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우미호 (2)
동생의 침대 옆에서 강혜민과 그 모친이 보석을 두고 진을 그린다.
“병원에 누가 들어오면 굿이라도 하는 줄 알겠는데.”
광익이 중얼거렸다.
화림 오티 때부터 정상이 아니었던 놈.
“내가 철저히 사수한다. 아무도 못 들어와.”
더 비정상인 방귀태가 말했다.
금줄 따위를 침상 주변에 두른 걸 보니, 정말 굿이라도 하는 것 같다.
이게 맞나?
우미호는 순간적으로 이 모든 걸 의심했다.
그럴 만도 했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 다시 일어서는 걸 보려고 그동안 뭘 했던가.
우미호는 동생이 왜 저렇게 된 건지 안다.
그녀는 과거의 기억에 빠져들었다.
* * *
“오늘부터 여기서 살면 된다.”
누군가 우미호에게 어린 시절이 어땠냐고 물으면 적당히 불행했다고 하리라.
특수종 전쟁 후, 급격히 늘어난 전쟁고아 덕분에 보육원 사업에 정부지원금이 늘었고.
아무리 철저히 일을 처리해도 빈틈은 있기 마련인지라.
그런 빈틈을 노린 보육원이 많았다.
지원금만 받고 아이를 방생하듯 키우는 그런 곳.
우미호와 우지호가 있던 곳이 그랬다.
“요청하지 마라. 요구하지 마라. 먹고 살아라. 학교는 원하면 가라. 대신 옷, 신발 따위를 바라진 말고.”
폐 옷 수거함에 버린 옷을 주워 입는 생활.
누군가 신다 버린 신발을 주워 신는 생활.
그나마 끼니는 챙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보육원이 해 주는 건 딱 거기까지였지만.
먹이고 재우는 것까지.
우미호는 이런 상황에도 동생과 학교에 다녔다.
원장은 도와주진 않아도 방해하진 않았다.
“공부해. 우리는 머리를 써야 살 수 있어.”
“지랄 마.”
동생은 거칠었다. 삶이 팍팍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해한다고 해서 용납된다는 건 아니었지만.
딱.
우미호는 참지 않고 손을 썼다.
“개기지 말고.”
냉정하고 차갑다.
머리통을 맞은 우지호는 눈을 부라리다가 관뒀다.
덤벼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랬다.
누나의 강단은 알아주지 않나.
그렇게 우미호 열아홉, 우지호 열일곱이 되던 해.
한 달 동안 지방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고 했던 동생이 반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어떻게 된 건가요?”
눈물을 흘릴 시간에 그 원인을 찾는 게 빠르다.
우미호는 물었고 캐냈다.
그녀는 수완이 좋았기에 몇 가지 사실을 알아 낼 수 있었다.
우연히 알고 지내는 불멸자 덕분이기도 했고.
“아서라. 주문쟁이가 엮인 일인 것 같으니, 무슨 병에 걸린 것 같은데.”
병이라 했으니 고치면 될 거 아닌가.
병원은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의사도 동생의 상태를 확실히 말해 주지 못했다.
가끔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동생은 깨어나지도, 그렇다고 쉬이 죽지도 않았다.
그저 가는 숨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냥 둘 순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불멸자로 각성한 건 행운이었다.
각성 이후, 적응 과정을 기다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무작정 버텼다.
무식한 짓이었다. 불멸자에게 감각 적응 기간은 중요하다.
수틀리면 오감 몇 개가 맛탱이가 가는 일도 흔하다.
불감가학병만큼 위험한 게 감각교란병이니.
반쯤은 운으로 힘든 생활을 이겨 낸 그녀는 혼혈 불멸자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우미호는 영리하게 굴었다.
프리랜서 따위로 사는 것보다는 메이저 직장에 취직하는 게 몇 배는 이롭다는 걸 알았다.
연고 없는 특수종 불멸자는 사냥당하기 좋기에, 각성 사실을 숨기고 버텼다.
그렇게 화림에 들어갔다.
입사 당시 그녀는 아는 게 없었다.
오티 때 배운 게 전부였다.
필기시험은 불멸자로서 제 몸을 공부하고 버티며 얻어 낸 결과물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불멸자가 아니었어도 그녀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수재였다.
불멸자가 되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동생을 고치기 위해 움직였다.
* * *
실패의 기억만 가득하다.
마법사도 몇 불렀었다. 프리랜서 세계에 사는 이들뿐 아니라 불멸특수대원으로 쓸 수 있는 모든 인맥과 권한을 동원하기도 했다.
특수종전문 병원에 입원도 시켰다.
그 어떤 것도 동생을 고치지 못했다. 차도도 보이지 못했다.
‘될까?’
의심이 자꾸 고개를 치켜든다.
“돼. 무조건 돼.”
옆에서 방귀태가 중얼거렸다.
이 미친 자식은 진짜 꾸준히 이렇게 붙어 있을 작정일까?
우미호는 다시 동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실상 반쯤 포기한 동생이 아닌가.
이대로 죽는 걸 바라진 않았나?
아니다. 그런 적 없다.
다시 동생이 서서 웃고 떠드는 걸 보고 싶다.
욕지거리라도 입을 여는 걸 보고 싶다.
대들더라도 그 눈이 빛을 품는 게 보고 싶었다.
그 어떤 것보다 우미호는 그걸 바랐다.
그녀는 손을 모았다.
태연하고 의연하게 서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된다니까? 내 목숨 건다.”
방귀태가 말한다. 왜 자꾸 옆에서 이리 떠드는가 했더니.
자신의 손이 떨리는 걸 본 듯했다.
두 손을 맞잡은 우미호는 조용히 기도했다.
종교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누구한테라도 빌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된다고. 돼.”
귀태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상하게도 우미호는 그 목소리에서 조금은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 * *
피가 섞인 형제가 없기에 지금 우미호의 심정을 모를까.
아니다, 안다, 알 수 있다.
난 남명진 사장이 내 정보를 팔았을 때 생긴 일을 떠올렸다.
어머니를 노린 칼이 있었다.
마윤 상무, 그 이름은 잊히지 않는다.
당연히 걱정 따윈 하지 않았다.
강슬혜 여사가 누군데 그딴 놈팽이에게 당하겠나.
그런데 만약 당했다면?
어머니가 평범했다면?
그래서 저런 상태가 됐다면?
애간장이 녹을 것이다. 심장이 찢어질 것이다.
매일매일 사는 게 그리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선연할 정도로 발달한 감각은 가끔 내 상상을 현실처럼 느끼게 한다.
떨리는 우미호의 손이 보인다.
작은 떨림조차 없이 부릅뜬 눈이 보인다.
누가 빙결탄이라도 쏜 듯, 몸이 굳었다. 그 와중에 손만 떤다.
위태로워 보였다.
저게 다른 사람 일 같지도 않았다.
인베이더를 죽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 살려고 하다 보니, 적이 많아졌다.
자신을 노리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그와 함께 나 말고 내 가족, 내 친구, 내 사람을 노리는 애들도 많아지겠지.
만약 그리된다면, 그리 당하게 된다면.
기분이 썩 좋을 순 없을 것이다.
복수한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도 않을 것이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하나의 생각으로 종결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기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나을 거다.
오르지 못할 나무.
우미호가 만들려고 했던 이미지다.
좋다.
그 이미지를 구축하고 진짜 그리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뇌세포가 절로 가속하며 생각을 또다시 잇는다.
지금 나한테 필요하게 자연스레 떠오른다.
현대는 자원이 곧 힘이다.
자원 전쟁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자원 확보.
로또 하나 뽑아서 좋아할 때가 아니란 거다.
NS의 사업체는 고작 세 개다.
이거로 사람을 제대로 지킬 수 있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함이 아니다.
마리도 아니다.
가족을 넘어 내 회사를 지킬 수 있나?
부족하다.
쿵쿵.
심장이 뛴다. 새로운 목표가 보였다.
인베이더를 죽이는 사람.
그 너머가 보였다.
한쪽에서는 우미호의 동생을 살리기 바쁜데, 난 내 속으로 깊게 가라앉았다.
이제까지 읽고 보고 머릿속에 담아 둔 정보가 엉킨다. 엉킨 정보 속에서 나한테 필요한 걸 끄집어낸다.
어렵지 않았다.
자원은 곧 무력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 NS는 내실을 다졌다.
가진 사업체는 고작 셋뿐이니.
몸집을 키운다.
자원을 먹는다.
지금 작은 목표 두 개가 생겼다.
인베이더를 죽이고 테러 단체의 콧잔등을 후려치고 싶다면, 몸이 더 커져야 했다.
우우웅.
금줄을 두른 안쪽, 불멸자의 감각이 경고한다.
저 안에서 지금 마법이 발동했다고.
주문과 관련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결론지은 생각을 뒤로하고, 지금 일어나는 일에 집중했다.
두 눈이 주문의 흔적을 쫓고 육감이 느꼈다.
선명한 감각 덕분일 것이다. 주문의 흐름이 몸에 깃드는 기분이 들었다.
홍염의 비늘이란 보석은 그 안에 불꽃을 품었다.
진짜 불꽃은 아니다.
저 보석은 에너지 응축체다.
살아 움직이는 불꽃처럼 보이나, 그 불꽃은 그저 흘러넘친 물잔의 물처럼 주변에 퍼진 물의 일부일 뿐이었다.
넘치는 에너지 덕분에 생기는 기묘한 현상이다.
혜민의 손이 수인을 맺었다.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붉은 선이 그어지고, 그 선은 곧 사람 크기만 한 유선형의 둥근 실타래처럼 변했다.
난 눈이 뜨였다. 이걸 육감의 눈이라고 했던가.
보였다.
우미호 동생의 몸에서 꾸물꾸물 검은 연기가 같은 게 흘러나왔다.
보통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육감의 눈을 통해 공감각 강화가 이뤄지며 오감을 넘은 육감으로 보는 게 실체화하듯 보였다.
이게 이런 것도 되네.
흘러가는 검은 연기는 곧 붉은 실타래에 엉키듯 섞였다.
그 위로 흰빛이 뿌려진다.
바사삭.
그와 동시에 성인의 보석이 가루처럼 부서졌다.
흰빛과 붉은빛이 섞인다. 눈에 선연하게 보였기에 난 이 주문의 성공 여부를 알 수 있었다.
우지호의 안색이 까맣게 변했다.
숨결이 더 옅어졌다.
불멸자의 귀로도 집중해야 들릴 만큼.
“괜찮아. 돼. 된다고.”
귀태의 불안한 목소리가 울렸다. 곧 빛이 사라지고 혜민이가 팔뚝으로 이마를 훔쳤다.
“의사 불러요.”
혜민이 모친이 말했다.
다들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자, 그녀가 재차 입을 연다.
“당장요.”
“실패입니까?”
귀태가 물었다.
“성공이니까 부르라고 하죠.”
난 한눈에 상황을 파악했기에 대신 설명해 줄 수 있었다.
“본래 몸에 기생충 같은 게 있었는데, 그걸 처리해서 빼냈어. 기생충이 생기를 빨아먹으면서도 생기의 일부이기도 했으니까. 지금 당장은 더 약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괜찮을 거야. 당장 상태가 안 좋아지지만, 좀 지나면 괜찮아질걸. 원인을 빼고 엮어서 묶어 버렸으니까.”
난 혜민이 마지막에 흰빛을 엮어서 묶는 걸 봤다.
애가 어디서 배웠는지, 매듭 한번 야무지게 맸지.
“……뭐야, 너.”
줄줄이 설명을 이은 날 보며 혜민이 묻는다.
“대표라고 하라고. 꼬맹아.”
과외 하던 시절처럼 이마를 톡 건들며 말하니.
옆에서 혜민이 모친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날 바라보는 게 보였다.
엄마 앞에서 이마 때렸다고 그러나.
“장난인데요. 평소에 하는 장난, 애정 표현 아니고요.”
“아니, 다 봤다고요? 이걸?”
음?
혜민이 모친이 이리 놀라는 얼굴을 하는 걸 보는 건 처음인데.
눈도 커지고 코 평수도 넓어졌다.
콧김이 거세진 걸 보니 꽤 놀란 것 같은데.
놀란 포인트를 모르겠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제가 좀 천재 불멸자라서요. 육감의 눈으로 봄.”
“아니, 다르지, 이 멍청아, 그거랑은 다르지.”
옆에서 혜민이 빽 소리를 질렀다.
“천재라니까 왜 멍청이래. 그리고 조용히 해라. 사람 올라.”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지만, 여기서 그리 언성을 높여서는 곤란하단다.
아직 금줄도 안 치웠다. 미친 사람 취급당하긴 싫단 말이다.
뭘 내가 대단히 놀란 일을 한 것 같긴 한데, 뭔가 핀트가 안 맞는다.
뭐, 지금 중요한 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의사 불러 온다.”
귀태가 나가고.
우미호는 제 자리에서 말없이 제 동생을 바라봤다.
아까와 자세 하나 달라지지 않은 채로.
그러다 한 발자국.
다시 한 발자국.
걷더니, 동생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볼을 쓰다듬는다. 이마를 덮은 머리칼을 치워 본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아, 이거 참.
“고맙습니다.”
우미호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강혜민과 그 모친을 향해.
난 못 볼 것 봤다.
눈이 빨개져,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우미호라니.
끔찍하잖아.
“난 먼저 간다.”
인사를 하고 내빼려는데.
우미호가 옷깃을 잡는다.
“앞으로 무슨 일이든, 대표가 말하면 목숨을 걸겠어.”
“걸지 마. 돈 받은 만큼만 일해라.”
안 그래도 회사 사람 지키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결론을 내린 판인데.
무슨 목숨을 건데.
내 사람 안 죽이며 잘 먹고 잘살기 프로젝트 할 건데.
“이 은혜 갚는다.”
운다. 미치네.
여자 우는 건 딱 질색이란 말이지.
“야, 혜민아. 임마, 자식아. 나 먼저 간다.”
말하고 나섰다.
사실상 내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나한테 목숨을 건다고 그러냐고.
병실 밖으로 나가니 귀태 형이 의사를 공주님 안기로 데리고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아, 급하다고, 우리 처남 살려 내야 할 거 아니야!”
누가 네 처남이냐. 이 미친 귀태야.
“아니, 저기, 이러시면.”
의사는 버둥거렸지만, 의미는 없었다.
방귀태는 불멸자이고 특수대 훈련을 받은 몸.
버둥거리든 말든 힘으로 제압했다.
불멸자도 훈련을 통해 뛰어난 근력을 가질 수 있다.
귀태도 그러했다.
“여기, 처남 죽으면 당신도 죽고 나도 죽는 거야.”
귀태가 협박했다. 요즘 세상에 저런 협박이라니.
저거 구치소 가면 변호사 선임이나 해 줘야겠다. 병원에서 저런 난리를 피우면 되나.
난 병원을 나섰다.
기분이 좋았다. 봄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선선하다.
봄이 좋다.
병원 바깥쪽 입구에 핀 흰 민들레가 눈을 즐겁게 했다.
그 위로 노니는 나비도 즐거워 보였다.
기분이 좋았다. 너무 좋았다. 팔에 소름이 돋을 만큼 그만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