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 고쳐 줘 (1)
아는 얼굴이 셋이다.
도안결, 김운비, 정소진.
아니, 호응 삼촌까지 넷인가.
모르는 얼굴 하나까지 해서 총 다섯이었다.
육감의 눈.
주문길을 보게 되는 것 말고도 효용 가치가 높았다.
난 그걸 새삼 깨달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듯 다섯을 훑었는데도 전보다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도안결의 몸은 더 단단해졌다.
강체, 그에 따르는 비기를 연마했을 거다.
소진은 몸이 더 두꺼워졌다. 전보다 근육의 짜임새가 오밀조밀해졌음에도 두께가 늘었다는 건.
강슬혜 여사의 피가 괴력이라는 건, 단군 그룹에 괴력의 피가 흐른다는 것과 같으니.
그쪽 계열 비전으로 단련한 거다.
운비도 마찬가지다.
이쪽은 괴력, 강체와는 다른 방식인 것 같지만, 전보다 몇 배는 발전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들 엄청 열심히 살았구나.
마지막 하나는 수염이 난 아저씨였다.
“네가 청기사 슬레이어?”
수염 난 아저씨가 대뜸 손가락을 들어, 날 가리켰다.
“네, 뜻밖에 미남이죠?”
기다릴 것도 없이 내가 답했다.
“내 조카이기도 하지.”
어디 북극에서 캐 온 얼음덩이 같은 삼촌이 말했다.
수염 아저씨는 날 가리켰던 손가락을 접으며 제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거 참 만나서 영광…….”
말하는 사이, 수염 변신족 아재가 손목을 털었다.
핑.
코앞에서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화살이 날아왔다.
난 오른 검지와 엄지로 화살을 잡아챘다.
뚝 하고 멈춘 화살을 손끝에서 핑그르르 돌린 뒤, 입을 열었다.
“생긴 거랑 다르게 인사가 상큼하네요?”
“이걸 막아?”
수염 아재가 허탈한 소리를 토해 내고.
“더티 파이터, 박준이다.”
삼촌이 이어 소개했다.
“더티 파이터가 별명이에요?”
“싸움은 이기면 장땡이라는 게 내 지론이지.”
수염 아재가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독특한 변신족이었다.
거기에 어머니와도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초면에 얼굴에 화살 날리는 게 인사니? 오랜만이다. 준.”
“……누님,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셨죠?”
난 박준이란 사람이 어머니를 꺼린다고 느꼈다.
불멸자의 감각, 육감의 눈이 그걸 포착했다.
“화살이 인사냐고.”
“아니죠. 인사는 아니고. 미안하다. 하도 청기사 슬레이어니, 세최특이니 하니까 시험해 보고 싶어서.”
수염 아재가 고개를 숙였다. 정중한 사과였다.
“네, 괜찮습니다.”
난 혼혈, 변신족이며 불멸자다.
실제로 다쳤다고 해도 금세 나았을 거고.
불멸자이기에 다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괜히 ‘감각의 불멸’이라 불리는 게 아니지 않나.
이런 뜬금없는 공격에 당할 거라면 불멸교가 보낸 암살자가 이미 날 지지고 볶아 죽였을 것이다.
그나저나 요새 광신도 암살자 애들도 조용하네.
회사 밖을 안 나가서 못 쳐들어오나?
최근에 회사 외부보안이 더 단단해졌다.
정부 및 단군 그룹.
그 뒤로는 올드 포스와 엑스큐라시가 있다.
그 둘이 작정하고 ‘NS를 건드리면 조지겠다’ 말했으니.
암암리에 NS를 노리던 애들에게 경종을 울린 셈이다.
올드 포스와 엑스큐라시가 나서니, 덩달아 대외적 협력 관계인 마법사 연맹 몇 곳도 나섰다고 들었다.
뉴스에서 떠드는 내용은 아니지만, 나도 귀가 있다.
좀 늦어도 들을 건 다 듣는다.
그러고 보면 정보팀도 하나 있으면 좋긴 하겠는걸.
“재밌는 애들이네, 옛날보다는 많이 변했나 보다.”
어머니가 같이 온 변신족 무리를 눈으로 훑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누님.”
삼촌이 답하고 운비가 주춤거리다 팬이라고 읊조렸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나만 간신히 들을 정도였다.
난 그들을 지켜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보다 배울 게 많을 것 같다고.
변신하든 안 하든 싸우면 내가 이긴다. 길게 끌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배울 게 없는 건 아니었다.
변신 3대 비전.
강체, 괴력, 신속.
안결, 소진, 운비, 이 셋이 그 세 개의 비전을 대표하는 이들로 보였다.
그럼 뽑아먹을 게 있을 것이다.
다시 청기사와 비슷한 네임드와 싸우면 전과 같은 양상을 보이기 싫었다.
고로 이들의 방문은 즐거운 일이었다.
“가시죠?”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기에 난 변신족 무리를 이끌어 안으로 들어갔다.
이 날을 기점으로 훈련 과정에 변신족과의 대련도 섞었다.
즐거웠다. 참으로 즐거웠다.
“괴물.”
운비가 말했다. 신속을 장기로 삼는 놈보다 더 날래게 움직인 뒤에 들은 얘기다.
“나 혼자 자요.”
소진은 때려눕혔더니 헛소리를 뱉었다.
혜민이가 들었으면 갖가지 저주를 퍼부었을 소리다.
“다시.”
도안결은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이 자식은 변신족 사이에서도 냉랭한 성격으로 유명하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왜 나만 만나면 타오르기 바쁜 거냐?
“오늘은 그만이다.”
정기남만큼이나 활발한 친구였다.
훈련 곱하기 훈련의 시간이다.
몸을 혹사하는 일이기도 했다.
긍낙이 삼촌이 가져온 잇헬도 한몫했고.
“오늘도 열심히 항마력을 키워 볼까?”
혜민이 어머니는 날 향해 주문을 아끼지 않았다. 스펠 유저의 재능이 없다고 해도 주문 발동 자체가 무리인 건 아니다.
실시간으로 사용하는 게 문제지.
스펠 크리에이터도 시간만 있다면 주문을 능숙하게 쓸 수 있었다.
덕분에 난 보름 만에 몸에 항마력의 인을 새길 수 있었다.
“항마력 인이라는 건 그러니까, 백신 같은 거란다. 백신이 만능은 아니잖니? 하지만 죽을병에 걸리는 대신 조금 앓고 끝날 수는 있겠지? 그걸 위한 거라고 보면 된단다. 모든 주문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강도를 줄이거나 막아 주니까.”
항마력의 인을 새기는 과정은 쉬는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대신, 상대적으로 약한 위력의 주문을 몸에 걸고 버텨 내는 게 전부였다.
익숙해지면 조금 더 위험한 저주를 견뎌야 하지만, 할 만했다.
이후 마력으로 형성된 작은 흔적이 남는데, 이걸 항마력의 인이라 불렀다.
육안으로 보이는 건 아니고 마력 감지를 통해 보이는 그런 형태라고도 들었다.
청기사와 싸움은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자극뿐 아니라, 그 전투 자체로도 큰 재산이 됐다.
잘 때를 제외하고는 전투에 관한 아이디어가 쉼 없이 머리를 채울 지경이었으니.
그 와중에 업무 보고도 충실히 왔다.
“너 나한테 왜 이러냐? 원한이냐? 오해가 있다면 풀도록 하자.”
어머니 훈련 과정에 엮인 팬더 형의 전화였다.
“다 형을 위한 거예요.”
“아니야. 아니다. 이건 아니야.”
끊었다. 어머니가 알아서 잘하실 거다.
“난 불멸자야. 변신족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난 어머니의 갱생 코스가 뭔지 대강 안다. 그 과정의 험악함과 고됨도.
그게 우미호가 앓는 소리를 내게 할 줄은 몰랐지만.
“약한 모습 보이지 마라. 귀태가 보고 있다.”
전화를 또 끊었다.
다음은 요한 형이었다.
“난 인텔리 불멸자야. 전투가 장기가 아니…….”
다 안 듣고 끊었다.
어디서 개소리인가. 일 터지면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건 당연한 건데.
“나 방귀태, 이 정도로 내 사랑을 포기하지 않아.”
우리 귀태 형만 괜찮네.
“좋다. 방귀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면 천 번을 찍는 남자, 방귀태, 가라. 방귀태.”
그래서 응원의 메시지만 남겼다.
좋은 건 나누라고 했다. 난 그렇게 했고 좋은 걸 받은 이들도 그렇게 했다.
받은 훈련 강도를 적절히 조절해서 전사 직원에게 전투 훈련을 시켜버렸다.
아예 일 년 중 일정 기간을 훈련 기간으로 잡자는 의견도 나왔다.
물론 내가 낸 의견이다.
허락도 내가 했다.
고로 통보다.
덕분에 NS 전체에 곡소리가 났다.
외부에 재밌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고액 연봉을 원한다면 NS의 문을 두드려라. 그게 지옥의 문임을 잊지 말고.]
블라인드인지 뭔지에서 NS 직원인 걸 인증한 작자가 써 낸 말이 커뮤니티에 떠돌았다.
난 흡족했다. 지옥이든 뭐든 기본적으로 제 몸은 챙길 줄 알아야 하지 않나.
이런 와중에도 회사를 지원하는 이들은 늘면 늘었지, 줄진 않았다.
판독기 시장을 씹어먹어 버린 탓에 회사 이름이 드높아졌으니.
“연구하고 싶어?”
NS로.
“인정받고 싶어?”
NS로.
“전과가 있어?”
NS로.
와전된 소문이 몇 개 섞이긴 했다.
전과자 전부를 받는 건 아닌데 말이야.
개과천선의 여지가 있는 이들만 받았다.
사람이 늘어난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비정상적인 속도라는 말이 나왔다.
당연한 얘기라는 말도 같이 나왔다.
경제학자 둘이 NS를 두고 토론을 나누기도 했다.
“이건 당연한 겁니다. 왜냐고요? 버는 돈을 죄다 회사에 도로 투자하잖아요. 복지가 미쳐 돌아간다고요? 당연한 겁니다. 이미 그곳은 다른 회사와 달라요. 복지 왕국입니다.”
복지 왕국 NS.
입사 경쟁률이 단군 그룹을 넘어선 것도 순식간이었다.
회사 입지와 개인 훈련 성과.
난 두 개의 토끼를 잡는 중이었다.
* * *
우미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누군가 내장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구역질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꿀꺽.
반쯤 넘어온 토사물을 도로 삼켰다.
역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끄러억.”
옆에서 버티던 방귀태가 쓰러졌다.
자신을 지키느니 마느니 덤비다가 졸도했다.
조금 전 얻어맞은 배를 손으로 쓸며, 우미호는 몸의 중심을 잡았다.
중력 제어 훈련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훈련의 목적은 뭘까?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호, 우리 미호 맷집 좋구나. 마리야, 한 방 더.”
어둠이 내려앉는다. 시야가 흐려진다. 그 흐려진 시야 너머 팔짱을 낀 악마가 보였다.
갱생 마녀라 불리는 악마다.
그 악마의 수족이 주먹을 든다. 순진한 얼굴을 하지만, 그 순진함에 속아선 안 될 일이다.
“마리는 걱정이 돼요. 이러다 미호 언니가 죽을 것 같아요.”
“걔 불멸자야. 안 죽어. 동훈이는 변신족인데 엄마가 직접 때렸다? 근데 지금 멀쩡히 잘 살아서 걸어 다니지 않니?”
이동훈은 지금 저 구석에서 걸레짝처럼 쓰러져 있다.
갱생 마녀가 강체 비전을 익히게 해 준다는 핑계로 두들겨 팬 결과였다.
이곳은 악마 소굴일까?
유광익은 사실 악마의 자식이 아닐까?
광익의 모친은 훈련의 목적 따윈 알려 주지 않았지만, 우미호는 훈련 목적 따윈 금세 알았다.
‘체력의 한계는 정신력을 급속히 마모시킨다.’
대련이라 부르고 맷집 훈련이라고 봐야 옳을 변신족과의 대전 전, 근력 훈련부터 토악질이 나올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걸 견디지 못할 위인은 여기 없었다.
물론 시작하기 전 예외는 몇 있었다.
“전 차라리 형님이랑 하겠습니다!”
반쯤 울먹이는 정직이가 중간에 탈주를 시도하다가 잡히고.
“초능이 체력이랑 무슨 관계라고?”
로즈가 반항하긴 했지만.
“체력이 곧 초능이란다. 프로메테우스에서는 그런 것도 안 가르쳐 주니?”
씨알도 안 먹혔다.
“재생력도 체력.”
“공부도 체력.”
“사랑도 체력이 있어야 하는 거지.”
다 개소리다. 이 말에 감화되는 놈도 있긴 했지만.
“이 방귀태, 체력 빼면 시체!”
“좀 닥쳐라.”
옆에서 요한이 사색이 된 채로 귀태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는 알고 있는 거다.
동훈한테 들었을 것이다. 변신족의 전설인 갱생 마녀의 훈련이 절대 만만치 않다는걸.
“하죠.”
비약 인간 김정아는 서슴없이 훈련에 참여했다.
두 번 졸도하긴 했지만, 끝내 버틸 작정으로 보였다.
문제는 근력 훈련 이후다.
손가락이 달달 떨릴 정도로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데.
“대련 시작.”
거침없이 다음 스텝으로 나아간다.
그게 이 박마리의 샌드백이 되는 거였다.
무식한 주먹질이 이어진다.
긴 훈련이 끝난 뒤, 우미호는 널브러졌다.
아무리 괴로운 시간이라도 끝은 있는 법이다.
훈련의 끝나고 쪽잠을 자고 억지로 음식을 위장에 욱여넣은 우미호는 일과를 시작했다.
힘들다고 회사 일을 외면할 정도로 요령 좋게 살 순 없다.
그녀는 돈이 필요했다.
한 달에 들어가는 병원비만 천 단위가 넘는다.
악착같이 벌어야 했다.
동생의 숨결이라도 붙잡고 있으려면.
가끔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진다. 들어가는 돈은 계속 늘어난다. 새로운 치료법, 약물이 나올 때마다 전부 사용한다.
그래도 동생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다. 암흑이다. 우미호는 쉽게 미래를 그리지 않는다. 그녀의 미래는 블랙홀의 그것과 같으니까.
그게 그녀를 더없이 냉소적으로 만들기도 했으며.
“힘든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있다.”
옆에서 이리 다가서는 사람을 내치게 만들기도 했다.
“좀 꺼져.”
“난 불어도 꺼지지 않는 산불 같은 남자. 촛불이 아니기에 꺼지지 않지.”
방귀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걸 보는 우미호는 심장이 아팠다.
내쳐도 계속 다가오는 우직한 남자다.
그게 싫은지 묻는다면 단숨에 답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짐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진 않았다.
“재미없어.”
그저 차가운 말을 내뱉을 뿐.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일 뿐이다.
* * *
삐- 삐- 삐-
생명 유지 장치의 울림소리 외에는 조용한 병실이다.
1인실이 좋긴 좋다.
병실에 누운 남자가 보였다.
삐쩍 말라서 지금 일어나면 해골이 일어난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어때요?”
난 그 남자를 보다가 곁에 앉은 스펠 크리에이터에게 물었다.
딸의 재능 덕분에 가려졌지만, 이 사람도 타고난 재능 덩어리인 마법사다.
스펠 크리에이터, 김주희.
혜민이 엄마다.
눈을 감고 있던 아줌마가 눈을 떴다. 눈에서 파란 빛무리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게 보였다.
병원 침대에 누운 남자애가 나한테 중요한 사람은 아니다.
“고쳐 줘. 평생 돈 한 푼 안 받고 개처럼 일할 테니까.”
방귀태가 부탁했다. 뭐, 꼭 그 부탁이 아니어도 한 번은 확인해 볼 참이었다.
침상에 누운 남자애, 우미호의 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