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온도 차
사이오닉 협회 한국 지부장은 예순이 넘도록 혼자였다.
그는 결혼에 미련이 없었다.
마흔이 넘었을 즈음엔 ‘자식이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주변에 자식을 둔 부모를 보는 게 기껍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결혼하느니 마느니 난리를 피우긴 싫었다.
초능의 부작용으로 성욕이 없기에 딱히 여자를 바라지도 않았고.
때문에 지부장은 유전자 복제에 관심을 뒀고, 그건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아이를 만들었다.
연구소를 통해 만든 아이가 다섯.
그중에 멀쩡하게 살아남은 게 셋.
하나는 실종, 하나는 죽었다.
자식의 실종에 가슴이 아프진 않다.
만들어 보고 싶어 만들었을 뿐.
어떤 의미도 없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 * *
두-둥, 띠이이이잉.
오전 6시.
홀로그램 폰이 알람을 울린다.
엘가의 첼로협주곡이다.
눈을 뜬 난 창문을 열어, 상쾌한 새벽 공기를 흡입했다.
오감을 열어 습도와 온도를 대강 느껴 보니, 오늘 날씨도 맑음이다.
우두둑.
스트레칭 이후, 곧바로 훈련장.
잇헬을 착용한 채로 오전 훈련.
이후 ‘강푸름 연구팀’, 공식 명칭은 ‘기어 개발팀’이 만든 전투 슈트의 효용도를 체크하러 내려간다.
“오셨습니까?”
경호 담당 직원이 아는 척을 해 왔다.
“헤어졌다면서요? 괜찮아요. 남자가 살다 보면 차이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실연 별거 아니에요.”
경호 담당 직원의 이름은 김찬수.
나이는 서른하나.
변신 혼혈로 최근 어머니가 만든 훈련 트레이닝을 수료한 사람이다.
고로 훌륭한 특수종 전투 가용 인원이란 거다.
“연애 많이 해 보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제가 차인 건 또 어디서 들었습니까?”
“우리 중에 또 요거 가벼운 사람이 있잖아요. 조심해야지.”
내가 입술 앞에 손을 올려 뻐끔거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김요한이가 요새 심심한지 미친 듯이 돌아다니더라고.
그래서 들었다.
김찬수 씨의 세 번째 연애가 실패로 끝났다는 걸.
“김요한 팀장님은 입이 참 무겁네요.”
“네, 많이 무겁죠.”
시답잖은 대화 끝에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시험 준비가 끝난 상태다.
대단한 준비는 아니다.
마네킹에 슈트 입혀 놓고 내 앞에 잘 데려다 놓으면 된다.
“오늘만큼은 될 겁니다.”
연구원이 안경을 올려 쓰며 말했다.
네, 그랬으면 좋겠네요, 나도.
NS에서 새롭게 개발하는 전투 슈트다.
이게 기본만 하면 불티나게 팔릴 거다.
그럼 이게 우리의 새로운 사업이 될 거고.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말이야, 전투 슈트를 참 허술하게 만든다.
강푸름이 요새 반쯤 미친 채로 커스터마이징 기어 만든다며 여기 안 붙고 나머지 연구원만 달라붙어서 그런 건가.
기합이 빠졌다.
내가 전투 슈트에서 바란 최초 합격점은 많이도 아니고 단 하나다.
“갑니다.”
“네.”
연구원 무리가 뒤로 물러났다.
그저 내 주먹질 한 방에 부서지지 않는 거, 그거 하나 바라는 건데, 그게 과해?
“제발.”
연구원 중 하나가 손을 모아 기도한다. 과학자란 양반이 저러면 안 되지.
왼발로 땅을 찍으며 발끝, 무릎, 허리까지 회전을 더한다.
무게 중심을 이동하며 에너지를 모아, 어깨를 축으로 뻗는 주먹에 싣는다.
스트레이트다.
곧 내 오른 주먹과 마네킹이 입은 전투 슈트가 맞닿았다.
꽈-앙!
임팩트로 건물 옆구리에 구멍 냈을 때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굉음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마네킹 다리가 부러지며 뒤쪽으로 펑 하고 날아갔다.
꽝!
내가 때릴 때보다는 작지만, 찰진 소음이 한 번 더 울리며 테스트가 끝났다.
난 총총 걸어가 전투 슈트를 살폈다.
가진 힘의 50%만 썼다.
이것도 못 견디면 뭐.
“다시.”
다시 해야지.
내가 말하기도 전에 수석 연구원이란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라이트 스트레이트에 맞은 슈트 가운데가 움푹 찌그러졌다.
구멍은 안 났지만, 이 정도면 입었던 사람의 내장은 마른 낙엽 부서지듯 다 바스러졌을 거다.
이럼 안 되지.
“전투 슈트의 단점이죠. 충격은 그대로 통한다는 거.”
내가 말했다.
“네, 압니다.”
“수정해 주세요.”
“네.”
수석 연구원이 고개를 숙였다. 통한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나도 많이 써먹은 수법이다.
방검방탄복이 질겨 보이면 충격을 줘서 입은 놈을 조지는 거.
그러니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무엇보다 이미 완성된 전투 슈트를 보지 않았나.
사이오닉 아머, 협회에서 가져온 비밀병기는 네임드 청기사와 초능 특수종이 육탄전으로 비빌 수 있게 해 줬다.
그 정도까지 바라진 않지만, 그래도 일반인이 입었을 때 한 대 맞고 죽을 정도라면 곤란하지.
“대표님 주먹에 견디는 슈트는 좀 과한 거 아닐까요?”
나가는 길에 경호원 실연남 김찬수가 말했다.
“이 정도는 견뎌 줘야죠.”
그것도 안 되면 쓸모가 없다. 적어도 지금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전투 슈트 테스트를 끝내고 구내식당으로 직행했다.
난 몇 번이고 부르짖었다.
아무리 바빠도 삼시 세끼는 챙겨 먹고 살자고.
하물며 NS 구내식당은 전 사원 무료다.
줄을 선 사람들 사이로 나도 합류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맨 뒤에 선 여자가 아는 척을 해 왔다. 인포 누나다. 그 외 주변 사람도 눈인사를 해 왔다.
아침마다 구내식당을 오다 보니, 처음엔 대표님? 세최특? 청기사 슬레이어? 하면서 놀라서 보던 사람들도 이제는 덤덤한 편이었다.
물론 새로 뽑은 직원이 있으면.
“앗, 청기사 슬레이어!”
이렇게 놀라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인포 누나 옆이다. 수수한 얼굴에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여자였다.
나이는 스물? 스물하나?
“반하지 마요.”
웃으며 내가 말하니.
“아, 아, 네. 안 반할게요.”
농담인데.
“첫 출근이에요?”
“넵.”
좀 굳었네.
“진짜 반하면 안 됩니다. 제가 눈이 좀 높아요.”
그래서 농담을 건넸더니, 이 친구 꽤 당차다.
“아, 대표님. 제 타입 아니에요. 저 잘생긴 남자 좋아해요.”
“그러니까 반하지 말라고 하는 건데요.”
“그래서 안 반해요. 두 번 다시 태어나도 대표님한테는 절대로 안 반할게요.”
그게 주먹까지 꽉 쥐며 할 말이냐?
그걸 보던 인포 누나가 입을 가리고 풉풉거리며 웃었다.
“네. 감사합니다.”
순수한 사람이네.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려는데.
“오전 출동 있다. 대표 너도 같이 가는 거고.”
뒤쪽에서 은근한 기척이 느껴지더니 목소리가 들렸다.
정기남 새끼였다. 요새 중봉이 형 뒤를 졸졸 따라다니더니, 아침에 나한테 덤비는 횟수가 줄었다.
뭘 배우는 건지, 몸놀림이 몰라보게 좋아지기도 하고.
중봉이 형, 한국 최초의 자동차 같은 인간 같으니라고.
판을 깔아 줬더니, 진짜 미친 듯이 기남이만 챙기네.
“알아. 자식아. 출동 있는 거.”
훈련만 하면 몸이 굳는다. 어머니도 그리 말씀하시고 어디서 놀고 다니는 건지, 월급루팡이 되어서 몇 달째 모습을 보이지 않는 두 과외 선생도 그리 말했다.
그래서 잡은 실전이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기묘한 일이 자꾸 벌어진다고 해서 NS에서 맡기로 한 일이다.
무려 행안부와 단군 그룹과 협회 세 곳에서 동시에 요청한 임무다.
“아침 먹으러 왔냐?”
끄덕.
정기남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옆에 섰고.
“아.”
새로 온 신입 여직원이 기남을 빤히 보다가 신음을 흘리며 넘어지려고 했다.
그걸 인포 누나가 요령 있게 붙들었다.
뭐지, 이 온도 차는?
“뭐냐, 이 차이는?”
내가 물었다.
“뭐가?”
정기남의 입가가 이상하게 씰룩였다. 이 새끼 지금 상황이 재밌나 본데?
“요새 왜 대련하자고 안 덤비냐? 난 열려 있다.”
덤빈다고 하면 곧바로, 여기서 혀 내밀고 오줌 지리며 기절하는 걸 보여 줄 의향이 있었다.
먼저 덤비기만 하면 말이다.
“……됐다.”
그런데 정기남이 뺀다. 이 새끼 이거 왜 이러지?
“오늘 아침 약 아직 안 먹었니?”
“미친 소리 관둬라.”
아니, 너 이런 애 아니었잖아.
기남이 상대를 안 하는데 먼저 나서서 싸우자고 하기도 뭐하다.
안 그래도 사내에서 내가 직원 괴롭히는 취미가 있다는 악성 루머가 은근히 떠돌았다.
루머 따위는 알 바 아니지만, 정기남 반응이 신기해서 괴롭힐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자주 있는 일이에요.”
그런 날 보고 인포 누나가 말했다.
“네?”
“신입 여직원은 정기남 팀장님 보고 한 번씩 열병을 앓거든요. 얼굴이 워낙, 아시죠?”
아니, 전혀 모르겠는데요.
“왜 나 보고는 열병을 안 앓는데요?”
“……꼭 답해야 하나요?”
하지 마세요. 안 들으렵니다.
아침을 먹고 난 출전 준비를 마쳤다.
내 주먹에는 견디지 못하지만, 프로토 타입으로 만든 전투 슈트와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나이프 두 자루, 저격용 라이플 한 자루, 임팩트와 알에게 받은 갤럭시 장갑까지 끼면 끝이다.
슈트 안에 섬광, 빙결, 열염, 소음, 연막탄이 한 개씩 들어 있으니, 완전 무장이다.
이게 최근 이중봉 본부장이 만든 NS 출정 기본 장비다.
“대외적으로 보이는 이미지, 지금 NS에게 필요한 거다. 그러니 발에 땀 나도록 입고 뛰어야지.”
자신이 이리 말하고 그걸 증명하기도 했다.
이중봉 본인조차 작은 일부터 열심히 했다.
예전에 화림 시절 코 파면서 총 쏘던 사람이 맞나 싶다.
여기저기 홀로그램 명함도 미친 듯이 뿌리고 다닌다고 하던데.
이걸 들은 남 사장이 꽤 약이 올랐다는 소리도 들었다.
물론 전부 김요한이 말해 줬다.
아직도 불멸특수대 쪽에서 가십거리를 잘 캐 온다.
이것도 진짜 능력이라니까.
오늘 작전은 정기남과 내가 페어로 나간다.
“요청한 곳이 워낙 몸집이 크니까 우리도 사이즈는 맞춰 주는 거지.”
내 출전에 팬더 형이 한 말이었다.
근데 사이즈 맞춰 주는 게 고작 둘이야?
이게 맞아?
운전은 정기남이 맡았다. 뒷자리에 타니, 정기남이 날 노려봤다.
“내가 운전기사냐? 옆에 앉아.”
“나 조수석에 타면 곧바로 잠드는 병이 있다.”
“미친 새끼.”
오늘의 정기남은 날씨만큼이나 맑다. 애가 화는 내는데 진짜 절대 안 덤빈다.
난 까만 세단의 조수석에 탔다.
날 조수석에 부른 걸 후회하게 해 주마.
한때 지옥의 주둥이라 불리던 나다.
어머니의 주먹과 아버지의 훈계 사이에서 자란 혼혈의 무서움을 보여 주겠다.
“아버지는 잘 계시고? 요새 가문이 워낙 힘들다고 하던데.”
내 말에 기남의 어깨가 움찔했다.
물론 불멸자가 아니면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미세한 떨림이었다.
“야. 집에다가 좀 잘해. 후레자식 될라.”
까득.
기남의 어금니는 튼튼했다. 치아 갈리는 소리가 경쾌했다.
“그건, 네놈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하는 기남을 보니, 아침밥 먹을 때보다 기분이 나아졌다.
쓰러진 여자 직원이 한동안 해롱거리던데.
아니, 내가 기남이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다고.
그리고 이중봉 이 양반은 내가 대표인데, 허구한 날 기남이만 끼고 도네.
역시 면접에서 탈락시켜야 했나.
“응? 뭐라고? 턱 근육에 힘을 좀 풀어 봐. 발음이 안 좋다. 자식아, 이제 형이 한국어 발음도 알려 줘야겠냐? 사옥에 있을 때부터 의지하더니, 아직도 이러네, 야, 이제는 안 돼. 너도 어엿한 팀장 아니냐. 나한테 너무 의지하면 곤란하지.”
부우웅. 끼이이익!
정기남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래, 싸우자고 그러는 거지?
오래 참았네, 우리 기남이.
잘했다.
“씨이발.”
놈은 그리 말하더니 운전석을 박차고 나갔다.
난 휘파람을 불면 내렸다.
그리 기남이와 즐거운 스킨십을 기대하는데.
“도착했다.”
음?
싸우자는 거 아니고?
뜬금없이 무슨 대형 창고 건물 앞에 섰다.
예전에 창고형 마트였는지, 반쯤 떨어진 간판이 보였다.
낡은 카트 따위도 보였고.
“안쪽으로.”
안내를 맡은 기남이 들어갔다.
난 그제야 작전 브리핑을 떠올렸다.
최근에 정부와 단군 그룹, 협회를 동시에 엿 먹인 범죄에 관한 거였다.
또한, NS에 이 일을 요청한 이유가 조율을 위한 거라고 했다.
한국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 개의 기득권 단체가 서로를 불신하고 있다나 뭐라나.
뭐, 언제는 서로 믿은 것처럼 얘기하는 게 웃겼다.
그리 들어선 곳.
철컥.
“허가받지 못한 사람은…….”
변신족 하나가 더블 배럴 샷건, 그것도 개조된 샷건 두 자루를 겨누며 우리를 반기며 말했다.
정기남은 그 말을 다 듣기도 전에 NS사원증을 꺼냈다.
“NS에서 나왔다.”
꿈틀.
그 말에 변신족의 눈썹이 씰룩이더니 고개를 모로 꺾는다.
“근데 언제 봤다고 반말이슈?”
“보자마자 총구를 들이미는 놈한테 존댓말이라도 쓸까?”
어? 난 느꼈다.
오늘 아침, 아니 그 이전부터다.
기남이 나한테 덤비며 수없이 처맞은 순간들.
이후 오늘 아침과 운전대를 잡고 온 지금에까지.
기남이는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중이었다.
즉, 동쪽에서 뺨을 맞고 서쪽에서 화풀이하는 중이었다.
나한테는 한없이 참던 기남은 단숨에 끓어올랐다.
온도 차가 확연하다.
변신족이 콧김을 뿜었고.
그걸 본 기남은 턱을 들었다. 특유의 오만한 자세였다.
고로 시비 걸기 딱 좋은 자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