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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294화 (294/488)

294. 돈방석에 앉는 거지

“세계를 통틀어 과연 청기사를 죽일 만한 특수종이 하나도 없을까?”

강노석은 뒷좌석에 몸을 기대더니 혼잣말에 가까운 말을 중얼거렸다.

“있겠지.”

운전대를 잡은 친구이자, 호위이자, 비서는 반사적으로 답했다.

“그래, 미국이든 어디든, 그런 인재 하나둘은 키울 거란 말이지. 그래, 그럴 거야. 당연한 일이야. 하물며 우리도 준비하던 게 있으니까.”

단독으로 상대하든, 다수로 상대하든, 네임드를 상대할 방법의 연구는 무수히 많았다.

그걸 실제로 써먹을 만큼 진행한 곳도 많고.

청기사를 상대로 단독으로 버텨? 놀랍다. 너무도 놀랍다. 대견하고 기특하다. 대단하다.

하지만 그게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가 눈독 들일 이유는 될 수 없다.

이유는 그 하나가 아니란 거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단 거고.

“그럼 왜 다들 침을 질질 흘리다 못해 발정 난 개처럼 달려들까?”

강노석의 오래된 버릇이었다.

그는 혼잣말에 가까운 질문을 통해 상황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모르지.”

비서는 영혼 없이 답했다.

회장의 태도가 겉으로 보기에야 매사 건성건성 처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보면 전혀 아니다.

강노석은 여우 중에서도 천재라 불릴 여우다.

비서는 그걸 안다.

“마법사를 상대했음에도 멀쩡하니까, 그래, 그것도 맞지. 요즘 특수종 업계에서 가장 말이 많이 나오는 게 저 골치 아픈 주문쟁이 놈들 이야기니까.”

특히 테러 집단과 손을 잡은 놈들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컸다.

주문 테러는 잡는 건 물론, 쫓기도 힘들다.

강노석은 눈은 감았지만, 입은 멈추지 않았다.

“스펠 기어 하나 없이 주문쟁이를 잡는 특수종.”

“청기사, 네임드와 맞상대가 가능한 전투력을 갖춘 특수종.”

겉으로 보이는 큰 이유는 두 가지다.

이 두 가지 외, 회장은 실상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쪽에 있다고 생각했다.

“회복력, 회복력이 남달라.”

미국이고 뭐고 다른 나라도 청기사를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광익이 한 건 흉내 낼 수조차 없을 것이다.

청기사를 죽이고 곧바로 마법사를 상대하러 뛰어가?

그 주문쟁이를 상대하고 돌아와서, 화색이 도는 얼굴로 각국 정상을 맞이해?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불멸과 변신 계열의 특수종이 쓴다는 브이 에너지는 생명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쓰고 나서 먹고 자면 회복되는 종류의 힘이 아니다.

체력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극한까지 다다르며 몸살이 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유광익은, 제 손자는 그런 과정이 없다.

뚝딱하고 나아 버린다. 불멸자의 재생력 덕분이라고?

아니지, 그럴 순 없지.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럼 불멸자가 지상 최강이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상, 추측할 수조차 없다.

그러니 다들 침을 흘리고 덤비는 거다.

자신조차도 다른 곳에 손자를 절대 뺏길 수 없다 다짐하지 않나.

엑스큐라시 본사, 글로벌 기업 연합에서도 의지가 굳건하다.

필요하다면 단군 그룹뿐 아니라 다른 그룹까지 나서서 확보하라고.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납치라도 하고 싶을 터였다.

납치? 그게 가능했다면 이미 NS 본사는 전쟁터가 됐겠지.

불가능하다.

암살자 수준은 불멸교가 가장 훌륭한데, 그들도 번번이 실패했다.

그렇다고 무력으로 제압하자니.

‘청기사를 상대하는 전투력이 흔한 것도 아니고.’

강노석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난놈이야.”

한마디로 결론 지었다.

“자금 지원은 안 해 주게?”

비서가 말했다. 이쪽도 바보가 아니다. 대충 NS가 가진 문제를 눈치챘다.

“그 정도에 꺾일 아이가 아니야.”

강 회장은 제 손자를 높게 봤다.

그의 안목은 정확했다.

광익은 생각이 있었다.

* * *

“야, 넌 진짜 회사 운영을 뭐라고 생각…….”

팬더 형이 뭐라 쏘아붙이려 하자, 우미호가 손으로 팬더 형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그럼 내 연봉은? 약속한 돈은?”

빚쟁이의 기분이 이럴 것 같았다.

맡겨 둔 돈을 주지 않으면 당장 날 족칠 기세다.

그럴 만도 했다.

우미호에게 돈은 제 동생의 목숨값이다. 신파 비슷한 스토리가 있다.

나도 안다. 그래서 이해도 한다.

우미호의 눈이 새파란 빛을 뿜는다. 기세가 남달랐다.

불멸자에게서 야생의 살기가 느껴진다.

그 서슬 퍼런 기세에 나도 맞섰다.

“내가 진짜 바보로 보여?”

이 인간 둘은 가끔, 아니 꽤 자주 날 머저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야?”

팬더 형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미친 곰탱이가.

“내가 바로 이 회사 대표라고.”

오른손 검지로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돈 먹는 하마.

정아 누나의 무기 이름이 떠오른다. 캐쉬 히포. 지금 NS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직원 중 몇몇은 이런 복지 구조가 가능하지 않다고 하고.

몇몇 커뮤니티에서도 그리 말했다.

나 개인의 업적과 회사 운영은 별개라고.

NS는 끝이 예견된 오만한 특수종이 세운 회사라고.

웃기는 소리다.

회사 운영을 잘하는 법.

사람을 잘 부리면 된다. 난 그렇게 했다.

실패하면 뭐, 외할아버지한테 돈 좀 꾸고. 안 빌려준다고 하면 저기 섬나라 왕자님인 알한테 좀 빌리지, 뭐.

그것도 안 되면, 여기 와서 반나절을 버리면서까지 날 기다리던 미국 최고 권력자 아저씨한테 슬쩍 말을 꺼내 보면 되는 거다.

쫀쫀하게 1~2백억 안 빌려주겠냐고.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너 뭐 했냐?”

동훈이 형이 물었다.

“뭐 좀 했지.”

정확히는 돈 버는 일을 좀 했다.

성공 여부는 미정이긴 하지만 담당하던 놈이 될 것 같다고 했으니, 될 거다.

* * *

강푸름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간단히 물건 하나를 만들어 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선행 연구가 꽤 된 상태였으니까.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걸 혼자 했다고요? 푸름 팀장님 기어 엔지니어라고 하지 않았어요?”

연구 부서에 배정된 연구원이었다.

예전에 불법 연구소에 소속된 경력이 있어, 취업 활동에서 번번이 실패하던 중년의 여자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푸름을 바라봤다.

술 먹고 자신을 유혹하지만 않으면 유능한 연구원이었기에 썩 괜찮은 동료라고 할 수 있었다.

“네, 기본적으로 구조는 비슷하니까요.”

“아니요. 이건 혁신이에요. 혁명이라고요! 말도 안 돼. 석 달 동안 일의 진척은커녕 실마리도 못 잡고 있었는데.”

술버릇이 고약한 여자 연구원이 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푸름은 하얀 가운 대신 입은 점프슈트 형태의 작업복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껴 둔 초콜릿이 있었다.

비만에서는 벗어났지만, 끝내 군것질하는 버릇은 버리지 못했다.

푸름은 조금 더 먹는 대신 운동량을 과격하게 늘리는 쪽을 택했다.

그게 꽤 고통스럽긴 해도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 아껴 둔 초콜릿 하나를 여자 연구원에게 건넸다.

“먹어요. 당분은 마음에 안정을 줍니다.”

연구원은 푸름의 호의를 받아들었다.

푸름은 그걸 보고 발걸음을 뗐다.

이쪽 부서에 지원 나온 지 3개월, 소기의 성과는 이룬 셈이다.

이제 본업으로 돌아갈 때고.

‘광익이 바쁘려나.’

커스터 마이징 장비를 맞추려면 그 사람의 전투 형태를 파악해야 한다.

청기사 레이드 때의 전투 상황을 전해 듣긴 했지만, 본인에게서 직접 듣고 싶은 것도 많았다.

꾸벅.

마주 오던 연구원의 인사에 푸름이 고개를 숙였다.

“너무, 너무, 너무 잘생겼어.”

“오늘 밤에 내 반찬은 강 팀장님이다.”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연구원 둘이 중얼거리며 지나쳤다.

이제는 이런 반응이 익숙했다.

불멸특수대, 화림 내에 있을 때와는 다르다.

그쪽은 전부 불멸자, 큰 소리 내지 않는 게 습관이자 배려였다.

지나가며 저리 말하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일반인이 저들은 그리 세심하지 못하다.

푸름은 못 들은 척 지나쳤다.

대신 제 생각에 집중하며 지나치는 와중이다.

“맞아?”

이동훈 과장, 아니 이제는 이사다.

NS의 중추 중 하나다.

눈 밑이 검은 양반이 자신의 앞을 막아섰다.

“뭐가 맞습니까?”

푸름이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판독기?”

푸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3개월 동안 지원 와서 개발한 제품이 판독기였다.

기어와는 다르지만, 구조가 비슷하기에 손만 빌려준 일이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한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광익이 일전에 불법 연구소를 털면서 가져온 연구자료였다.

선행 연구가 꽤 많이 진행되었기에 길만 찾으면 되는 거였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미 목적지는 정해졌으나 가는 길이 정해지지 않은 거였다.

푸름이 한 일은 목적지를 향해 방향을 조정해 준 것뿐이다.

그러니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고.

“미쳤군.”

“네, 앞으로 판독기가 더 정밀해지겠죠.”

“그게 다가 아니, 아니다. 너랑 얘기해서 뭐 하겠냐. 나 간다.”

동훈이 돌아섰다.

강푸름은 의문을 품지 않았다. 할 일이 많았다. 다른 곳에 관심을 두고 싶진 않았다.

제 작업실을 향해 가는 중에 쉬는 중인지, 손목에 달아 둔 태블릿 PC로 뉴스를 보는 직원이 보였다.

아나운서가 떠드는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청기사 소멸 이후 블랙홀의 변화에 사이오닉 협회에서는 당장 조치를 취한다고…….”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그리 관심도 없었으므로.

* * *

청기사 레이드 이후다.

블랙홀의 형태가 조금 변했다.

큰 변화는 아니었다.

눈먼 개가 튀어나오고, 휠 나이트 따위가 튀어나오는 거야 같다.

특이종이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 같다는 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변한 건 하나뿐이다.

“신호가 개판이야.”

이지혜 팀장 누나와 통화하며 들은 얘기다.

어스 블랙홀 판독기의 오류가 잦단다.

눈먼 개라고 해 놓고 슬라임이나 오크가 튀어나오질 않나.

슬라임이라고 해 놓고 리빙 아머가 튀어나오질 않나.

웜 종류로 판단하고 지뢰를 준비했더니 헬 페어리가 튀어나오질 않나.

덕분에 중상자가 셋이나 나왔단다.

사망자도 하나 발생했고.

그럼 사이오닉 협회가 판독기를 개판으로 만드냐, 그것도 아니다.

“블랙홀 형태가 조금 변한 것 같은데?”

이 일을 강푸름한테 슬쩍 말했더니, 어렵지 않게 답이 돌아왔다.

“조금?”

“이전에는 인베이더가 뿜는 에너지의 절대치로 홀의 형태를 짐작했다면 지금은 그 역학이 변한 거지. 에너지 수치가 변했다는 건 아니고 일종의 통신 교란이랑 비슷한 건데, 주파수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자면…… 그만할까?”

다행이었다. 강푸름에게는 사회성이 있다.

어디 정가의 기남이 같은 새끼가 아니었다.

“응. 그만.”

들어도 모르겠다. 자식아.

나도 기초적인 지식은 있지만, 저기서 더 나아가면 한국말이지만, 타국의 언어처럼 들리는 마법이 펼쳐지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닥쳐라.

“본래 에너지 수치를 확인하는 과정을 그 예전에 네가 털었다던 연구소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던 게 있었어. 그 방식은.”

“거기까지.”

너 설명충이었냐? 틈만 나면 말이 길어진다.

“생체 신호를 기반으로 판독기 형태를 바꿨다는 거지.”

강푸름이 말을 끝맺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모른다.

나도 모르고 강푸름도 몰랐다.

아는 건 중고 형이었다.

슬쩍 말했더니.

“응? 뭘 개발해? 판독기? 야, 그게 쉬운 게 아니야. 사이오닉 협회가 괜히 그 전권을 쥐고 있는 게 아니라고, 뭐? 진짜로 개발해? 신호 체계가 달라? 임상시험은? 그게 성공할 것 같아? 만약 성공하면 어떻게 되냐고?”

중고 형은 날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내가 대푠데 가끔 저런 눈빛을 보내는 직원이 있다.

이 형도 그중 하나다.

“돈방석에 앉는 거지.”

그랬다.

간단히 말하자면 NS는 돈방석에 앉을 물건을 개발했고.

정확히 말하자면 내 소유였다.

판독기가 무슨 백신도 아니고.

임상시험은 간단했다.

경찰 쪽에 무료로 프로토타입 기계를 몇 개 지원하면 끝이었다.

초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에서 딱 한 달.

판독기 시장이 뒤엎어졌다.

[NS가 만든 게이트 판독기 시장 독점! 이대로 괜찮은가?]

사이오닉 협회에서 이런 타이틀 기사를 연신 냈지만, 뭐 어쩌겠나.

법으로도 아무도 날 터치하지도 않았다.

주먹으로는 당연히 안 건드리고.

정부에서는 오히려 날, NS를 응원했다.

표창장이 벽에 붙다 못 해 바닥에도 쌓였다.

대통령이 틈만 나면 표창장을 보냈다.

그리고 난 그 한 달 동안 전력으로 훈련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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