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그저 걸었을 뿐 (3)
마리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을 했다.
‘난 쓸모가 있는 사람일까?’
어머니라 부르는 강슬혜.
아버지라 부르는 유연호.
오라버니라 부르는 유광익.
그 셋을 위해서 살고 싶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어느 날, 어머니가 뭐가 되고 싶냐 물었을 때.
“마리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리는 그렇게 답했다.
진짜 속내를 끄집어 내자면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기에 마리는 자신을 증명하는 순간이 오는 게 더없이 즐거웠다.
전신에 전율이 일 정도로 즐겁기 짝이 없다.
도끼를 양손에 나눠 쥐고 좌우를 둘러본다.
그녀는 실험체로 태어난 변신족.
혼혈이라 할 수 없고, 순혈이라 할 수 없다.
그럼 실패작일까?
“피가 그 사람의 재능을 증명하진 않는단다. 알지, 마리야?”
어머니가 묻는다. 마리는 답한다.
알아요, 어머니. 마리는 알아요.
오라버니는 말한다.
“박마리, 넌 진짜 난년이다.”
욕이 아니다. 칭찬이었다. 다만 이걸 들은 어머니가 오라버니 등판을 후렸을 뿐.
“넌 주둥이가 혜민이를 닮아 가니?”
“어머니, 어찌 그리 심한 말을. 너무 하시네요. 가출할 겁니다.”
“이미 집 나가 사는 놈이 가출은 무슨?”
“지금 사는 집에서 가출해 본가에서 며칠 지내겠다는 거죠.”
오라버니는 언제나 당당하다.
독립했으면서 가출한다니, 본가에 신세를 지겠다는 말을 저리 한다.
배워 두면 좋을 것이다. 저 당당함.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가 말한다.
“여보, 우리 아들 머리 다쳤어?”
킥.
마리는 기억을 되짚으며 도끼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어머니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교양 있게 웃는 법을 알려 주셨다.
입가를 가리고 웃는 거다.
“미친년인가. 웃어? 도끼로 입가는 왜 가려?”
그걸 본 암시장의 가드 하나가 언성을 높였다.
상대는 예의를 몰랐다. 웃는 상대에게 무안을 주다니.
마리는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머니의 가르침이 그녀를 그리 만들었다.
“마리는 버릇없이 구는 거 싫어해.”
도끼를 고쳐 쥐며 말하니, 뒤에서 다시 기계장치 따위가 움직이는 소리가 울렸다.
끼릭. 퉁!
소매 안쪽에 숨겨 둔 석궁 장치다.
위협은 되지 않았다.
마리는 화살의 궤적을 읽어 내고 쳐 냈다.
따-앙.
금속음이 울린다. 금속으로 만든 화살촉과 도끼날이 만든 화음이었다.
두두두.
곧바로 기관단총도 불을 뿜었다.
확실히 상대는 훈련받은 이들이다.
자신을 노리고 총알을 갈기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방향으로 탄막을 형성했다.
덤비는 숫자는 총 다섯.
그중 셋이 기관단총을.
하나는 소매 화살을 날렸고.
나머지 하나는 입술을 달싹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리 위로 진홍빛의 구름이 생겼다.
마리는 호흡을 들이킨 뒤, 옆으로 크게 뛰었다.
쾅!
암시장 바닥이 파인다. 괴력의 발 구르기였다.
한 번의 뜀뛰기로 옆에 있는 조립식 컨테이너 2층 창문까지 다다랐다.
빡.
마리는 도끼로 컨테이너 건물 벽을 찍었다.
그러곤 벽에 꽂은 도끼를 지지대 삼아 몸을 허공에 고정했다.
탄막은 피했다. 하지만 진홍 구름은 아니었다.
구름은 그녀를 따라왔다.
곧 구름으로부터 투두둑 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묘한 일이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만 뜬구름이다. 본래 주문은 모두 기묘하다. 그러니 놀랄 일은 아니었다.
모르는 주문에 걸렸을 때, 할 일은 하나다.
어머니의 가르침이다.
주문을 건 새끼 주둥이를 털어 줘라.
마리는 그렇게 했다.
부스스.
떨어진 비가 방검방탄복을 녹인다. 염산으로 만든 빗방울 같았다.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마리는 무시한 채 벽을 땅 삼아 무릎을 구부렸다.
허벅지가 부푼다.
꽈드득, 펑!
방검방탄복의 탄성이 그녀의 근육을 견디지 못하고 터졌다.
이것도 꽤 비싼 물건인데 근육의 팽창을 못 견뎠다.
그만한 괴력을 품은 근육이었다.
“막…….”
주문쟁이가 입을 연다.
마리는 그걸 보며 벽을 박찼다.
훙, 갑자기 주변이 느려지고 몸은 무거워지며 소리는 사라진다.
소리가 죽는 세계, 힘을 모아 돌격하면 마리는 그런 세계를 경험했다.
소리가 죽고 몸에 인듀어라도 걸친 듯 묵직한 무게감이 실린다.
평소보다 도끼를 휘두르기 힘들다. 그래도 견딜 만하다.
훈련은 괜히 한 게 아니었으므로.
상대의 입 모양이 보인다. 입 안쪽 혀가 출렁이며 움직인다. 마리는 느려진 시간 속에서, 무거워진 도끼를 휘둘렀다.
그 순간 본래의 시간대로 돌아왔고.
후아아아아앙! 펑!
소리가 뒤따라 귀에 들이쳤다.
“……아!”
그와 동시에 상대의 외침이 완성된다.
후두둑.
염산 비가 그쳤다.
마리의 어깨 따위에서 핏방울이 맺혔다. 몸 여기저기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머리 위에 떠다니던 진홍 구름은 뭉글거리며 퍼지더니, 물 만난 솜사탕처럼 녹아 없어졌다.
그녀는 어깨를 한 번 털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자신이 만든 현장이 보였다.
처음 땅을 박찬 컨테이너 건물은 무너졌다. 발로 찬 반대 방향으로 건물이 반파되듯 무너졌다.
그 뒤 자신이 도끼를 휘두른 흔적이 보였다.
반쯤 파인 땅.
위에서 밑으로 호선을 그렸기에 도끼날에 땅 일부가 긁혔다.
그 사이에 서 있던 주문쟁이의 하반신이 보였다.
외침의 완성은 잘린 상반신이 했다.
도끼날의 궤적에 걸린 몸은 두 개로 분리됐다.
그리 몸이 잘린 채로 떨어진 주문쟁이와.
총잡이 셋, 음흉한 놈 하나.
마리가 손에서 도끼를 공중에 던졌다가 받았다.
도끼에 묻은 핏방울이 튀었다.
“……때린다며.”
뭐가 억울한지, 화살을 쏘던 음흉한 놈이 말했다.
마리는 당당했다.
“도끼로 때렸다.”
시발 그게 왜 때린 거야.
음흉한 놈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마리가 재차 땅을 박차 도끼로 놈을 세로로 쪼개 버렸으므로.
남은 총잡이 중 둘은 튀었다.
한 놈은 재수 없게 정직이한테 잡혔고.
“어딜.”
발을 건 정직이가 상대 하나를 때려눕혔다.
좌중이 말을 잃었다.
마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상대를 제압했다. 자신을 증명했다. 기꺼움이 차올라.
“우오오오!”
외쳤다.
호응은 없다. 다만, 보는 사람 대부분이 전율을 느꼈을 뿐.
무식할 정도로 강하지 않나.
외침에 야생의 살기까지 섞였다.
그게 마리를 더 커 보이게 했다.
“……오늘 여기 망하는 거 아니냐?”
누군가 중얼거렸다.
한정직이 혼자 깽판 치는 거랑은 너무 궤가 다른 파괴력 아닌가.
* * *
처음 유광익이 암시장을 먹자고 했을 때, 우미호는 반대했다.
세 번째 사업으로 삼기에 암시장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으니까.
일단 이미지가 최악이다.
암시장은 범죄의 온상이 아닌가.
NS가 굳이 가질 필요가 없는 계륵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동훈도 반대할 줄 알았지만.
“그러지 뭐.”
뭐 이렇게 쉽게 수긍한단 말인가.
동훈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쟤 눈을 봐. 봤어? 저게 바로 미친 또라이의 눈이야. 저런 눈깔이 되면 남의 말을 안 들어.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이렇게 답했다.
“암시장 냠냠!”
이라고 외치는 광익을 보면, 그 말에 절로 수긍하게 된다.
“아그작 아그작 난 암시장을 씹어 삼키지!”
미친놈.
우미호도 포기하고 일에 전념했다.
일을 벌였으면 최대한 이득을 취해야 한다.
그게 우미호의 지론이다.
손해가 없는 건 당연한 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득을 얼마나 취할 수 있느냐다.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그녀는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하물며 이게 제 동생을 위한 일이라는 걸 몰랐음에도 그랬다.
‘유광익은 나서면 안 돼.’
암시장을 먹으면 보여 줘야 할 게 있다.
NS의 저력이다.
판독기 사업, 초능국 무역.
두 사업 다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얻은 이득이 있다.
NS의 행정 능력이 대기업 못지않다는 걸 증명한 거다.
좋소기업이라며 나불대던 커뮤니티의 찐따들도 더는 그리 말하지 못할 정도로, NS는 사업 두 개를 활기차게 잘 돌렸다.
우미호는 이게 반은 돈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연봉과 복지, 두 가지가 주는 시너지 효과다.
나머지 반은 사내 규율과 문화가 만들었다.
고액 연봉과 복지 정책으로 능력 있는 이들을 불러 모았다면, 다음은 일할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걸 만든 건 김중고다.
“사람이란 게 그렇잖아. 다 놀자고 하면 나도 놀고 싶은 거고, 다 열심히 하면 나도 열심히 하게 된다니까? 아, 알지, 알아. 다 열심히 하는 와중에 뺑끼를 쓰는 놈 있는 거, 그거는 솎아 내야지. 썩은 걸 도려 내는 거, 그거 기가 막히게 잘하는 애들 있거든. 걔들 좀 데려다가 쓰자.”
그렇게 만들어진 게 일명 불법 전문가팀이다.
사기를 업으로 삼은 범법자 중 몇이 사람을 솎아 냈다.
어설픈 시스템의 허점을 찾아내 보완하게 했다.
그로 인해 절로 만들어진 게 일하는 문화다.
자연스레 대외적으로 일 잘한다는 NS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일이었다.
반은 이동훈의 주도하에 이뤄진 일이기도 했다.
이미지 메이킹은 생각보다 꽤 중요한 부분이니까.
이번에도 같다.
‘저력을 보여 준다.’
유광익이 없는 NS의 힘을 보여 주는 거로 얻게 되는 이득.
행정 능력이 아닌 전투 능력의 증명이다.
인터넷 세계의 악플러와 진따는 어디서 재배라도 하는지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그들의 말은 대부분 개소리다.
하지만 우미호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진따와 악플러가 문제가 아니다. NS를 보는 다른 시선들이 문제지.
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유광익이 없어도 NS가 이 정도는 한다는 것.
우미호의 머릿속에는 수십 개의 생각이 오간다. 괜히 천재 소리 듣는 게 아니다.
그녀는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기도 했다.
상대의 반응을 예상하는 게 이 일의 핵심이기도 했으니.
수십 개의 상황을 가정했고, 작전을 짰다.
뒷골목의 왕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현장에서 보며 놈의 의도를 움직인다.
그게 우미호가 하는 일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녀가 원하는 건 뒷골목의 왕이 직접 나서게 만드는 거였다.
그 조심성 많은 놈을 어떻게 하면 끄집어낼까.
“어려울 건 없지.”
회의 중 동훈이 말했다.
우미호도 그 말에 동의했다.
“제 둥지가 깨져도 외면하는 멍청한 새라면 무시해도 그만이니까요.”
뒷골목의 왕이 가진 것 중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소음시장이다.
그걸 다 때려 부수자고 덤비는 놈이 있다면 어떨까?
두고만 본다? 그건 머저리다.
머저리가 뒷골목의 왕이 될 순 없다. 우미호는 그렇게 판단했다.
* * *
“씨이발.”
금발의 푸른 눈, 뒷골목의 왕은 혼자 남은 자리에서 걸쭉한 욕설을 뱉었다.
“개애애씨이이바아알.”
평소의 냉정하고 차가운 이미지와는 별개다.
그는 실제로 흥분했다. 눈에 핏발이 섰고, 목에는 핏대가 섰다.
씩씩 콧김을 뿜어 내기도 했다.
5분, 왕은 그리 제 흥분을 모두 쏟아 냈다.
그 뒤 본래의 얼굴로 돌아온 그는 밖으로 나섰다.
“상황?”
“암살 시도 실패, 저격 시도 실패, 외곽 쪽에서도 소란이 있습니다. 흑길동이 갔다가 당했습니다.”
흑인인데 한국 도술에 가까운 마법을 쓰는 친구라 별명이 흑길동이다.
하급과 중급 사이에 있는 마법사다.
‘그렇게 쉽게 당할 놈이 아닌데.’
암살과 저격의 실패도 그렇다.
상대의 준비가 탄탄하다는 말이다.
어쭙잖은 적이 아니다.
“어디야?”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불멸교는 아닙니다. 프로메테우스도 아니고, 이시스도 아닙니다.”
세계 3대 테러 단체는 아니란다.
그들과는 공생 관계이면서 서로를 노리기도 하는 적대 관계이기도 하다.
“그럼 올드 포스?”
“정부에서는 아니라고 합니다. 필요하다면 경찰 인력을 파견해 준다고 했습니다.”
비서의 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장을 뒤흔드는 놈들이다. 정체를 알아야 대응을 할 거 아닌가.
그는 숨을 끊어 내쉬었다. 흥분한다고 해도 차분함을 가장해야 할 순간이다.
숨을 고르니 실제로 차분해졌다.
“단군도 아닙니다. 현재까지 예상으로는 신생 세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생 세력?
번뜩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NS, 세최특, 청기사 슬레이어.
그런데 걔들이 왜?
암시장이 노른자 땅이긴 한데.
여길 쳐서 자기들이 얻는 게 뭔데?
일전에 범죄 조직 조지듯 부수겠다고?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곳에 관련된 이들, 정부 각처에 있는 권력자, 불멸교를 비롯한 테러 단체, 물론 엑스큐라시와 용병 업체도 많다.
미국과도 연관이 있고.
왕은 머리를 굴렸다.
수틀리면 여기저기 원조를 구해야겠다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직접 움직여야 할 때다.
이 미친놈들을 놔 두면 정말 암시장 전체를 다 깨부술 참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