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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311화 (311/488)

311. 면접관이 되어

‘불법 연구소’ 하면 뒷골목 세계와 잘 어울릴 것 같지만.

파고 들어가 보면 조금 다른 형태로 연구소가 자리 잡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암시장 정보통을 팽팽 돌려봤지만, 얻은 건 미약했다.

현재 NS의 가장 큰 단점은 정보력이었고.

난 그걸 어느 정도 메꿔 줄 인재를 이미 채 왔었다.

“잘 지내죠?”

특파라치 신주호다.

오랜만에 보는데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

“아우, 말이라고요. 대표님이 돌봐주신 덕분에 일가족 전부 자알 지냅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을 담은 말이다.

“좋네요.”

아닌 게 아니라, 특파라치는 정말 만족스러워 보였다.

“예전에는 일을 가리면서도 일주일 동안 옷도 못 갈아입었던 적이 부지기수였거든요. 아내가 그때마다 바가지를 얼마나 긁던지. 허허. 그런데 지금은 뭐,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필요한 순간에만 딱 필요한 만큼 하는 거, 대표님 덕분입니다. 덕분에 요즘 늦둥이가 생길까 봐 식겁합니다.”

활짝 웃으면서 주절주절 말도 잘한다.

이 아저씨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이런 일 저런 일 한다고 한동안 안 봤더니 이렇게 변해 있었다.

그렇다고 뱃살이 나왔다거나 단련을 하지 않은 몸은 아니다.

그건 안 되지.

난 사원 중 누구도 맞고 다니는 건 못 보거든.

훈련은 필수다.

덕분에 몸은 잘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일 좀 해 주세요.”

“네, 무슨 일이든지 시키시면 해야죠.”

사내에선, 내가 직접 일을 지시하면 보너스 폭탄을 받는다는 말이 나돌았다.

실제로 그랬다. 난 일을 직접 시키면 보너스를 꼬박꼬박 줬다.

회사원이 뭘 위해서 사나.

월급날 바라보고 살지 않나.

보너스는 월급의 연장선이다.

“국내에 있는 불법 연구소 리스트 좀 뽑아 보고 싶은데.”

“네.”

“일주일 정도 못 씻고 제대로 못 먹을지도 모르겠는데요.”

“괜찮습니다.”

일에는 대가를 준다. 그게 내 모토고, NS에 소속된 사람 전부가 아는 거다.

그러니 일주일 고생 따윈 감수하겠다는 거다.

불법 연구소가 끊이지 않고 생기는 이유, 놔두니까 그런다.

세계 정부 연합이든, 단군 그룹이든.

불법 연구소를 찾아도 일부러 놔둔다. 교도소에 수감된 미친 과학자를 놔주기도 한다.

놓아줄 때마다 그럴듯한 연극을 하긴 하지만, 이게 팩트였다.

실리적인 이유 덕분에 생긴 일이다.

불법 연구소를 놔두면 미친 짓도 많이 하지만, 연구에 매진하는 놈들도 많다.

그 방법 중엔 양지에서 쓰지 못할 것도 많고.

불법 소재를 사용하거나 인체 연구를 하기도 하지만, 그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기득권 단체는 단순한 방식으로 접근했다.

불법 연구소 일당이 적당히 연구 성과를 만들어 암시장에 풀기 직전에 후려쳐서 빼앗기로.

이렇게 보면 아버지가 다니는 직장도 참 양아치 집단이란 말이지.

연구소를 치는 명분이야, 만들기 나름이었다.

이미 올드포스와 엑스큐라시는 긴 시간 동안 명분을 만들어 왔으니까.

불법 연구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이미 수없이 말해 오지 않았나.

명분을 내세우는 건 정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정부와 단군은 이런 이유로 불법 연구소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나에게 리스트를 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알맹이는 쏙 빠져 있을 확률이 높다.

단군 그룹, 정확히는 긍낙이 삼촌한테도 요청했고, 같은 방식으로 오리라 생각한다.

누가 일 년 농사를 지었는데 수확물을 다 달라고 한다면 주겠나?

안 줄 거다. 다 줄 것 같았으면 아예 공식적으로 대통령한테 요청했지.

이게 오히려 상대를 더 곤란하게 하는 일이 될 것이기에, 아버지를 통한 거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건 아니었다.

“고생 좀 해 주세요.”

특파라치란 별명.

가진바 무력은 보잘것없지만, 저 별명을 갖고 특수종 세계를 살았던 사람이 있다.

그 능력의 출중함은 말할 것도 없다.

“네.”

난 실제로 저 사람이 훌륭한 능력자라 믿는다.

“믿어요.”

그 말에 신주호가 발을 멈췄다. 나가려다 말고 날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 눈에 신념의 불꽃이 타올랐다.

“……실적이 없어도 보너스는 준다는 말 하려고 했는데.”

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뒤에 있던 아재 비서가 말했다.

“말을 전할까요?”

“놔두세요. 열심히 하겠네. 목숨 위험하지 않게 귀태 형 붙여 주고요.”

“우미호 씨 옆에서 떠나려고 하질 않아서요.”

“말 안 들으면 한 명은 제주도로, 한 명은 강원도로 보내 버리겠다고 전해 주실래요?”

견우와 직녀, 그것도 마음도 없는 직녀를 둔 견우 꼴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을 들을 거다.

“네.”

일 참 많네.

몰아 둔 일을 한 번에 처리하니 이렇게 된다.

난 사무실 업무를 대강 정리한 뒤에 일어났다.

이쪽 업무는 오전 시간만 투자하면 충분했다.

여기저기 손을 써서 정보를 취합하는 일이니까.

점심은 대강 먹었다.

단짠단짠 양념한 소불고기 15인분과 백진미 쌀로 갓 지은 밥 15공기로 소식했다.

그 뒤 오후 업무로 넘어갔다.

“대형 경력자가 오는데 어떻게 할까요? 곧바로 데려옵니까?”

스티븐 최가 걸으며 물었다.

아재 비서는 뒤쪽, 옆에는 스티븐 최가 붙었다.

면접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장난해? 회사가 장난이야? 인맥으로 아무나 막 꽂고 그런 곳이야? 여기가 그런 곳이었어?”

친구지만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해 줘야 한다. 난 스티븐 최를 호되게 나무랐다.

스티븐 최는 슬쩍 옆으로 고개를 꺾고 입 모양으로만 뭐라 뭐라 말했다.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반쯤 보인 입 모양으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보다 선명하고 예민해진 감각이 입술 모양 일부를 읽고, 그걸 말로 치환해 이해하게 했다.

“미친 새끼가, 지 아는 사람이라고 정기남이고 우미호고 꽂을 때는 언제고. 한정직은 뭐, 면접 보고 들어왔냐?”

난 필요할 때마다 말을 바꿀 수 있는 남자다.

그리고 아량도 넓고.

“정직이는 특채고,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

아량이 넓기에 조금 전 발언을 짚고만 넘어갔다.

스티븐 최의 동공이 흔들렸다.

들을까 봐 속삭이지도 않았는데 내가 다 알아 버리니 식겁한 표정이다.

“독심술 아니고.”

“아니야?”

얼마나 당황했는지 반말이다.

이 친구, 나한테 끝내 말 안 놓던데.

“응. 나 초능 특수종 아니다.”

“그렇군요. 네. 그렇죠. 그게 맞죠. 네가 다 맞아요. 세최특 최고네.”

스티븐 최는 몹시 놀란 얼굴로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그렇게 도착한 면접장이다.

팬더 형과 정아 누나가 와 있었다.

“너도 참 악취미다.”

그런 날 보고 팬더 형이 말했다.

“전 따로 취미가 없는데요.”

“말을 말자.”

“내 일은 내가 해도 돼.”

정아 누나는 아직도 그 소리다.

“네, 회사 일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가만히 계시면 된다는 거고.”

“내 일…….”

“혼자서 프로메테우스한테 다이브해서 머리 깨져 죽는 게 목표였어요?”

쓴소리다.

“야, 인마.”

팬더 형이 옆에서 옆구리를 툭 쳤다.

말이 너무 독했을까. 하지만 이 정도는 해야 말을 듣는다.

“아니.”

“같이 프로메테우스 죽이기 하기로 했으면 같이 하자고요.”

“알았다.”

정아 누나가 얌전해졌다.

이거 원, 사나운 호랑이 달래기보다 힘든 일이다.

이후 시답잖은 말을 몇 마디 나눴다.

“면접을 꼭 봐야겠냐?”

팬더 형이 묻기에, 난 스티븐 최한테 한 말을 되풀이했다.

“회사가 장난입니까? 인맥으로 아무나 막 꽂고 그런 곳입니까?”

“지가 오라고 했으면서.”

팬더 형이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난 무시했다.

팔짱을 낀 채로 기다리다가 인사팀에서 보내온 면접 자료를 훑었다.

그걸 훑는 사이다.

밖에서 대기하던 인사팀 직원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발소리가 하나 더.

더없이 익숙한 발소리기에 누군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안 죽고 잘 살아났네.

뒈지지 말라고 내가 그리 용을 썼으니, 이래야 맞지.

“동훈이 형, 정아 누나.”

난 좌우에 있던 둘을 불렀다.

스티븐 최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내 목소리에 반응했다.

툭툭 발걸음 소리가 문밖에서 들린다.

불멸자의 청각이 소리를 통해 거리를 잡아챘다.

보이지 않아도 보는 것만큼 선명하다.

다섯 걸음 뒤, 문이 열린다.

“한국 최초의 자동차 이름이 뭔 줄 알아요?”

툭, 세 걸음.

“뭐?”

팬더 형이 답하고.

두 걸음.

“……?”

정아 누나가 고개를 갸웃하고.

한 걸음.

“무슨 헛소립니까?”

스티븐 최는 이 미친 새끼는 왜 이럴까 하는 눈빛을 보내는 사이.

똑똑.

“들어갑니다.”

인사팀 직원이 문을 열었다.

난 입안을 감돌던 말을 끄집어냈다.

오해가 없게끔 되도록 찰진 발음으로.

“시발.”

들어온 대형 경력자와 눈이 마주쳤다.

움찔.

이중봉 팀장의 발이 멈췄다. 들어오다 말고 들은 거다.

아무래도 함께한 면접관 셋이 제대로 못 들은 듯하여 다시 말했다.

“시발.”

“……너 이거 하려고.”

팬더 형이 중얼거린다.

“넌 내가 아는 특수종 중에 최고야.”

정아 누나가 말했다.

최고로 유식하다는 건가?

한국 최초의 자동차가 바로 시발 자동차다.

난 유식하다.

스티븐 최는 한 번 깨졌다가 간신히 이어 붙여 둔 멘탈을 천국으로 이송시켰다.

“미친 새끼.”

그는 욕설을 뱉었다.

“그 말 하고 싶어서 어제 잠도 못 잔 거 아니냐?”

태연한 음성, 이중봉의 목소리다.

음?

이중봉 팀장은 담담했다. 묵묵히 걸어오더니 의자에 앉았다.

내가 예상한 반응이 아닌데.

그리고 이게 기대돼서 잠 못 잔 거 어떻게 알았지.

“욕 아닌데, 전 사람 얼굴에 대뜸 욕부터 박는 미친 새끼가 아닙니다. 지금 막 한국 최초의 자동차 이름을 주제로 토론 중이었거든요.”

“퍽이나.”

팬더 형이 말하고.

“그래. 네가 최고다. 유광익.”

정아 누나가 곁들였다.

“그랬다고 치자.”

이중봉 팀장은 담담하다. 그걸 보는 나는 결심했다.

이대로 넘어가지 않기로.

“한국 최초의 자동차 이름 아세요?”

“시발이라며.”

“네, 시발입니다. 시발.”

“그래. 알았다.”

“좋아요. 면접을 시작하죠.”

좋다. 이 정도는 안 먹힌다는 거지.

“이력이 화려하신데 NS를 굳이 고른 이유가 있습니까? 탄탄한 불멸특수대 화림을 그만두고요?”

“야, 너 왜 그냐?”

팬더 형이 고개를 숙인 채 옆으로 돌려서 말했다.

“할 말 있으면 고개 들고 하세요. 이동훈 팀장.”

내가 이 회사 대표다.

“아이고.”

팬더 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놔두세요. 늦었어요. 이미 돌았어요.”

정아 누나가 말한다.

이중봉 씨는 표정을 잘 감췄다. 포커페이스가 훌륭하다.

“이유가 필요할까?”

“네 필요한데요.”

“굳이?”

“굳이.”

삐긋.

미묘하게 이중봉 씨의 말투에 감정이 섞이기 시작했다.

“음. NS를 택한 이유라.”

말하며 중봉 씨가 날 바라봤다.

뭐, 왜 날 보는데.

“가끔 난 이 새끼가 세최특이 아니라 세최또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동의해요.”

팬더 형과 정아 누나의 대화다. 면접관 둘이 업무 태만이다.

일하라고 앉혀 놨더니 대표 앞담화를 까는 중이다.

지그시 바라보는 중봉 씨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이곳에 있던 누구 때문에.”

……음.

이 양반 왜 진지하냐.

반쯤 장난으로 시작한 건데, 대뜸 저리 진지하게 말하고 그러냐고.

그래, 안다. 나 때문이지 뭐.

장난은 관둬야겠다.

“네, 그럼 뭐…….”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중봉 씨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억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우리 기남이랑 미호가 여기 있다고 들었거든. 그 둘을 보고 왔지.”

시발.

“탈락.”

반사적으로 말하니.

“니가 불렀잖아. 새꺄.”

이중봉 씨가 본색을 드러냈다.

“내가 언제!”

“은혜 갚으라며!”

“누가 입사해서 갚으래!”

“오냐, 오랜만에 한판 뜨자.”

“하, 부상은 회복하셨고? 아픈 사람 때렸다는 소리 듣고 싶진 않은데, 책상 치우세요. 기물 아끼게.”

난 말하고 책상을 뛰어넘었다.

“지가 불러 놓고 왜 지랄인데.”

뒤에서 팬더 형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고.

넥타이까지 차고 온 팀장은 거칠게 셔츠 단추를 풀고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자세를 잡았다.

나도 파이팅 포즈를 취하자.

풉.

웃음소리가 들렸다.

안 어울리게 무슨 웃음소리인가.

묘한 타이밍이었다. 분위기를 적절하게 흔들고 깨는 그런 타이밍.

뒤를 돌아봤다.

정아 누나가 보였다.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눈꼬리도 휜다.

입도 웃고, 눈도 웃는다. 가벼운 미소가 아니다.

진짜 웃음이다. 정아 누나가 웃었다.

저 사람이 저렇게도 웃을 줄 알았던가.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다.

나만 놀란 게 아니었는지.

“오랜만이다. 정아야. 웃는 것도 오랜만이고.”

올랐던 스팀이 식은 중봉 씨가 말하고.

“둘이 너무 잘 어울려요.”

정아 누나가 말했다.

“아니야!”

그리고 이중봉 씨와 난 동시에 외쳤다.

이구동성이다.

불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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