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너 유광익 아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난 비약이 무엇인지부터 알고자 했다.
내 주변엔 이런 문제에 빠삭한 전문가가 있지 않나.
“무슨 일이니?”
혜민의 모친, 스펠 크리에이터로서 정점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꽤 뛰어난 마법사인 김주희 여사 되시겠다.
바쁜 와중에도 내 호출을 받고 금세 사무실까지 왔다.
“비약 만들 줄 아시죠?”
그 말에 김주희 여사께서 눈웃음을 보였다.
어떤 순간에도 평정심이 쉬이 깨지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일전에 우지호 주문 해제할 때 눈으로 본 걸 말했다고 상당히 놀랐었지.
“왜 묻는지 먼저 물어도 될까?”
차분한 물음이었다.
난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비약 중독, 중독으로 인한 폐해.
그걸 해결하려 한다고.
“그럼 비약 연구자만 족치면 될 것 같은데?”
“비약의 원류를 알아야겠어요.”
어떤 문제가 됐든 문제를 제대로 읽고 파악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다. 비약 그 자체를 알아야겠다는 거지.
박사는 연구소를 털어 달라고 했지만, 난 마법 연맹부터 탈탈 털어 볼 생각이었다.
마법 연맹은 각자 역사가 있다.
그중 비약에 심취한 이들도 있을 거다.
“그럼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은데.”
“네?”
“비약은 마법사의 전유물이 아니야.”
아니야? 비약, 딱 봐도 마법사가 만든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 실제로 지금 시중에 떠도는 비약 중엔 주문이 담긴 물건도 있고. 하지만 원류는 마법이 아니라 과학이거든.”
특수종 전쟁 당시, 일반 인류는 특수종을 상대할 무력이 필요했다.
기척 없이 암살하고.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고.
염력을 부리며.
수틀리면 변신해서 들이받는 변신족을 상대해야 했기에.
그 과정에서, 일반 인류는 두 개의 혁신적인 물건을 개발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 두 가지 물건 전부 특수종 세계에 잘 녹아들었지만, 시작은 그랬다.
첫 번째 혁신은 광학병기를 필두로 한 과학 병기다.
레일건, 결빙탄, 열염탄 등의 프로토타입도 이때 만든 거다.
그리고 하나 더.
신체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 줄 마법이 있었다. 극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다를 바 없다고 했던가.
아더 사이드에서 얻은 소재는 새로운 화학식을 만들어 내기 충분했다.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 만들어 낸 두 번째 병기가 곧 비약이었다.
“그러니 원류를 찾으려면 마법이 아니겠지.”
“그래도 아는 건 많죠?”
“조금 있긴 하지.”
들었다. 경청했다. 듣고 이해했다.
비약의 원리를 말하는 건 아니었다.
혜민의 모친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길 안내를 해 준 셈이다.
마법사를 족쳐서 될 일이 아니었다.
머리가 돌아가며 몇 가지 결론을 내린다. 자연히 할 일이 정해졌다.
오르지 못할 나무를 만들기로 작정했는데.
누가 때리지도 않았는데 혼자 애쓰다 죽는 사람을 만들 순 없었다.
특히나 그게 김정아라면 죽게 놔두고 싶지도 않고.
“그럼 난 간다.”
“네.”
“일하는 모습 처음 보는데, 보기 좋네.”
혜민의 모친이 사무실에서 나갔다.
나도 필요하면 출근하고 업무를 본다.
내가 이 회사 대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 보이지 않나 보다.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다고 하디?”
팬더 형은 핀잔을 던졌고.
“정말 미쳤다고 해도 난 널 위해 목숨 한 번 걸 거야.”
“안 미쳤고, 목숨 걸지 말라고.”
우미호는 이틀에 한 번꼴로 날 찾아와 목숨 다짐을 던진다.
그 모습이, 어쩐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이런 놈을 위해 목숨 거는 건 싫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아니, 네 목숨 말고 내 목숨 건다.”
미친 귀태 형은 아직도 우미호를 졸졸 쫓아다녔다.
뭐, 그래도 전보다는 나아졌다.
“됐어.”
이제는 대꾸도 해 주지 않나.
장족의 발전이다.
그 대꾸에 기뻐서, 귀태 형은 볼이 발그레해졌다.
꼴 보기 싫었다.
“나가, 꺼져, 일해.”
그 외 다른 사람은 별다른 반응 없이 넘어갔으나.
쾅!
이 새끼는 아니었다.
대표이사실을 박차고 들어온 미친 개나리다.
“넌 누구냐? 내 감각을 속여? 유광익은 어디 있지?”
정기남 새끼가 쫓아와서 이 지랄을 떨었다.
“형태변환자?”
놈이 날 주시하며 눈을 부라렸다.
난 주섬주섬 손을 뻗었다. 묵직한 만년필이 잡혔다. 던졌다.
팽.
그동안 놀지는 않았는지, 정기남 새끼가 핸드 불릿 못지않은 만년필 투척을 몸을 틀어 피했다.
팍!
놈이 피한 만년필이 벽에 반쯤 박혔다.
“이 솜씨를 따라 하긴 힘들 텐데.”
기남이 새끼가 만년필과 날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명중률과 힘, 불멸자와 변신족의 재능을 두루 갖춘 만년필 투척이었다.
“좀 꺼져라.”
정기남은 끝까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다가 나갔다.
“……난 가끔 특수종 세상이 이해가 안 간다.”
업무 때문에 같이 있던 중고 형이 말했다.
“쟤가 이상한 겁니다. 저처럼 평범한 특수종도 있어요.”
“너 누구냐? 유광익은 어디 있지?”
중고 형이 콧잔등을 찌푸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염병. 어릴 때 연장자를 두들겨 패는 건 안 된다고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쯤 중고 형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튕겨 버렸을 거다.
그럼 저 못생긴 코가 보기 좋게 부러졌을 텐데.
“농담, 농담, 표정 무섭다. 그래서 말한 대로 대강 조사는 했는데 이게, 알잖아? 우리 정보력으로는 한계가 명확해.”
“알아요.”
난 답하고 눈을 감으며 박병준 박사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 * *
박병준 박사는 말했다.
“몸이 많이 망가져서 애를 낳기는 글렀어. 여자로서 기능이 상당히 망가졌다는 소리일세. 오감에도 이상이 있었을 텐데, 용케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고 있어. 놀라운 자제력이야. 사실 감각 상실이나 여성의 기능도 문제지만, 더 큰 건 통증일 걸세. 고통 정도를 내가 감히 뭐라 말할 수 없겠지만, 매일 밤 전신을 바늘로 쑤시는 그런 격통의 밤을 한 달에 몇 번은 보냈을 거야.”
“전혀 몰랐네요.”
겉으로 그런 티를 내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서 답답한 인간인 거고.
“비약을 건네는 사람은 알았을 걸세. 처음부터 비약의 종류를 최대한 몸에 피해가 덜 가는 쪽으로 짰어. 건넨 쪽이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면, 꽤 공부했겠지.”
이후 박사는 한마디를 더 보탰고.
나한테는 박사의 마지막 말이 제일 중요했다.
“비약 제조법, 예전에 내가 연구하던 걸 포함해서 몇 개 피스가 더 모이면 될 것 같은데.”
난 알겠다고 답했다.
필요하면 구하면 되는 거다.
“근데 그 김정아 양이 이거 다 말하면 날 쑤실 것처럼 굴었는데, 괜찮겠지?”
우리 세심한 박사께서는 후환을 걱정했다.
난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해 줬다. 정아 누나가 죄 없는 사람 목매달고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한 대 칠 수는 있지만, 끽해야 뼈다귀 조금 부러지고 말 거라고.
박사는 그 말에 몹시 불안한 눈빛을 보냈었다.
* * *
난 눈을 뜨며 물었다.
“정부 라인을 볶는 게 빠를 거라는 거죠?”
“쉽진 않을 거야.”
어렵지도 않을 것 같긴 한데.
인맥은 쓰라고 있는 거다.
“일단 범죄 조직부터 뒤집죠.”
정부도 정부지만, 음지의 정보가 먼저다.
서울이야, 이미 꽉 잡고 있다. 암시장을 차지하면서 특수종 세계의 뒷골목을 지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일로 정부나 단군 그룹에서나 한마디 할 법도 한데, 다들 입을 다물었다.
협회도, 순혈 정가도, 순혈 무명가도.
힘깨나 쓴다는 이들이 즐비한데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대통령이 언질을 주긴 했다.
“지금 자네가 하는 일을 누가 막겠다고. 안 막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게나. 미국으로 가지만 말고.”
마지막 말은 흘리며 말했다.
들으라고 했으면서 말 안 한 척은.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갈 생각 없다.
굳이 갈 필요가 없다.
필요한 게 한국에 더 많기도 하고.
난 부산 큰손에게 연락했다.
전화번호 알아내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중고 형 인맥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물론 난 경찰청 인맥을 썼다.
곧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잘 지내죠?”
전화를 받은 상대가 답이 없다. 숨소리만 들렸다.
“큰 손 씨?”
“맞습니까? 세최특?”
“네.”
“보이스 카피 아니고?”
“아니고.”
“형태변환자 아니고?”
“아니고.”
의심 많은 양반이네.
날 흉내 내 당신한테 전화해서 뭐 하게.
“필요하면 직접 갈 수도 있고요. 부산에 좋은 추억이 많거든요. 추억 소환하게 비슷한 방식으로 갈까요?”
“아니요. 오지 마십시오.”
큰 손이 날 거절했다. 마음 상하네.
뭐, 보고 싶다고 해도 딱히 갈 마음은 없지만, 사람 마음이란 건 이런 게 아니지 않나.
“아는 한도 내에서 불법 연구소 위치 좀 줘요.”
“……그 말은 지금 저한테 칼 물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라는 말과 같다는 거 아십니까?”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어차피 죽을 텐데, 칼은 왜 물까.
“괜찮을 겁니다. 보장할게요.”
짧은 침묵이 흐른다. 그 뒤, 큰 손은 답했다.
“좋습니다. 대신 부산 조직에는 손 안 대시는 겁니다.”
네, 그럽시다. 댈 생각도 없다.
이 사람은 바보다. 멍청이다. 머저리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소위 말하는 협객 놀이를 즐긴다.
조직을 운영하면서 마약 근절에 힘쓰는 또라이가 있다면 믿겠나.
큰 손은 믿지 않겠지만, 난 이 양반한테 호감이 있었다.
“새끼손가락 걸어 드릴까요?”
“말이면 됩니다. 녹음 중이거든요.”
“지금처럼 지내시면, 네, 그러죠. 물론 절 먼저 치면 이 약속은 물거품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누가 누굴 칩니까?”
큰 손은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전했다.
급히 부산에 직원을 파견 보내야 했다.
할 일 없는 사람이야 사내에 많았다.
“요한이 형 보내요. 사람 보는 눈도 있고 정보 분류하는 눈도 있으니까, 허탕은 안 치겠지. 간 김에 정보 진위도 좀 가리고. 겸사겸사 조사도 좀 하라고 하고.”
“그러지.”
중고 형이 곧 아재 비서한테 내 말을 전하고 도로 들어왔다.
난 그사이 정부 인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난 지도를 만드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국내에 있는 불법 연구소가 표기된 지도를.
이유? 있다.
외국까지 나가서 다 털어먹고 싶었지만.
박병준 박사는 자기가 이전에 연구하던 자료는 아직 국내에 있을 거로 추측했다.
애초에 박사의 연구는 개인의 능력 신장을 위한 커스터마이징 비약 개발이었다.
그 미친 과학자 집단에서도 이 연구는 차마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누가 봐도 돈이 더럽게 안 되는 연구니까.
그래도 그동안 투자한 것도 있고 선행 연구를 통해 다른 게 나올 수도 있으니, 보유하고 있긴 할 거라는 거고.
그중 일부가 암시장 금고에 박혀 있었던 거다.
연구를 다시 본 박사는 당시에 깨닫지 못했던 걸 깨달았고, 현재 새로운 비약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양반도 변신족 실험체를 성공시킨 연구팀의 일원이다.
자세히 들어 보니 그 연구에서도 핵심 인력이었고.
하긴, 핵심 인력쯤 됐으니 마리 데리고 튈 기회를 잡은 거겠지만.
이쪽도 재능만 치자면 꽤 뛰어난 사람인 거다.
생각 와중에 정부 인맥이 전화를 받았다.
난 코 한쪽을 손가락으로 막으며 입을 열었다.
“아빵, 광익이가아아 진짜 지이인짜아아 부탁이 있어서요오오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아들의 애교에 약했다.
“하지 마라. 귀 썩는다.”
애교 따위를 부리면, 듣기 싫어서 곧바로 어떤 말이든 들어주곤 하셨다.
“너 진짜 광익이 아니지?”
옆에서 중고 형이 속삭였다.
난 무시한 채, 평소의 말투로 돌아왔다.
“정부에서 가진 정보 좀 넘겨주세요.”
“아들.”
“네.”
“아빠는 공사가 분명한 사람이야. 무엇보다 아들 뒤치다꺼리나 하는 사람도 아니고.”
차갑다. 말투가 얼음으로 만든 칼날 같다.
안 되나.
애교로 가능한 게 아니었다.
하긴,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난 방법을 바꿨다. 애교가 안 통한다면, 다른 무기를 꺼낼 수밖에.
“피닉스 팀장, 유연호 씨. 의뢰 하나 합시다.”
“……쓰읍.”
아버지가 숨을 고르는 게 들렸다.
쉬지 않고 난 입을 열었다.
“착수금 오천, 성공 보수 일억.”
“……허.”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필요한 건 정부가 가진 불법 연구소 리스트와 소재지요.”
수화기 너머에서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난 아버지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NS 대표 유광익 씨.”
“네.”
“난 정부의 녹을 먹는 사람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실패인가.
그럼 정말 최후의 수단을 꺼내야 한다.
엄마한테 부탁해서 아버지를 설득하는 거다.
이건 일단 엄마부터 설득해야 하는데, 거기서부터 막힐 확률이 높다.
그리 생각하는 중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러니까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합시다.”
네? 아버지? 공사 구분이 분명한 피닉스 팀장 아버지?
“내 계좌번호는…….”
아버지가 유유히 계좌를 불렀고, 난 전화를 끊었다.
“중고 형.”
“음, 응?”
“그거 아세요?”
“뭘?”
“우리 아버지는 비밀이 많은 분이셨어요.”
“뭐?”
“그렇다고요.”
“너 유광익 아니지?”
“아 씨, 맞다고 그거 그만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