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세 번째 사업
혜민을 오랫동안 추적해 온 건, 주문 사냥꾼 집단이자 현상금 사냥꾼 집단인 스위퍼였다.
스위퍼는 현상금 사냥꾼 무리까지 운용하는 곳으로 어둠의 세계에서는 불멸교에 버금가는 집단이었다.
테러를 일삼는 대신, 의뢰를 받아 움직인다는 점이 테러 단체와 다른 점이었고.
현재 스위퍼 아시아 지부장을 맡은 건, 폴 레츠.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서양인이다.
그는 이쪽 지부를 맡고서 가장 큰 난관에 봉착했다.
‘꼬리를 잡았다 싶었더니.’
흔히 말하길, 양지의 마법 연맹을 4대 연맹이라 부른다.
유럽의 일루미나티.
미국의 갤럭시.
러시아의 싸우는 시인.
아시아의 써클.
이렇게 넷이다.
다들 쉬쉬하지만, 강혜민과 그 모친을 잡아 오는 건 연맹의 의뢰였다.
폴 레츠가 아시아 지부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긴 했지만, 그조차도 네 곳 중 어떤 곳이 나섰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그 네 곳이 전부 내숭쟁이라는 건 안다.
수틀리면 발 뺄 생각으로 절대 제 정체를 시인하지 않겠지.
아시아 지부장 정도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추측도 어렵다.
다만, 폴도 아는 게 있었다.
가령 강혜민의 스펠 유저로서의 재능이 특출난 존재라는 걸 안다.
오랫동안 쫓아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목표물의 코드명 스펠 암스.
여기에 연맹이 무식한 수준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스펠 기어를 가진 것도 안다.
고로 스펠 암스가 필요한 건, 연맹이 지닌 특별한 스펠 기어 활용을 위해서였다.
일반 스펠 유저가 연맹이 숨겨 둔 그 스펠 기어를 쓰면, 시동도 못 켜고 마나 고갈에 빠져 말라 죽는다.
폴은 연맹이 인위적인 실험도 감행했음을 안다.
그의 자리는 알음알음 들려오는 정보를 취합하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클론 형태로 스펠 유저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들었다.
물론 몽땅 실패였다.
클론을 만드는 데 들어간 돈만 해도 번화가 빌딩 몇 채다.
그나마 도중에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멈춰서 그 정도지, 아니었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자되었을 거다.
‘그게 성공했다면 스펠 유저 육성에 연연하지도 않을 거고.’
지금 연맹은 더 뛰어난 스펠 유저 육성을 위해 투자 비율을 높이고 있다. 약물과 훈련을 병행해 스펠 유저를 만드는 거다.
그가 아는 건 이 정도 수준이었고.
지금 난감함을 느끼는 이유는 의뢰 실패 때문이었다.
틱.
그는 제 금발을 손으로 빗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걸 어쩐다.’
놔두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호구 잡히는 기분도 든다.
제 소속 마법사 다섯도 당하지 않았나.
작전은 실패했으며, 부산에서 준비하던 사업체에도 타격을 입었다.
보통이라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이걸 그냥 넘기면 호구가 된다.
이 바닥에서 호구가 된다는 건, 먹잇감이 되겠다고 광고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잡자니.
‘이건 뭐, 엄두가 안 나네.’
유능한 마법사가 부산에서 실패한 작전의 뒤처리를 맡았다.
그 와중에 별 이상한 초능 특수종도 하나 주워 왔고.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머리털 없는 초능 특수종의 목격담도 있었고.
결론은 이거다.
세최특, 청기사 슬레이어에게 저주가 안 먹힌다는 것.
‘괴물이네.’
마법사로서, 어둠의 세계에서 활약해 온 긴 시간 동안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찔한데.’
판단이 어렵다. 상관없었다. 어쨌든 결정은 자신이 아닌, 상부의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상부측에서 화상 통화를 요청했다.
마법사이니만큼 수경(水鏡)으로 연락도 가능하긴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서로 얼굴 보고 통화할 수 있는 시대에 수경은 무슨.
쓸데없는 마력 낭비다.
“잘 지냈고?”
화상 통화지만, 상대 얼굴은 어둠에 가려져 있다.
뭐 하는 새끼일까?
가끔 궁금하기도 하지만, 스위퍼는 윗선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다.
알아내려고 발악하다가는 골로 간다. 전임자가 그렇게 강을 건넜다.
폴은 묵묵히 있었던 일과 제 추측을 읊었다.
침묵 끝에 스위퍼 총괄 지부장이 말했다.
“포기.”
“연맹이 지랄하지 않겠습니까?”
“지랄하라고 해요. 아쉬우면 지들이 잡든가. 지금 청기사 슬레이어는 못 건드립니다.”
그렇게 됐다.
폴은 묵묵히 휘하에 있는 이들에게 말을 전했다.
어지간하면 NS는 건드리지 말라고.
그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특수종 전쟁 전후.
불멸자는 올드 포스와 함께하고.
변신족은 엑스큐라시와 손을 잡고.
초능 특수종은 협회를 설립했다.
그 시점에 마법사는 음지에 숨는 걸 택했다.
음지란 게 어디겠나.
도시의 뒷골목, 범죄자의 쉼터.
인간과 특수종이 싸운 특수종 전쟁 이후 마법사의 터전은 그런 곳들이었다.
스위퍼는 그중에서도 황금알을 낳는 오리 하나를 지녔다.
암시장이다.
세계 암시장의 80% 이상을 스위퍼가 관리한다.
물론 그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폴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시아 지부장이자, 현재 한국 암시장의 배후, 뒷골목의 왕으로.
‘간신히 살았네.’
사실 끔찍했다.
저주를 튕겨 내는 혼혈 특수종이자 네임드와 맞상대하는 괴물이라니.
상대하기 껄끄럽다고 하기에는 뭔가 수준을 확 넘어서지 않았나.
또 의외라는 생각도 들긴 했다.
스위퍼가 연맹의 의뢰고 뭐고 간에 유광익은 피해 간다는 거다.
‘생전 처음이지.’
이런 경험은.
현장에서 데려온 초능 특수종이 약점 운운하지만, 그걸 쓸 일은 없을 터였다.
어쨌든 난감한 상황 하나는 지나갔다.
강혜민을 계속 노리면 그 유광익을 상대로 싸웠어야 했으므로.
안도감이 들었다. 되도록 평생 마주할 일이 없었으면 했다.
‘가늘고 길게 가자.’
폴은 지금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괜한 도전 정신으로 이 자리를 위태롭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리고 이틀 뒤.
폴은 기묘한 일이 시장에서 일어나는 걸 느꼈다.
그건 마법사로서의 직감이기도 했다.
시작은 웬 진상 때문이었다.
“보스, 어떤 미친놈이 요 며칠 자꾸 말썽을 피우는데요.”
“그래서?”
폴은 의문을 표했다.
그걸 자신한테 말해서 뭐 한다고?
보통 다 알아서 처리한다. 죽이는 일도 다반사고 반쯤 병신을 만들어 내보내기도 한다.
정신을 헤집어 기억을 지우기도 하고.
수단은 많다.
“그게 진상 새끼가 좀 사나워서. 사람 좀 빌려 주십쇼.”
암시장을 관리하는 부하 중 하나의 요청이다.
“필승아. 갔다 와라.”
폴은 한국 요원 하나를 파견했다.
* * *
암시장의 형태, 규모, 판도.
이 모든 걸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남대문 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칼국수 파는 무슨 가게 쪽으로 비밀 문이 있단다.
그 안에 들어서면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있다.
흔히 불리는 이름은 소음 시장(Noise market).
서울에 있는 암시장의 이름이었다.
바로 옆에 지하철이 지나서 시끄러워 붙은 이름이었고.
출입 증표가 필요했지만, 문제는 없었다.
“몇 개 줄까?”
혜민이 모친께서는 암시장 VIP였다.
위장 신분으로 가지고 있는 출입 증표만 세 개다.
우지호, 그러니까 우미호의 동생을 구하려면 두 개의 물건이 필요했다.
하나는 홍염의 비늘.
둘은 성인의 심장(Heart Of Saint).
하여간 우미호부터 시작해서 돈 많이 드는 남매다.
보통의 비즈니스 마인드로 보자면 투자 가치가 현저히 낮지만.
내가 보는 가치는 좀 다르니까.
예전에 중고 형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을 제 편으로 만들려면 그 사람의 약점을 쥐라고.
편리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근데 좀 치사하긴 하지.
마음에 틱틱 걸리는 것도 많다. 일단 약점을 잡아 내 편으로 만들어 뒀다 쳐도, 나중에 그 약점이 사라지면?
내 등판에 칼 꽂는 건 일도 아니겠지.
그러니 약점을 잡아 사람을 쓰는 건 별로다.
그보다 좋은 방법은 많다.
마음의 빚을 늘리면 된다.
문제라면, 성인의 심장이라는 게 흔한 물건이 아니며 아더 사이드의 보석도 아니라는 거다.
예전 유럽 등지에서 활동하던 로버트란 마법사가 있었다.
모든 마법사가 음지로 숨는 시절, 그는 세상을 떠돌았다.
그의 능력은 치유 쪽에 치우쳐 있었고.
꼬박 일 년, 대가 없이 사람을 치료한 덕에 그는 성인이라 불렸다.
그 덕분에 살아난 사람이 수천에 이르렀으니.
사람은 그를 추앙했다.
새로운 종교가 탄생할 뻔했다.
그러다 훌쩍 사라졌다.
말이 많았다. 죽었다느니, 그 치유 능력을 탐낸 단체에서 납치했다느니.
매드 사이언티스트 집단에 끌려갔다는 말도 종종 나왔다.
“사실은 죽었어. 누굴 고쳐 줬는데 역으로 찔려 죽었다고 하더라고. 허무한 마지막이었지.”
아줌마가 그리 말했다.
어지간한 클래스의 마법사라면 아는 루머라고 했다.
대부분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루머.
이 루머가 퍼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진정 성인이었다.
죽어 가면서까지 제 능력을 심장에 봉인한 거다.
그리해야 태어난 보석이 성인의 심장.
죽어 가던 그는 그걸 여덟 조각으로 나눴다.
그걸 차지하기 위해 암투가 오갔다.
스페인에서 시작된 작은 전쟁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유럽 전체가 요동쳤다.
그때 당시 음지에 숨어 있던 유럽 마법 연맹 일루미나티가 타격을 입어, 전력의 삼 분의 일을 잃기도 했고.
올드 포스, 엑스큐라시, 사이오닉 협회, 마법 연맹.
4파전으로 나뉜 보물 쟁탈은 그들의 예상을 다 뒤엎으며 끝났다.
몇 개는 누군가의 손아귀에 들어갔지만, 몇 개는 사라진 거다.
그중 마지막 하나를 지닌 도둑이 훔쳐 튀었고 도망간 곳이 일본이었는데.
잡아 놓고 보니 보물은 없고 도둑놈은 이미 죽은 뒤였다.
보물은 잃은 그들은 적당한 합의로 싸움을 끝냈다.
서로 흘린 피 때문에 잃은 게 더 많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대략 오 년 전쯤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일본까지 튀었던 도둑은 여자였는데 그 여자에게 애인이 있었다는 소리다.
고로 도둑은 한 쌍의 커플이었다는 거였고.
남자는 막판에 여자 뒤통수를 세차게 후리고 한국에 숨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실상 그 보물은 한국 암시장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거라는 말.
하지만 찾은 사람은 없다.
한동안 난리를 치며 암시장이 발칵 뒤집힐 뻔했지만, 보물을 찾은 사람은 없다.
그럼 진짜 성인의 심장이 없을까?
“있을걸. 뒷골목의 왕이라는 놈 아주 능구렁이거든, 그놈은 알지도 몰라.”
여기까지 들었을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암시장.
딱 좋지 않나.
NS의 다음 사업으로.
NS의 첫 번째 사업은 무역 사업이었다.
그건 알의 나라, 초능국 에르자루드에서 수입하는 물건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독점 체제라, 벌어들이는 돈이 꽤 된다.
거기서 버는 돈은 인건비로 쓰면 딱 맞았다.
이후 NS의 두 번째 사업은 판독기 제조였다.
이쪽도 독점이다.
어쩌다 보니 독점만 두 개다.
여기서 버는 돈도 상당하다. 중고형 말대로 돈방석에 앉는 일이긴 한데.
돈 들어갈 곳이 어디 한두 군데라야지.
직원들 복지 챙겨, 그 와중에 필요한 거 축적도 해야 한다.
연구비는 또 얼마나 많이 드나.
강푸름 하나만 혼자서 월에 몇억을 태운다.
강혜민의 모친께서도 만만치 않다. 주문 연구한다고 이쪽도 월 10억은 넘게 쓴다.
우리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훈련에 필요하다고 하면 거침없이 산다.
“기왕 버는 거 잘 쓰면 좋잖니.”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방법도 있다지만, 있으면 또 있는 대로 쓰는 게 어머니 마인드였다.
괜히 재벌가의 딸이 아니었다.
돈 제대로 쓸 줄 아는 분이다.
아버지도 마찬가지.
“아카 하나 있으니 이리 듬직할 줄은 몰랐다.”
아들 카드를 쓰는 데 심취하셨다.
팬더 형도 마찬가지.
피규어에 진심을 담기 시작했다.
그거 실험체 애들 돌보는 거 숨기려고 시작한 일 아니었나?
요즘에는 그쪽에 진심 같단 말이지.
다들 마찬가지다.
애초에 난 비리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장난질만 안 한다면,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고정비가 살벌하지.
사기 노름 호구로 잡혀도 이 정도로 돈을 쓰진 않을 거다.
이런 타이밍에 튀어나온 게 암시장이다.
그거 꿀꺽하면 어떨까?
이 일 때문에 암시장의 주인이 나한테 원한을 가질까?
고민할 것도 없었다.
이미 적은 많다. 적이 몇 놈 더 늘어난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다.
그래서 결정했다.
기왕 성인의 보석을 찾기로 한 거.
“암시장 우리가 먹죠.”
사업 확장을 꾀하기로.
고로 NS의 세 번째 사업은 암시장 확보로 정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