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재능은 때론 저주가 된다 (10)
“재능은 때론 저주가 되는 법이란다.”
아줌마가 말한다.
혜민이는 어릴 때부터 특출난 재능을 타고났다고 한다.
그게 발현된 건 고작 5살.
일인 전승 학파지만, 아줌마는 연맹과 꽤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정치적인 입지, 노친네 비위 맞추는 괜찮은 센스만 유지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불행의 시작은 딸 아이, 혜민이가 가진 재능 때문이었다.
“스펠 유저 중에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이 아이, 연맹을 위해 바쳐야 하지 않겠나?”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 능력을 키우세. 그리하세, 날 못 믿겠나?”
연맹의 늙은 괴물,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하는 어린 천재 마법사, 연맹주라는 작자까지.
다들 혜민이를 탐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몸이 타고난 재능을 지녔으니까.
스펠 크리에이터는 귀하다. 그들은 여러 가지 주문을 만들고 개발하고 개조한다.
그중 가성비 좋은, 그러니까 마력 대비 효율이 좋은 주문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는 각광받기 마련이다.
스펠 유저는 좀 다르다.
그들은 마법을 쓰는 재능이 탁월한 이들이다.
일반적으로는 크리에이터가 더 귀하다. 보통은 그렇다.
하지만 혜민이는 경우가 좀 달랐다.
연맹에서는 갖고 있지만, 쓸 수 없는 스펠 기어나 주문 따위가 있다.
그 주문이나, 스펠 기어는 사용할 수만 있다면 아아아아아아주 대단한 주문이란다.
핵무기 같은 거라고도 하는데 뭐, 아줌마는 주문과 핵은 궤가 다른 무기라고도 덧붙였다.
아무래도 이 말은 날 위한 첨언 같고.
듣는 나도 배려하며 말하는 걸 보니 여유가 넘쳐 보이기도 했다.
마력을 다루는 솜씨와 별개로 마나와 친숙한 몸이 있다. 아니, 있다고 한다.
그걸 마나 친화력이라고 하고 이걸 보통 스펠 유저의 재능으로 치는데.
“혜민이는 그 재능이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특이했지. 그게 어느 정도냐면, 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데 공식도 없고, 원리도 모르면서 답이 보이는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감으로 찍는 데 그게 다 맞는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근데 그게 다 정답이야. 하물며 주관식 문제인데도 그랬지. 내 딸은 그런 재능을 타고났지.”
어쩐지.
머리 쓰는 걸 장기로 삼는 애가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주문을 잘 쓰나 했다.
“연맹이나 기타 등등 마법 부리는 애들은 혜민이를 세뇌하든지 백치로 만들든지 그 친화력을 토대로 무기로 삼을 생각이었고, 난 그 꼴을 보기 싫어 나왔단다. 네 아비는 갑자기 대 마법 번영 시대를 열어야 한다면서 딸을 희생해야 한다고 쥐약 먹은 소리를 하기에 곧바로 손절했지. 내가 미쳤지, 그런 인간이랑 결혼하고.”
이혼한 아줌마나 할 법한 코멘트가 뒤에 붙었다. 내가 처음 봤을 때부터 아줌마는 싱글맘이었다. 싱글맘, 틀린 표현은 아닐 거다.
이혼 서류만 안 주고받았지. 안 보고 산 세월이 이미 십오 년을 훌쩍 넘었다고 하니.
그나저나 이런 얘기는 슬픈 표정이나 그런 뉘앙스로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은데.
아줌마는 연신 무릎을 주먹으로 통통 때리면서 말했다.
“에구, 늙으니까. 무릎부터 아파. 운동 부족인가. 마실 거 있니?”
싸우러 오면서 생수를 챙겨오진 않았다.
“나중에 마시지 뭐.”
어찌 저리 태평한가.
정작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 혜민이도 화를 내려다가 멈췄다.
“그러니까 엄마 때문이 아니라…….”
“그게 중요하니?”
혜민이 엄마가 직구를 던졌다. 혜민이가 눈을 깜빡였다.
“나 때문이잖아. 엄마가 나 때문에 전부 포기했잖아. 명예, 돈, 권력, 전부, 마법사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걸 다 포기했잖아. 나만 아니었으면 엄마는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하고 살 수 있었을 거야? 나만 아니었으면 괜찮을 거란 거잖아.”
혜민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제 엄마는 마법 연구를 참 좋아한다고.
일 때문에도 돈 때문에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옆에서 보다 보면 금세 알게 된다고.
그런데 주문 사냥꾼 놈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돼서 마음대로 연구를 못 한다고도 했다.
언젠가 개수작을 부리는 주문 사냥꾼을 전부 잡아 불태워 죽이겠다는 사이코패스 옆집 동생의 말이 떠올랐다.
고로 지금 혜민이가 내뱉는 말은 진실이었을 거다.
아줌마가 유유히 과거 히스토리를 읊는다는 것 자체가 그 말을 인정하는 거고.
아줌마는 생긋 웃었다. 그 미소에는 여유와 함께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따뜻함이 있었다.
강슬혜 여사가 가끔 저런 얼굴을 하곤 했다.
가령, 내가 일진을 두들겨 패서 사고 친 직후에도 저런 얼굴을 했었다.
또는 내가 장래 희망을 말했을 때도.
탐탁지 않아 했고, 미소가 없었기에 지금 아줌마와 표정은 달랐지만.
같은 얼굴이다. 그리 느껴졌다.
아줌마가 입을 열었다.
“난 마법사이기 전에 엄마야. 그게 싫니?”
싫을 리가.
혜민이가 아줌마를 노려보다가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어머니가 일어나 제 딸의 머리를 안았다.
혜민이는 말없이 안겼다.
처음 보는 강혜민이 여기에 있었다.
훙.
낡은 폐창고 안에 서늘한 바람이 분다.
바깥으로 귀를 기울이니 분주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다.
로즈가 따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적은 아닌 듯했다.
잠시 그리 귀를 기울이며 포옹에 열중한 모녀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아줌마가 고개만 들어, 날 바라봤다.
“엄마이면서 마법사도 같이하시죠.”
“음?”
아줌마가 고개를 갸웃한다.
“경력 단절로 멈춘 꿈, NS에서 이뤄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혜민이 눈물을 멈추고 날 돌아봤다.
“무슨, 개소리야?”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그래도 말투는 어디 안 간다. 얘도 참 버릇이 개판이다. 개소리라니, 연장자가 말하는데 말이야.
“마법 연구에 들어가는 비용, 전부 책임지겠습니다.”
“사위, 그거 아니? 나 이제까지 번 돈 다 썼다?”
혜민이 집은 수십억대 자산가라고 들었다.
몇 년 전에.
그걸 다?
“마법 연구는 돈이 많이 들어.”
“일단 사위라는 호칭은 참아 주시고요. 네, 괜찮습니다.”
돈이야 벌면 된다. 혜민이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저 재능, 연맹에서 탐낸다는 저 재능.
기실, 주문 사냥꾼 뒤에 대륙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는 마법 연맹이 있다는 거 아닌가.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연맹 전부가 노린다고 한다.
저 사이코패스 말괄량이 혜민이를.
잡히면 백치가 되거나 세뇌당한다고?
재능은 때론 저주가 된다고?
그걸 옆에서 두고 볼 리가 있나.
“사위 아니고 서방 아니고 남편 아니고, 옆집 오빠로서 혜민이 안전도 겸사겸사 책임지죠.”
건드리면 뒈지는 거다.
이 싸패 옆집 동생이랑 인연이 벌써 수년째다.
혜민이든, 아줌마든 건드리면 나랑 누와르 영화 한 편 찍는 거다. 그 영화는 당연히 상영 불가 수준일 거고.
“오빠로 시작해서 아빠가 되는 게 불변의 법칙인 건 아니?”
아줌마가 자꾸 헛소리를 했다.
“그건 마법 학자로서 하는 말입니까?”
“아니, 좋은 사위를 탐내는 미래의 장모로서 하는 말이지.”
이 아줌마 말빨 보소.
강슬혜 여사 못지않네.
“오빠로 시작해서 아빠가 되려면 제가 아줌마랑 결혼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말의 맹점을 공격하니.
“풉.”
웃어 버린다.
그걸 보던 혜민이도 눈물 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파하핫 하고 웃는다.
그러면서 아줌마한테 ‘내 남자 건들지 마’ 따위의 코멘트를 날리는 걸 보면 쟤도 확실히 비정상이다.
“우리 잡아 뒀던 작자들은?”
웃음을 멈춘 아줌마가 물었다.
“천국의 문에 노크 중일 겁니다.”
그러고 살았으면 인정, 살 자격이 있는 거다.
“그냥 놔두고 왔니? 다 죽이고?”
“그럼요?”
시체를 불에 태우기라도 해야 했나? 진짜? 마법사가 불멸자도 아니고 그러고도 산다고?
“우리 광익이는 가끔 보면 똑똑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구나.”
그런 날 보며 아줌마가 혀를 찼다.
“네?”
“마법사가 지닌 건 전부 비싸거든. 그 시신을 그냥 두면 어쩌니, 빼 먹을 건 다 빼먹고 가져올 건 다 가져와야지.”
“그건 걱정하지 말죠. 제가 챙겼으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즈가 폐창고 안으로 양손 무겁게 들어왔다. 로브 뭉치 따위를 들어 얼굴이 반만 보였다.
무거워 보였다. 부피도 크니 불편해 보이기도 하고.
로브뿐 아니라 로브 안쪽이 덜그럭거리는 걸 보니, 잡동사니도 잔뜩 챙겨온 것 같았다.
“봤으면 좀 들어라.”
로즈가 투덜댔다.
“뭘 들어.”
난 로즈의 손에서 로브 더미를 빼앗아 하나를 펼치고 그 안에 나머지 옷, 네 벌을 곱게 접어 놓은 다음 잡동사니를 때려 넣었다.
그 뒤 가장자리, 네 군데를 잡아 보따리로 만들었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지.”
내가 말했다. 로즈는 ‘지랄’이라고 속삭여줬다.
난 왜 주변에 왜 정상적인 여자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로브는 그리핀 섬유 기반으로 만든 스펠 기어네. 이전에 광익이가 가지고 있던 코트보다 몇 배는 비싼 거.”
뒤에서 아줌마가 말했다.
그렇군요.
“우리 사위는 효율적이구나.”
그 비싼 걸 보따리로 쓰는 걸 보고 감명받은 눈치다.
“내 남자는 비싸다고 물건을 떠받들지 않지.”
쌍으로 정신병자가 된 모녀의 목소리다. 상큼하게 무시했다.
“밖에 사람.”
로즈가 말했다.
“누구?”
“한쪽은 정부, 한쪽은 단군에서.”
음?
“도우러 왔는데, 주문이 너무 험악해서 안으로 들어오진 못했다고. 이 물건도 그쪽이 챙겨 준 거야. 시신 처리, 후처리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
로즈가 코를 긁으며 말했다.
꽤 거창한 대우를 받은 듯했다.
안 그래도 폐창고 바로 앞에서 두 명의 특수종이 기웃거리는 중이었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죄송합니다. 도우러 와서 구경만 한 꼴이 됐네요.”
“할 말이 없습니다.”
두 명의 특수종이 대뜸 이리 말한다.
“괜찮아요. 도와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딱히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요.”
대수롭지 않게 답하고 돌아섰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혜민 모녀와 로즈까지 데리고 기차 위에 무임승차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KTX 티켓이나 비행기 티켓 따위를 사야겠지?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앞에 선 둘이 자리를 뜨지 않고 쭈뼛거렸다.
둘을 바라봤다.
안 가요?
눈으로 물었다. 그래도 안 가고 비빈다. 왜? 뭐?
눈이 마주친 한 명이 입술을 살짝 깨문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지.
사인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펜하고 종이 따위가 보이지 않는다.
뭔가 똥 마려운 강아지를 보는 기분이다.
내가 말없이 바라만 보자, 결국 둘 중 하나가 입술을 뗐다.
“그, 죄송한데 딱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물어보세요.”
얼른 답하고 집에 가게, 얼른 물어보쇼.
“시신 다섯 구를 발견했습니다. 청기사 슬레이어 님 작품 맞습니까?”
이제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날 저리 부르려나? 청기사 슬레이어라고?
거참 듣기 빡빡한 이명이다.
그냥 이름 불러도 되는데.
하긴, 이름 부르는 게 부르는 사람 처지에서는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네. 작품이라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네 제가 했어요.”
“다섯 전부요?”
“네.”
“주문 파훼 기어를 들고 계십니까?”
“아니요.”
“혹시 항마의 인을 새기셨습니까?”
“그건 뭡니까?”
“마법사십니까?”
둘 다 진지했다.
“아닐걸요.”
마지막 질문은 알면서 물어본 것 같다. 둘 다 혜민이보다는 옅지만, 비슷한 냄새가 난다.
고로 주문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란 거다.
“맨몸이었다는 거네요. 저 마법사 다섯 사이에서.”
뭐라 답하기도 전에, 곁에 있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하물며 최소 한 달은 날밤 까면서 준비해도 부족하지 않을 트랩 마법진도 있었고.”
말하다 말고 둘이 서로 눈을 마주친다.
이 양반들 왜 이래.
그러더니 둘 다 동시에 날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청기사를 죽이고 휴식도 없이 바로 오시다니,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군요.”
“아, 네.”
극존칭에 공경 그 자체다.
아무리 동방예의지국의 대한민국이라지만, 어릴 날 상대로 너무 깍듯하다.
“돌아가시는 길 불편하지 않게 전용기를 대기해 두겠습니다.”
그러더니 이런 말도 한다.
“전용기요?”
“단군에서 이리 신경 썼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길.”
둘 중 한쪽이 먼저 선수를 친 낌새다.
나머지 하나는 옆을 아주 잠깐 흘겨보다가 도로 날 바라봤다.
“음, 네. 전 공무원이라 전용기가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했나.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럼 부탁드려요.”
단군 그룹 전용기면 할아버지의 배려겠지?
난 그리 생각했다.
* * *
강노석은 전해온 소식을 듣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자네만 같이 가지.”
제 비서를 향한 말에 몸집 크고 늙은 비서이자 친구도 몸을 움직였다.
이리 나서는 건 급한 일이라는 증거다. 회장은 궁둥이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발을 놀렸다.
회장은 차에 타고 나서야 본론을 꺼냈다.
“미국이 움직였어.”
“미국?”
비서가 되물었다.
“그래, 이 새끼들 어디서 남의 핏줄에.”
회장이 눈을 부라렸다.
비서는 행선지를 향해 달렸다.
목적지는 NS 본사.
마법사를 조지고 돌아온 손자의 회사를 향해서다.