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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305화 (305/488)

305. 그저 걸었을 뿐 (4)

“깽판 그만 쳐라. 여기서 그러면 아가씨 제명에 못 죽어.”

산뜻하게 생긴 남자였다. 생긴 걸 보면 알 수 있든 불멸자임이 확실했다.

마리가 도끼를 손가락 까닥거리듯 안쪽으로 흔들었다.

“들어와.”

“……미친년인가.”

불멸자는 흥분했다. 그걸 본 마리는 예의 바르게 도끼로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또 자신을 증명할 순간이 아닌가.

“불멸교를 무시할 셈이라 이건가?”

불멸교는 암시장의 주요 고객이자, 투자자다.

남자는 그렇게 외치며 왼팔 소매를 걷어붙이더니, 손톱으로 팔뚝을 그었다.

뚜두둑.

피부 조직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피부 위로 핏물이 배어 나오며 빨간 글씨가 떠올랐다.

“나 불멸교다.”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에게 불멸교는 그저 사이비 종교 집단일 뿐이다.

하지만 특수종 세계에 사는 이들에겐 아니다.

불멸교와 적대하면 잠도 편히 못 자게 하고, 오줌조차 편히 못 싸게 만든다.

그들의 암살 시도는 사람을 말려 죽이기도 하니까.

팔뚝에 떠오른 붉은 글씨는 그가 불멸교도임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마리는 도끼를 쥔 채로 생각했다.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심각했다. 홀로그램 마스크의 표범 눈썹이 씰룩이며 양 끝이 위로 솟았다.

불멸교가 어디인가.

오라버니를 노리고 암살자를 수없이 보낸 개자식들 아닌가.

말을 섞을 필요가 없는 개의 아들이므로.

마리는 입을 여는 대신 도끼를 휘둘렀다.

“미친!”

불멸자는 실력이 꽤 뛰어났다. 마리의 첫 일격을 뒤로 넘어지며 피한 거로 그는 제 실력을 증명했다.

마리는 당연하다는 듯 횡 베기에 이어 종 베기로, 놈의 다리 가운데를 도끼로 갈랐다.

퍽!

핏물이 튄다. 놈의 눈알이 금세 붉게 물들며 튀어나올 듯 커졌다.

“끄륵.”

다리 사이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불멸자는 거품을 물었다.

격통에 얼굴 핏줄이 터졌는지, 얼굴이 수박 속살처럼 빨개졌다.

“끄아아아아아!”

그리고 터지는 비명.

정직을 비롯해서 지켜보던 남자 무리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오므렸다.

그만큼 끔찍한 광경이었으므로.

도끼날로 정확히 남자의 알 두 개와 막대기 하나를 쪼개 버렸으니.

“……끼르히이이익.”

비명 뒤로 여운이 남은 신음이 흐른다.

마리는 그런 불멸교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놈의 머리를 도끼로 쪼갰다.

“후아.”

숨 참고 지켜보던 정직이 숨을 내쉬며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오라버니한테 몹쓸 짓 했으니까.”

불멸교와 대표의 사이도 가히 좋다고 할 순 없다.

만나면 서로 총알로 안부를 물을 사이다.

과연 대표는 테러 단체 전부와 척을 질 것인가.

마리가 도끼를 다시 휘두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음?”

싸우고 싶어 안달 난 모습 같았다.

하지만 조금 전 그 광경을 본 사람 중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 순간, 마리의 그림자 뒤에서 불쑥 손이 튀어나왔다.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다.

* * *

저 불멸교 개새가.

내 동생한테 덤비네?

난 모든 걸 지켜봤다. 여기저기 오가며 요한과 귀태, 정아 누나도 슬쩍 보고 왔고.

다들 마스크 쓰고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그리 잠깐 보고 돌아온 사이, 마리가 불멸교도 하나에게 트라우마를 남겨 주는 걸 볼 수 있었다.

마리야, 너 잔인한 아이구나.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난 일도 눈에 들어온다.

그림자에서 손이 튀어나온다. 시체의 손이라도 된 것처럼 회색 피부에 손톱이 길쭉하다.

사신의 손이라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 손이 마리의 등에 닿으려 했다.

반사적으로 손이 움직이려는 걸 꾹 참았다.

나보다 마리가 더 빠르기도 했다.

뒤차기다.

몸을 돌릴 것도 없이 허릿심과 무릎, 허벅지 힘으로 제 등을 노린 손을 발바닥으로 찼다.

빡.

맞은 손이 뒤로 밀리며 그림자 안에 숨어 있던 놈이 나왔다.

손과 같이 얼굴도 회색이었다.

“불멸교와 척지고도 살 수…….”

놈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나조차도 감탄할 타이밍이었다.

마리는 숨도 안 쉬고 땅을 찼다.

펑!

땅이 깨지며 지하 바닥을 메운 돌덩이가 조각나 흩어져 퍼졌다.

그리 돌진한 마리의 양팔이 쉼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에 들린 도끼가 무수히 많은 선을 만든다.

도끼의 잔상이 허공에 남음으로 마치 도끼날로 만든 공처럼 보였다.

제 몸을 중심으로 만든 도끼날의 공이다.

그 공은 분쇄기였다.

맞선 불멸교가 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오우.”

정직이가 감탄했다.

나도 그랬다.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어머니, 대체 마리한테 뭘 가르치신 겁니까.

괴물을 만드셨어요. 어머니.

투두둑.

돌 조각과 불멸교도였던 살점이 바닥에 떨어졌다.

“뭐야, 상황 벌써 끝나가네?”

그리 구경하는 사이 왼편에 장미 또라이가 왔다.

장미를 새긴 흰 가면이다.

“뭐, 오래 걸릴 일은 아니지.”

로즈는 그리 말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로즈가 오자마자 우측에 또 다른 일행이 합류했다.

“너무 붙지 마. 너.”

혜민이다.

어머니는 암시장 VIP지만 이곳은 처음이라더니, 용케 잘 들어왔네.

“왔냐?”

“보고 싶었어? 서방?”

혜민이의 헛소리에 로즈가 토하는 시늉을 했다.

“죽창 꽂고 싶네.”

그러자 우연히 옆에서 보던 어떤 남자가 중얼거렸고.

“누구한테 하는 말이죠?”

남자 바로 뒤에 있던 커다란 그림자가 그 남자의 머리통을 쥐며 말했다.

“……뭐야?”

“쉿.”

조용히 시킨 덩치가 그 작자의 목을 한 손으로 쥐어 기절시켰다.

오우, 어째 몸이 더 커진 것 같냐.

김근육이다.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찡긋 윙크하곤 앞으로 나아갔다.

가면은 공주 왕관을 쓴 미녀 가면.

“쟤 지금 윙크한 거야? 죽고 싶다고 선전포고하는 거지?”

혜민이가 투덜거렸다.

“조용히 좀 있어.”

김근육 씨의 포스가 남다르다.

그녀는 걸어 나가더니 마리 곁에 섰다.

“왔어요?”

마리가 그녀를 반긴다.

“네.”

김근육이 답한다. 불멸교도 하나를 더 잘라먹었음에도 주변에 살벌한 살기가 오갔다.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과해, 여기는 우리 장사치들의 구역이기도 하다고. 적당히 해야지.”

암시장의 보이지 않는 수호자라 불리는 이들이다.

알게 모르게 이곳을 지키는 이들.

그중 하나가 나섰다.

한때는 화랑에 속했지만, 약에 취해 나락으로 떨어진 은퇴 화랑이다.

물론 여기서 그 얼굴을 알아본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아들과 다른 각도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강슬혜다.

‘쟤?’

한때 자신이 본능 컨트롤하는 방법을 뼈에 새겨 줬던 놈이다.

재능이 꽤 뛰어나 화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리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마약에 취해 여기까지 떨어졌는지.

그걸 상대하는 김근육은 차분히 양손을 편 채, 사람 머리통 크기만큼의 간격을 두고 벌렸다.

“오세요. 약쟁이.”

그녀가 말하자, 마리가 뒤로 빠졌다.

그러자 마약쟁이 화랑이 덤빈다. 바로 변신이다.

으드드득.

곰의 형태였다. 얼굴이 둥글둥글해지더니 얼굴을 비롯해 전신에서 흑갈색 털이 자란다.

반인반수가 아닌 정말 곰으로 변해 버린다.

“쯧.”

그걸 본 강슬혜는 혀를 찼다.

저건 변신 실패다. 반인반수는 이상적인 형태다. 이성 따위는 날려 버리고 본능에 취한 모습의 변신은 올바른 형태가 아니었다.

그리 곰으로 변한 남자가 휘두른 손톱에 맞서, 김근육도 주먹을 내질렀다.

아찔한 순간이다. 이대로 곰의 발톱에 주먹이 찢어지고, 몸통에 커다란 상흔이 남을 것 같았다.

손톱과 왼 주먹이 맞닿은 순간.

꽝, 펑!

두 번의 폭음이 들렸다.

‘오호.’

김근육도 자신이 훈련시켰다. 그녀의 전투 방식은 본래 초능국의 것.

초능국 호신술에 뭘 섞는가 싶었는데.

강슬혜는 한눈에 김근육의 상태를 알아보았다.

‘능력 개화.’

초능 특수종에게 가끔 있는 일이다.

또 다른 초능을 개화하는 것.

김근육이 그랬다.

그녀의 주먹은 맞닿는 순간 폭발했다.

정확히는 주먹 앞으로 나아가는 지향성 폭발을 일으켰다.

맞은 곰의 손이 너덜너덜해졌다.

“피하세요.”

김근육은 친절했다. 그리 말하고 오른 주먹을 뻗어 곰의 배를 때렸다.

펑!

폭음이 터진 건 당연했다.

“꾸워어어어어!”

곰의 비명을 내질렀다. 쩌렁쩌렁한 울음이었다. 곰의 동체가 뒤로 넘어간다.

쓰러진 곰의 배에 까만 자국이 남았다.

구멍이 나진 않았지만, 구역질을 쏟아 내는 꼴이 멀쩡한 상태로 보이진 않았다.

충격에 변신도 풀려 버렸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전 암시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선 정의의 사도쯤 됩니다.”

김근육은 차분했다.

그녀는 그리 말하며 마리가 무너뜨린 건물 옆을 주먹으로 때렸다.

펑!

폭음이 터지며 폭발이 일어난다.

“그래서 암시장 전부를 부숴 버리고 싶답니다.”

“나도.”

정직이가 나서고.

“마리도요.”

마리도 나선다.

‘나설 일이 없네.’

예상외 상황이 일어나면 나선다. 그게 우미호의 부탁이었다.

그런데 나설 일이 없다.

암시장을 제압하는 데 필요한 건 몇 명이 전부였다.

덤비는 족족 깨지고 죽어 나가니.

주변에서 덤빌 엄두를 못 내는 것도 당연했다.

암시장을 지킨다는 보이지 않는 수호자든, 불멸교든, 상대를 가리지 않는 터프함이 저들에게 있었다.

“저기 쫄았으면 사장이나 불러 줄래?”

그 사이, 상대를 거침없이 도발하는 정직이 보인다.

호랑이 등에 탄 여우처럼 보였으나.

‘저 아이도.’

강슬혜의 안목은 남달랐다.

한정직의 능력도 만만치 않다는 걸 그녀는 알아봤다.

그거로 인해 훈련 코스가 새로이 정해졌다.

* * *

정직은 갑자기 오한이 들었으나, 몸을 부르르 떠는 거로 털어 냈다.

사이오닉 에너지를 과하게 쓴 탓이었다.

‘안 오나.’

목적은 뒷골목의 왕을 부르는 것.

근데 쥐어 터지고 여기저기서 사고를 쳤음에도 더럽게 안 온다.

그리 꿍얼거리고 있는데, 자신이 처음 시장에 들어와 말을 뱉은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1시간 30분 만에 책임자가 나섰다.

뒤로 십여 명의 무리를 데리고 나타난 서양 남자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어떤 게 불편하셔서 그런 겁니까?”

금발의 푸른 눈.

“뒷골목의 왕 되시나?”

“아니, 전 그저 일개 책임자죠.”

정직은 고개를 모로 꺾었다.

“사장은 바쁜가 보네.”

“바쁘시죠.”

“그럼 안 오려나?”

“모르죠.”

“혹시 책임자라는 당신을 천국에 배송 보내도 안 올까?”

“살벌한 말을 하시는군요. 능력이 출중하신 건 알지만, 너무 자신하지 않았으면…….”

서양인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뒤에서 도끼를 터는 마리와 주먹을 쥐며 내세우는 김근육이 있지 않나.

뒷골목의 왕은 이 둘을 죽일 수 있었다.

가진 바 실력을 다 발휘하면 그럴 수 있다. 물론, 반대로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

실력이 곧 승패가 되는 건 아니므로.

그래도 난동을 제압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자신에게 그 정도 힘은 있다.

여력이 남았다.

하지만.

상대 무리가 NS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

뒷골목의 왕은 선택해야 했다.

정직은 귀를 후볐다.

“무슨 말을 하다가 말아. 그래서? 싸우자고?”

그 타이밍이다.

후두두둑.

한쪽으로 길이 열린다. 구경꾼 일부, 또는 이런저런 일로 암시장 실권과 연결되어 있던 이들 사이로 길이 뚫렸다.

비키라는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됐다.

그 뚫린 길의 끝.

야생의 살기만으로 길을 연 남자가 있다.

그는 홀로그램 마스크를 벗었다.

그 얼굴의 유명함이 말할 것도 없다.

세최특이다.

그는 걸었다.

터벅터벅.

그저 걸었을 뿐이었다.

왼쪽에는 로즈, 오른쪽에는 혜민이 따랐다.

걸었을 뿐인데, 길이 열리고.

열린 길을 걸어 도착했을 뿐인데.

뒷골목의 왕은 말해야 했다.

압도적인 존재감.

더불어 그는 머저리가 아니기에 상대의 의도 역시 알아챘다.

말을 섞어서 그 의도 여부를 따질 필요는 없으리라.

상대는 모든 걸 계산했다.

그 계산 끝에 이곳에 선 것이니.

자신을 이곳으로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자신이 나오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니.

‘졌다.’

머리로도 무력으로도 완벽하게 진 셈이다.

암살과 저격, 모든 시도를 부쉈으며 수틀리면 암시장 전체를 부술 거라는 위협도 했다.

암시장 곳곳에서 일을 터트릴 수 있다는 경고도 하지 않았나.

흑길동이 당한 걸 보고 그걸 깨달았다.

“가지십시오.”

상대의 의도를 읽은 머리 좋은 왕이 말했다.

그는 싸우기 전에 패배를 시인하며 시장을 넘겼다.

솔직히 말하면 얼굴을 마주한 순간,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었다.

이자야말로 현시대 특수종 세계를 이끌어 가는 남자다.

미친 자들의 세상을 이끄는 선두다.

주문도 소용없으며, 네임드와 맞상대가 가능한 전투력의 소유자였으니.

왕은 고개를 숙였다.

그런 왕을 광익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내려다봤다.

그 모습에 좌중은 숨을 죽였다.

그저 걸음만으로 모든 걸 평정했으니.

* * *

“그냥 걸어, 앞으로 나가기만 해.”

우미호의 통신에 난 그렇게 했다.

그랬는데.

“가지십시오.”

뭘?

그러더니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작자가 고개를 숙인다.

이 양반 왜 이래?

근데 누구세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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