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업보 (1)
신주호는 자신을 잘 안다.
별명은 특파라치.
본래는 특수종 세상 밑바닥에서 남의 뒤나 캐며 살던 사람.
겉보기에는 특수종 세상의 거머리 따위로 보이지만.
신주호는 나름대로 선을 지키며 살았다.
절도에는 한 발 걸쳤어도 유괴에는 손을 대지 않는 식이다.
“고상한 척하고 자빠졌네. 너 그러다 길거리에 앉는 거야 새끼야.”
프리랜서 세계에서 그를 원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전부 범죄, 그것도 자신이 정한 선을 넘은 거라 그렇지.
‘내가 여기에 온 건 우연이겠지만.’
NS는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 그리고 신주호는 바뀐 인생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지금 같은 순간에는.
“아저씨, 크, 진짜 최고.”
제 회사의 대표가 엄지를 치켜든다. 그 엄지는 오롯이 자신을 위한 찬사였다.
뿌듯했다. 살아 있음을 느꼈다. 돈과 복지를 떠나, 신주호는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여기에 있으니까.
“애초에 말했잖아. 그 정도 능력은 있는 사람이라고.”
옆에 선 우미호가 말한다.
‘인정해 주는 사람이 둘.’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들이 많지.”
눈 밑이 검은, 혼혈 특수종 이동훈이다.
‘셋.’
“꽤 하는군.”
팬텀, 이중봉.
세최특을 제하면 현시대 불멸자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이다.
신주호는 이 사람을 잘 알았다.
의뢰가 들어오면 피해야 할 대상 리스트 상단에 있는 특수종이니까.
그도 자신을 인정한다.
네 번째다.
‘많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이들이 이리도 많다.
제 생각의 오류를 깨달은 특파라치가 미소를 보였다.
그게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걸 깨달았으므로.
자신은 NS에 있다.
그거면 충분했다.
* * *
특파라치 아재가 여기에 있는 건 필연이었다.
보는 순간 마음에 쏙 들어서 채 온 인재니까.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서울과 인근 쪽 사설 연구소 전부입니다.”
일주일도 안 걸렸다. 특파라치는 제 능력을 증명했고, 난 엄지를 들어 줬다.
물론 그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박병준 박사와 말을 나눈 우미호는 찾고 있는 불법 연구소에 조건을 붙였다.
선행 연구를 쫓는 연구자나 연구팀이 관여되어 있을 것.
사설 경호팀을 보유할 것.
“선행 연구를 쫓는 애들은 이런저런 논문과 실적을 모으는 습성이 있어.”
고로 박병준 박사의 그 효용성이라곤 개똥만큼도 쓸모없는 연구 자료를 보유했을 확률이 높다.
“사설 경호팀 정도는 보유해야 규모가 있겠지.”
경호팀조차 없이 숨어다니는 애들이라면 보통 한 가지 발상에 목을 매는 연구가 대부분이다.
이미 망한 연구자료 따위 보유할 여력이 없는 이들이다.
그런 곳까지 전부 치는 건 시간이 아깝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설 연구소 지도다.
서울에 총 여덟 곳.
경기도에 총 열아홉 곳.
참 많기도 하지.
이것도 올드 포스와 엑스큐라시, 초능 협회가 컨트롤하니까 이 정도란다.
아버지 피셜이다.
만약 이 세 개 단체가 손을 놔 버리면 이보다 열 배는 늘어날 거라나.
물론 그중 80%는 연구소의 탈을 쓴 쓰레기거나, 말도 안 되는 연구를 하는 머저리들 모임이겠지만.
과학자는 가끔 보면 참 멍청하다.
제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그 외의 상황에서는 머리를 잘 안 굴리는 놈들이다.
“그럼, 사람 나눠 볼까요. 김요한은 부산 갔으니까 그쪽은 김요한 중심으로 팀 짜고. 에, 여기 네 군데는 제가 혼자 가죠. 나머지는 동훈이 형?”
“그래. 팀을 나눠서…….”
“잠깐.”
말을 나누는 중이다. 중봉 씨가 입을 열었다.
“너희 뭐하냐?”
열댓 명이 들어오면 꽉 차는 작은 회의실이다.
이곳에 모이다 보니, 옛 생각이 나기도 했다.
물론 정아 누나는 이 자리에 없고.
그 대신 우미호가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중봉 씨의 까칠한 말투가 들어오자, 진짜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이런 걸 향수라고 하나.
“조직도는?”
그가 말하며 동훈을 바라본다.
“없습니다.”
동훈이 답한다. 어느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손을 바르게 내린 자세다.
“우미호.”
“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면 오차가 많이 생길 텐데? 팀 조직도 구성을 안 했나? 아직도?”
향수는 향수고, 여기는 NS 수평적인 분위기의 내 회사다.
“거, 바빴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중봉과 눈이 마주쳤다.
요단강에서 족욕을 마치고 돌아온 양반 안색이 참 쌩쌩하기도 하지.
“그랬나.”
이중봉이 수그린다. 그래, 내가 대표라니까.
“후우, 팀장님.”
“이제 네 팀장 아니다.”
팬더 형 말에 중봉 씨가 토라진 듯 말했다.
갓 사춘기에 입성한 애도 아니고 이렇게 쉽게 토라지고 그러나.
중봉 씨 얼굴에 심통이 가득하다.
“대표가 중심을 잡고 갈라야 하는데, 안 하니까 어쩔 수 없죠.”
팬더 형이 상큼하게 제 할 말을 했다.
음?
지금 내 탓 하는 거?
“아시지 않나요? 가끔 보면 저건 그냥 병, 바보입니다.”
우미호야, 설명 병 뒤에 나올 말이 신은 아니겠지?
네 동생을 구해 준 은인한테 그렇게 말하기 있기, 없기?
이것들이 진짜. 의리 없게 다 내 탓을 하네.
뭐, 어차피 정리 한 번 할 거였다.
“조직도는 여기서 정하면 되지. 이중봉 사원.”
“……내가 사원?”
내 부름에 중봉 씨의 얼굴에 찬 심통이 곧 터져 나올 듯했다.
물론 농담이다.
난 이 미친 양반이 오길 기다렸다.
이제 대강 NS 전투조 그림이 나온 거니까.
“사원 하기 싫으시면 조직도 짜고 본부장 하세요.”
그냥 받아들이자니 나한테 놀아나는 것 같고, 거절하자니 사원 강등이다.
이중봉 씨에게 선택지는 없다.
심통 난 오춘기 중봉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조부터 분류한다.”
이후 회의는 이중봉 전투 본부장 주도로 이뤄졌다.
정보팀을 나눴고, 전투 팀을 사람 중심으로 나눴다.
오춘기 불멸자 아재의 경력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독특한 방식으로 팀을 운용했다.
“정기남에게 전투조 하나 주고. 둘 중에 누가 정보본부장 할래?”
“접니다.”
그렇게 정보본부장이 이동훈이.
우미호는 정보 본부 휘하 전략팀장이 됐다.
어머니는 총괄 본부장이 됐다.
“어차피 전면에 나설 일은 없는 거 아닌가?”
맞는 말이다.
“김주희는 마법사 육성할 생각은 없나?”
중봉이 형은 시야가 넓었다. 먼 미래까지 바라보는 중이다.
“방귀태는 전투팀장으로, 김요한은 전략팀장으로.”
척척척.
말 몇 마디로 사내 질서를 잡는다.
진짜 그동안 경력을 항문으로 드시지는 않았나 보다.
난 얌전히 구경했다.
즐겁기도 했고.
회의가 끝나고 출정하겠다고 하고 회의실에서 나왔을 때, 난 중봉이 형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알았죠?”
“네가 미친놈인 거?”
“정아 누나 몸 상태요.”
아주 잠깐이지만, 내 말에 중봉이 형 발이 주춤했다.
순혈 불멸자가 아니면 느끼지도 못할 찰나다.
“괴롭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
걷는 걸음에 맞춰 나도 나란히 걸었다.
“봤습니다. 좀 심해요.”
사실 몸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박병준 박사랑 합의하고 관찰했다.
이틀 관찰하는 거로 충분했다.
발작이 왔다.
정아 누나는 피눈물을 흘렸다. 이마에 핏줄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고 사지를 떨었다.
거품을 물었고 제 팔을 쥐어뜯으려 했다.
평소에 쓰는 거라고 손에 주방용 장갑을 꼈을 때는 왜 그러나 싶었는데.
그 장갑 덕분에 제 살을 제 손으로 쥐어뜯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비약 인간이지만, 정아 누나는 고통 감내 훈련에도 참여했다.
몸을 자르고 베는 훈련까진 못해도 통증을 주는 방법은 많으니까.
그런 사람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졸도한다. 거품을 물고 실금한다.
오줌을 지린 정아 누나를 보고 든 생각.
“알면서 왜 안 말렸어요? 왜 놔뒀어요?”
이중봉, 이 개새는 뭘 했냐는 거다.
물론 이해한다. 우리 엘사 김정아가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라는 거.
이전 보안 3팀 출신 넷 중에 아마 강단만 치자면 최고가 아닐까 싶다.
인정하는 바이다.
그래도.
“다 알았잖아요. 다른 방법 찾을 수 있었잖아요.”
복수를 위해 제 생명을 태우겠다면.
그 불길에 몸이 타지 않도록 도와줄 수는 있었다.
“내가 무슨 권리로?”
이중봉 씨는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저 걸었고, 그저 답했다.
“자신이 택한 길을 오롯이 걷겠다고 나서는 아이를 내가 무슨 권리로? 나도 그렇게 살았는데.”
난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맞다. 이중봉도 그리 살았던 사람이었다. 청기사를 죽이기 위해 제 삶을 불태운 사람이다.
말문이 막혔고 난 괜히 기분이 상했다.
“시발.”
움찔.
중봉이 형이 어깨가 떨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이름입니다. 기억하세요.”
난 돌아섰다.
“미친 새끼.”
중봉이 형의 읊조림이 들렸다.
대표한테 미친 새끼라니.
봐줬다.
예전, 불멸특수대 시절의 일을 나무랐고 중봉이 형은 그걸 인정했다.
그리고 지금 이중봉 씨는 인정함으로 새로운 길을 열었다.
이 일이 누굴 위한 일인지 알았으니, 이 양반은 작전상 어떤 오류를 용납하지 않을 생각일 거다.
내 눈에 그게 보였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필요한 게 사설 연구소라면 그걸 털어 준다.
만약 필요한 게 올드포스나 엑스큐라시 휘하 연구소라면.
문제없다.
난 범죄결벽증 따윈 없다.
필요하면 적당한 절도범으로 변신할 의향도 있었다.
“내 일이야.”
돌아가는 길, 정아 누나와 마주쳤다. 날 기다린 것처럼 보였다.
“지금 김정아 씨는 NS 소속이죠. 그럼 제 일도 되는 겁니다.”
내가 NS의 대표니까.
지나치고 돌아선다. 어떤 말도 더 들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런 내 뒤에서 정아 누나는 말했다.
“나 남자 만날 생각 없어. 그런 여유 없다. 넌 그냥 동생이야.”
삐끗.
진짜 멋있게 뒷모습 보이면서 걷는 중이었는데.
발을 헛디딜 뻔했다. 변신족의 피가 볼썽사나운 걸음이 되지 않게 만들긴 했지만, 정신적 충격은 꽤 컸다.
“뭐라고요?”
고개만 돌려 물으니.
“남자 관심 없다고.”
“그 말을 왜 하는데요?”
“나 좋아해서 그러는 거면 관둬. 나 애도 못 낳아.”
“아니야. 이 미친 양반아.”
빽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걸 가까스로 눌러 나직이 읊조렸다.
괜히 주변 사람 시선을 받을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런 날 보며 정아 누나가 웃었다.
이 양반 요새 웃음이 너무 헤퍼진 거 아닌가?
“너무 아파서 돌아 버린 건 아니죠?”
“아니다.”
“그럼 됐어요.”
다시 돌아서는 내 뒤로 또 정아 누나가 말했다.
“고마워.”
이제 시작이었다. 이 일의 결과가 어찌 끝날지는 몰랐다.
그런데 고맙다는 소리를 미리 들어버렸다.
뭐, 상관없었다.
불멸특수대 입사 이후, 난 김정아란 사람을 봤다.
나에게 이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자, 놀라운 사람이었다.
불멸자도 아니고 변신족 아니다.
초능도 없으며 주문도 쓰지 못한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묵묵히 제 몸을 굴리며 단련하는 것뿐.
총을 쏘는 것뿐.
비약을 들이켜 수명을 태워 싸우는 것뿐.
그러면서도 한 번도 무너지지 않는다.
난 이 사람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똑같은 상황에서 나라고 해서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모른다. 그 상황이 되어 봐야 아는 거지.
더 잘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슨 이유를 붙인다고 해도.
김정아의 삶이 엉망진창이라고 할 순 없는 거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기왕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그 보답까지 받았으면 한다.
프로메테우스를 죽이고 끝나는 삶이 아니라.
그 이후를 바라보는 삶.
그게 맞지 않나.
난 아주 오랜만에 날 구했던 등이 떠올랐다.
그 사람이 잠든 납골당도 떠올랐다.
시간 되면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가요.”
“이중봉 팀장 너무 괴롭히지 말고.”
“누가 누굴 괴롭혀요?”
그 양반 대표한테 미친 새끼라고 하고 막 그러는데?
웃는 정아 누나를 보고 나도 웃어 버렸다.
출정은 내일, 비약 구하기 미션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