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한정직
“가서 깽판 좀 부려 볼래?”
작전 초안은 우미호가 짰다.
우미호는 경력직 사원이자 불멸자.
한정직은 그 말에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네.”
그는 순순히 답했다.
정기남이란 작자도 평범함이랑은 거리가 멀지만, 이쪽은 정말 살벌했다.
가치가 없다 싶으면 당장이라도 내칠 것 같은 눈빛으로 사람을 보는데.
꿈에 나올까 무서운 눈빛이었다.
“미호야. 너 왜 그래? 깽판 치는 거, 내가 더 잘할 수 있어. 쟤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미친놈.’
정직은 속마음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험한 세상을 살며 터득한 포커페이스는 어지간하면 흐트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에 이 작자를 봤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방귀태.
차갑고 쿨한 불멸자의 인상을 단숨에 바꿔 준 장본인이다.
“내가 얘보다 못한 게 뭔데, 내가 부족한 게 뭔데.”
멜로 드라마 주인공 납셨네.
저 미친 방귀태는 오늘도 미쳤다.
일상이었다.
“네가 이해해라. 저 인간이 좀 그래.”
김요한이 옆으로 바짝 붙었다. 이 양반도 요주의 인물이다.
방심하면 사람을 지옥으로 몰고 간다.
옆에 계속 붙어서 답답한 속을 긁어 주기에 툭 하고, 대표에 관한 얘기를 슬쩍 흘린 적 있었다.
방심했었다.
보통이라면 하지 않을 얘기를 흘렸는데.
“정직아. 형이 너한테 악감정이 있다고?”
광익이 자신을 찾아왔다.
전한 건 짧은 한마디였다.
대표와 훈련할 당시 자신한테 악감정이라도 품은 듯 사납게 몰아쳤었다고.
어디까지나 비유였다.
그리 보일 만큼 힘들었다는 표현이었는데.
“내가 악감정을 품으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 한번 같이 파헤쳐 볼까?”
그날 한정직은 특별 훈련을 시작했다.
“요새 기남이도 안 덤벼서 삼삼하던 참인데, 아침에 한 번씩 덤벼라.”
그 말대로 했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세 번 뵙고 왔다.
요단강은 검은 강물이더라.
“나쁜 사람은 아니야.”
요한이 옆에서 계속 말을 건다. 참 입이 싸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요새 고민은 없고?”
요한이 묻는다. 한정직은 신중하게 답했다.
“전혀요.”
이 양반한테 입 한 번 잘못 놀리면 나락이니까.
거듭된 훈련의 나날들이 있었다.
지옥과 다름없는 생활이었다.
“갱생 마녀라는 별명은 잊어. 오늘부터 난 염라대왕이니까.”
대표의 모친이 하는 말이다.
‘이 회사에는 왜 정상인이 없지?’
그러던 중 시작된 작전이다.
우미호의 말투는 차분했다. 낮은 톤의 목소리로 조곤조곤 작전에 관해 읊었다.
“암시장에서요? 히트맨의 타겟이 될 것 같은데요.”
암시장이 괜히 암시장인가.
여기저기 얽히고 설킨 게 많은 곳이다.
“응. 그러겠지.”
우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눈은 자신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시키며 하리라는 걸 알고 있다는 의미로 보였다.
‘나보고 지금 뒷골목의 왕한테 시비를 걸라는 건가?’
이거 진심인가?
그리 우미호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왜? 할 말 있어?”
우미호가 말한다. 정직은 더 말하지 않았다.
뒷골목의 왕.
범죄 그룹 따위에 속해 봤던, 그러니까 프리랜서 세계라 불리는 음지에서 뒷골목의 왕은 정말 왕이다.
암시장을 지배하는 사람이자, 음지의 경제 체계를 한 손에 쥔 인간.
마법사라느니, 늙어 죽지 않은 요물이라느니, 금발에 푸른 눈으로 변장을 한다느니, 말은 많지만, 그 정체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뒷골목의 왕이란 이름이 괜히 붙은 건 아니었다.
그와 적대하면 죽는다. 범죄자 사이에서는 오래된 격언과도 같았다.
왕의 반대편에 서지 말 것.
정직은 고민을 끝냈다.
깊게 고민할 거리는 아니었다.
‘대표랑 왕 중에 고르라면.’
그는 대표를 고를 것이다. 말 한마디면 나는 새도 떨어뜨릴 위세를 뿜어 올리는 게 지금의 대표다.
괜히 세최특, 청기사 슬레이어란 이름이 붙은 게 아니었다.
그가 시키면 하는 거다.
NS는 그런 회사다.
그렇게 그는 소음 시장 입구 한쪽에서 하얀 가루를 파는 사람을 상대로 일을 시작했다.
“순도가 개판으로 보이는데?”
“……이거 블런트 원료요. 순도를 눈으로만 보고 어떻게 안다고 그러지?”
“그냥 아는데.”
“안 살 거면 갈 길 가쇼. 괜히 뻗대다 다치지 말고.”
눈 밑이 퀭한, 누가 봐도 약 좀 해 본 얼굴이다.
정직의 특기는 무표정으로 상대의 심사를 뒤틀게 하는 거다.
“쓰레기 같은 걸 당당히 물건이라고 파는 꼴이라니, 돌아가신 네 어미가 울겠다. 양심도 팔아서 그 모양인가?”
패드립 한 번에 상대 안색이 변했다.
“머리가 돈 새끼구나.”
안색이 변한 상대가 열이 올랐는지, 품에서 칼을 꺼낸다.
칼이라니.
정직은 놀랐다.
암시장은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라 들었는데 고작 칼이라니.
정직도 품에서 제 무기를 꺼냈다.
탄창 슬라이드 위쪽에 레이저 포인트, 작은 광학 장비를 달아둔 ‘글록 34’다.
NS는 무기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청소부도, 사원에게도 방검방탄복을 지급하는 회사다.
방검방탄복을 꾸미는 사내 문화까지 생기는 판이었다.
빨간 점이 상대 이마 한가운데에 생겼다.
정직은 총구를 천천히 내렸다.
빨간 점은 미간을 지나 입술 바로 위에서 멈췄다.
“뒈질래?”
“어이,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냐? 대뜸 무기부터 꺼내면 좋을 거 없을 텐데.”
정직이 있는 곳은 노점 라인이다.
가루 장사꾼 바로 옆이다. 처음 보는 열매 같은 걸 파는 작자가 끼어들었다.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가정 교육 안 받았나?”
무표정, 차가운 말투로 서슴없이 상대를 욕한다. 정직은 특기를 발휘했다.
“……미친 새끼인가.”
열매 장사꾼이 어금니를 갈았다.
정직은 가볍게 왼발을 앞으로 디디며 몸을 움직였다. 왼발을 축으로 삼아 단숨에 열매 장사꾼 앞까지 몸의 무게 중심을 이동한 뒤, 오른발로 상대를 걷어찼다.
쩍.
쭈그려 앉아 있던 열매 장사꾼 얼굴과 정직의 발등이 만나 화음을 만들어 냈다.
미들킥 한 방에 열매 장사꾼이 옆으로 날아가 고꾸라졌다.
쿵- 하고 쓰러지자, 바닥에 깔린 열매가 옆으로 우수수 쏟아졌다.
다들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휘이익.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다.
싸움 구경은 언제나 재밌는 법이다.
그 와중에 쏟아진 열매 몇 개를 챙기는 놈도 몇 있었다.
암시장은 대부분 범죄자의 터전이니, 새삼 놀랄 광경은 아니었다.
총까지 꺼낸 싸움이 난 건 좀 다르겠지만.
칼을 든 놈이 얌전히 손을 올리고 침을 꼴딱 삼켰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가루 장사꾼 놈이 눈알을 굴리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거기, 지나쳐. 총은 집어넣고.”
지켜보던 암시장 가드가 나서는 걸 보더니, 슬그머니 손도 내렸다.
“넌 뒈졌다.”
가루 장사꾼이 까맣게 탈색된 앞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정직은 권총을 거꾸로 잡아 장사꾼 놈의 머리통을 깠다.
빡.
눈깔이 뒤집힌 놈이 모로 쓰러졌다. 바로 기절이다.
“야!”
경고에도 서슴없이 움직이는 정직을 본 가드가 외쳤다.
“뭐?”
태연히 답한 정직이 권총을 다시 쥐니, 가드도 무기를 꺼냈다.
가드는 서브 머신건을 들었다.
전신에 두른 건 방검방탄복.
어지간한 용병급의 복장인 거다.
숫자는 둘.
그래도 뭐, 크게 상관있나.
자신을 염라대왕이라 말하던 대표의 모친.
그 이전에는 불멸자 남자 선생도 있었다.
모든 훈련이 다 음경 같았다.
날이 좋든, 날이 좋지 않든, 날이 적당하든.
다 개 같았다.
그 나날들이 헛된 건 아니었다.
정직은 배운 걸 활용했다.
그는 총을 머리 위로 던졌다.
가드 둘이 당황한다.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위로 돌아가는 사이.
정직은 앞으로 내달렸다.
대단한 기술은 아니다.
던진 총에 시선을 뺏긴 사이, 거리를 좁히는 게 전부다.
머신건 총구 방향을 확인한 뒤, 둘 사이에 들어온 정직은 주먹과 발을 놀렸다.
한 놈의 턱을 갈겼고, 다른 놈은 불알을 걷어찼다.
방검방탄복은 검과 총탄에 쉬이 뚫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충격을 해소해 주지도 않는다.
최근에는 충격 해소 슈트도 나오는 판이지만.
어쨌든 이들이 입은 건 그런 종류가 아니었기에.
“꺽.”
“……끄.”
둘 다 거품을 물며 바닥에 허물어졌다.
탁.
머리 위로 날렸던 권총이 부드러운 호선을 끝내며 떨어진다. 그걸 잡아챈 정직은 목을 좌우로 꺾었다.
“또 아니꼬운 사람?”
“오, 저 새끼 좀 치네?”
“여기 암시장이야. 친구야. 괜찮겠어?”
구경하는 무리 사이에서 목소리가 나온다. 정직은 그중 한 명의 이마에 빨간 점을 멈췄다.
“그래서 어쩌라고?”
작정하고 하는 행패다.
“이런 걸 파니까 이 시장 수준이 개판인 거야.”
한마디 하고.
“뒷골목의 왕인지 병신인지, 나오라고 해. 사장 나오라고 해.”
두 마디 더하고.
효과는 충분했다.
반 시간도 지나지 않아, 뒷골목의 왕이 보낸 이가 도착했다.
말쑥한 인상의 남자다. 그가 정직 앞에 마주 섰다.
거리는 고작 열 발자국 내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난 필승이다. 내 이름이 왜 필승인 줄 아냐?”
“어머니가 지어 주셔서.”
짧은 침묵이 흐른다.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심장에 꽂힐 것 같은 차가움이다.
정직은 자신의 지난날이 헛되지 않았음을 새삼 또 깨달았다.
미친 인간들 사이에서 견디다 보니, 이런 대꾸도 가능해졌다.
“……틀린 말은 아닌데.”
구경꾼 중 하나가 읊조렸다.
“닥쳐.”
필승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는 곧 정직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반드시 이겨서 필승이다. 새끼야.”
정직은 얼굴 위로 홀로그램 마스크를 썼다.
그래도 표정은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서 어쩌라고?
표정을 읽은 필승이 덤볐다. 사납다. 짐승의 움직임을 닮았다.
곧 그의 등 뒤로 곰의 잔상이 떠올랐다. 반투명한 곰의 잔상이다.
필승이 손을 휘두르자, 곰의 잔상도 그와 같이 움직였다.
정직은 본능적으로 저 손톱이 물리적 실체를 가졌음을 깨달았다.
손톱이 몸을 덮치는 사이다.
정직의 몸은 빛에 휩싸였다.
누군가 그랬던가.
체력은 곧 정신력이며.
체력은 곧 회복력이며.
체력은 곧 초능력이라고.
염라대왕, 아니 대표 모친의 말이다.
그 말은 맞았다.
소음도 없다. 빛으로 변한 정직은 상대의 뒤를 잡았고, 광변환을 풀며 뒤통수를 때렸다.
빡.
근력 훈련이고 뭐고 간에 휴식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나날.
그 모든 게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지금의 정직은 광변환을 최소 10분은 유지할 수 있었다.
그걸 끊어서 활용할 수도 있는 건 당연했고.
처음에는 안 된다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는데.
“진짜? 그럼 해 볼까?”
염라대왕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다.
갑자기 구역질이 날 것 같아, 정직은 필요 이상으로 상대를 쥐어팼다.
빡, 뻑, 쩍.
주먹으로 까고 권총 손잡이로 때리고 발로 밟았다.
“꺽, 윽, 그, 그만.”
곰의 형상이 제 머리를 쥐고 움츠러들었다. 맞는 와중에도 인간과 동작을 같이했다. 꽤 신기한 광경이었다.
곰 형상은 맷집이 좋았다. 이리 맞고도 쉬이 기절하지 않았다.
놈이 코피를 질질 흘리자, 곰의 형상도 코피를 질질 흘렸다.
그렇게 몇 분간 구타를 이어 가니.
“씁.”
정직이 손만 들어도.
“잠깐, 잠깐만요.”
필승이 알아서 필사적으로 막으며 자세를 낮췄다.
정직이 검지와 중지를 핀 채로 손을 내밀었다.
“네?”
“눈치 없으면 맞는 거다.”
필승이 잽싸게 품에서 담배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세파에 찌든 정직은 흡연자가 되었다.
담배를 물자, 필승이 라이터를 꺼낸다. 전투 중에 깨진 라이터다.
“라이터 줘.”
필승은 필사적으로 주변을 돌아 라이터를 빌렸다.
칙.
담배 끄트머리에 불이 붙는다.
“쓰읍.”
정직은 한 입 크게 연기를 안에 품었다가 뱉으며 말했다.
“뒷골목의 왕인지 뭔지 하는 새끼, 오라고 해.”
진상 오브 더 진상.
그게 정직이 맡은 역할이다.
우미호는 암시장의 생태를 빨리 파악했다.
이곳을 굴리는 건 뒷골목의 왕.
질서를 확립한 건 무력.
그럼 답은 쉬웠다.
무력으로 지배한 곳이라면 무력으로 깨면 되는 거다.
다만, 왕이 숨으면 의미가 없으므로.
정직에게 홀로그램 마스크를 씌워 보냈다.
암시장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라 했다.
뒷골목의 왕을 치기 위해 세력을 만든 곳도 많다고 들었고.
정직은 훌륭한 연기자이기도 했다.
그 효과는 여실했다.
필승 이후, 다른 이들이 왔다.
이번에는 둘이었다.
커플인지, 손깍지를 끼고 들어온 남녀다.
남자가 정직을 보고 인상을 썼다.
“버릇없이 어디서 말썽이니?”
말투가 묘하게 거슬리는 친구였다.
여자는 대수롭지 않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구경났어? 다들 제자리로 가.”
이쪽은 뒷골목의 왕이 자랑하는 두 명의 마법사였다.
둘은 일단 구경꾼을 물렸다.
“우리 얘기 좀 할까?”
“조용한 데서.”
둘이 번갈아 말한다.
정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둘은 지하에서도 으슥한 골목에 섰다.
“뭐?”
“여기서 죽으면 되겠다. 꼬맹아.”
여자 쪽이 말했다.
남자와 여자 둘 다 동시에 주문 따위를 발한다.
우미호가 정직을 이곳에 보낸 건 괜한 이유가 아니다.
연기를 잘해서? 그것도 이유가 되지만.
기본적으로 마법 상성에 이보다 더 적합한 이는 없었으니까.
광변환은 모든 공격을 투과한다. 그게 물리적인 공격이든.
마법적인 공격이든.
남녀 커플은 ‘죽을 때까지 상대를 쫓는 화살’을 만들었고.
정직은 광변환 이후에 달려들었다.
마법사의 신체 능력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지옥 훈련을 견뎌 낸 정직은 아니다. 그는 어지간한 특수 요원 뺨을 후릴 정도로 튼튼해졌다.
빡, 빡.
마법사 커플도 바닥에 드러눕는다.
정직은 다시 나왔다.
그리고 다시 개진상이 되었다.
“여기 사장 누구야? 손님한테 이래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