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 김정아
이 개새끼가.
짜증이 확 솟구쳐 올라왔다.
스위퍼, 현상금 사냥과 주문 사냥을 겸하는 연맹의 이름이다.
맹주는 지금 진심으로 화가 났다.
‘그걸 통째로 넘겨?’
홍콩, 방콕, 상하이, 서울. 이렇게 네 도시는 암시장의 허브 노릇을 하는 곳이다.
특히 일본 쪽에서 나오는 물건의 태반은 한국을 통해 들어온다.
그런데 그 암시장을 홀라당 넘겨?
그렇게 중요한 곳이기에 눈치가 빠르고 수완이 좋은 놈을 붙여 둔 거다.
어지간한 일이 터져도 제 몸은 건사할 놈이니까.
그런데 정말 제 몸만 건사했다.
전부 넘기고 튀었다. 잠적했다.
당연히 쫓을 것이다. 쫓아서 갈가리 찢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급한 문제가 있었다.
맹주는 서울 암시장 금고에 중요한 물건을 뒀다.
그걸 그대로 세최특의 손에 들어가게 둘 수는 없다.
‘물론 뭔지도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실력 좋은 마법사도 알아보지 못할 물건이다.
그러니 아직은 괜찮을 것이다.
정체를 모르는 물건이기에 쉬이 손대지 않을 것이다.
그냥 창고에 보관할지도 모른다.
물건을 알아보는 마법사가 있어도 괜찮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어 엔지니어가 붙지 않는다면 쓰지 못할 물건이니까.
‘시간은 있어. 도로 찾아오면 돼.’
어떻게?
NS를 후려쳐서?
도망간 퍽킹 로버트는 마지막 의리를 지켰다.
보고는 하고 튀었다.
덕분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았다.
NS 소속 전투 요원은 하나같이 괴물 새끼다.
무엇보다 세최특은 괴물 오브 더 괴물이다.
스위퍼에도 그런 괴물이 몇 있지만, 확신이 안 서는 게 문제였다.
그 세최특을 상대로 승리를 확신할 수 있나?
상대하기 어렵다면 피하면 될 일이다.
물건만 몰래 빼 오면 될 일인데.
불멸교 암살자도 덤비는 족족 피떡이 돼서 날아가는 판이다.
그보다 나은 방법이라면 주문을 통해 잠입하는 건데.
‘세최특은 주문길도 본다.’
세최특의 무력을 제일 잘 아는 사람 중 하나가 스위퍼의 맹주다.
강혜민 납치 사건 당시, 톡톡히 당했으니까.
어찌할까.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면 된다.
이제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그는 얼마 전에 핫라인을 통해 들어온 연락에 답을 보냈다.
프로메테우스의 크로커다일이란 놈이 보낸 연락이다.
세최특을 이대로 두고 보겠냐는 물음이었다.
고로, 그냥 두지 않겠다는 말이기에.
그는 동의했다.
세최특 하나 때문에 특수종 세계의 질서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 * *
“그렇게 선명하게 보이는 건 처음 봤어. 마법사 중에서도 어지간히 눈이 뜨이지 않고서는 그렇게 못 보거든.”
혜민이 말했다.
그게 그런 건가.
우지호를 고칠 때 보이길래 말했더니, 그게 참 대단한 거라고 한다.
난 잘 모르겠다.
그저 보이기에 말했을 뿐이다.
“안 되겠다. 유광익. 너 나랑 결혼하자.”
“오늘은 기남이랑 안 노냐.”
“아, 왜 자꾸 그 정기남이랑 나 붙이냐고. 얼굴 내 타입 아니라고.”
가끔 난 혜민이의 안목이 대단히 높다고 생각하긴 한다.
정기남보다 내 얼굴이 낫다는 거 아닌가.
“난 좀 너무 잘생긴 것보다 적당히 생긴 게 좋다고. 약간 얼빵해 보이는 게 내 이상형인데, 정기남은 너무 잘생겼어.”
딱.
나도 모르게 또 손이 나갔다. 혜민이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감정이 조금 실려서 꽤 힘이 들어간 탓에.
“억!”
맞은 혜민이 뒤로 몇 발자국 밀렸다. 곧 이마가 빨갛게 부은 게 보였다.
“가정 폭력이야, 이거.”
“여기에 가정이 어디 있다는 거냐.”
김주희 여사께서 어릴 때 혜민이에게 약을 잘못 먹였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얘는 진짜 정상이 아니다.
특히나 안목이 확실히 비정상이다.
내가 정기남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다고.
“가, 바쁘다.”
강푸름이 날 불렀다. 그동안 뭘 했는지, 얼굴 한 번 안 비추고 작업실에만 처박힌 친구다.
돈을 펑펑 써 대면서 뭘 만들었나 궁금한 타이밍이기도 했다.
“아씨, 왜 자꾸 때리고 그러냐고.”
왜 맞는지 모르는 게 너의 죄다.
얼빵한 사람이 이상형인데 왜 날 쫓아다녀.
“하여간 넌 내 이상형이야. 언젠간 갖고 말겠어.”
혜민이 말하며 뒤로 쌩하고 도망갔다.
이상형이란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간 걸 본 탓이다.
저건 진짜 누가 데리고 살지, 데리고 살 놈의 앞날이 캄캄하다.
돌아서는데 갑자기 눈앞에 캄캄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 늦어?”
불멸자의 감각으로 이미 다가오는 건 알았다.
그렇다고 이리 코앞에 뭘 들이대고 있을 건 뭐냐.
강푸름이다.
웬 네모난 철판 같은 걸 들고 내 앞에 들이밀고 하는 말이었다.
“너 5분 전에 불렀다.”
난 곧바로 오는 길이고.
가끔 보면 한쪽에 재능이 치우친 놈들은 미친놈들이 많다.
얘도 다른 때는 정상인데.
작업에만 돌입하면 이십 분씩 끊어서 눈을 붙이며 일한다고 한다.
철판을 손으로 툭 밀어냈다.
“뭔데?”
“어떠냐?”
이 새끼도 진짜 사회성이 개판이네.
뭐가 어떠냐는 건지, 주어가 빠졌다. 외모로 로또 터트린 새끼야.
“이거 어떠냐고.”
푸름이 철판을 들이밀었다.
난 철판을 건네받았다. 손으로 툭툭 두드려 봤다.
“단단하네.”
“……그게 끝이야?”
강푸름의 눈가가 축 처졌다. 정기남이 도시의 차가운 남자라면 강푸름은 부드러운 선을 가진 극호감형 미남이었다.
그런 놈이 이런 표정을 지으니, 내가 무슨 죽을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나가던 직원 하나가 힐끗 보더니, 동료와 속삭이는 게 들렸다.
“푸름 팀장님 갈구나 본데요.”
“쉿, 대표님 조심해. 친해지면 사람을 들들 볶는다고 하더라. 그 사람 알지? 그 미친 외모 있잖아. 아침마다 두들겨 팬다고 하던데?”
미친 외모는 정기남이 분명한데.
아침마다 두들겨 팬다니, 오해가 심하다.
그 새끼가 먼저 덤빈단 말이다.
그냥 넘겼다.
안 들리게 하겠다고 속삭이는 걸 다 들었다고 쫓아가서 따질 순 없지 않나.
어쨌든 뭐든 회사 복도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팀장님! 그거 들고 나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아니, 갑자기 어디로 뛰어가요?”
다행히도 강푸름 작업실의 보조 연구원이 몰려나왔다.
다들 반쯤 사색이 된 채로 냅다 달려온다.
“자랑하려고.”
강푸름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니까, 그걸 왜 갖고 나가셔서 그러냐고요.”
연구원이 울상을 지은 채, 날 힐끗 보더니, 고개를 숙인다.
“대표님.”
“들어갑시다.”
내가 말했다.
곧 난 강푸름 연구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래서 이 철판이 뭔가.
대단히 중요한 물건인 건 틀림없었다.
장난삼아 공중으로 던졌다가 받으니.
“어어.”
“저, 저, 그러지 마십쇼.”
“대표님, 대표님, 안 돼요.”
다들 이리 놀라는 걸 보니 확실했다.
“뭔데요?”
“아다만티움 합금이야.”
강푸름이 말했다.
그게 대단한 건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옆에서 다른 직원이 가슴을 두드리며 나섰다.
“그렇게 설명하면 안 되죠. 그 철판은 아직 불안정합니다. 아다만티움 합금은 본래 불안정해서 의미가 없었거든요?”
연구원 설명도 꽤 난해한 편이었지만.
대강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옆에서 사회성 좋은 연구원 하나가 부연 설명을 적절히 섞었다.
그러니까 요는 이거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합금을 개발한 곳은 미국의 그리핀 사(社)다.
그곳에서 개발한 그리핀 섬유, 그리핀 합금은 명실공히 현 특수종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금속이자, 섬유다.
실제로 나도 예전에 미국 블루 트윈스였나. 블루 뭐시기 용병에게 코트를 선물 받은 적이 있으니까.
그게 마리를 구할 때였나.
한동안 잘 썼었다.
헥사곤 필드까지 담긴 스펠 기어였으니까.
태워 먹어서 아쉽기도 했고.
그 그리핀 사의 합금 기술은 기밀 중의 기밀이다.
코X콜라 제조법과 KXC 양념보다 더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백악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엑스큐라시의 한 축을 차지한 회사이기도 하고.
“그 그리핀 섬유가 바로 아다만티움을 2%로 섞은 합금이거든요.”
연구원이 말을 잇는다.
“이번에 팀장님이 개발한 이 철판을, 그러니까 실타래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건 불안정하기에 쉽게 풀립니다.”
말이 쉽게 풀리는 거지, 특수한 약물과 시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시설을 들이는 데 회사가 휘청할 정도로 돈이 들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중고 형이 한동안 불평을 내뱉었다.
연구팀에서 돈을 너무 막 쓴다고.
그 결과가 이거였다.
“아다만티움 20%가 섞인 섬유입니다. 무게 이슈가 있었는데 케블라 대신에 아더사이드의 거미꽃의 줄기를 엮어서 쓰면…… 네, 될 겁니다.”
그 팀장에 그 팀원이다.
설명 잘하다가 주어를 빼먹고 뭐가 된다는 건지를 말하지 않았다.
빤히 바라보니, 연구원은 곧 제 실수를 깨닫고 재차 말했다.
“그리핀 섬유보다 최소 열 배는 단단한 방어 슈트요.”
갸우뚱.
난 고개를 옆으로 꺾은 뒤 생각했다.
자, 불멸특수대의 방검방탄복은 최고 수준이다.
그리되는 이유는 하나다.
엑스큐라시와 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리핀 사의 섬유를 공급받아 올드 포스가 직접 제조하는 물건이거든 그게.
불멸특수대의 방검방탄복은 단단하다. 총탄과 칼을 다 막는 거니까.
코앞에서 5.56mm 나토탄을 소총으로 갈겨도 관통되지 않는다.
그런 것보다 열 배 단단한 슈트.
“안 무겁고?”
“안 무겁고.”
“생산 비용은?”
“연구 시설을 새로 짓긴 해야 하지만, 안정화되면 그리핀만큼 양산할 수 있습니다.”
이제야 나도 놀랄 준비가 되었다.
“아씨.”
“나 잘했지?”
강푸름이 물었다. 이게 잘한 정도냐?
이 미친 새끼.
툭하고 강푸름의 어깨를 쳤다. 기쁨이 담긴 손짓이다.
푸름이 웃었다. 웃는 얼굴을 보던 연구원 중 하나가 얼굴을 붉혔다.
이봐요. 너 남자야. 남자 얼굴 보고 왜 그러냐.
물론 그 옆에 있던 여자 연구원 둘은 이미 눈에 하트를 그리는 중이었다.
“좋아. 난 간다.”
강푸름은 나한테 말을 듣자마자 몸을 돌리더니 척척 걸어갔다.
“……이런 거 개발하고 뭐 파티 같은 것도 안 해요?”
“그런 거 안 하시는 분이에요. 할 일 많으시다고. 그게 더 멋지긴 하죠. 워커 홀릭이어도 좋아. 언젠가 자빠뜨리고 말 거야.”
정신을 반쯤 놓은 여자 연구원이 말했다.
이 양반아. 나 이 회사 대표야.
난 그 여자 연구원 앞에 손을 휙휙 저었다.
내 손짓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했다.
난 팔짱을 낀 채, 혜민이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
이들의 안목은 그나마 정상적일 거 아닌가.
“정기남이랑 강푸름?”
“네?”
“둘 중에 누가 더 좋아요?”
“강푸름.”
눈에 하트를 쏘는 여자 연구원 1이 말했다.
“안 돼, 난 못 골라.”
여자 연구원 2가 고뇌에 빠지고.
“정기남이요.”
남자 연구원이 말했다.
얘는 자꾸 왜 이래.
“그럼 나랑 기남이는?”
…….
침묵이 내려앉는다.
전투 중에나 느꼈던 싸늘함이 심장을 찔렀다.
난 대답을 듣지 않았다.
“됐어요.”
사람들 안목이 다 개판이다.
회사 꼴 잘 돌아가네, 진짜.
돌아선 채로 박병준 박사 연구실에 들렀다.
이 양반도 날 찾더라고.
오늘 무슨 날인가.
평소라면 코빼기도 안 비치는 인간들이 날 무던히도 찾는다.
박병준 박사의 연구실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차분하다. 조용하고.
그 분위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사람도 함께였다.
“여기서 뭐 해요?”
정아 누나다.
“일.”
여전히 짧고 굵으며 확실한 답이 돌아왔다.
박병준 박사가 안쪽 연구실에서 나오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무슨 일로 보자고 했나 해서 빤히 보니.
“마리는 잘 있나?”
“잘 있는지 보고 싶으면 직접 보러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마리가 딱히 이 양반을 꺼리는 것도 아니고.
“싫어할까 봐.”
이 양반은 원래 이렇게 소심했나.
생활에 안정이 오니, 나타나는 본래 성격일까.
하여간 정상이 없다.
“이번에 암시장 금고에서 빼 온 것 중에 새로운 비약 제조법이 몇 개 있었네. 그중에 예전에 내가 연구하던 게 몇 개 있었거든.”
“그래요?”
“그 연구 비약을 살피다가 안 건데, 그 약을 개발해야겠더라고.”
그럼 개발하면 그만인데, 날 굳이 부를 이유가 있나.
고개를 모로 꺾자, 박사가 말을 이었다.
“이쪽 김정아 씨, 이대로 비약을 계속 쓰면 죽어.”
“음?”
“근데 고집을 부리더라고 계속 비약을 달라고.”
으음?
정아 누나를 바라보니.
“5년이면 충분해. 내 목적을 이룰 시간으로.”
프로메테우스 죽이기, 목적은 나도 안다.
그런데 그거 죽이고 본인도 이승을 사뿐히 떠나시겠다?
“이 비약 제조법 예전에 정리해 둔 게 있어서, 레시피만 몇 개 더 구하면 새로운 비약을 개발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몸의 부하를 훨씬 줄일 수 있을 거야. 사실상 개인에게 맞추는 약을 개발하는 셈이라 개발 대비 수익은 없긴 한데.”
박사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난 짜증이 났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김정아 이 얼음장 같은 양반은 주변 사람 따윈 안중에 두지 않는 편이다.
“필요한 거 말해요.”
그래서 그냥 놔두기 참 싫은 사람이고.
난 정아 누나를 보며 입을 열었고.
박사는 눈치를 보다가 말을 끝맺었다.
암시장 털어먹은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멈출 생각이 없었기에.
오히려 이 일은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좋아요.”
난 허락했다.
그 말에 박사가 오히려 당황한 기색이었다.
“기한은?”
“지금 저 친구 몸에 쌓인 독소 제거도 해야 하니까. 한 달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그럽시다. 그럼.
“내 일이다. 내가 직접…….”
난 그리 말하는 정아 누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얌전히, 그냥 얌전히 있어요. 기다리는 것도 일입니다.”
자꾸 박사가 눈치를 보기에 정아 누나를 밖으로 내보냈다.
이후, 난 박병준 박사를 통해 나머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정아 누나의 몸 상태를.
가히 좋다고 할 순 없는 형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