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아빠와 오빠
유연호는 장관의 호출에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로 불렀는지는 뻔했다.
아들 일이겠지.
정부가 공들여서 지켜보던 연구소를 깡그리 털었다.
적당히 할 것이지.
있는 대로 다 털어 가면 어쩌라는 건지.
아들놈이 대단하긴 했다.
일전 불멸특수대가 연구소 서버 본체를 통째로 들고 튄 일이 있었다.
한 번 당한 연구소 집단은 머리를 썼다.
‘머저리들.’
연구할 때는 잘도 돌아가는 머리가 왜 이쪽으로는 이런 수준밖에 안 돌아가는가.
그들은 서버를 땅에 고정해 둠으로 물리적 보안에 힘썼다.
그리고 아들은 그걸 싹둑 잘라 갔다.
“풉.”
그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복도 맞은편에 걸어오던 직원이 힐끔 자신을 바라봤다.
요즘 출장이 잦더니 꽤 지친 얼굴이었다.
엊그제 밤이라도 샜는지 얼굴이 핼쑥하다.
“어제 부장님 개그가 지금 터지네.”
“아, 네. 전 보고서 끝내고, 퇴근합니다.”
머쓱하게 한마디하고 지나쳤다.
집무실 앞, 비서가 유연호를 알아보고 문을 열어줬다.
안에 들어가니, 집무실 모니터 화면이 번쩍거리며 장관 얼굴을 비추는 게 보였다.
장관은 한참 화면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왔나?”
“부르셔서.”
“앉지. 차?”
“커피로 주시죠.”
장관의 원두 사랑은 유명하다. 불멸자가 아님에도 그가 마시는 커피가 입에 딱 맞을 정도로.
곧 불멸자 비서가 핸드 드립으로 내린 커피 두 잔이 응접 테이블 위에 놓였다.
마주 앉은 채다.
뭘까, 이 소프트한 분위기는?
아들 일을 따지리라 생각했는데,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하릴없이 커피나 한잔하면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안부 인사나 물을 것 같지 않나.
“요새 날이 참 좋아.”
날은 좋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만개한 계절이다.
“벚꽃 구경은 했나?”
“아내가 개나리를 더 좋아해서요.”
“취향 확실하네.”
“그래서 부르신 이유가?”
“유 팀장, 우리 사이에 뭐 이유가 있어서 부르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김이 오르는 커피를 앞에 두고 유연호는 팔짱을 꼈다.
“아니, 갑자기 보고 싶어서.”
“제가요? 아니면 제 아들이요?”
핵심을 꿰뚫는 말솜씨가 십 점에 꽂히는 화살과 같았다.
“거, 딱딱하게 굴기는.”
유연호는 팔짱을 풀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긴 했지만, 나쁜 건 아니다.
자신이 정보를 판 거? 숨기려면 숨길 수 있지만, 그래서 좋을 게 뭐가 있을까?
유연호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아들에게 돈도 받고.
양심에 찔리는 일도 하지 않았다.
적당히 보고하고 자체적으로 처리한 거다.
“전 보고한 딱 그만큼만 정보 넘겼습니다. 나머지는.”
“알아.”
장관이 말을 잘랐다. 그가 커피잔을 들어 향을 음미했다. 코가 씰룩이고 입가가 부드럽게 휜다. 어지간히 커피 향이 마음에 든 듯했다.
물론 커피 향만 마음에 든 건 아닐 것이다.
‘이 상황이 흡족하다는 건데.’
유연호는 장관의 태도를 보는 것만으로 일의 전후 사정을 파악했다.
아들이 엮여 있어서 일부러 깊게 파지 않았더니.
“수작을 부린 겁니까? NS를 이용하려고?”
“수작이라니,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그리고 이용이라고 하는 것도 섭섭하고. 말려도 자네 아들은 그 일을 밀어붙였을 거야. 그렇지?”
맞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말린다고 들을 아들이 아니다.
“그저 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거지.”
“음흉한 여우 꼬리 같으니라고.”
“난 불멸자도 변신족도 아니야. 그리고 유팀장, 상사한테 상스러운 말 하면 안 되지?”
“사석에서는 형이라고 부르라고 할 땐 언제고 그러십니까?”
“내가 본래 공과 사를 내 좋을 대로 붙이는 사람이라네.”
“관둘까?”
“야, 동생. 그러지 마. 왜 그렇게 사람이 극단적이야?”
“음흉해.”
“정치판에 굴러 보다 보면 이렇게 되는 거야. 그리고 윈윈 이잖아.”
유연호는 흥하고 콧방귀를 꼈다.
실제로 아들에게 딱히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어느 정도의 후폭풍은 예상했을 테니.
오히려 지금 상황은 더 좋았다.
적어도 올드 포스는 이 일로 아무것도 따지지 않을 것이다.
상황은 단순했다.
사설 연구소를 정부가 방치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양식장에서 광어 기르듯 직접 기르진 않는다.
그럼 규모 있는 사설 연구소의 자본은 어디에서 올까?
소장의 개인 자산으로 운용하는 예도 있지만, 대부분은 테러 단체 또는 몰래 불법 연구소를 지원하는 음흉한 집단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한국 정부는 어차피 털릴 연구소 정보를 넘기는 것과 동시에.
사설 연구소를 지원하기 위해 들어온 냄새 나는 놈들을 잡아 부순 거다.
최근에 피닉스 팀을 제외한 행안부 특수대가 바쁜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여기 오며 지나친 그 직원의 보고서도 아마도 이것과 관련된 일이었을 테고.
최근 화림과 사이가 좋은 것도 이런 이유겠지.
고로 제가 심어 둔 연구소가 털린 단체는 기분이 상할 것이다.
이 일을 벌인 쪽이 누군지 알아볼 테고, 여기서 NS 두 글자를 쏙 빼놓고 말할 순 없다.
“나만 쏙 빼놓고 했네?”
유연호가 빈정이 상해 말하니.
“피닉스 팀 휴가라며.”
장관이 입술을 쭉 내밀고 답했다.
여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NS는, 세최특은, 아들은 어차피 테러 단체랑 강을 건넌 사이다.
어차피 틀어질 대로 틀어진 사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나도 그 새끼들은 싫거든.’
테러 단체랑 희희낙락 지낼 이유는 없다.
고로 문제는 없었다.
“아, 유 팀장, 대통령이 이번 일을 대외적으로 발표하자고 하던데? 표창장 줄 일이 하나 늘었다고 흡족해하시더라고.”
“무슨 표창장을 월간 단위로 줍니까?”
“줄 수 있으면 주간 단위로라도 줄 기세야.”
장관의 말에 유연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리면 안 준답니까?”
“아니.”
장관이 씨익 웃었다.
그놈의 표창장.
* * *
“서울 근교 통합 십여 군데의 사설 연구소를 NS에서 나서서 소탕했습니다. 이들은 전부 불법 연구를 시행한 곳이었으며, 경찰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 정보를 공유해 NS와 함께 작전에 임했다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규격 외의 세최특이 또 한 건 했습니다.”
뉴스를 전하는 기자가 흥분했다. 그 어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듣고 있던 김정아는 생각했다.
‘숨긴다고 하지 않았나?’
저리 까발리면 저게 정부와 그룹의 양식장인 것도 은근히 말이 돌 텐데?
그걸 감수하고서도 저렇게 할 이유가 있을까?
“나라가 미쳐 돌아가는구나.”
이중봉이 팔짱을 낀 채, 혀를 찼다.
“왜요?”
“유광익 놈이 뭘 하든 밀어주겠다고 대놓고 저러는 거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뒷배가 되겠다고.”
NS와 유광익에게 뒷배는 필요 없다. 김정아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애초에 광익이는 그런 걸 계산하고 움직이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세최또.’
사실, 세최특이란 별명보다는 저 별명이 더 잘 어울릴 테니까.
김정아가 있는 곳은 광익이 마련한 개인 휴게실이다.
말이 휴게실이지, 병실에 가깝다.
박병준 박사의 비약 연구가 성공하려면 필요하다고 몸에 주렁주렁 측정 장치를 달고 있기도 했다.
몸이 한계였다.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다.
고통을 감내하는 것만으로는 변할 수 없는 진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허벅지가 후들거린다. 라면 하나 끓이겠다고 물을 받다가 냄비를 놓쳐 버린 일도 있었다.
화장실까지 걸어가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풀려 버린 순간도 있었다.
고작 몇 분뿐이었지만, 무력감이 전신에 휘몰아치는 시간이다.
겉보기보다 김정아의 몸은 더 안 좋았다.
원래의 자신이라면 제 일이니,
자신이 나서야 했지만.
유광익이 딱 잘라 거절한 뒤, 처리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모든 게 끝났고 자신은 휴게실이라 이름 붙은 개인 병실에 유배됐다.
그 유배지에 이중봉이 병문안을 왔고 온 김에 같이 이번에 터진 일을 보도하는 뉴스를 본 거다.
“어땠어요?”
김정아가 대뜸 물었지만, 이중봉은 질문의 의미를 알았다.
모를 수가 있나.
둘 다 복수를 위해 살기로 작정한 이들이었다.
“처음에는 통쾌했지. 그 뒤에는 난감했고.”
“왜요?”
“목표를 이룬 건 좋았다. 그런데 죽어야 할 내가 살아 버려서.”
말하며 이중봉은 귀를 후볐다. 후빈 새끼 위를 입김으로 훅 불었다.
머쓱할 때 하는 행동이었다.
하루 이틀 본 사이가 아니었다. 김정아는 이중봉의 버릇 몇 개를 알았다.
김정아는 이중봉이 한 말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청기사를 죽이기 위해 살았는데 청기사를 죽였다.
그럼 된 거다. 근데 살아남아 버렸다.
제 인생의 끝을 정해 뒀는데, 이어졌다.
에필로그 이후의 삶이 남아 버렸다.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궁금증은 그 너머에 있다.
고로 중요한 건 지금이었다.
“그래서요?”
지금은 어떤가.
김정아는 그게 궁금하다. 자신의 복수는 진행 중이다. 몸이 망가져도 멈출 생각은 없다.
그건 확고하다.
다만, 복수 외의 삶을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예전에는 꿈도 못 꿨던 것들이다.
누구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다. 새로운 삶을 살라고 하지 않았다. 설득 따윈 없었다.
유광익을 포함한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녹아들어 버렸다.
그 미련이 자신을 약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고민이었다.
“지금은 자신이 없다.”
“……네?”
무슨 자신?
“유광익 하고 싸우면 질 것 같아. 진짜 싸우면 얻어맞을 것 같은데, 그거 꼴사납겠지?”
이중봉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풉.”
김정아는 웃었다. 이건 진짜 참을 수 없었다.
어색함에 푸하하 하고 웃진 못했지만, 큭큭 대며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게 웃기냐? 난 진지하다.”
이걸 광익이가 알면 당장 덤비자고 할 것 같긴 했다.
“아니요. 네, 이해합니다.”
“그래서 은근슬쩍 피하는 중이야. 요즘은 이게 내 인생 최고의 화두지.”
그 말을 하는 이중봉의 표정은 참 홀가분해 보였다.
“정아야.”
중봉이 다리를 꼬고 턱을 괴며 말했다.
“네.”
이쪽은 자신의 양부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복수의 길을 열어준 사람이기도 했다.
“살아라.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더라.”
중봉과 눈을 마주쳤다. 그 눈에는 전에 없던 걱정이 담겨 있었다.
회사 생활 때에는 보지 못했던 따듯함이 있었다.
참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간다.”
중봉이 일어났다. 돌아서는 그를 향해 김정아는 한 마디 말을 건넸다.
“네, 아빠.”
삐끗.
중봉이 발을 헛디딜 뻔했다.
“너.”
그 말을 끝으로 중봉이 헛웃음을 날리며 나갔다.
밖으로 나간 중봉은 저 얼음덩이 같은 녀석이 농담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아빠라니.
저런 말을 할 애가 아니었는데.
좋았다.
정말 반쯤은 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걸으며 중봉은 속으로 곱씹었다.
‘이렇게까지 했으면 쟤 살리겠지? 미친 대표야?’
나서는 길에 중봉의 눈에 동훈이 보였다.
병실 앞이었다.
“뭐하냐?”
“들어갈까 말까 합니다.”
“들어가.”
“딱히 할 말도 없긴 한데.”
“그냥 옆에 있어 줘.”
“네, 뭐.”
동훈이 뒤통수를 긁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 곰탱이 같은 놈이다.
제 마음 하나 제대로 갈피 못 잡는 멍청한 곰탱이.
동훈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빠.”
안에서 김정아의 두 번째 농담에 발이 굳는 동훈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걸 본 이중봉은 파하핫 하고 웃어버렸다.
정말 농담이 많이 늘지 않았나.
이게 전부 유광익 새끼 때문이다.
그 새끼랑 놀다 보니까 백로가 까맣게 물든 거다.
* * *
“본래 연구라는 게 백 퍼센트 성공이란 건 없는 거라네, 알지 않나? 시도를 해 보는 거지.”
박병준 박사가 말한다.
난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때로 약점이 선명하게 보이는 사람은 다루기 쉬운 법이라고.
실패라.
그건 곧 정아 누나의 몸에 이상을 말함이다.
그건 용납 못 하지.
“마리야.”
“네, 오라버니.”
그래서 박병준 박사의 약점을 불렀다.
“어, 엄.”
마리를 본 박사가 당황한다. 말문이 막혔는지 어버버 하며 눈만 깜빡거렸고.
마리는 그런 박사를 향해 말했다.
“성공하면 의부.”
“……뭐라고?”
“실패하면 모르는 아저씨.”
이 말의 의미를 모르진 않을 거다.
박병준 박사에게 박마리는 무슨 의미인가.
곧 그걸 알 수 있었다.
“대표, 성공하네, 실패라니, 그런 거 없어. 커스터마이징 비약, 내 목숨 걸고 성공시킨다.”
결연한 의지가 돋보였다.
“기간은?”
내가 물었다.
“한 달, 석 달만 주면.”
“오케이. 좋아요.”
여기까지다. 난 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그때까지는 마리 면회 금지다.
“마리야.”
“네.”
떠나는 마리를 박사가 부른다.
마리가 돌아섰다.
“그, 아빠라고.”
“들었어요. 기억은 다 나지 않지만.”
짧은 대화의 끝이다.
마리가 돌아섰다.
나가는 길에 마리를 바라봤다. 혹시 내가 무리한 일을 시키진 않았나 했지만.
“다 기억났어요. 마리 데리고 탈출했다고. 왜 그랬을까요?”
“진짜 딸이라고 생각했겠지.”
대수롭지 않은 대화였다.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난 연구실 밖으로 나와 강푸름한테 향했다.
막 내 커스터마이징 무기가 하나 완성됐다고 둘러보라고 했다.
두근두근.
기대됐다.
강푸름은 아다만티움 샷 건을 보고 실패작이니, 개도 안 물어 갈 무기라 했다.
고모한테는 죄송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그래서 자신이 손을 대고 새로이 만든다고도 했다.
그걸 위한 시간, 돈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갔다.
이제 투자한 돈과 시간의 결과물을 확인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