 건 우리 쪽이 아닐 텐데?”

대신 불멸 대표가 나섰다.

자, 이쪽은 누구신가.

몸짓, 태도, 말투를 종합해 봤을 때, 행안부 사람임이 분명했다.

사실 그걸 종합하지 않아도 내가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화림의 책임자로 나올 확률은 낮았으니, 당연한 얘기다.

직감으로 봐도 공무원 냄새가 나고.

눈매가 날카로운 미남이었다.

“아직도 그러시네, 증거를 그렇게 보여 드려도 오리발을 내미시면 안 되죠. 그거참 곤란하다니까요?”

정소진이 한 걸음 나서서 답하고.

행안부 담당자는 날 힐끗 보더니 마저 말했다.

“조작된 증거를 당당하게 들고 오다니, 머리에 나사가 빠진 거 아닌가?”

“조작이지. 조작 맞지.”

불닭이 한마디 거들었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아주 시원하게 하시네.

그 말에 소진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선명하고 굵은 핏줄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개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거네요? 진짜 상종을 못 하겠네.”

“상종? 이쪽이 어울려 주는 거겠지.”

행안부 담당의 이마에도 비슷한 핏대가 섰다.

이게 평소에는 안 그런데.

일단 시비가 붙으면 불멸과 변신은 사이가 매우 나쁜 편이다.

그걸 증명하듯 둘 사이로 스파크가 튀는 듯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협회랑은 더 사이가 안 좋다.

협회는 불멸과 변신 둘 다 싫어하니까.

그 둘이 초능을 핍박했다는 피해주의자 집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불멸 순혈주의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그냥 흘려들을 말이긴 하지만.

이런 말이 도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불멸이랑 변신은 초능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어째 묘한 일에 끼어든 것 같은데.

그리 생각한 순간이다.

“씨이발.”

본능 컨트롤이 미숙한지, 화가 난 변신족 하나가 뛰쳐나갔다.

크르릉!

우드득!

신축성 있는 슈트가 늘어나며 비대해진 근육을 겉으로 드러낸다.

얼굴이 앞뒤로 늘어나며 개의 머리를 보였다.

개 대가리를 들이민 변신족 하나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불멸자 집단에서도 한 명이 튀어나왔다.

절제된 동작으로 등 뒤에서 티링 하고 와이어를 뽑는데, 달려드는 변신족의 몸을 와이어로 잡아 썰어 버리겠다는 심산으로 보였다.

둘이 달려들기 직전, 난 오늘 저녁은 양갈비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동시에 이 일이 얼마짜리인지도 떠올렸다.

세 개 집단이 동시에 요청한 일, 우미호는 돈을 뜯어 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하물며 이건 내가 직접 나선 일이다.

현재 내 몸값을 말해 뭐할까.

더럽게 비쌀 터.

고로 일은 제대로 해야 옳다.

양갈비를 떠올리며 난 발을 뗐다.

달려드는 개대가리 변신족이 주먹을 내지른다. 난 그걸 오른 손바닥으로 받아내며 힘을 위로 흘렸다.

동시에 왼쪽에 날아드는 와이어는 장갑 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엮어서 실뜨기하듯 예쁘게 꼬아 줬다.

우측 달려드는 변신족 주먹을 흘린 김에 가볍게 손을 뻗어 명치 어림을 툭 치고.

뻑.

물론 나는 툭- 이지만, 충격은 전해질 것이다.

왼쪽은 와이어를 꼬아 내며 한 줄만 위로 튕겨 불멸자의 목을 감았다.

맞은 변신족은 쿠웩 하며 바닥을 굴렀고, 목에 와이어가 감긴 불멸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단숨에 중간에 끼어들어 교통정리를 하자.

“……와우.”

소진은 감탄했고.

불닭은 눈썹을 꿈틀거렸고.

행안부 쪽 담당자는 큼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사람 불러 놓고 뭐 합니까? 장난질이나 할 자리입니까, 여기가?”

내가 큰 소리로 훈계하자, 나와 기남을 여기까지 인도한 변신족이 혀를 찼다.

아니, 이 양반아, 나도 일할 때는 일 잘하지.

누굴 진짜 초딩으로 보나.

하여간 교통정리 끝이다.

난 손을 털어 와이어를 풀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 채 말했다.

“말로 하죠? 조율하려고 왔는데, 이러면 곤란하죠.”

다들 숨을 죽였다.

조금 전 동작에서 느끼는 게 많았는지, 다들 주둥이를 다물기도 했다.

난 뿌듯했다. 무력 행사를 한 보람이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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