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313화 (313/488)

313. 업보 (2)

‘요새 일을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닌가?’

목적지에 다다른 시점에 정직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툭하면 출장이고 툭하면 전투다.

‘NS에 입사하기 전보다 몇 배는 더 험하게 사는 것 같은데.’

불만은 없다. 정확히는 불만 따위 가질 수 없다는 게 정답이다.

돈을 많이 벌게 해 준다고 했지, 놀고 먹게 해 준다고 하진 않았으니까.

그러므로 정직은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누구냐고.”

손가락 반 마디쯤 내린 운전석 창문 밖으로 소총으로 무장한 사설 경비가 물었다.

정직은 눈으로 경비의 무장 상태를 확인했다.

돌격 소총, 권총, 나이프, 헬멧을 쓰긴 했지만, 유명한 제품은 아니다.

고로 잘나가는 용병 회사는 아니다. 복장만 봐도 안다.

프리랜서, 범죄자에 가까운 이들이고 제 무력을 팔아 밥 벌어 먹고사는 이들이다.

한때, 정직은 이들과 처지가 다르지 않았었다.

“고생하십니다.”

“야, 여기 사유지야.”

안다. 사유지인 거.

정직은 창문을 조금 더 내렸다.

상대의 눈빛이 보였다. 매서웠다. 부릅뜬 눈이 자신을 노려봤다.

무섭진 않다.

‘평소에 워낙 괴물 같은 인간들하고 지냈어야지.’

대표도 그렇고 대표의 모친도 그렇고.

그 둘을 빼도 다 살벌하다.

특히 이번에 새로 온 불멸자도 마찬가지였다.

“광변환 초능? 나쁘지 않아. 실력도 괜찮다면서? 그럼, 여기 여기는 그쪽이 하시고.”

연구소 습격 작전 브리핑 중이었다.

정직은 결말을 예측했음에도 대표를 힐끗 봤다.

대표가 제 눈빛을 읽고 유유히 입을 열었다.

“경력직, 나이도 많고 성질도 대단히 더러움. 정기남보다 더함.”

“뭐?”

그 말에 새로 온 불멸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만 말한 겁니다. 제가 워낙 정직하게 자라서.”

대표는 굴하지 않고 말했다.

어쨌든 그 정기남보다 성질이 나쁘다는 거 아닌가.

“네, 알겠습니다.”

정직은 얌전히 수그렸다. 괜히 말을 섞지 않았다.

퉁.

“야, 이거 안 보여? 차 빼고 가라고 새끼야.”

사설 경비가 거친 언어를 뱉는다. 눈빛도 여전하다.

총구로 창문을 툭 치기까지 했다.

정직은 그 모든 걸 보며 편안함을 느꼈다.

NS 사람들에 비하면야.

NS가 늑대개 집단이라면 이쪽은 귀여운 인절미 집단이다.

위잉.

창문을 마저 다 내렸다.

창문이 다 내려갈 즘, 정직은 손을 뻗어 경비의 목울대를 때렸다.

“꺽!”

타다다당!

당황한 경비가 방아쇠를 당겼다.

차량 뒤쪽 창문 위로 불똥이 빗물처럼 튀었다.

“방탄이에요. 이거.”

말하고 정직이 차 문을 힘차게 열었다.

빡!

차 문에 맞은 경비가 옆으로 구른다.

뒤에 서서 지켜보던 경비 둘이 총구를 들었고.

정직은 정면으로 내달렸다.

어려운 싸움은 아니다. 그동안 해 온 작전에 비하면 쉽다. 쉬운 작전이었다.

광변환과 총구 끝을 보고 방향을 피하는 동작 몇 번만으로 정직은 제 거리를 찾았다.

크롬 합금 삼단봉이 춤을 췄다.

빡, 빡!

머리통을 맞은 경비 둘이 그대로 쓰러졌다.

연구소 진입까지 어려운 건 없다.

정직은 나오는 족족 경비를 때려눕혔다.

전부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그렇게 연구 자료 탈취 직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정직은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 * *

사설 연구소라고 해서 다 같은 급은 아니었다.

어떤 곳은 정부가 양식장 운영하듯 연구소를 놔둔다는 걸 아는 곳도 있다.

그들은 그래서 꼼수를 부린다.

올드 포스가 손을 댄 곳이라면 일부러 엑스큐라시를 끌어들이는 거다.

이간질은 언제나 최고의 전략 중 하나가 아닌가.

적의 적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법이니.

서울 외곽, 김포에 있는 창고 건물로 위장한 연구소가 그랬다.

그들은 정부가 자신을 놔둔다는 걸 알아챘고 이후 미국 쪽 용병 업체를 고용했다.

블루 트윈스라는 곳이었다.

블루 트윈스는 상대가 사설 연구소인 걸 알면서도 용병을 파견했다.

대외적으로야 명분은 분명했다.

그들은 용병, 돈 많이 주면 가는 거다.

용병 계약 조건이 계약자의 구역에 진입하지 않는 거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본래 정치 놀음이란 게 그런 법이었다.

“여기 있는 놈들 냄새가 좀 나지 않아?”

“마늘 냄새.”

한 명은 흑인, 한 명은 백인이다.

출입구를 지키는 건 둘이다.

둘 다, 곰 변신족이었다.

특수부대 출신의 용병으로 훈련도 충실히 받은 이들이었다.

“눈 찢어졌다는 말은 하지 마라. 그거 인종 차별이야.”

백인이 흑인을 나무랐다.

“쉣, 그냥 농담이라고.”

“너한테는 농담이 다른 사람한테는 아닐 수 있다. 니거.”

“이 애미 없는 새끼가 뭐라고 그러는 거냐?”

“농담이다.”

둘은 싸우는 듯하다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런 둘이 눈빛이 변했다.

몸을 숨긴 세 번째 동료가 전한 말 때문이다.

“누가 온다.”

둘이 장난을 멈추고 기관 단총을 슬며시 앞으로 들었다.

농담으로 끝냈지만, 이곳은 냄새가 구린 곳이다.

불법의 구린내가 풀풀 풍기는 곳이란 거다.

용병 중 짧은 머리칼의 남자가 한 걸음 나섰다.

“뭐냐.”

대낮, 짧은 소로길을 걸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전신을 까만 전투 슈트로 가렸다.

완전 무장이다.

“멈춰라.”

한 발 나선 용병은 말하며 상대가 멈추는 걸 기다리지 않았다.

애초에 저런 복장을 하고 오는 놈이 손님일 리 없지 않나.

그들의 고용 조건 중 하나.

이곳에 찾아오는 누구도 살려 보내지 않는 거다.

두두두두!

총탄을 갈긴다. 갈긴 탄이 상대에 몸에 구멍을 내진 못하더라고 어떤 충격은 남길 것이다.

그런 기대로 봤지만, 상대의 몸은 아지랑이처럼 흐려지며 사라졌다.

“주문쟁이다!”

“정답.”

목소리는 바로 곁에서 들렸다.

화륵.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다.

타-앙!

세 번째 용병이 저격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겼다.

변신족 둘이 앞을 지키는 예상외 상황에서는 불멸자의 저격으로 해결한다.

블루 트윈스의 전략 중 하나였다.

그 전략이 막혔다.

둥!

허공에 육각형의 방패가 생겨나 탄을 막아 낸다.

대전차 포라도 가져오지 않는 이상, 헥사곤 필드에 충격을 주는 건 쉽지 않다.

제 몸 주위에 필드를 펼친, 슈트 복장을 한 침입자의 양손에 불꽃이 타올랐다.

“시발, 졸라 싫어!”

백인 용병이 말하며 변신했다. 신축성 좋은 슈트는 터지지 않고 늘어나며 그의 몸을 감쌌다.

주문쟁이는 그런 그를 보다가 웃었다.

변신족은 내달렸고 마법사를 찢어발겼다.

전신이 찢긴 마법사는 내장을 쏟아 내면서도 웃었다.

“웃어?”

변신족은 눈에 피가 튀었다. 그는 눈을 깜빡였다.

다시 눈을 뜬 그의 눈에는 마법사가 보이지 않았다. 핏자국도 없었다.

타-앙!

헥사곤 필드 위로 탄알이 맞는다.

화륵.

불이 타오르며 주먹에 불꽃을 단 놈이 보인다.

“이 새끼가!”

변신족은 흥분을 무기로 삼아 다시 내달렸다.

또 찢어 죽이고 눈에 피가 튀었다.

눈을 감았다 뜨니.

탕!

탄이 헥사곤 필드 위를 때린다.

‘뭐지?’

기시감을 느낀다. 하지만 변신족은 그런 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죽어라!”

마주 달려드는 적을 상대하기 바빴으므로.

* * *

“불멸자한테는 통하지 않는다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제 발밑에 불멸 저격수를 때려눕힌 채로 기남이 말했다.

통신기를 통해 한동안 아침마다 주먹을 나눈 상대가 답했다.

“몽정하는 꿈이라도 꾸고 싶으면 엄마한테 부탁해서 비슷한 마법 개발해 달라고 해 주고.”

‘빌어먹을.’

기남은 더 말을 섞지 않았다.

어떻게 자기보다 어린 여자애가 입은 자기보다 몇 배는 더 걸다.

괜히 유광익의 여자가 아닌 거다.

기남은 말싸움은 벌여 봤자 진다는 걸 알았다.

대신 작전대로 움직였다.

강혜민이 쓴 건 최면 주문이다.

데자뷰의 악몽이란 건데.

강혜민의 모친인 스펠 크리에이터가 일본 닌자 만화의 한 장면을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기남은 누군가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형을 통해 들은 게 있다.

스펠 크리에이팅, 주문 창조라는 건 창작의 영역이라고.

노력한다고, 시간을 투자한다고 매번 괜찮은 주문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거다.

감성과 직감의 영역이 더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곧 재능이다.

영감을 떠올린 순간, 새로운 주문 창조라니.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지 않나.

이번 작전은 간단했다.

자신은 주변에 있을 은신한 적을 찾아 제압.

이후, 혜민은 주문을 준비하고 그 주문이 담긴 포스트잇을 상대의 등 뒤에 몰래 붙이는 게 전부였다.

단지, 데자뷰의 악몽은 불멸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불멸자는 제압하고.’

변신족은 주문으로 눌러 둔다.

만약 상대가 주문을 준비한다면, 그건 더 쉽다.

이쪽은 마법 연맹이 탐내는 스펠 유저가 있다.

반대로 초능 특수종이 있다고 해도 문제없다.

정기남은 불멸특수대의 엘리트다.

광익이 떠난 화림에서 그의 별명은 십방미인이었다.

모든 평가에서 만점을 받는 거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으므로.

저격이면 저격, 박투면 박투.

기남은 완벽에 가까웠다.

규격을 넘어선 괴물만 아니었다면, 그가 차세대 최고의 불멸자가 맞았다.

‘괴물 새끼.’

기남은 광익을 떠올리며 쓰러진 불멸자의 목에 강선을 감고 당겼다.

강선이 목을 파고들어 자른다.

이거로 불멸자가 깨어나 말썽 피울 일은 없다.

목이 잘린 불멸자가 회복하려면 몇 달은 필요할 테니.

이후 작전은 더 쉬웠다.

숨은 불멸자의 위치야, 연구소 안쪽에서 알 일이 없다.

그리고 앞을 지키는 경비 둘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가만히 서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잡담이 멈췄을 뿐이지.

가끔 몸을 움찔움찔하는 게 전부다.

기남은 기척을 죽였다.

이후 연구소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위잉.

잠시 뒤, 손에 라이터를 쥔 연구소 직원 하나가 나왔다.

기남은 직원이 나오고 문이 열린 틈에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가 CCTV를 보고 있겠지만, 그것도 괜찮다.

강혜민과 괜히 페어를 이루고 여기에 온 게 아니다.

“원래 과학을 농락하는 건 미스터리라고.”

강혜민의 말이다.

그녀는 그 말을 증명했다. 기남에게 투명화 마법을 걸어준 거다.

고로 카메라에 걸릴 일은 없다.

정직이 정직하게 쳐들어갔다면.

이쪽은 섬세한 전략으로 들어갔다.

진지하게 전투를 벌이면 블루 트윈스는 골치 아픈 상대가 맞다.

연구소 입구를 막고 농성이라도 하면?

연구자료를 빼돌리면?

그런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기남은 제 몸을 감싼 주문의 기운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투명화는 주문을 건 주체와 거리가 멀어지면 효력이 사라졌다.

기남은 곧 연구소 안을 조심스럽게 훑었다.

카메라 위치를 보고 사각으로 이동하는 건 일도 아니다.

중간중간 피할 수 없는 구간이 나오면 아예 천장을 탔다.

사람과 카메라의 시선을 피해, 연구자료 보관실에 들어선 기남이다.

그는 곧 통신기를 발동했다.

재밍은 없었다.

애초에 이쪽 연구소는 대비는 했으나, 누군가 자신을 털어 가는 건 상상도 못 하는 듯했으니.

“대표 새끼한테 말 전해. 작전 틀어졌다고.”

그가 말했다.

“왜?”

혜민의 답이다.

“본체 들고 못 나간다고 전하라고. 대비했다. 이 새끼들.”

* * *

아니, 이거 업본가?

맞지, 업보잖아.

난 예전에 중봉 씨와 같이 연구소를 턴 적이 있다.

그때 하드 디스크만 빼 올 수 없어서 본체를 통째로 틀고 나온 적이 있다.

그때 그 일이 이쪽 업계에서는 꽤 소문이 났나 보다.

정직이, 기남이 등등이 각각 연구소를 털며 열심히 일하는 사이, 나도 한 곳을 털었다.

간단한 루트로 막 연구자료 보관실에 도착한 참이었다.

쉬웠다.

연구소를 쭉 지켜보며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은 곳을 찾았다. 곧 전력 사용량이 높은 곳.

서버실이지. 뭐.

육감의 눈을 뜬 이후로는 내 감각은 더없이 예민해졌다.

그리 찾은 곳 위쪽으로 기척을 죽이고 올라가 천장을 도려냈다.

그게 전부다.

그리 내려오니.

“저장 장치를 땅에 심어놨는데? 이거 전부 또라이 아니냐?”

통신기를 통해 전해 온 다른 팀의 소식이다.

팬더 형이 종합해서 말을 전해 놨다.

내 눈에도 같은 게 보였다.

아니, 미친 새끼들이네, 진짜.

주요 저장 장치의 모서리 끝을 쇠줄로 엮어서 땅에 쇳덩이로 박아 놨다.

독하게도 심어 놨다.

이걸 보니 업보란 생각이 절로 든단 말이지.

억지로 뜯어내?

그럼 저게 멀쩡할까?

망가진 장치 복원 가능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것 같단 말이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은 짧았다.

들고 못 튀게 했다면 잘라서 가져가면 될 거 아닌가.

가끔 보면 과학자는 머저리란 생각이 든다.

못 들고 가게 한다고 다가 아니지 않나?

팅.

난 나이프를 뽑았다. 적절한 힘과 속도만 있다면 아다만티움 칼날을 단 나이프로 자르지 못할 것은 없다.

이날, 사설 연구소 수십 군데가 털렸다.

하지만 뉴스에는 언급조차 없었다.

다만, 내 전화는 많이 울렸다.

숨긴다고 숨긴 곳까지 깡그리 털어 온 덕분이었다.

“광익아? 연구소를 다 털어 갔네?”

긍낙이 삼촌이 일 번이었다.

“그러게요. 다 우연이죠, 뭐.”

그리고 난 오리발을 내밀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