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 고쳐 줘 (2)
우미호는 부모가 없었다. 세상에 남은 건 우미호와 우지호, 단둘뿐.
우미호의 동생이 이렇게 된 과정이나 이유 따위는 모른다.
걔가 뭐 제 사정을 일일이 읊는 애도 아니고.
보육원 살다가 나왔고,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왔겠지 뭐.
내가 알 바는 아니다.
내가 할 일은 우미호의 과거를 캐는 게 아니라, 지금의 우미호가 멀쩡히 회사 일에 집중하게 하는 거다.
“어때요?”
난 우지호를 힐끗 보고 시선을 아줌마한테 돌리며 물었다.
“저주 맞아. 사위, 감 좋네?”
“사위 아니고요. 불멸자만큼 감 좋은 특수종은 없죠.”
사람이 아픈 이유는 많다.
질병, 육체 손상 등.
그런데, 그동안 몇억 단위를 태워 가며 치유사며 의사가 다녀갔는데 치료의 기미조차 안 보인다?
병명조차 모른다?
그럼 뭐겠나.
마법의 장난질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거지.
물론 우미호도 그동안 갖가지 수를 썼다고 들었다.
어쭙잖은 주문쟁이도 왔다 갔다는 소리다.
“나 아니면 진단도 안 됐을 거야.”
아줌마가 손끝으로 우지호의 팔뚝을 쓰다듬었다.
물에 젖었다가 마른 신문지 같은 피부다. 쓰다듬은 곳에서부터 가루 같은 게 부스스 흩어져 떨어졌다.
고위급 저주라는 거다.
어지간한 주문쟁이라면 눈치도 못 채는 질병 형태의 저주.
“몸 안에 있는 벌레가 생명력을 갉아먹는 형태고, 숙주가 살아 있는 한 벌레는 끊임없이 생성되는 거지. 지독해. 대강 어디서 이리됐는지도 알겠고.”
“돈을 들여 계속 영양을 공급하면 살긴 살겠네요.”
현대의 의학은 아더 사이드를 만나 놀랍게 발전했다.
조루와 탈모를 잡은 건 부가적인 일이다.
이제 병원에 도착해서 생명 유지 장치만 달면,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다.
“한계는 명확해. 간신히 버티는 수준이야.”
아줌마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얼마나 남았어요?”
“길어야 육 개월.”
시한부다.
그래 보였다. 삐쩍 곯은 팔뚝, 쏙 들어간 볼을 봐라. 손가락으로 찌르면 푹- 하고 그대로 구멍이라도 날 것 같았다.
이게 사람인가 미라인가 싶다.
“용케 살려 뒀어.”
아줌마가 말했다. 말투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이 미라는 우미호의 노력의 결정체였다.
죽었어야 할 아이를 살려 둔 거다.
용케 살려 뒀다는 말이 나한테는 육 개월 안에 고위급 저주를 풀어야 한다는 소리로 들렸다.
“해제 방법은 알고요?”
“알긴 아는데.”
말끝을 흐린다. 걸리는 게 있다는 거다.
눈으로 재촉하자, 아줌마가 마저 말했다.
“돈이 많이 들어.”
돈이야 뭐.
“거기다 구하기 힘든 재료도 몇 개 필요하고. 권력도 필요하다는 거지.”
“돌아가서 얘기하죠. 사람 오네요.”
난 여길 몰래 들어왔다.
치료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른다. 희망 고문은 필요 없으니, 아직 우미호에게 알릴 생각은 없었다.
난 기척을 죽여서 문 뒤로 숨었고.
아줌마는 투명화 주문 스크롤을 썼다.
간호사가 들어오는 걸 보며 우리 둘은 그대로 병원을 빠져나갔다.
* * *
딱.
불멸자의 전투라는 게 그렇다.
작은 기척과 소리에도 몸이 절로 반응한다.
물론 그사이에 수 싸움이 오갈 수 있다.
기척 속이기와 기척 돌리기는 그런 과정에서 태어난 비전이었다.
정유나, 피닉스팀의 홍일점이다.
이 누나는 기척 속이기를 미치도록 잘 썼다.
속이고 또 속이고 또 속인다. 작은 손짓에도 속임수를 섞었다.
조금 전에 들린 딱- 소리는 속이는 과정의 일환이었다.
어지간하면 속지 않으니, 과감하게 손가락을 튕긴 거다.
무언가가 날아오는 기척을 느낀 난 반사적으로 팔을 들었지만, 날아오는 건 없다.
반대로 나도 기척을 속이고 또 속인다. 이 모든 과정에서 서로의 몸에 손이 닿는 일은 없다.
섬세함을 살린 속임수의 향연, 그런 대련이었다.
그리고 난 이 과정에서 어느새 이 누나와 친해져 버렸다.
“금세 또 훔쳐 배우네.”
유나 누나가 기척 질을 멈추고 말했다.
“훔쳐 배운 게 아니라, 보다 보니까 자연히 되는 건데요.”
“와, 너 되게 재수 없다.”
해맑은 얼굴로 저리 말하는 것도 재주다.
“진짜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너 진짜 진심 재수 없어.”
덧붙여 말하지 않아도 알겠는데 말이지.
유나 누나는 열정이 돋보이는 사람이다. 말 한마디에도 진심을 담았다.
뭐, 말하는 건 좀 이상해도 드문 능력자다. 기척 속이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양반이니.
피닉스 팀원은 전부 한 가닥씩 재주가 있었다.
눈앞에 있는 유나 누나는 기척 속이기 기예를 특별히 잘 썼고.
늙은 불멸자 하나는 의안을 심었는데, 그 의안이 스펠 기어란다.
나도 몸에 기생 라이플을 갖고 있지만, 이건 떨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푸름이가 떼서 가져갔고.
하지만 그 의안은 몸에 이식한 거였다.
주문을 꿰뚫어 보는 눈이라고 들었다.
아버지는 사이오닉 기어를 다루는 데 능숙하신데, 그건 또 내가 삼촌이라고 부를 만한 불멸자의 특기였다.
태어날 때부터 사이오닉 에너지를 품고 태어났다고 했던가.
딱히 발현된 초능은 없었는데 불멸로 각성.
이후 사이오닉 에너지를 쓰는 불멸자가 됐단다.
더 특이한 사람도 있었다.
나보다 열 살 많다고 했던가.
형이라고 부르며 처음부터 친근하게 다가오던 사람.
그 사람은 박자가 독특하다.
특기가 근접전이라고 하던데.
같이 어울리다 보면 조금씩 내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재주를 지녔다.
어떻게 하냐는 거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두 번 겨뤄 보고 배웠다.
엇박자의 달인이었다.
심각한 박치라고 했다.
기척 돌리기를 주로 쓰고, 그러다 보면 상대가 멋대로 발이 꼬인다고 하면서 킥킥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다들 처음부터 이런 재주를 지닌 건 아니었다.
각자 특징에 맞게 훈련했다. 피를 토하는 과정이 있었을 거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 훈련의 성과가 이거다.
단련된 재주, 이 정도면 초능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너처럼 깨끗한 불멸자는 흔치 않아. 버릇이란 게 없어.”
처음 날 마주했을 때, 유나 누나가 한 말이다.
버릇이 없기에 깨끗하게 기예를 쓰지만, 너무 깨끗하면 오히려 상대에게 읽히기 쉽다는 말도 들었다.
“너무 깨끗한 건 단점이야.”
나한테 이렇게 말한 사람은 누나가 처음은 아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한 번씩 짚고 넘어갔다.
작대기 선생이랑 통나무 선생도 한 말이고.
그나저나 그 두 명은 둘이서 살림을 차렸나. 연락 한 번이 없다.
걱정하진 않았다. 어련히 잘 알아서 살고 있겠지.
하여간 피닉스 팀원은 한 명 한 명이 전부 독특하다.
거기에 기척 죽이기 수준은 전원이 불멸교 암살자 뺨을 후리다 못해 주먹으로 내갈기는 수준으로 익혔으니.
괜히 세계를 통틀어 손꼽히는 불멸특수대 팀이 아닌 거다.
“어제는 어디 갔었니?”
피닉스 팀원과 훈련을 째고 우미호 동생을 보러 간 게 어제다.
“병문안이요.”
“누가 아파?”
“아는 애 동생이요.”
“많이 아프니?”
음. 많이 아프죠.
‘갈취의 저주’라고 했다.
혜민이 어머니는 숨어 지낼 때 무당으로 활동하기도 했단다.
어지간한 저주는 손품을 많이 팔지 않아도 금세 고치니까.
연기력만 받쳐 주면 무당으로 돈 버는 건 꽤 쉬운 일이라고.
다만, 너무 주목을 받기에 오래는 못 해 먹었다고 했다.
그때 고쳐 본 저주만 백 개가 넘었고, 그 경험이 이번에 큰 도움이 됐다는 말도 했다.
아줌마 말에 따르면 고치는 방법은 둘.
하나는 숙주를 태워 죽인다. 성화라 불리는 불로 벌레를 태우는 거다.
두 번째는 더미(Dummy)를 만드는 거다.
당연히도 죽일 생각은 없으니, 선택지는 두 번째 방법뿐인데 들어가는 재료가 꽤 까다롭다.
“불치병은 아니고요.”
방법이 있으면 불치는 아니다.
까다롭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도 없고.
“그래.”
유나 누나가 손으로 목을 훔치고 바닥에 털었다.
땀 몇 방울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기예만 겨룬다고 하지만, 정신력을 꽤 소모하는 일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뭐, 그렇다고 탈진해 쓰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잘 때는 잇헬을 입고 잔다. 처음에는 미라가 돼서 말라 죽는 악몽을 꾸기도 했지만, 익숙해지니 자면서 잇헬에게 에너지를 안 뺏기는 법을 익혔다.
누가 보면 또 괴물이라고 하려나.
“가세요.”
“간다.”
유나 누나가 가고 나서 나도 씻었다.
요즘은 기남이랑 혜민이를 붙여 놨더니, 오전에 따로 날 찾는 또라이가 없었다.
하지만 훈련이 끝날 이맘때쯤이면 항상 찾아오는 또라이가 있다.
훈련장을 나가는 길에 그 또라이와 마주쳤다.
일상이다.
“과아앙이이이익아아아.”
“오늘은 총각 귀신 코스프레야?”
어디서 맞고 다니는지 얼굴에 피로 범벅을 하고 다니네.
“총각 귀신이라니, 나한테는 미호가 있는데.”
열 번이 안 되면 천 번을 찍는 남자, 방귀태다.
“코피?”
“너의 모친께서 친히.”
까불다가 한 대 맞았을까? 아니면 훈련 과정의 일환이었을까?
이 사람이라면 둘 다 가능했다.
“피는 좀 닦고 오지?”
“코피 따위가 날 막을 수는 없지.”
이 형은 어째 상태가 점점 더 심해지냐.
“고쳐 줘.”
그리고는 대뜸 말한다.
“형의 정신 상태를?”
“지호.”
‘지호’라는 두 글자를 말할 때는 눈빛이 살아 있다.
더없이 진지했다.
피는 멎었지만, 코와 주둥이 전체에 케첩에 문대기라도 한 것처럼 피범벅이 아니었다면 봐 줄 만한 눈빛이었다.
그래, 안 그래도 그렇게 할 거긴 한데.
난 새삼 궁금했다. 정확히는 궁금한 게 두 가지였다.
“나한테 고쳐 달라고 하면 고쳐져?”
이게 하나.
“몰라. 하지만 시도는 해 봐야지.”
“근데 왜 나야?”
그걸 왜 묻냐는 눈빛으로 귀태 형이 날 바라본다.
“왜겠냐?”
“나한테 되물어?”
“요한 가라사대, 이 회사에서 제일 발 넓은 사람은 너. 요한 가라사대, 이 회사에서 제일 예민한 사람은 너. 요한 가라사대, 이 회사에서 제일 능력 있는 사람도 너.”
김요한, 이 새끼 짓이로구나.
극도의 예민함.
가끔 순혈의 불멸자는 그 어떤 의사보다 상대방의 상태를 파악해 내곤 한다.
하지만 나 말고 기남이도 있는데?
걔도 나만큼 예민하다. 육감의 눈만 없을 뿐이지.
“정기남한테 말하느니, 네 발가락을 핥는 게 빠르지.”
평소에는 눈치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지금 내 눈빛은 기가 차게 알아챈 귀태 형의 말이다.
“좋아. 그렇다고 치자.”
어차피 내가 할 일이긴 했다.
이미 우미호가 자기가 쓸 카드는 몽땅 써서 알아봤지만, 못 고친다면 남은 수가 몇 없긴 했다.
그 남은 수 중 하나가 나였고.
내 추측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져서 가능성을 본 것도 사실이고.
가끔 생각하는 건데 요한 가라사대는 상황을 파악하는 눈이 꽤 좋다.
정보를 분류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눈만 보자면 팬더 형과 우미호 못지않게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두 번째, 이런다고 우미호가 알아줘?”
“야, 말하지 마.”
“……알리지도 마? 나중에 말해서 빵 터트리게?”
“아, 하지 마. 걔 동생 얘기하는 거 싫어해. 내가 아는 것도 몰라. 그러니까 하지 마라.”
너 왜 진지하냐?
진정 사랑에 미친 남자인가.
그러니까 자신이 한 일을 알아주지 못하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여자가 힘들지 말라고 이렇게 한다고?
어머니의 지옥 갱생 훈련은 만만치 않다. 내가 그걸 제일 잘 안다.
체력 빼면 시체인 마리도 졸도하듯이 잠드는 걸 여러 번 봤다.
어머니가 불멸자라고 봐주면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귀태 형은 그런 훈련을 견디며 제대로 걷지도 못해 발을 질질 끌면서 밤에 날 찾아온다.
그런데 정작 이걸 알리지는 않겠단다.
하, 듣는 내가 소름이 돋는다.
이걸 감동해야 하나,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약속할 거지?”
정상인의 눈으로 날 보지 마라. 사랑에 미친 남자 방귀태.
“새끼손가락이라도 걸까?”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귀태 형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뭐가 들어 있겠나. 우미호가 들어 있겠지.
“그럽시다.”
손가락쯤 걸어 주면 어떤가.
이 남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정말 목숨 걸고 임하는 거다.
“그래서, 고쳐 줄 거야?”
다시 원점.
이리 날 찾아온 것도 보름이 넘었다.
이게 조른다고 될 일이 아닌 건 귀태 형도 안다.
하지만 지푸라기가 보였다면, 그 지푸라기가 형편없어 보인다 해도 일단 잡고 봐야 하는 거다.
그게 우미호 일이라면 방귀태는 그렇게 한다.
아까 말은 그렇게 했어도 기남이가 필요하면 기남이 새끼 스토킹을 해서라고 그렇게 할 거다.
“훈련했으니까 실전도 쌓아야지?”
귀태 형이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날 보기에.
“우지호 고칠 때 필요한 거야.”
“난 실전을 위해 태어난 남자지.”
내 말에 숨도 안 쉬고 귀태 형이 답한다. 이 정도면 거의 답변 기계 수준이다. 뇌를 거치지 않고 가슴으로 답한 거다.
오냐. 사랑에 미치고 실전을 위해 태어난 남자야. 잠이나 자러 갑시다.
저주를 고치기 데 필요한 건 두 개였다.
하나는 보석이다.
일반적인 보석은 아니었다.
아다만티움, 패러사이티움 등.
아더사이드에 광석이 있다면 보석도 있을 수 있었다.
필요한 건 아더 사이드의 보석이었다.
암시장에라도 팔면 사 오면 그만일 텐데.
아더 사이드의 보석이 어디 흔하게 나올 매물인가.
이름은 홍염(紅焰)의 비늘.
길쭉한 타원 형태의 보석으로 파충류의 비늘을 닮았으며, 빛을 비추지 않아도 보석 안쪽에서 계속 불길이 타오르듯 일렁이는 무언가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홍염의 비늘은 구하기 쉬운 편이지. 소유자가 누군지 정도는 어지간하면 다 알고 있거든.”
재료를 말하며 아줌마가 그 주인도 말해 줬다.
홍염의 비늘의 주인은 화림.
즉, 불멸특수대가 소유하고 있다.
화림은 실질적으로 정부 산하 단체이므로 압력을 넣으면 얻을 수 있을까?
아니다. 차라리 정부 국고에 있다면 줄 것이다.
정부 산하라곤 해도, 화림 소유물도 있다. 예전에 내 덕분에 시작된 화림의 험난한 보릿고개 시절에도 안 팔고 가지고 있던 보물이다.
남 사장이 과연 순순히 넘겨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르겠다. 일단 시도는 해 볼 일이다.
안 되면 뭐.
의적 홍길동이 납시는 거지.
작정하고 훔치고 오리발 작전으로 가는 거다.
얌전히 주면 그건 그때 생각해 보기로 하는 거고.
하기로 했으면 하는 거다.
사람 하나 구하다가 남 사장이랑 사이가 더 나빠져도.
상관 있나, 그게.
난 타인보다 내 사람이 더 중요하다.
인베이더와 싸우고 싶다는 내 욕구에는 내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것도 있다는 거다.
그리고 우미호는 지금 내 사람이다.
“난 실전에 미친 남자다.”
저 미친 방귀태도 그렇고.
홍염의 비늘이 내 첫 번째 타겟이었다.
실전은 두 번째 타겟과 관련된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