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그저 걸었을 뿐 (1)
“사장이 바쁜가 본데, 그럼 책임자라도 나오라고.”
분위기가 묘했다.
암시장을 습격하는 무리가 이제까지 하나도 없었을까.
아니, 많았다.
정부에서 나라와의 전쟁이라 말하고 경찰이 쳐들어온 적도 있음에야.
고로 비일비재한 일이다.
이런 일이 무척이나 많았기에 시장에 오래 몸을 담았던 이들은 이런 광경을 자주 봤다.
하지만 이건 좀 색다르긴 했다.
암시장 토박이들이 골목에서 나와 주변 상인에게 시비를 거는 천둥벌거숭이를 보며 말을 나눴다.
“혼자서 간도 크네.”
“어디 조직에서 보낸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저거 얼굴도 감췄어. 홀로그램 마스크야.”
개중에는 눈썰미가 좋은 이들도 많았다.
이곳은 암시장, 상인 집단이 모인 곳이었다. 물건을 보는 안목은 어지간한 대기업 연구원 뺨을 후릴 정도로 뛰어난 곳이었다.
“요새 세최특 때문에 어린 특수종이 멋모르고 설치고 다닌다고 하더니만. 쯧.”
혀를 차는 이들도 여럿이었다.
최근 젊은 특수종 사이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긴 했다.
세삶본 운동, ‘세최특 삶 본받기’라며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 등의 자경단 짓을 일삼는 이들이 늘었다.
그중에는 이걸 핑계 삼아 도둑질을 하는 놈들도 있지만, 우습게도 자기들끼리 싸우며 자정 작용까지 일어나는 판이었다.
사회 문제다.
물론 그렇다고 행안부나, 경찰에서 광익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진 않았다.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으므로.
광익의 잘못도 아니었고.
상인 중 몇은 정직을 영웅 심리에 빠진 또라이로 판명했다.
“작정하고 오긴 했네. 상당한 수준이고.”
“어디 출신이야. 저거.”
눈썰미가 좋은 이들이 상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암시장을 오가는 이들은 많다.
은퇴한 전투 계열 특수종도 있었다.
현재 일선에서 뛰는 용병도 많았고.
그들의 눈이 정직의 움직임에서 흔적을 쫓았다.
동작 몇 개를 본다고 해서 출신을 알아볼 순 없지만, 불멸자고 변신족이고 초능 특수종이고 싸우는 방식에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그중 안목이 높은 은퇴 용병이 팔짱을 낀 채로 입을 열었다.
“깨끗해. 제대로 배웠어. 불멸자 냄새도 나고 변신족 냄새도 나는데, 능력은 광변환이라니.”
특이한 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없었다.
이곳이 어디인가.
뒷골목의 왕의 거처, 소음시장이다.
불멸교 수준의 암살자만 해도 몇 명인가.
“저 친구, 내일 아침 해는 못 보겠어.”
은퇴 용병이 안타까워 한마디 보탰다.
홀로그램 마스크를 쓰고 암시장에 들어오는 건 평이한 일이다.
그걸 뒤에서 듣고 있던 어떤 신생 회사의 대표이자, 인류의 영웅이라 불리는 특수종도 마스크를 쓴 채였으니까.
어떤 회사의 대표는 은퇴 용병의 말에 수긍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따로 입을 열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므로.
* * *
정직이 많이 컸네.
몇 번 두들겨 팼을 때도 느끼긴 했다.
저거 실력 진짜 많이 늘었다.
특히 대련 중에 몇 대 맞자마자 광변환 쓰고 튈 때 보니, 유지력이 전보다 몇 배는 길어졌다.
그걸 보며 새삼 어머니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기초는 뭐다? 체력이다.”
매일 산을 오르며 들었던 말이다.
불멸이고 변신이고, 각성도 하기 전인데 절벽을 오르곤 했었다.
“체력 위에 좋은 정신이 깃든다.”
어머니는 그리 말했다.
로프로 허리만 질끈 동여매고 오른 절벽이었다.
그때는 참 아찔했는데.
어머니가 변신족인 것도 몰랐다.
내가 떨어지면 어머니랑 같이 절벽에 다이빙하게 될 것 같아서 기를 쓰고 매달렸었다.
체력이 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어머니 지론이 증명됐다.
정직이의 초능이 개화했다.
그 정직이가 지금, 소음시장 한복판에서 덤비는 놈을 족족 때려눕히는 중이었다.
작정하고 덤비는 놈.
그저 아니꼬워 덤비는 놈.
호승심이 달아올라 덤비는 놈.
변신체로 덤비는 변신족도 있었는데, 그걸 상대하는 전술이 인상적이었다.
정직은 광변환을 몇 번이고 보여 줬다. 그는 그걸 미끼로 삼았다.
변신족의 돌진에 정면으로 내달리며 정직의 몸이 흐릿해졌고, 변신족은 반사적으로 몸을 휘릭 돌렸다.
곧바로 자신을 통과할 정직을 후려칠 요량으로.
그리고 정직은 광변환을 속임수로 썼다.
훌륭한 페인팅이었다.
그리 속은 변신족 뒤통수를 향해 팔꿈치를 송곳처럼 꽂았다.
무게를 실은 일격에 변신족이 거품을 물었다.
난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오.”
감탄도 함께.
내 주변에 몇 명 눈썰미 좋은 이들도 같았고.
정직이는 훌륭한 실력을 보였지만, 난 암시장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다.
험한 일 하는 용병을 구하려면 양지쪽보다 오히려 암시장에 가라고 했던가?
그럴 만했다.
불멸교에서 봤던 암살자보다 은밀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진즉부터 사방에 퍼트린 감각의 그물이 그걸 잡아챘다.
이거 진짜 가만히 놔 둬도 되나?
난 암시장을 먹자고 했고.
그걸 들은 방귀태는 당장 치자며 흥분했고.
김요한은 또 일이냐며 한숨을 쉬었고.
정기남은 이번에 자신을 두고 가면 마법을 배워 평생 저주를 걸어 주겠다고 했다.
이 새끼야, 나 저주 피해.
김근육과 정직이는 그저 시키면 한다는 주의고.
로즈는 뭐가 바쁜지 자유 시간을 달라고 해서 보냈다.
혜민이야 뭐, 내가 가면 따라온다고 하고.
그리고 우미호와 팬더 형.
둘은 사흘을 달라고 했고 이후 나에게 주어진 일은 하나였다.
“구경만 해.”
“이번 일은 알아서 한다. 실전 겸이라며?”
둘은 그리 말하며 나 몰래 작전을 짰다.
그래도 이걸 그냥 놔 둬?
정직이가 담배를 꼬나문다. 반쯤 욕을 섞어 또 대표나 책임자를 찾다가 바로 옆에 있던 냄비를 걷어찼다.
냄비의 주인인 성을 내다가 턱을 얻어맞았다.
저 새끼 건달이 천직인가?
정직이 뒤는 골목이다. 이곳은 지하이기에 빛이 스며들지 못하면 어두컴컴했다.
그의 뒤쪽에서 언제라도 손이 튀어나와 정직의 목에 칼을 꽂을 것 같았다.
자식이, 자리라도 옮기지.
허세 부리기에 취했는지, 골목 벽에 기대 담배를 꼬나물었다.
그 뒤로 그림자가 스며든다. 불멸자의 기척 죽이기다. 일품이었다.
이대로 두면 칼날이 정직이의 목을 칠 텐데?
진짜 놔 둬도 되나?
팬더 형과 우미호는 그런 말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끼어들지 말라고.
난 고개를 저으려 했는데.
“직원을 네 짐짝으로 삼을 거면 회사는 왜 차렸니?”
어머니가 말로 심장을 후볐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두고 봤다.
정직이가 죽으면 슬프겠지만, 어쩌겠나.
앞으로 길이 더 험할 것인데.
물론 그럼에도 난 반사적으로 손에 핸드 불릿 하나를 쥐었다.
불멸 암살자가 기회를 엿보는 게 느껴진다.
수틀리면 쏜다.
그리 마음먹고 감각을 곤두세울 때.
내 감각의 그물 안으로 새로운 기척이 스쳐 갔다.
완벽에 가까운 기척 죽이기다.
아버지를 비롯한 피닉스 팀에서나 본 수준이다.
또는 순혈 정가의 초엘리트란 놈들한테서나 느낄 수준.
어찌 보면 불멸교의 암살자보다 더 뛰어난 기척 죽이기.
그 주인공이 암살자의 뒤를 잡는다.
보이진 않지만, 느꼈기에 상황을 읽을 수 있었다.
암살자는 반사적으로 기척을 느끼고 몸을 돌렸고.
두 번째로 나타난 불멸자는 그걸 속임수로 썼다.
기척 속이기다.
첫 번째 죽은 기척을 던지고.
상대가 반응하는 사이 뒤를 잡아, 목에 칼을 꽂았다.
작은 소음조차 나지 않는 프로페셔널한 움직임과 행동이다.
두 번째 불멸자가 골목 뒤로 암살자를 끌고 들어갔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일련의 행위다.
상황 끝이다.
두 번째 불멸자, 개나리 정기남이었다.
우미호, 진짜 너 다 계획이 있는 거냐?
“아, 사장 어디 있냐고.”
상황이 묘해진다. 말썽부리는 진상 건달 하나가 암시장 생태계를 망치는 중이었다.
* * *
기남은 광익과 함께한 시간을 되새겼다.
그 시간, 농밀했다. 진했다.
“모든 걸 따라잡으려고 하지 마라. 그럴 수 없어. 타고난 게 다르니까. 하지만 하나는, 단 하나만은 넘어설 수 있겠지. 그걸 찾아.”
형은 가혹했다.
기남은 광익에게 호승심을 느꼈다.
혼혈 따위라는 생각은 없다.
처음에는 고작 혼혈에게 밀리는 걸 인정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광익을 보고 누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기남은 각오를 다졌다.
시간이 지나고 광익이 회사를 떠나고 자신이 NS에 입사하고.
기남은 정진해야 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따라잡기는커녕 더 뒤로 밀리지 않도록.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쉬는 날에 그는 형에게도 말하지 않고 본가를 찾았다.
“가문에서 찾을 때는 오지 않더니, 이제 와서 찾아와?”
가주의 시선이 날카롭다. 말투에 날이 섰다.
순혈 정가와 광익의 관계는 우호적이지 않다.
최근에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정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런 광익이 세운 회사에 입사한 자신이다.
순혈 정가에 돌아오란 요청도 있었지만,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하물며 며칠 전 형이 본가를 뒤집어엎었다.
“이대로면 망합니다. 버릴 건 버리고 쳐 낼 건 쳐 내야 합니다.”
정호남, 형은 앉지도 않고 말했다.
“무엇을?”
“뒤에서 수작 부리는 것들과 연을 끊으십시오.”
가주는 코웃음을 쳤다.
“증거도 없이 날 죄인으로 몰겠다?”
이미 몰락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선 순혈 정가다.
다만, 부자는 망해도 삼 대가 간다는 말처럼 여력이 남았을 뿐.
형은 그 여력의 기둥 중 몇 개를 자르란 소리를 뱉었다.
테러 집단, 비정규 범죄 조직들, 미친 과학자 무리.
그들은 정가의 수입원 중 하나였다.
“명령이 아니고 부탁입니다. 아버지.”
“가주라고 불러라.”
구시대의 명예에 묶인 망령이다.
과거에 사로잡힌 꼰대다.
가주는 그리 변했다.
예전의 가주는 이렇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피를 쏟아 내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기남도 안다. 호남이 하려는 게 무엇인지.
형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가문을 움직이고 싶으냐? 그럼 가주 자리를 꿰차야지? 어디 내 목에 목줄을 채워 바닷속에 떨어뜨려 보아라. 내 죽지 않고 돌아와 네 목을 물어 뜯어 줄 테니.”
가주는 눈에 핏발이 선 채로 말했다. 여유가 없어졌음이 눈에 보였다.
굳이 속내를 파악하려 하지 않아도 전부 보였다.
그런 가주다.
“비기, 비전 가문에서 가지고 있던 걸 배우고 싶습니다.”
“……빚이라도 받으러 온 놈 같구나.”
“그건 아니지만.”
기남은 말을 고르려다가 관뒀다.
“한 번, 딱 한 번은 세최특이 뭘 해도 가문의 편에 서겠습니다.”
거래에는 대가가 따른다. 기남은 나아가기 위해 자신의 미래 일부를 팔았다.
가주는 성을 내려다가 누군가 제 팔뚝을 잡자 멈췄다.
정수라다.
가문의 위기 속에 제 능력을 개화한 불멸자. 그 일로 결국 가주 곁에 선 ‘한 치 앞의 예언자’라는 별명의 불멸자다.
광익이 자식을 구해 줬던 불멸자이기도 했다.
“가주.”
그녀가 가주를 막아섰다.
냉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과거 유광익이 불멸특수대원이었다면,
지금 그는 NS의 대표였으며,
세최특이었고,
청기사 슬레이어다.
그럼 정기남은?
‘둘은 친밀하지.’
정수라는 유광익을 바로 곁에서 지켜봤다.
겉으로 보면 마냥 미친놈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사람을 아껴.’
그것도 많이 아낀다. 기남의 현재 포지션은 광익의 친구쯤이다.
정수라는 그렇게 판단했다.
기남이 가문을 위해 힘쓴다면 광익이 그걸 놔 둘까?
정수라는 계산이 빨랐다.
그녀는 가주의 귀에 속삭였다.
불멸자이므로 아주 작게, 가주만 들을 정도로.
속삭임을 들은 가주는 무표정했다.
그는 몇 번 입을 달싹이다가 멈췄다.
그리고는 한참을 기남을 노려보다가 말했다.
“좋다. 다만, 배우는 놈의 재능이 부족한 건 내 탓이 아닐 거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합니다.”
가르치되, 배우지 못하는 걸 탓할 순 없다.
기남은 어설픈 각오로 이 자리에 선 게 아니었다.
제 생각이 먹힌 게 기쁘지만도 않았다.
이동훈의 아이디어였다.
이걸 위해 동훈에게 거금을 쥐여 줬고.
상담을 원했더니, 상담료를 받는 사람이라니.
‘그쪽도 상당히 미쳤어.’
불멸특수대 시절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이게 다 유광익 새끼 때문이다.
방귀나 뀌는 냄새 나는 새끼.
불멸특수대 오리엔테이션은 그의 뇌리에 각인된 시간이다.
그러므로 유광익은 방귀쟁이고.
생각을 이어가다 멋대로 혀가 움직였다.
“새엄마라도 된 겁니까?”
기남은 자기도 모르게 농담 비슷한 말을 뱉었다.
정수라와 가주를 향해서다.
“……반쯤 정신이 나간 거냐?”
가주가 답했다.
그 말에 기남은 반성했다.
농담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분위기가 개판이었다.
“도발이냐?”
가주가 다시 물었다.
“실언입니다.”
‘방귀쟁이나 할 말을 내가 왜.’
기남은 과거 가주와의 악연이 영향을 끼쳤기에 자기도 모르게 도발에 가까운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자기합리화다.
기남은 자기도 광익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걸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